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군림하는 생쥐 나라: 미국 대선 결과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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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전에 치른 미국 47대 대선은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민주당의 카멀라 해리스 후보에게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사실 트럼프의 승리는 진작에 예상되었다고 봐야 한다. 유세 막판에 뉴욕타임스 등 민주당을 지지하는 주류 언론이 해리스가 선전한다면서 박빙의 결과를 예측하기도 했으나 가짜 뉴스인 것으로 드러났다. 

트럼프의 승리는 무엇보다 지난 4년 정치권력을 행사한 바이든 행정부와 민주당의 실정을 유권자들이 심판한 결과다. 할리우드 문화 권력을 휘두르며 민주당 찬양에 앞장선 톰 행크스, 리처드 기어, 줄리아 로버츠, 레이디 가가,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등 연예계 스타 군단이 해리스 지지에 열을 올렸지만 소용없었다. 

민주당과 해리스는 이번에 정체성의 정치에 바탕을 둔 득표전략을 내세웠으나 완벽히 실패한 셈이다. 트럼프의 인종차별주의와 보수적 가족주의 등에 맞서 해리스가 흑인과 히스패닉 등의 권리, 임신중지권 등을 강조해 소수민족과 여성 유권자의 표를 많이 얻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4년 전 바이든이 트럼프에게 승리했을 때와 비교하면 해리스가 그들로부터 얻은 지지율은 매우 낮았다. 정체성을 선거의 주요 쟁점으로 만든 것으로는 전체 유권자의 표심은 물론이고 표적 유권자로부터도 충분한 지지를 얻지 못한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가 통했다. 민주당 측은 미국 경제는 문제없다고 했지만 그런 주장은 설득력이 낮았던 것이 분명하다. 여론 주도층 가운데 미국 경제가 튼실하다며 민주당 측을 옹호한 노벨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이나 CNN의 정치평론가 파리드 자카리아 등이 있었으나 소용없었다. 미국 경제가 잘 나간다는 근거로 그들은 곧잘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G7 가운데 계속 가장 높고, 특히 주식시장이 엄청난 활황인 점을 내세운다.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서방 주요 국가들에 비해 높은 것은 맞고, 주식시장이 활황인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그런 점이 실물경제가 건강하다는 증거는 아니라는 데 있다. 

미국의 성장률도 높다고 하기 어렵다. 2023년을 놓고 보면 2.5%에 불과하다. 영국(0.1%), 독일(-0.3%), 프랑스(0.70), 캐나다(1.07%), 이탈리아(0.9%), 일본(1.92%) 등 성장률이 너무 낮은 G7의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높지만, G7의 경쟁 국가연합체 브릭스의 주요 국가들과 비교하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브릭스는 인도가 7.8%, 중국 5.2%, 러시아 3.6%, 브라질 2.9%, 남아공 0.6%로 남아공만 빼면 미국보다 훨씬 더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미국 경제 성장의 근본 문제는 새로 생긴 부가 골고루 사회에 배분되지 않고 상층부 소수에게만 집중된다는 데 있다. 최근으로 올수록 상위 10%, 1%, 0.1%만 경제 성장의 혜택을 누리고, 하위 인구집단은 살기가 훨씬 더 어려워졌다. 최근에 주식시장이 유례없이 활황을 보였지만, 그 낙수 효과를 누린 것은 전체 주식의 93%를 보유한 상위 10%일 뿐이다. 소수의 상위 집단이 새로 생긴 부를 독식하는데 하위 계층의 삶이 어떻게 좋아질 수 있겠는가. 

