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경화하는 미국 이민정책, 흩어지는 가족들

나는 6월 18일 조 바이든 대통령이 발표한 새로운 "임시체류 신분 부여(parole in place, 약 10년 이상 계속 미국에서 체류한 미등록 이주민이 미국 시민권자와 결혼한 경우, 당사자와 그의 21세 미만 기존 자녀에게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지위를 부여하는 정책)" 정책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 50만 명 중 한 사람이다.

나는 서류 미비자이고, 내 배우자는 미국 시민이다. 8월 19일부터 신청을 받기 시작한 가족 함께 두기 프로그램(Keeping Families Together program)(또는 "임시체류 신분 부여 정책(parole in place)") 덕분에 나는 수년 동안 미국을 떠나거나 추방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게 되었다. 나와 같은 "미국 시민권자의 외국인 배우자" 약 50만 명도 이 프로그램에 자격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올여름 초에 이 발표가 있었을 때, 나는 내 신분을 바로잡을 기회가 생긴 것에 감사하며 신청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나는 온라인에서 신청서가 제공된 바로 당일에 신청서를 제출했다.

미국 정부는 여전히 서류 미비 배우자들의 신청을 받고 있지만, 이 프로그램은 공화당이 주도하는 법적 공격을 받고 있다. 8월 26일, 텍사스의 한 연방 판사가 이 프로그램에 대해 14일간의 중단 명령을 내렸다. 정부는 가족 함께두기 프로그램에 대한 "행정적 유예"가 해제될 때까지 신청서 처리를 중단하게 되었다.

이 공격으로 인해 내 희망은 불확실한 상태에 놓여 있지만, 가족 함께두기 프로그램에 대한 중단 명령이 결국 해제되더라도 이 정책이 현재 추방 위기에 처한 내 아버지, 오스카 베르무데스를 보호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절실히 깨닫고 있다.

내 아버지는 내가 5살 때 엘살바도르에서 이민을 왔다. 그는 미국에서 20년을 살았고, 수십 년간 이민 개혁을 약속하는 캠페인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우리 같은 수백만 가족들을 가족 분리의 고통으로부터 보호할 법은 여전히 없다. 우리 가족은 "혼합 신분" 가족이다. 이는 우리 중 일부는 이곳에서 태어났고, 다른 사람들은 이민자들이 신분을 조정할 수 있게 하는 제한적이고 불안정한 프로그램을 통해 신분을 신청할 수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들 중 대부분은 여전히 서류 미비 상태로 남아 있다. 우리는 추방에 의해 분리될 위험을 매일 느끼며 살아가는 수백만 가족 중 하나다.

이것이 미국 이민 정책의 고통스러운 현실이다. 일부에게만 구제를 제공하는 행정 조치의 조각난 체계 속에서, 더 많은 수백만 명은 점점 더 잔인한 형태의 이민 단속에 노출되어 있다. 단속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하나는 국경 순찰의 확대로 인해 국경 구금 캠프가 생겨나고, 이민자들이 국경을 넘는 것이 더욱 위험해지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내부에서 가족들을 분리시키는 추방이다. 이민에 대한 정치적 논의가 점점 더 민족주의적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가운데, 현재의 이민 시스템이 얼마나 잔혹한지, 그리고 내 가족과 우리 같은 수천 가족들이 함께 살기 위해 싸우고 있는 상황에서 추방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지난 20년 동안 아버지는 이 나라에서 매일 열심히 일했다. 그는 힘들게 번 돈으로 자신의 트럭 운송 회사를 설립할 수 있었다. 20년 동안 그는 세금을 내고 미국에서 삶을 구축했다. 그는 그의 가족, 특히 뉴저지에서 태어난 막내 아들, 8살인 내 동생을 부양했다. 그는 사랑하는 아버지이자 남편이며 친구이며, 우리 가족에게는 그가 여기 우리와 함께 있어야 한다.

출처: 오스카 베르무데스가 2022년 아버지의 날에 그의 막내 아들인 앤젤과 함께 앉아 있다. 리세스 베르무데스 제공. 

우리 악몽은 2023년 6월 4일에 시작되었다. 아버지가 한 트럭 운전사와 함께 미시간으로 이동하던 중 GPS가 그들을 캐나다로 안내했고, 그 순간 아버지는 즉시 이민 당국에 의해 구금되었다. 그는 26일 동안 구금되었고, 그것은 나와 가족에게 가장 힘들고 가슴 아픈 시간이었다. 아버지는 뉴욕의 버팔로 연방 구치소에 구금된 채 아버지의 날을 보냈다. 나는 그날 아버지를 면회했지만, 유리창 너머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고, 그를 껴안을 수는 없었다. 그는 가까이 있었지만 너무도 멀게 느껴졌다. 바로 옆에 있는 아버지와 전화기를 통해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그가 파란 수감복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보았고, 얼마나 여위었는지 알 수 있었다. 약 10분 후에 우리의 면회 시간이 끝났고, 아직도 기억나는 건 아버지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던 모습과, 그가 나를 돌아보지 못한 채 서둘러 방을 나간 장면이었다. 그것은 내 마음을 산산조각 냈다. 나는 그 방을 나와 하루 종일 울었다.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 집으로 돌아가면서 그를 데려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

출처: 리세스 베르무데스는 2023년 6월 18일 아버지의 날, 뉴욕 바타비아에 있는 버팔로 연방 구치소에서 아버지를 면회했다. 매튜 굴드(MATTHEW GOULD) 제공. 

