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장범 앵커가 있어야 할 곳은 KBS가 아니다

조그마한 파우치라는 말이 공영방송 KBS를 조롱하는 말이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지난 2, KBS 1TV를 통해 방영된 <[KBS 특별 대담대통령실을 가다진행을 맡았던 박장범 앵커는 김건희 여사가 최재영 목사로부터 받은 명품 가방을 외국 회사의 그 조그마한 파우치라고 명명했다곧바로 (Bag)을 왜 파우치(Pouch)라고 사건을 축소하냐?’는 비판이 제기됐고박 앵커는 매장에서도 파우치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같은 외신들도 파우치라고 표기했다고 응수했다이런 논란이 창피하게도 한국 사회에서 벌어졌었다.

논란이 된 제품이 뭔가. 300만 원 상당의 크리스챤 디올 제품이다그걸 뭐라 부르느냐를 떠나 고가임은 틀림없다또 설령 파우치라고 명명하더라도 박장범 앵커의 말에 오류가 없는 건 아니다. 21.5x11.5x3cm 크기의 파우치를 두고 조그마한이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통상 파우치라고 불리는 제품 중에서도 김건희 여사가 받은 건매우 큰 편이라는 얘기다박 앵커가 어떻게 해명하건, “조그맣다”, “외국회사”, “파우치” 그 모든 표현에서 사건을 축소한다는 의혹은 그래서 타당했다.

지난 2월, 박장범 앵커가 윤석열 대통령과 대담을 하고 있다. 출처 : 대통령실

조그마한 파우치” 발언 후 사장 후보로 우뚝

중요한 건 시점이다. 2024년 2월이라면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하던 윤석열 대통령이 바이든-날리면 사건 후출근길 문답을 중단하고 대통령실 1층 로비에 가벽을 세운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보수 성향을 신문들마저 기자회견을 개최하라고 앞다퉈 사설을 쓰던 때이기도 하다전 정부를 불통이라고 비판하며 대통령직에 올랐으면서정작 본인은 불편한 질문을 피하고자 언론과의 소통을 단절했던 그 시기. KBS가 윤석열 대통령한테 직접 질문 할 기회가 만들어진 것이다. KBS에 사람들의 이목이 쏠렸던 이유다.

그중에서도 단연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한 질의와 윤석열 대통령의 사과 여부가 핵심으로 떠올랐었다하지만 결과는 앞서 언급한 대로 참담했다박장범 앵커는 기자 출신이라는 점이 부끄러울 만큼 적재적소에 필요한 질문을 하지 못했다이날 방송은 오히려 ‘KBS의 저널리즘이 얼마나 후퇴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남았다권력을 향해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지지 못하는 언론사라니….

그런 KBS의 앞날이 더 어두운 일이 벌어졌다그 조그마한 파우치’ 박장범 앵커가 KBS 차기 사장으로 내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탓이다박장범 앵커의 과거 행보와 함께 윤석열 대통령과의 대담이 다시 회자되는 이유다.

이날 윤석열 대통령은 처음으로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해 입을 열었다윤 대통령은 시계에다가 이런 몰카까지 들고 와서 선거를 앞둔 시점에 1년이 지나서 이렇게 터뜨리는 것 자체가 정치 공작이라고 봐야죠라며 대통령이나 대통령 부인이 어느 누구한테도 이렇게 박절하게 대하기는 참 어렵습니다매정하게 좀 끊지 못한 것이 좀 어떤 문제라면 문제고 좀 아쉽지 않았나라고 기존의 대통령실에서 내놨던 답변을 되풀이했다하지만 박장범 앵커는 부정 청탁 여부나 김건희 여사가 명품백을 수수한 사실을 인지한 시점 등 국민들이 진정 알아야 할 추가 질의를 하지 않았다그의 입에서 나온 다음 말은 이날 방송을 보던 시청자들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이 이슈로 부부싸움 하셨어요?”

박장범 앵커는 이날 대통령의 의자에 착석하는 체험도 보여준다그러고는 개인적으로는 영광이고 잠시나마 대통령의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라고 소회를 밝혔다이 장면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심정은 어땠을까윤석열 대통령의 행보에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게 책임감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현재 벌어지고 있는 의료 대란을 보라윤석열 정부는 의료 개혁의 필요성을 필수 의료 서비스 확대와 지역 불평등 개선을 꼽았지만정반대의 길로 가고 있다. ‘절대 아프지 말라는 말이 안부가 된 지금대통령실은 어떤 해결 방안조차 내놓지 못하고 있다이런 상황에서 박장범 앵커가 말하는 대통령의 무거운 책임감이란 무엇인가대담에 대한 보은으로 KBS 사장 자리를 떡하니 내어주는 걸 뜻하나?

KBS의 앞날이 어둡다

KBS 차기 사장에 대한 전망은 한 달 전만 하더라도 달랐다현 KBS 박민 사장의 연임이 유력했기 때문이다하지만 박장범 앵커가 도전장을 내밀었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그리고 KBS 여권 추천 이사들은 박장범 앵커에 표를 몰아줬다박장범 앵커의 이렇게 가파른 승진이 가능했던 이유그건 대통령과의 대담으로 쌓은 인연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박장범 KBS 사장이 말해주는 건 하나다현 박민 사장 체제의 KBS가 윤석열 정부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내려졌다는 거다그리고 대통령실은 박장범 앵커가 기대에 부응할 적임자라고 판단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문제는 KBS의 앞날이다박장범 앵커가 KBS 사장을 대표하게 된다면공영방송 KBS에 대한 신뢰도 하락은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다한 국가에서 공영방송은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만 그 가치를 인정받고생존할 수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KBS 내부 구성원들한테 주는 시그널 또한 분명하다. ‘저널리즘 다 집어치워!’, ‘높은 자리에 오르려면 정부에 잘 보이면 되는 거야라는 메시지다이 모든 오명을 감당해야 하는 동료들이 연이어 박장범 사장 내정에 반대성명을 내는 이유다이게 2024년 KBS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박장범 앵커는 공영방송 KBS 역사에 수치로 남을 장면을 만들었다그가 있어야 할 곳은 KBS가 아니다차라리 대통령실로 자리를 옮기라는 권하고 싶다그러면 당장은 폴리널리스트라는 뒷말은 듣겠지만본인에게 어울리는 자리라는 평가는 받을 수 있을 것이다직분(職分), 사람마다 각자 지켜야 할 직무상의 본분이 있는 법이다. KBS에 박장범 앵커에 어울리는 자리는 없다

덧붙이는 말

권순택은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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