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진영에서 흔히 등장하는 하나의 주제는 '미래의 소진'이라는 개념이다. 마크 피셔(Mark Fisher)는 ‘미래의 취소’라는 글에서 이 생각을 강하게 표현했다. 최근에는 정치 이론가 조너선 화이트(Jonathan White)가 민주주의 정치의 자원으로서 미래가 고갈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달, <가디언>에 기고한 글에서 나오미 클라인(Naomi Klein)과 아스트라 테일러(Astra Taylor)는 이 주제를 다뤘다. 이들은 트럼프의 정치를 ‘종말의 파시즘’이라고 규정하며, 살기 좋은 세상을 건설하려는 적극적인 시도 대신, 미래에 대한 투기를 일삼고 ‘벙커에 올인한다’고 표현했다. 이 벙커는 억만장자 엘리트의 개인 생존처든, 행성 탈출 전략이든, 요새화된 민족주의든 상관없다.
놀라운 반전으로, 클라인과 테일러는 현재의 극우를 20세기 파시즘보다 더 못하다고 평가했다.
무솔리니 치하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소설가이자 철학자인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는 유명한 에세이에서, 파시즘은 보통 ‘아마겟돈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적을 최후의 대전투에서 섬멸하는 데 집착하는 태도다. 하지만 1930~40년대의 유럽 파시즘은 피바람이 지나간 뒤 평화롭고 목가적이며 정화된 황금기를 꿈꾸는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갖고 있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기후 붕괴, 핵전쟁, 극심한 불평등, 규제받지 않는 인공지능 등 진정한 실존적 위협의 시대를 인식하면서도, 그런 위협을 심화시키는 데 재정적, 이념적으로 전념하는 오늘날의 극우 세력은 희망적인 미래에 대한 신뢰할 만한 비전을 전혀 제시하지 못한다. 일반 유권자에게 주어지는 건 과거의 리믹스일 뿐이며, 점점 더 많은 비인간화된 타인들을 지배하면서 느끼는 사디즘적 쾌락뿐이다.
한편, 클라인과 테일러는 엘리트들이 '탈출(exit)'을 선택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정치 철학자 앨버트 허시먼(Albert Hirschman)을 왜곡되게 해석한 고프(Goff), 틸(Thiel), 투자자이자 작가인 발라지 스리니바산(Balaji Srinivasan) 같은 인물들은 '탈출(exit)' 개념을 옹호해 왔다. 이는 자산을 가진 이들이 시민권의 의무, 특히 세금이나 귀찮은 규제를 벗어날 권리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과거 제국의 야망과 특권을 재포장하여, 정부를 쪼개고 세계를 초자본주의적이고 민주주의가 없는 피난처들로 나누려는 꿈을 꾼다. 이 피난처는 초부유층이 전적으로 통제하며, 민간 용병이 지키고, 인공지능 로봇이 서비스를 제공하며, 암호화폐로 재정을 꾸린다.
클라인과 테일러는 ‘파시즘’이라는 문제를 새로운 방향으로 끌고 간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종말의 파시즘은 오히려 원조보다 더 암울하다. 1930~40년대 파시즘만큼 종말론적이고 사디즘적이면서도, 희망도, 평화도, 목가적인 전망도, 사회적 결속도 없다.
우리는 나쁜 상황에 부닥쳐 있다. 그리고 트럼프 주변에는 진짜 미친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런 비교는 다소 비약이다.
엘살바도르의 교도소는 끔찍하지만, 강제수용소도 아니고 말할 것도 없이 학살 시설도 아니다. 세계 3차 대전의 가능성을 두리뭉실하게 예측하는 건, 폴란드 침공 일정을 세우는 것과는 다르다. 기후 변화는 끔찍하겠지만, 20세기의 악몽 같은 상황과는 또 다른 끔찍함이 될 것이다.
단지 역사적 비교가 무리수라는 점만이 아니다. 진보 진영이 현재 극우의 광기만을 주목하는 것은, 트럼프주의가 인기를 얻는 진짜 불편한 이유를 회피하는 일이다. 트럼프주의는 ‘종말’을 약속하기 때문에 인기를 얻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미국의 현실에서 민주당보다도 더 대담하고 밝은 방식으로 미래를 말하려 하므로 인기를 얻는다.
클라인과 테일러가 언급하지 않은 트럼프주의의 두 가지 측면을 나는 두 편의 글에서 다룰 것이다. 두 번째 글에서는 머스크 같은 인물들과 관련된 신예외주의적 기술 미래주의라는, 트럼프 2.0의 가장 변덕스럽고 독특한 요소를 이야기할 예정이다.
하지만 첫 번째로 짚어야 할 것은 클라인과 테일러가 언급하지 않았지만, 주류 언론이 집착하는 주제, 바로 무역 정책이다.
트럼프의 무역 정책을 어떻게 ‘미래’를 제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까?
화이트는 통찰력 있는 글에서 효과적인 미래 정치가 다음 세 가지를 수행한다고 주장했다.