다음은 영국의 맑스주의 경제학자 마이클 로버츠의 말이다. “2020〜23년 사이 미국의 하위 50% 소득자의 실질 세전 소득증가는 기본적으로 제로였다. 팬데믹이 끝난 이후 재화와 서비스 가격은 20% 이상 올랐고 기본적 식품의 경우는 더 올랐다. 게다가 연준이 인플레를 ‘통제’한다며 이자율을 대폭 인상한 것도 주택담보대출 금리, 보험료, 자동차 리스료, 신용카드 대금을 끌어 올렸다.” 이렇게 보면 해리스와 민주당이 참패한 이유가 밝혀진다. 최근에 미국 인민의 삶이 너무 팍팍해진 점이 선거 결과를 결정한 셈이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의 승리로 미국 인민의 사정이 나아질까? 사실 트럼프가 집권한다고 해서 그들의 삶이 개선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트럼프 자신이 인민의 팍팍한 삶과는 거리가 먼 억만장자라는 점도 전망을 어둡게 만든다. 그런데도 그가 차기 대통령으로 다시 뽑힌 것은 지난 4년 실정에 실정을 거듭한 민주당 덕분인 셈이다. 미국 유권자들은 이번 선거에서 인플레와 물가 상승, (대중들이 경제 상황을 악화시킨 원인으로 여기는) 통제되지 않는 이민 증가 등 경제 상황이 악화한 것을 놓고 민주당과 해리스를 심판한 것이 분명하다.

경제 말고도 문제는 더 있다. 바이든 정부가 들어선 뒤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일어난 것도 해리스가 패배한 한 이유일 것이다. 바이든은 아프가니스탄에서는 20년 전쟁을 종식하고 철군했으나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에서 새로운 전쟁을 일으키고 계속한 책임이 크다. 우크라이나에서는 러시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나토의 동진 정책을 밀어붙이며 전쟁을 도발했고, 팔레스타인에서는 종족학살을 자행하는 이스라엘을 무조건 지원해 세계인의 분노를 샀다. 전쟁을 종식하려는 평화 정책보다는 전쟁 확산을 부추기는 무기 지원을 위해 복지에 쓸 예산을 낭비한 비판도 받는다. 나아가서 자신이 도발해놓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유로 국제법을 무시한 대러시아 경제제재를 추진해 오히려 서방 경제에 큰 타격을 입히는 결과도 초래했다. 

마이클 허드슨은 니마 알코르시드가 진행하는 <다이얼로그 워크스>에 출연하여 해리스가 패배한 것은 민주당이 승리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만약 해리스가 자신이 집권하면 부자세를 확 올리고, 소수 올리가르히의 경제지배를 종식하고, 무상 고등교육을 제공하고, 학자금 대출로 생긴 부채를 탕감하겠다고 했더라면 트럼프에게 질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 허드슨 교수의 진단이다. 그러나 민주당에 그런 혁명적 공약을 제시할 능력과 의사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민주당은 그동안 금융계와 산업계 독점 자본의 지지를 얻기 위해 공화당과 경쟁하며 공화당보다 더 보수적인 사회정책을 펼치기도 했다. 

트럼프의 이번 승리는 그의 정책이 훌륭해서라기보다는 민주당이 저지른 실정이 워낙 컸기 때문에 얻은 것임이 분명하다. 지난 4년 바이든 정부는 인민의 생활 고충에 대한 외면과 상층 인구에 대한 특혜, 자국 경제와 국가적 위상에 도움 되지 않는 외교정책의 고집 등 유권자들의 외면을 자초했다. 선거를 불과 석 달 남짓 앞두고 민주당이 정신 미약 증세를 드러낸 고령 바이든을 교체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당내 타협을 통해 부통령인 해리스를 대안 후보로 내세운 것도 패배 요인이라 할 수 있다. 급작스럽게 당 대선후보가 된 해리스는 유세 과정에서 국정 철학 결핍 등 무능한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그래도 역시 ‘문제는 경제’였다. 민주당은 ‘정체성의 정치’로 트럼프와 맞섰으나 결국 먹고 사는 문제 앞에서 힘을 쓰지 못한 셈이다. 

트럼프의 이번 승리는 일면 압도적으로 보인다. 그는 2016년에는 힐러리 클린턴을 상대로 선거인단 확보에서는 304표로 227표를 얻은 클린턴을 앞섰으나 전국 득표에서는 오히려 286만여 표나 뒤졌다. 이번에는 다르다. 선거인단의 경우 312표로 226표를 얻은 해리스를 압도했으며, 전국 득표에서도 해리스보다 300만 명이 훨씬 더 넘게 이긴 것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트럼프의 승리는 사실 너무 적은 유권자의 지지를 업고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투표자만 놓고 보면 그는 51%를 얻었으나 유권자 전체 가운데 얻은 표수는 28%에 불과하다. 이것은 2020년에는 유권자의 65.9%가 투표에 참여했으나 올해는 58.2%로 선거율이 대폭 낮아진 점 때문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미국인 4명 가운데 3명이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점은 미국의 정치는 오늘날 국민의 의사나 삶과는 동떨어져 진행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투표율이 낮았던 것은 트럼프도 해리스도 지지하지 않는 사람, 정치판을 자신들의 삶과는 무관하다고 여기는 사람, 먹고살기 어려워서 투표할 여유가 없는 사람이 많은 탓일 것이다. 그런 사람은 해리스와 트럼프, 민주당과 공화당 가운데 어느 쪽이 이기든 세상 돌아가는 꼴이 바뀔 가능성이나 자기들의 삶이 개선될 가망은 극히 낮다고 생각할 공산이 크다. 

