금속노조가 현대자동차그룹의 부품사 원가 절감 요구와 원청교섭 거부에 맞서 20일부터 이틀간 자동차 업종 공동파업에 들어간다. 첫날에는 부품사와 비정규직 노동자가, 이튿날에는 완성차 노동자가 파업하는 방식이다. 완성차와 부품사,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서로의 요구를 공동 의제로 내걸고 교차 파업에 나서는 것이 이번 투쟁의 핵심이다.
금속노조는 19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21일 자동차 업종 공동파업 계획을 발표했다. 앞서 금속노조 중앙쟁의대책위원회는 20일 자동차 부품사와 현대차그룹 계열사, 자동차 업종 원청교섭 요구 사업장이 교대근무조별 4시간 이상 파업하고, 21일에는 완성차 사업장이 교대근무조별 6시간 이상 파업하기로 결정했다.
출처: 금속노조
금속노조가 공동파업의 전면에 내건 요구는 세 가지다. 부품사 노동자 보호를 위한 노사정 협의체 구성, 하청노동자와 원청의 교섭을 성사시키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행정 집행, 소득 공백 없는 정년연장 법제화다. 개별 사업장의 올해 임금·단체협약을 넘어 자동차산업의 원·하청 구조와 산업전환 과정의 고용 문제를 공동 의제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특히 부품사 납품단가 문제가 이번 파업의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금속노조는 현대차그룹이 모듈·직서열 부품사에 2027년까지 최대 20%의 원가 절감 방안을 제출하도록 요구하고, 원가 절감 달성률에 따라 물량 배정과 입찰 자격에 차이를 두는 페널티 도입까지 거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영업이익률이 2~3%에 불과한 2·3차 부품사까지 비용 절감 압력이 내려갈 경우 기업의 경영난과 노동조건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봤다.
박상만 금속노조 위원장은 전날인 18일 발표한 담화문에서 현대차그룹이 차량용 운영체제(OS)와 배터리 등 핵심 분야는 내부화를 강화하면서 수익성이 낮은 기존 내연기관 부품은 외부 조달과 글로벌 아웃소싱으로 돌리는 이른바 '선택적 집중과 외주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박 위원장은 "완성차 부문은 최대 실적을 구가하는 반면, 그 부담은 하위 부품 생태계로 전가되고 있다"며 공급망 재편이 부품사 노동자의 구조조정과 고용불안, 노동조건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진홍 금속노조 경주지부장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부품단가 문제가 국내 자동차산업의 생산 기반과 직결돼 있다고 주장했다. 정 지부장은 현대차그룹이 로봇과 미래산업 투자를 확대하면서 그 비용을 납품단가 인하 방식으로 부품사에 전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국산 부품 직수입으로 국내 부품사의 일자리까지 감소하고 있다며 "한번 무너진 국가의 제조 기반은 다시 되돌릴 수 없다"고 말했다.
원청교섭도 공동파업의 또 다른 축이다. 금속노조는 개정 노동조합법 2조 시행으로 노동조건에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는 원청의 사용자 책임이 확대됐지만 현대차·현대모비스·현대위아·현대글로비스 등 현대차그룹 주요 계열사가 하청·용역·자회사 노동자들의 원청교섭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교섭 요구 사실을 공고하지 않거나 교섭에 참여하지 않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기호 금속노조 울산지부장은 현대차가 공장 재건축에 따른 물량 재편과 부품사 원가 절감, 해외공장 생산 확대 등을 통해 부품사 노동자의 고용과 노동조건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지부장은 "부품사, 협력사 노동자들의 임금, 고용, 안전 등 현대자동차가 실질적인 결정권을 행사하는 문제를 교섭으로 해결하기 위해 법문대로 교섭을 요구했다"며 현대차가 상생협력을 강조하려면 원청교섭부터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완성차 노동자들은 정년연장과 고용안정 문제를 전면에 내걸었다. 금속노조는 전기차와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로의 전환, 자동화·로봇 도입과 국내 생산물량 변화가 완성차 노동자의 고용 규모를 줄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법정 정년을 65세로 올리고 임금 삭감이나 고용불안을 동반하지 않는 계속고용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정부에 요구했다.
강성호 금속노조 기아자동차지부장은 기아에서 매년 약 2천 명이 정년퇴직하는 반면 신규 채용은 충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 지부장은 정년연장과 함께 국내 공장의 신사업·신차종 투자, 신입사원 충원을 요구하면서 "정년연장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고 말했다. 기아 노사는 지난 6월 4일 상견례 이후 19차례 교섭을 진행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한 상태라고 노조는 밝혔다.
이종철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장은 정년연장과 함께 임금의 고정성을 높이는 문제를 제기했다. 이 지부장은 현대차 조합원의 고정임금 비중이 54.8%라며 상여금 50%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기존 숙련재고용 제도를 "저임금 임시직으로 되돌리는" 방식이라고 비판하면서 정년 자체를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조에 따르면 현대차 노사는 법률 개정과 별개로 단체교섭을 통해 정년을 연장한 전례가 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번 공동파업을 완성차 정규직 노동자만의 임금 투쟁으로 보는 시각에 선을 그었다. 양 위원장은 "이번 파업은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원인을 노동자들에게 뒤집어씌운 부당함에 대한 저항"이라며 원청교섭 이행과 원·하청 불공정거래 개선, 정년퇴직 이후 노후소득 공백 해소를 정부와 사용자에게 요구했다.
금속노조는 완성차와 부품사 노동자가 각자의 요구만 내건 것이 아니라 서로의 요구를 파업 의제로 삼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20일 부품사·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완성차 노동자의 정년연장 요구에 연대하고, 21일 완성차 노동자들은 부품단가 문제와 원청교섭 요구에 힘을 싣는 구조다. 금속노조는 이를 "단순한 임단협을 넘어 재벌 자본의 공급망 재편 및 원·하청 불공정 구조에 맞서는 사회적 투쟁"으로 규정했다.
노조는 정부가 부품사 보호와 원청교섭, 정년연장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경우 공동파업을 이어갈 수 있다는 입장이다. 자동차산업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과 고용 불안을 공급망 아래쪽 노동자에게 떠넘기는 기존 구조를 그대로 둘 것인지, 완성차와 부품사를 하나의 산업 생태계로 보고 정부와 원청의 책임을 확대할 것인지가 이번 공동파업의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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