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잔 선언과 브릭스의 딜레마

출처: Alina Grubnyak, Unsplash 

브릭스 국가들의 카잔 정상회의는 여러 가지 이유로 역사적인 회의였다. 첫째, 이 회의는 '파트너 국가들(partner nations)'이라는 새로운 범주를 만들어냈는데, 이는 완전한 회원국으로의 발걸음을 내딛는 과정으로서 13개 새로운 '파트너' 국가들을 받아들였고, 이들 중에는 쿠바와 볼리비아도 포함되었다. 둘째, 이 회의는 미국 주도의 제국주의 국가들이 자신들의 헤게모니로부터 독립을 주장하는 국가들에 가해온 일방적인 경제 제재에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셋째, 이 회의는 국제 통화 및 금융 시스템 개혁을 위한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카잔 선언(The Kazan Declaration)' 자체는 달러의 헤게모니를 극복하기 위한 조치들을 간략히 제시하며 그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러시아 정부 기관들이 작성한 배경 문서는 더욱 상세한 내용을 제공했다.

이러한 중요한 발전들은 환영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브릭스가 글로벌 사우스 문제에 대해 채택한 접근의 근본적인 한계를 무시할 수 없다. 이 접근의 본질은 WTO나 브레튼우즈 체제 쌍둥이(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와 같은 기존의 제도들을 보다 대표성 있게 만드는 것에 있으며, 글로벌 사우스의 문제는 그보다 훨씬 깊다. 물론, 브릭스는 이질적인 블록이므로 급진적 의제를 채택하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지만, 여기서 문제로 삼고자 하는 것은 급진적 의제를 채택하는 것이 가능한지 여부가 아니라, 무엇이 급진적 의제인지에 대한 문제다.

브릭스 선언은 현재 상태의 국제 기구들이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해 지배되고 대표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결함이 있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기구들의 본질 자체가 결함이 있다는 점이며, 그것이 어떻게 운영되든 간에 변하지 않는다. 비유하자면, 브릭스의 입장은 현재 시스템에서 노동자들의 착취가 카르텔과 독점 때문에 발생하며, 독점을 자유경쟁으로 대체하면 이러한 착취가 사라질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예를 들어 WTO를 살펴보자. 카잔 선언은 선진국들이 WTO 정신으로부터 멀어지면서 보호주의를 실천하고 있다고 언급한다. 이로 인해 글로벌 사우스가 차별을 받고 있으며, 이는 WTO 운영에서 남반구의 더 나은 대표성을 통해서만 바로잡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WTO의 기반이 된 자유무역 논리 자체가 결함이 있다. 이 논리는 세이의 법칙(Say’s Law)을 전제로 하는데, 이 법칙은 총수요의 결핍이 결코 발생하지 않으며, 따라서 시장에 대한 쟁탈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모든 국가는 무역 이전과 이후 모두 모든 자원의 완전 고용 상태에 있으며, 다만 무역 이후에는 자원이 다른 상품 묶음을 생산하기 위해 다르게 배치될 뿐이라고 가정한다.

그러나 이는 자본주의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이러한 이유로 남반구 국가들을 자유 무역 또는 심지어 자유주의적 무역에 종속시키는 것은 이들 국가를 상호 간에 다윈주의적 경쟁에 내모는 것과 같으며, 요컨대 어떠한 형태의 협력도 무산시키는 것이다. WTO 철학은 남반구 국가들 간을 포함한 국가들 간의 협력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간의 치열한 경쟁을 촉진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WTO 규정에 따라 국가가 특정 산출물의 가치의 10%를 초과하는 농민 지원금을 제공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규칙은, 인도가 이를 위반하는지 여부와는 별개로, 심각한 결함을 가진 규칙이다. 이 규칙이 기반하고 있는 '시장 왜곡' 보조금과 '비시장 왜곡' 보조금의 구분 자체가 시장의 '효율성'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이는 케인즈 이전 경제학으로의 회귀라 할 수 있다. 이 구분은 WTO가 만들어낸 비현실적인 세계 밖에서는 어떠한 존재 이유도 가지지 않는 터무니없는 전제에 불과하다.

