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용균·김충현과의 약속 언제까지 미루나"..."협의체 지연, 이재명 정부 향한 불신 키울 것"

지난달 2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목숨을 잃은 고 김충현 노동자의 49재가 어느덧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유족들이 정부를 믿고 장례를 치른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정부가 약속했던 '재발 방지 협의체'는 아직 구성조차 매듭짓지 못한 채 지연을 거듭하고 있다. 고인의 동료들과 시민사회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정부의 책임을 물으며, "'일하다 죽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전 사회적 투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고 김충현 노동자 49재 입장발표 기자회견 현장. 참세상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17일 오전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인의 유족들은 정부의 협의체 구성 약속을 믿고 장례를 치렀으나, 장례 후 한 달이 지나도록 협의체는 구체화되지 못하고, 진상규명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협의체의 지연은 김충현의 동료들에겐 희망고문이 될 것이고, 유가족에게는 기망이며, 대책위에게는 이재명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한 불신이 될 것"이라며 "이제 정부가 답을 하고 책임을 져야 할 차례"라고 짚었다. 

정부는 고인의 장례를 앞두고 '고 김충현 사망사고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고용·안전협의체' 구성을 대책위에 제안했으나, 6월 17일 장례 이후 한 달이 지나도록 협의체는 공식 출범하지 못한 상황이다.

대책위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대책위는 지난 한 달간 정부와의 협의체 '구성'을 위한 '실무협의'에 네 차례 참여했으나, 17일 현재까지 협의체 구성 방안과 의제 등에 대해서 구체화된 합의안이 정해지지 못했다. 다음 실무협의 일정이나 협의체 출범 및 본 회의 시기도 못 박지 않은 상태다. 

대책위는 이날 발표한 입장문에서 "우원식 국회의장과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가 (고인의) 장례식장에 다녀갔고, 이재명 대통령을 비롯해 많은 정치인들이 언론을 향해 고 김충현의 사망사고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 규명과 해결을 주문했다"고 환기하면서 "그러나 49재가 다가오도록 제대로 된 진상규명은 이뤄지지 않고, 협의체도 장례 이후 지금까지 구체화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묻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김충현 협의체'는 빠르게, 제대로 시작되어야" 한다며 특히 협의체가 "지난 김용균 특조위(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가 서 있는 지점에서 시작되어야 하고, 그 한계를 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9년 특조위는 22개의 권고안을 발표했으며, 그중 첫 번째는 하청 노동자의 직접고용 정규직화였다. 대책위는 "김충현 협의체는 이 권고의 의미를 되살리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면서 "무엇보다 김충현의 동료들, 발전소 2차하청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며, 이로부터 서부발전과 한전KPS 두 원청의 책임을 묻고 발전소 폐쇄를 앞둔 하청노동자들의 위태로운 생존에 대한 대책을 우선적으로 마련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짚고는, "김용균의 특조위 권고안의 이행처럼 고용과 안전을 분리하고 고용대책을 배제하는 한, 발전소의 비극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 경고했다. 

"발전노동자 투쟁으로, 죽음의 발전소 바꿔내자!". 참세상

한편, 정부 관계자는 그간 협의체 구성 지연 이유를 묻는 질문에, 새 정부의 관계부처 인선이 완료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해달라는 입장을 밝혀왔다. 17일에는 최근 한전KPS노동조합의 협의체 참여 요구에 대한 '부담'도 이유로 덧붙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와 협의체 구성 논의를 진행 중인 대책위에는, 고인의 동료들이었던 공공운수노조 한전KPS비정규직지회가 참여하고 있는 가운데, 이달 10일 전국전력산업노동조합연맹 소속 원청 정규직 노조인 한전KPS노동조합이 성명을 발표하고 정부와 대책위가 구성하는 노·정 협의체에 자신들의 참여를 보장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한전KPS의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고인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원청의 정규직 노조가 협의체에 참여할 경우 "고인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을 비롯해, 고 김용균에 이어 고 김충현 노동자로 반복된 참사의 구조적 원인인 '위험의 외주화' 문제 해결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대책위도 원청 한전KPS노조의 협의체 참여 요구를 정부가 수용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고인과 함께 태안화력발전소에 일을 해온 김영훈 한전KPS비정규직지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부는 다시 한번 이 협의체가 어떤 자리인지 상기할 필요가 있다"면서 "대책위는 김충현 동지의 죽음에 유가족의 위임을 받았기에 이 자리에 있는 것으로, 이번 사고의 원인인 다단계 하청, 부당계약, 갑질, 불법파견을 행한 범법자들이 같은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한다는 것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소리"라고 힘 주어 말했다. 

기자회견 현장에서 내리는 비를 맞으며 발언에 나선 김영훈 지회장은 "지금 내리는 비에 섞인 건 하늘로 간 동지들의 억울함과 남아있는 동지들의 눈물 그리고 분노"라면서 "정부가 참사 피해자의 목소리를 듣겠다고 고개 숙인 대통령에게 먹칠할 것이 아니라면, 협의체를 더 이상 지연지켜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고, 발전소 폐쇄에 우리의 생존권은 나날이 위협받고 있다"며 "책임자들이 책임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도망치는 순간 우리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들불처럼 일어나, 자신들의 피땀 어린 발전소를 멈추는 한이 있더라도, 한 목숨 지키기 위해 몸을 던지며 투쟁에 나설 것"이라 다짐을 전했다. 

박정훈 대책위 집행위원장도 "정부는 김용균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던 것처럼 김충현과의 약속도 지키지 않고 있다"며"더 이상의 죽음을 막기 위해, 대책위는 고인에 대한 추모를 끝내고 투쟁을 시작한다"고 결의를 밝혔다. 

대책위는 다음 달 27일로 예고된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총파업을, "정의로운 전환과 ‘일하다 죽지 않는 세상’을 바라는 모든 시민들의 파업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국민의힘 김소희 의원 규탄 긴급기자회견. 대책위 제공

이날 기자회견을 마친 대책위는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으로 다시 모여 긴급 항의행동을 진행했다. 전날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이 고 김충현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관계에 대한 제보를 받았다면서 "고인이 유일하게 노조에 가입하지 않았고 그 때문에 현장에서 괴롭힘과 따돌림을 당했다", "저희가 제보받을 정도라면 고용노동부가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고인이 한전KPS 직원과 나눈 문자 내용을 자료로 제출하고 김 후보자에게 질의한 내용이 "허위사실을 날조하여 고인과 동료 노동자들을 모독한 것"이라는 취지다. 

앞선 기자회견에서 김영훈 지회장은 김소희 의원의 해당 질의에 대해 "국회의원의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올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면서 "김소희 의원이 제출한 휴대전화 문자는 고인이 2019년에 주고받은 것이고, 노동조합이 만들어진 시기는 2021년이며, 문자를 주고받았던 사람은 한전KPS의 간부였고 당시 김충현 동지는 한전KPS와 하청업체의 부당한 계약으로 인해 고통을 호소하던 때"라면서 김 의원의 질의내용에 반박했다. 아울러 "김소희 국회의원은 허위사실을 가지고 날조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고, 죽어간 동지들의 죽음이 헛된 죽음이 되지 않도록 그 명예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사실을 은폐하고 날조하는 자들을 전부 찾아 투쟁할 것"이라 이야기했다. 

같은 날 저녁 7시에는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대책위와 공공운수노조가 함께 고 김충현 노동자 49재 추모 결의대회를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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