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여운 것들,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에게 있지만 벨라에게 없는 것

요르고스 란티모스(Yorgos Lanthimos) 감독의 신작 <가여운 것들>은 영국 작가 메리 셸리(Mary Shelley)가 1818년 발표한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변주물이다소설 속 젊은 과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가여운 것들>에서 노년의 천재 의학자 갓윈 백스터가 되었고빅터가 만들어낸 남성 괴물은 이탈리아어로 아름답다는 뜻을 가진 벨라로 변주된다(벨라는 또한 라틴어로 전쟁을 뜻하기도 한다).

<가여운 것들>, 요르고스 란티모스, 2024

갓윈 백스터의 외양은 현재 우리가 기억하는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이미지가 최초로 등장하는 제임스 웨일 감독의 1931년작 <프랑켄슈타인>을 모티브로 했고벨라의 모험과 서신은 소설 속 전지적 화자가 되는 공상가 월튼의 여행과 편지를 연상시킨다.

메리 셸리의 원작 소설에서 결혼을 앞둔 빅터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죽은 것들을 조합해 생명을 창조한다그러나 자신이 만든 것이 괴물임을 깨닫고 뒤늦게 막아보려 하지만 결국 자신의 피조물에게 희생당하고 만다이 소설의 교훈은 오늘날에도 종종 AI 시대의 윤리적 고민을 환기시키며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한 강력한 은유로서 제시된다.

그러나 프랑코 모레티(Franco Moretti)는 『공포의 변증법』에서 메리 셸리의 소설 속 빅터 박사와 괴물의 관계를 자본과 임노동의 긴장 속에서 읽어낸다소설이 쓰인 19세기 초반 잔존하는 봉건 체제의 흔적과 부흥하는 자본의 긴장 속에서 자본가를 대표하는 빅터 프랑켄슈타인 박사와 노동자를 대표하는 괴물의 애증적 관계가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빅터는 괴물의 창조주인 동시에 소유주를 꿈꾸지만소유물의 힘이 거대해져 자신의 통제 밖으로 벗어나려 하자 그를 파괴하려 한다는 점에서그리고 괴물은 끊임없이 그 존재가 부정됨으로써 존재하며빅터로부터 해방을 꿈꾸지만 소유주가 죽자 자살해버린다는 점에서 둘의 관계는 자본과 임노동의 변증법적 관계를 재현한다이런 점에서 프랑코 모레티는 메리 셸리의 소설이 자본주의에 대한 암울한 비전을 제시한다고 말한다.

<프랑켄슈타인>, 제임스 웨일, 1931

반면 제임스 웨일의 영화 <프랑켄슈타인>에서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시체를 절단해 인조인간을 만드는 실험을 하던 중 그의 조수가 실수로 범죄자의 뇌(실험실 유리병에 담긴 뇌에는 비정상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를 훔쳐오는 바람에 사악한 괴물을 만들어내고 만다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강가에 있던 어린 소녀가 실험실을 탈출한 괴물을 발견하자 자신과 함께 꽃을 던지며 놀자고 괴물의 손을 잡아끄는 장면이다괴물은 자신에게 호의를 베푸는 아이를 낯설어하면서도 해맑은 얼굴로 강물에 꽃을 하나씩 던지며 소녀와 함께 잠시 평화로운 시간을 갖는다순간 이전의 괴물 같던 모습은 사라지고 해맑은 미소가 얼굴에 번지는데 카메라는 그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오랫동안 보여준다그러나 손에 있던 꽃이 바닥나자 괴물은 순식간에 돌변하여 소녀를 강물로 집어던진다결국 괴물은 자신을 쫓던 마을 사람들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다.

여기에서 강조되는 것은 메리 셸리의 소설과 달리 생물범죄학에 기반을 둔 괴물성’, ‘비정상성이 주는 공포다영화는 끝내 갱생되지 않는 유전적 특질로서 괴물성을 제시하는데특히 이 피조물의 괴물성이 조수에 의해 처음으로 발현된다는 점은 눈여겨 볼 만하다조수는 등이 굽고 기괴한 몰골을 한 채 괴이하게 움직이며 처음 등장한다실험실의 다른 과학자들은 인조인간이 깨어나자 반색하지만유독 조수만이 기겁을 하고 인조인간을 공격한다결국 괴물의 괴물성은 또 다른 괴물에 의해 발현되고 이는 다시 인간에게 엄청난 위험을 초래한다.

이를 통해 영화는 괴물이라는 동종의 무리는 인간과는 다른 종족이며비록 인간의 조수로 길들여졌다 하더라도 완전히 인간에 동화될 수 없다는 경고를 보낸다결과적으로 영화는 끊임없이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며 훈육을 통한 괴물의 교화나 인간세계로의 동화가 아닌 자신들의 세계에서 비정상적인 것을 밀어내는 것을 통해 정상의 세계를 유지하려는 당대의 무의식을 드러낸다그리고 이 비정상적인 것은 가난과 장애를 가진 비천한 신체의 타자들로 형상화된다.