브릭스 선언의 주요 내용은 또한 미국 달러의 헤게모니를 제거하고, 상호 고정 환율을 가지는 자국 통화로의 국제 무역을 확대하는 데 있다. 달러의 헤게모니를 제거하는 것은 분명히 찬사받을 목표이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필요한 것은 금융의 헤게모니 또한 제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적어도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경상수지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조정은 적자국이 아니라 흑자국이 수행해야 한다. 둘째, 불균형이 해소될 때까지 흑자국은 자신에게 들어오는 모든 적자국의 IOU(차용증서)를 수용할 의향이 있어야 한다. 셋째, 미결제 부채를 청산하기 위해 자산 이전('민영화')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적자국이 아니라 흑자국이 조정하도록 하는 것은 단순히 지배력을 제거하기 위한 것뿐만 아니라, 세계 생산 및 고용의 관점에서, 더 나아가 전 세계 노동자들의 복지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흑자국이 조정을 해야 한다면, 자국 내 상품과 서비스 소비가 증가할 것이고, 자국의 생산이 거의 완전 고용에 가까운 상황이므로 이는 수출 감소를 초래할 것이다. 적자국은 이전과 같은 수준의 국내 소비를 유지하더라도, 수입이 감소함에 따라 더 많은 생산과 고용을 경험할 것이다. 따라서 두 국가를 통틀어 보면 총수요가 증가하여 더 많은 생산과 고용이 이루어질 것이다. 또한, 흑자국의 증가한 소비가 자국 노동자들의 소비 증가로 나타날 경우, 두 국가의 노동자들이 얻게 되는 혜택은 더욱 클 것이다. 흑자국에서는 더 많은 소비를 통해, 적자국에서는 더 많은 고용을 통해 혜택을 얻게 된다.

반대로, 현재 관행처럼 적자국이 조정을 해야 한다면, 이는 국내 소비를 줄여야 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해당 국가 내에서 경기 침체를 초래할 것이다. 전 세계 총수요의 수준은 전 세계 노동자, 특히 적자국의 노동자를 희생시키면서 감소하게 될 것이다. 적자국의 조정을 통해 현재 불균형을 해소하는 것은 흑자국의 조정을 통해 해소하는 것보다 열등한 방법이지만, 흑자국의 조정을 강제하는 것은 분명 더 어렵다.

또한 흑자국이 조정하는 체제를 마련하지 않은 채 달러 헤게모니를 제거하게 되면, 헤게모니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또 다른 통화의 헤게모니가 등장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브릭스 국가들이 고정 환율을 가진 자국 통화로만 서로 교역한다고 가정해보자(그렇지 않으면 무분별한 환율 투기로 인해 교역 체제가 유지되기 어렵게 된다). 만약 한 국가가 다른 국가에 대해 지속적인 경상수지 적자를 가지고 있다면, 현재 관행대로 이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국내 소비를 줄이거나, 아니면 흑자국에 차용증서(IOU)를 계속 발행하여 자국 통화에 대한 압력이 쌓여 결국 고정 환율을 유지할 수 없게 되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후자의 경우, 일부 통화, 즉 흑자국의 통화들이 다른 통화들에 대한 헤게모니를 갖게 될 것이다. 달러를 대체하는 것은 분명히 매우 바람직한 일이지만, 결국 달러의 자리를 다른 통화가 대신하게 될 뿐, 통화 헤게모니가 제거되는 것은 아니다.

카잔 선언은 브레튼우즈 쌍둥이 기구들의 거버넌스 방식을 변화시켜 이 기구들이 더 대표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이를 통해 남반구 국가들이 더 낮은 비용으로, 그리고 덜 엄격한 '조건부'로 금융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브릭스 은행(BRICS Bank)도 이러한 목적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모든 시도들은 매우 칭찬받을 만한 일이지만, 남반구 국가들의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할 것이다. 금융을 더 쉽게, 더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된다고 해도, 이는 단지 이들 국가가 스스로 목을 맬 수 있는 밧줄의 길이를 늘려주는 것에 불과하다. 목을 매다는 운명을 피하려면 금융의 필요성 자체가 완전히 사라져야만 한다.

이러한 금융 필요성의 소멸은 결코 유토피아적인 아이디어가 아니다. 소련 시절에는 인도를 포함한 여러 국가들이 소련과 양자 간 무역 협정을 체결했으며, 여기서 환율은 고정되어 있었다. 무역 흑자와 적자는 한 시기에서 다음 시기로 이월되어 상호 합의된 상품과 서비스 교환을 통해 해결되었다. 여기에는 '금융'에 대한 특정한 필요성도, 헤게모니의 행사도, 적자국의 활동 수준을 줄이는 '긴축'을 통한 조정도 필요하지 않았다. 물론, 소련은 계획 경제 체제였기 때문에 이러한 방식을 실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브릭스가 볼리비아 대통령이 정상회의에서 희망했던 것처럼 남반구 국가들에게 제국주의적 헤게모니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진정한 탈출구를 제공하려면, 억압적이지 않은 그러한 체제를 각색하여 마련해야 한다.

어쨌든, 단지 세계 자본주의가 고안한 현재의 국제 기구들을 조금 더 대표성을 가지도록 개선한 후 이를 그대로 지지하는 것에는 내재된 위험이 존재한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출처] The Kazan Summit of BRICS

[번역] 류민

덧붙이는 말

프라바트 파트나익(Prabhat Patnaik)은 인도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이자 정치 평론가다. 그는 1974년부터 2010년 은퇴할 때까지 뉴델리의 자와할랄 네루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 연구 및 계획 센터에 몸담았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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