· 비판의 관점을 제공한다.
· 집단성을 구성한다.
· 헌신을 통해 그 집단성을 희생으로 동원한다. 집단적 미래를 믿는 사람은 현재의 희생을 감수한다.
우리는 트럼프의 무역 정책이 바보 같고 비생산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아마 클라인과 테일러는 관세를 트럼프주의 개념에 포함하기엔 너무 시시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혹은, 관세를 복고적 미래주의(retrofuturism)의 범주로 본 것일 수도 있다. 이는 미래가 아닌 산업 시대 과거로의 회귀를 뜻한다.
하지만 트럼프의 무역 정책은 분명히 위 세 가지 미래 정치의 요소를 모두 충족하려 한다. 이는 꽤 충격적인 일이다.
· 그들의 관세는 현 체제를 비판하는 데 기반하고 있다. 그들은 현 체제를 자유주의 엘리트들의 이기심 탓이라고 본다.
· 그들은 분명히 ‘블루칼라 국가’를 소환하려 한다. 이는 복고적 미래주의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나도 그렇게 여긴 적이 있다. 하지만 그 길을 택하려면, 트럼프주의가 이 점에서는 바이든의 경제정책(Bidenomics)이나 그린 뉴딜(Green New Deal)과 직접 연결된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 9개월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미국 진보 진영이 내세운 제조업 기반 미래 비전을 의문시하려면 비주류 정신이 필요했다. 그건 당신을 래리 서머스(Larry Summers)와 같은 부류로 보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미국 좌파 안에는 트럼프의 광풍 속에서도 산업 정책과 보호주의를 위한 외로운 후위 전투를 벌이는 사람들이 있다.
· 세 번째로, 트럼프-밴스 프로젝트의 진짜 독창성은 단지 신자유주의 과거를 거부하고 블루칼라 정신을 불러내는 데 그치지 않고, 희생의 수사로 이를 포장한다는 점이다. 미국 정치가 처음으로 ‘덜 가지는 삶’을 말하고 있다. 물론 이 새로운 자립 수사는 노골적으로 성별화되어 있다. 타깃이 되는 것은 인형, 세탁기, 중국산 가정용품이다. 이는 가정 내 성별 질서를 강화하는 동시에, 산업 노동이라는 진짜 남자다움을 긍정하는 방식이다.
아마 국가 경제학자들은 단순히 이해를 못 했을 수도 있다. 외국이 대가를 치를 거라고 믿었을 수도 있다. 아마 아마존이 가격 인상 이유를 공개하겠다고 협박할 때 그들은 당황할 것이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트럼프와 그의 대변인들은 전혀 물러서지 않는다.
그렇다. 그들은 더 나은 미래를 원한다면, 미국인들이 중국산 컨테이너 속 물건들을 진짜로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믿는다. 미국의 ‘작은 딸들’은 이제 바비 인형을 덜 가지면서 살아야 한다.
트럼프, 값싼 중국산 수입품 비판 강도 높여:
‘11살 된 예쁜 여자아이가 꼭 인형 30개를 가져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바마가 말했듯이, “내가 저런 일을 했다고 상상해 봐라.”
그린 뉴딜과 바이드노믹스를 옹호하는 이들에게 민망한 점은, 그들이 꿈꾸는 미래를 추구하는 데 있어 트럼프의 국가 경제 전략가들이 민주당보다 훨씬 대담하게 미국 대중에게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트럼프의 무역 정책은 실제로 그린 뉴딜 옹호자들이 감히 되지 못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미국 소비주의의 지배적 규범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정책이다.
물론, 이건 정치적 오판이 될 수도 있다. 어쩌면 트럼프와 그의 측근들은 정치적으로 자멸을 자초하는 유토피아주의자들일 수 있다. 그들은 중간선거에서 처참하게 패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건 안도감이 될 것이다. 특히 가능한 것의 최소한조차 상상하지 못하는 주류 민주당 인사들에게는 순도 높은 기쁨이 될 것이다. 그건 공화당(GOP)이 패했다는 사실 때문만이 아니라, 바이든과 오바마 행정부의 소심함이 확실히 드러났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만약 공화당이 무너지지 않는다면? 화이트(White)가 말했듯이, 우리는 미래의 진짜 한계를 오직 그것에 도전함으로써만 알 수 있다. 최소한, 트럼프 행정부가 그런 도전을 하고 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컬럼비아 수업 HISTGR8989_001_2025에 감사의 말을 전한다.
파트 II에서 이어진다.
[출처] Chartbook 380 Trump's futurism: Elon's rockets and fewer dolls for "baby girl" - Part I.
[번역] 하주영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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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투즈(Adam Tooze)는 컬럼비아대학 교수이며 경제, 지정학 및 역사에 관한 차트북을 발행하고 있다. ⟪붕괴(Crashed)⟫, ⟪대격변(The Deluge)⟫, ⟪셧다운(Shutdown)⟫의 저자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