아버지는 내 동생의 고등학교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나는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힘들어하는 어린 동생들을 위로해야 했다. 아버지와 내 동생 모두에게서, 이 중요한 순간과 소중한 시간들이 빼앗겼다. 졸업식 후 아버지가 자신을 껴안아주지 못한 슬픔이 동생의 눈에 고스란히 보였다. 내 어린 동생은 나에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를 질문들을 했다. 아빠가 체포된 것이냐고 물었고, 왜 그러냐고 물었으며, 언제 아빠가 집에 와서 자신을 데리고 공원에 가고 자전거를 타러 갈 것이냐고 물었다. 맏이로서 나는 강해져서 동생들과 엄마가 괜찮은지 돌보는 것이 내 책임이라고 느꼈다. 우리는 26일 동안 아빠와 함께한 포옹, 웃음, 추억이 없어진 것을 느꼈다.

우리는 "모비미엔토 코세차(Movimiento Cosecha, 미국 이민자 권리 단체)"와 함께 아빠의 추방을 막기 위해 가족과 지역 사회가 참여한 공공 추방 방어 캠페인을 조직했다. 모든 공공의 압박과 법적 지원 끝에 아빠는 석방되었고, 추방되기 전날 아빠의 추방 유예 1년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유예는 최근 만료되었고, 아빠는 6월 20일에 ICE(미국 이민세관단속국)에 다시 체크인하여 2차 추방 유예를 요청해야 했다. 그 요청은 또다시 1년간 승인되었지만, 내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이렇게 기한마다 불확실한 미래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어렵다. 아빠가 이 나라에 계속 머물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는 이 압도적인 불확실성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힘들다.

출처: 2023년 6월 21일, 뉴저지주 뉴어크에 있는 ICE 현장 사무소 밖에서 오스카 베르무데스의 가족과 지역 사회가 그의 석방을 요구했다. 게리 베로(Gery Vereau) 제공

내 아버지처럼 수년 동안 미국에 거주해 온 수백만 명의 서류 미비 이민자들이 있다. 마지막으로 포괄적인 이민 개혁이 통과된 것은 거의 40년 전이었으며, 그 법은 고용 제한과 같은 단속을 강화하는 대가로 300만 명의 서류 미비 이민자들에게 시민권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었다. 이 법안은 그 후 몇십 년 동안 양당 간의 이민 개혁을 위한 기본 틀을 만들었다. 즉, 합법화를 단속과 맞바꾸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민자들이 합법적인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포괄적인 법안을 하나의 행정부도 통과시키지 못하면서 이민 단속 시스템은 점점 더 잔인해졌다. 이제 공화당은 대규모 추방을 요구하는 극단적인 입장으로 나아갔고, 민주당도 그들을 따라 우경화되었다. 클린턴 행정부는 특정 국가 출신 이민자들을 위한 임시 보호를 확대하는 한편, 이민을 범죄화하고 대부분의 서류 미비 이민자들이 신분을 조정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오바마 행정부는 80만 명의 서류 미비 청소년들이 임시 신분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DACA 프로그램을 도입했지만, 동시에 기록적인 300만 명의 이민자들을 추방했다. 이민에 대한 정치적 논의가 점점 더 우경화되면서, 점점 더 작은 커뮤니티 일부만이 불안정하고 임시적인 신분을 부여받는 반면, 대다수는 범죄화되고 구금과 추방의 위협을 받고 있다.

출처: 2023년 6월 19일, 준틴스(Juneteenth) 노예 해방의 날, 뉴저지 코세차 활동가들, 오스카의 가족, 그리고 뉴저지의 다양한 단체에서 온 지역 사회 구성원들이 오스카의 석방을 요구하며 함께 집회를 열었다. 게리 베로(Gery Vereau) 제공

이 악순환을 끊어낼 유일한 방법은 분명한 요구를 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가정을 이루고 삶을 쌓아 온 우리 수백만 명에게 합법적인 신분을 얻을 수 있는 길과 추방으로부터의 영구적인 보호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 이하의 어떤 것도 자녀들을 부모로부터 떼어놓고, 지역 사회를 파괴할 뿐이다.

나는 바이든 대통령의 가족 함께두기 프로그램 아래에서 제공되는 "임시 체류 신분 부여" 옵션에 감사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나와 같은 미국 시민의 배우자 최대 50만 명과 미국 시민의 의붓자녀 5만 명이 신분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데, 공화당이 주도하는 법적 공격이 극복된다면 가능하다.

그러나 지금, 내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드는 첫 생각과 밤마다 마지막으로 드는 생각은 아버지를 이곳에 머물게 할 방법이다. 그리고 내 아버지와 같은 사람들이 1,100만 명이 더 있다. 1,100만 명의 사람들이 추방될 위기에 처해 있으며, 합법적인 신분을 신청할 방법이 없다. 1,100만 명의 사람들이 밤마다 미국의 사무실을 청소하고,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과일을 따고, 집을 짓고, 미국의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이 1,100만 명의 노동자들은 착취당하는 것이 아니라 존엄하게 대우받을 자격이 있다. 우리 모두가 추방으로부터 영구적인 보호를 받아야 할 때가 되었으며, 두려움 없이 살 수 있는 기회를 받을 자격이 있다.

[출처] As Immigration Policy Shifts Rightward, Families Like Mine Are Being Torn Apart

[번역] 류민

덧붙이는 말

리세스 베르무데스(Liseth Bermudes)는 뉴저지에 거주하는 엘살바도르 출신의 서류 미비 이민자이다. 뉴저지에서 "Movimiento Cosecha"와 함께 활동하며 현재 아버지 오스카 베르무데스의 추방을 막기 위해 조직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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