반면 <가여운 것들>은 전편들이 제시한 문제를 가볍게 뛰어넘는다원작 소설에서 괴물을 자신의 소유 아래 두려던 빅터와는 달리 백스터는 자신을 놓아달라는 벨라의 요구를 즉각 수용함으로써 처벌을 면한다제임스 웨일의 영화가 제시했던 유전적 특질로서 괴물성 역시 완전히 새롭게 리셋된 태아의 뇌를 빌려옴으로써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가여운 것들> 예고편 영상 갈무리

그동안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은 이른바 비정상적인 것들의 세계를 조망하며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경계를 전복하고 해체하고 재조립하는데 공을 들였다. <가여운 것들>도 마찬가지다백스터 박사의 학생들은 해부한 시체의 장기를 만져보라는 박사를 괴짜라며 혐오한다그의 추종자이자 추후에 벨라의 약혼자가 되는 맥스만이 그를 옹호한다실험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아들도 제물로 바칠 수 있었던 자신의 아버지를 따라 백스터 역시 냉혈한처럼 보이지만, 벨라에게만은 스스로 실수라고 말할 만큼 애정을 보낸다그리고 이는 유사 부녀적 관계로 드러난다.

메리 셸리의 원작 소설이 자본주의 시대 사회적 관계로 인해 해체되어가고 있는 전통적 가족으로의 회귀를 내세운다면, <가여운 것들>은 비혈연적 가족의 관계성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함으로써 이른바 정상’ 가족으로부터의 탈주를 꿈꾼다실제로 영화 속 결혼 제도와 혈연으로 얽힌 모든 가족은 인간을 억압하는 규범적 제도로 등장한다.

한편, <가여운 것들>의 벨라는 어머니이자 딸이며 프랑켄슈타인과 같이 조합된 인물이다그는 임신한 여성이 투신하여 뇌사상태에 빠지자 백스터가 태아의 뇌를 꺼내 어머니의 몸에 이식하여 탄생시킨 피조물이다이로 인해 벨라는 탄생의 순간부터 몸과 정신의 부조화를 경험한다그러나 영화에서 벨라는 비록 아이처럼 떼를 쓰긴 하지만흉측하고 난폭한 괴물이 되진 않는다그는 왕성한 호기심으로 인해 스스로 모험을 선택하고이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깨닫고 결국엔 자유로워지는 여성으로 그려진다.

여기에서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젠더의 변주다괴물의 흉물스러운 외모는 누구나 첫눈에 반하고 마는 매력적인 여성 벨라의 얼굴로 재탄생한다그로 인해 벨라는 자신에게 반한 변호사 덩컨을 따라 여행을 시작한다그러나 벨라는 자신에게 집착하는 덩컨을 떠나자신의 성적 욕망을 채워주며 동시에 자신이 필요한 돈도 벌게 해주는 파리의 싸구려 매음굴에서 자유를 찾는다여기에는 어떠한 규범적 이해도 적용되지 않으며오로지 자유로운 성적 주체이자 경제적 주체이며 사상적 주체가 된 벨라에 대한 상찬만이 허락될 뿐이다이렇게 란티모스 감독은 규범/정상의 범주 바깥의 세계를 탐색하며그 세계를 적극적으로 옹호한다.

<가여운 것들> 예고편 영상 갈무리

태아의 뇌를 가지고 창조된 벨라의 인식 세계의 확장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영화는 광각렌즈를 이용한 왜곡된 시야각에서 시작해 점차 표준렌즈로 이행한다그리고 벨라는 모험을 떠나고 배 위에서 독서를 통해 세상을 배운다그리고 배에서 만난 해리를 따라 잠시 내린 알렉산드라에서 빈민굴을 목격한 후 크루즈 모험을 끝내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파리에 두 발을 내딛는다핍홀의 응시에서 알렉산드라 빈민굴의 부감 쇼트까지파리에 당도하기 전 벨라의 세계에 대한 인식이 대상과의 거리두기를 통해 확보된 것이었다면 파리에서 벨라는 스스로 몸으로 부딪침으로써 진정한 주체로서의 삶을 확보한다근대의 주체 이론이 조망자의 위치가 되는 원근법의 시점 중심(소실점)에 주체를 위치시켰다면 영화는 라이프니츠의 모나드적 세계의 경험적 주체로 벨라를 내세운다는 점에서 데카르트적 인식 주체를 넘어서려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포스트모더니즘과 함께 성의 해방이 주요한 정치적 구호로 등장했지만그 해방이 누구에게 자유로운 해방이었던가를 떠올려본다면 벨라의 자유가 결코 해방적이지만은 않아 보인다젠더계급적 차이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동일한 순간에 동일한 의미로 도래하는 해방은 불가능한 기획에 가깝다벨라는 경제적 자유와 성적 자유를 위해 스스로 파리의 매음굴을 선택하지만 그런 선택이 가능한 맥락과 조건들의 존재를 영화는 철저히 지운다. <가여운 것들>이 던지는 질문이 비단 19세기 파리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의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 짓기의 문제라는 점에서 더욱 씁쓸함이 남는다.

덧붙이는 말

배주연은 영화를 연구하고 가르칩니다. 특히 동아시아 영화와 여성 영화를 중심으로 역사 재현에서 기억의 문제가 드러나는 방식에 관심이 있습니다. 동시에 비현실적 소재들이 제기하는 정치적 무의식에 대한 관심으로 꾸준히 크리처물, 호러물을 탐색하고 있습니다. <배주연의 異세계>는 호러, 크리처, 판타지 등으로 분류되는 장르 영화를 비판적으로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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