트럼프의 승리로 미국의 정치에 변화가 생길 점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행정부의 면모, 행태는 바이든 정권에서와는 확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대선 승리 열흘 안에 차기 정부의 조각을 서둘러 진행했다. 이미 국무부, 국방부, 국가안보보좌관, 국가안보국, 법무부, 보건복지부, CIA, 유엔대사, 주이스라엘 대사 등의 인선 결과를 발표한 상태다. 이런 행보는 유례가 없이 빠를뿐더러 요직에 추천된 인사들도 예상을 벗어난 엉뚱한 경우가 많다. 과거 미성년자와의 성관계 구설에 오른 맷 개츠 하원의원을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한 것이 단적인 예다. 그런 인사를 놓고 제1기 집권 시 딥스테이트에 당한 트럼프가 제2기 집권기에는 확실한 ‘자기 사람’을 심는 것이라는 관전평이 나온다. 

정치판의 면모나 행태가 바뀔 공산이 있는 것과는 별도로 트럼프 2기가 민주당의 바이든이 보여준 정책과 큰 차이를 보일 것 같지는 않다. 물론 그동안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비판해온 부통령 당선자인 J. D. 밴스를 우크라이나 관련 책임자로 만든 점에서는 바이든과 차이점을 보이는 측면이 없지는 않으나 그것 또한 두고 볼 일이다. 

국제문제 전문가로 콜롬비아 대학교수인 제프리 삭스는 이번 선거에서 자신은 투표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 이유를 공개한 바 있다. 해리스와 트럼프 중 누구든 한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자신의 도덕적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는 미국이 우크라이나전쟁에 개입하는 것이나, 팔레스타인에서 종족학살을 자행하는 이스라엘에 군사 지원을 하는 것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하지만 삭스 교수가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것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해리스와 트럼프를 지지할 수 없어 투표하지 않은 것은 녹색당의 질 스타인과 인민당의 코넬 웨스트 등 진보 후보의 존재를 외면한 처사라는 지적이 그것이다. 

녹색당이든 인민당이든 미국에서 진보좌파의 세력은 너무 미미한 쪽에 속한다. 삭스 교수처럼 민주당과 공화당의 정책에 반대하면서도 두 당과는 다른 노선의 정치세력을 지지하는 사람이 적은 탓이기도 할 것이다. 사실 미국의 정치가 미국민 전체의 삶과 관계없이 작동하는 것은 진보좌파의 정치가 강력하지 못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민주당과 공화당 양당이 정치판을 독식하려 사생결단하는 구도가 만들어진 것도 그 결과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민주당과 공화당은 초록이 동색인 사이로, 둘이 합쳐서 실질적인 단일정당을 이룰 뿐이다. 

트럼프의 승리로 미국의 정치가 바뀔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트럼프와 공화당은 바이든과 민주당과 함께 미국 단일정당의 양대 파벌이나 마찬가지다. 트럼프가 되든 해리스가 되든 단일정당의 지배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고양이는 하양이든 검정이든 얼룩이든 모두 생쥐를 잡아먹는다. 인민이 생쥐라면 고양이의 색깔이 바뀐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다. 트럼프의 승리는 여전히 미국은 고양이가 군림하는 ‘생쥐 나라’임을 말해준다. 

덧붙이는 말

강내희는 한국의 비판적 지식인으로 중앙대학교 교수, '문화/과학' 발행인, '문화연대'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현재 참세상 이사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서울의 생김새⟫, ⟪길의 역사⟫, ⟪신자유주의 금융화와 문화정치경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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