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공공운수노조는 2026년 3.8 세계여성의날을 맞아 고용·임금 등 구조적 성차별과 일터의 성희롱·괴롭힘 등 젠더기반폭력에 맞서 싸우는 여성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을 사회적으로 알리고자 합니다. 학교 급식실에서 병들어 쓰러지는 동료들, AI 도입 이후 더 빠르고 더 많이 일하라는 압박에 시달리는 콜센터 노동자들, 젠더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안전은 보호받지 못하는 상담노동자들, 쉴 곳도 화장실도 없이 현장을 떠도는 돌봄노동자들, ‘단정함’이라는 이름으로 몸을 통제당하는 여성승무원들처럼, 여성노동자들은 일상 속 차별과 폭력의 현장에서 자신의 건강과 존엄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이번 기획은 여성노동자 건강권을 단순한 산재 예방을 넘어 저임금·감정·꾸밈노동, 젠더폭력, 휴식이 배제된 노동조건 등 여성에게 구조적으로 전가되는 신체적·정신적 손상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 확장해 조명하며, 총 8회에 걸쳐 연재됩니다.
“AI 시대, 간호와 돌봄은 로봇이 대체할 수 없는 유망 직종입니다.” 기술 발달로 일자리를 잃을까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이보다 달콤한 유혹은 없다.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인간의 따뜻한 손길과 공감 능력이 곧 경쟁력이 되는 시대.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가장 ‘인간적’이어야 할 이 노동의 현장은 현재 가장 ‘비인간적’인 환경에 처해 있다. 로봇이 대체할 수 없어서 다행인 것이 아니라, 로봇조차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인간 노동자에게 전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물어야 할 시점이다.
방문간호사는 어떤 사람들일까
아프면 병원에 가야한다는 당연한 이치는 거동이 불편하거나, 정보가 부족해 방치되는 주민들에게는 먼 이야기다. 방문간호사는 그들의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가정내 의료 케어, 의료 길잡이, 지역사회 건강지킴이 역할을 한다. ‘병원이 아닌, 당신의 삶터로 찾아가는 건강 조력자’로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이들은 가정 내 의료 케어로 혈압, 혈당 등 기초건강상태를 측정하고, 만성질환(당뇨, 고혈압, 관절질환) 등을 가정에서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직접 교육하고 돕는다. 또한 복잡한 대형병원들 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진료과를 선택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고, 불필요한 중복진료나 과잉진료를 예방한다. 지역사회 건강지킴이로서 병원 밖, 우리가 매일 살아가는 마을에서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곁에서 돕는 가장 필요한 전문가로 일한다.
공공보건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방문건강 관리사업이 시작되었지만, 현장의 간호사들은 ‘전문가’가 아닌 ‘숫자 채우기용 소모품’에 가까웠다. 전국의 보건소에 방문간호사들이 1~2년 단위의 단기 계약직으로 고용되었다. 언제든 갈아치울 수 있는 파리 목숨 같은 고용 형태인 것이다. 처우개선을 요구하거나 권리를 주장하면 재계약이 무산되기 마련이었다. 동료들이 생업을 잃는 것을 보며 대다수의 간호사는 생계를 위해 부당함 앞에서도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 “주민의 건강을 돌보지만 정작 우리의 고용은 돌봄 받지 못했습니다”라는 푸념이 나오는 이유다.
출처: 보건복지부
침묵을 깨고 ‘노동조합’으로 뭉치다
2015년 이후, 무기계약직으로 채용된 방문간호사들이 서울시 공무직지부에 대다수가 가입하면서 변화는 시작되었다.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던 문제를 ‘노동조합’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함께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 처우가 왜 열악할 수밖에 없는지를 세상에 알리고, 정당한 권리를 요구했다. 여성노동자로서 겪었던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고용형태를 바꾸기 위해 지난 10년간 꾸준히 싸워왔다. 그 결과, 지금은 임금체계와 처우면에서 유의미한 개선을 이뤄내며 의료인으로서 자부심을 찾아가고 있다.
고정관념에 갇힌 ‘여성 노동’의 굴레
돌봄 노동자의 대다수는 여성이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가정 방문’, ‘가사’, ‘간병’을 전문적 기술이 아닌 여성의 본능적인 희생이나 가사 경험의 연장선으로 취급한다. 이러한 고정관념은 돌봄 노동의 가치를 저평가하고, 낮은 보상 체계를 정당화하는 구조적 기제로 작동한다. ‘어머니 같은 마음’이라는 찬사는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가로막는 족쇄가 되어 돌아오고 있다.
방문 간호와 돌봄이 이루어지는 현장은 개인의 사적인 영역으로 매우 폐쇄적인 공간이다. 스토킹, 성폭력, 감금, 협박이 ‘대시민 서비스’라는 허울 좋은 이름 아래 돌봄 노동자를 위험으로 내몬다는 2024년 공공운수노조의 방문노동자 실태조사는 가혹하다 못해 처참하다. 노동자들이 혈액과 비말, 체액을 통한 감염 위험은 물론, 범죄의 위협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다는 것은 감출 수 없는 사실이다.
<방문간호사 업무 중 민원대상자를 통한 부당 경험 비율>
출처: 2024 방문간호사 악성및원 및 감정노동 실태조사 자료
더 큰 문제는 국가와 지자체의 대응이다. 문제가 터질 때마다 요란하게 TF(태스크포스)를 구성하지만, 잠시 눈치를 보다 담당자를 교체하고 요식행위 몇 번으로 사건을 무마하는 ‘흐지부지’ 전략이 반복된다. 노동자의 안전은 늘 예산과 행정 편의 뒤로 밀려나는 ‘후순위’일 뿐이다.
돌봄 노동자의 현장은 집 안만이 아니다. 다음 가정을 방문하기 위해 이동하는 ‘길 위’ 역시 그들의 일터다. 그러나 폭염과 한파 속에서도 이들이 잠시 땀을 식히거나 몸을 녹일 거점 쉼터는 전무하다시피하다. 노동권의 기본인 ‘휴식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측은 다변화되는 사업 환경에 적응하기보다 비용 절감을 위한 용역화와 비정규직 양산에만 몰두하고 있다.
‘지역사회 통합돌봄’ 시행, 준비는 되었는가?
지난 2월 26일, ‘의료·요양 등 지역사회 통합돌봄법’이 시행되었다. 취지는 훌륭하다. 살던 곳에서 편안하게 돌봄을 받게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묻고 싶다. 돌봄을 제공하는 주체인 노동자가 고통받고 떠나가는 구조에서 누구를 위한 통합돌봄인가? 현재 각 지자체의 준비 상황을 보면 전문 인력 확충이나 노동 환경 개선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보다는 행정적 칸막이 세우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현장 노동자에게 ‘안전 주의’를 외치는 것은 쉽다. 하지만 방문간호사는 남의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외부와 차단된 독립된 공간에 놓인다. 환자의 질환(치매로 인한 공격성 등), 열악한 위생 환경, 혹은 보호자의 성희롱이나 폭언 같은 위험 요소는 문이 닫히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현재는 노동자 개인이 알아서 조심해야 하는 '각자도생'의 구조다.
방문간호사들은 안전에 최소한의 장치를 요구한다. “내가 누구를 만나는지 알아야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만난 한 방문간호사는 “환자의 상태나 가정 환경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방문하는 것은 안개 속을 걷는 것과 같다”라며 “갑작스러운 응급상황이나 위험에 직면했을 때, 현장에서 즉각적으로 방문을 중단하거나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권한과 지침이 있어야 제 자신과 환자를 모두 보호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책임은 떠넘기고 차별은 당연시되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
돌봄이 민간 위탁과 용역 중심으로 돌아가다 보니, 공공은 예산만 지원하고 현장의 문제는 민간이 알아서 해결하라는 식의 구조가 고착되었다. 이러한 '간접고용' 구조는 책임 소재를 불분명하게 만든다. 기관 간의 과도한 경쟁은 노동자의 처우를 깎아내리고, 직종 간의 불필요한 서열을 만들어 '갑질'이 파고들 틈을 준다. 이용자(주민) 또한 간호사를 전문가가 아닌 '부리는 사람'으로 오해하게 만든다. 공공이 직접 고용과 관리에 책임감을 가질 때 비로소 방문간호사들은 고용 불안과 갑질로부터 보호받으며 오로지 환자의 간호에만 집중할 수 있다.
“돌봄은 보조적 수발이 아닌 사회를 지탱하는 ‘필수 노동’이다”
흔히 방문 돌봄을 ‘집안일을 좀 도와주는 일’ 정도로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방문간호는 한 사람의 삶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하는 숭고하고 전문적인 노동이라고 할 수 있다. 노동의 강도나 위험도, 전문성에 비해 보상은 턱없이 낮다. ‘좋은 마음으로 하는 일’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정당한 대우를 요구하기 어려운 분위기 속에서도, 방문간호사들은 돌봄노동의 가치를 알아달라고 호소한다. 이들에게 이 일은 단순히 환자의 안부를 묻고 약을 챙기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이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생명줄’을 붙드는 일이다. 나아가 이들은 이러한 노동을 더 이상 ‘보조 업무’로 폄하하지 말고 ‘필수 업무’로 인정해, 그에 걸맞은 적정한 보상과 안전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로봇이 대체할 수 없는 직업이라며 치켜세우기 전에, 인간 노동자가 인간답게 일할 수 있는 환경부터 조성하라. 노동자를 소모품처럼 태워 쓰는 돌봄은 결국 시민 모두의 재앙으로 돌아올 것이다. 진정한 통합돌봄의 완성은 돌봄 노동자의 안전한 미소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정부와 지자체는 뼈아프게 직시해야 한다.
- 덧붙이는 말
-
김시현은 공공운수노조 전국자치단체공무직본부 성북구청지회 지회장이다.






![[클린룸 안의 사람들: 엔지니어 윤성원 이야기] ③ 회사 게시판에 판결 자료를 올리고 싶어요](/data/article/12/260318b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