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루마니아 헌법재판소가 지난 11월 24일 있었던 대통령 선거 무효를 결정했다. 이에 루마니아는 정치적 혼란에 빠졌다.
루마니아에서는 지난 11월 24일, 대통령 선거 1차 투표가 있었다. 이 투표에서 극우성향 무소속 후보 컬린 제오르제스쿠가 23%를 획득해 1위를 해 파란을 일으켰다. 이에 8일, 2위를 차지한 중도우파 루마니아 구국연합 소속 후보 엘레나 라스코니와 결선투표를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6일 루마니아 헌법재판소는 1차 투표가 “러시아의 개입 가능성”이 있다며 무효 판단을 내리고 재선거를 결정했다. 이는 루마니아 정보국이 제오르제스쿠 후보 측이 텔레그렘을 통해 틱톡 계정을 관리했으며, 선거운동 과정에서 돈을 주고 유명 인플루언서를 동원해 선거운동을 벌이는 등 불법을 저질렀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뤄졌다. 루마니아 정보국은 이 수법이 러시아가 여론 조작 시 활용하는 방법과 흡사하다고 밝힌 상태다.
다음 대통령 선거는 3~4개월 뒤 치러질 예정이며, 요하니스 대통령이 다음 선거까지 대통령직을 유지하기로 했다. EU 유럽위원회는 루마니아 대통령 선거와 관련해 틱톡이 선거 공정성과 관련된 위험을 적절히 평가하고 완화할 의무를 해태했다는 의혹을 받아 디지털서비스법(DSA) 하에 공식 조사 절차를 개시했다고 밝혔다.
극우 성향의 후보 컬린 제오르제스쿠(Călin Georgescu)는 루마니아 대통령 선거 1차 투표에서 앞서 나갔다. 그의 "세계주의자"와 유럽연합에 대한 비난은 실질적인 정책이라기보다 수사에 가까웠지만, 위기에 처한 많은 유권자들에게 공감을 얻었다.
컬린 제오르제스쿠(Călin Georgescu). 출처: 컬린 제오르제스쿠 공식 페이스북
극단적 민족주의 성향의 무소속 후보 컬린 제오르제스쿠는 1차 투표에서 23%라는 놀라운 득표율로 선두를 차지하며 루마니아 대통령 선거 결선 투표에 진출했다. 재검표 결과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가능성도 있지만, 오는 12월 8일 최종 투표에서는 루마니아 구국연합(USR) 소속의 중도우파 후보 엘레나 라스코니(Elena Lasconi)와 맞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라스코니는 19%를 득표하며 사회민주당 소속 현직 총리 마르첼 치올라쿠(Marcel Ciolacu)를 근소한 차이로 제치고 결선에 진출했다. 이는 1989년 국가사회주의 종식 이후 사회민주당 후보가 결선 진출에 실패한 첫 사례다.
결선에서 제오르제스쿠는 유럽의회에서 이탈리아 총리 조르자 멜로니의 그룹과 연대하고 있는 루마니아 연합을 위한 동맹(AUR)의 극우 성향 유권자들의 지지를 기대할 수 있다. 이 동맹의 후보는 14%의 득표율로 4위를 기록했다.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라스코니와 치올라쿠가 결선 투표에 진출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실제 결과는 극우 민족주의자인 제오르제스쿠가 전례 없는 성과를 거두었음을 보여주었다. 그는 자신의 승리를 “루마니아 국민의 놀라운 각성”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외국 기업과 세계화에 도전하고, 루마니아의 식량 및 에너지 수입 의존도를 줄이며, 강경한 반이민 정책을 도입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고 나토의 루마니아 영향력을 거부하겠다는 새로운 외교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의 돌풍은 루마니아 국민의 각성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위기 기반 민족주의(disaster nationalism, 배타적 민족주의)의 부상과 헝가리 철학자 G. M. 터머시(G. M. Tamás)가 “탈파시즘(post-fascism)”이라고 명명한 현상에 대해 부정하고 있는 루마니아 국민과 세계 모두에게 경종을 울리는 신호가 되어야 한다. 제오르제스쿠의 비판자들이 그를 “루마니아의 멜로니”라고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세계적인 흐름과 유럽 정치의 파시즘화를 따라 제오르제스쿠는 블라디미르 푸틴, 빅토르 오르반,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깊은 존경을 표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그의 시대를 규정하는 성공은 1989년 혁명 이후 루마니아에서 가장 큰 정치적 도전을 상징한다.
컬린 제오르제스쿠는 누구인가?
국제 논평가들은 컬린 제오르제스쿠를 친러 성향의 후보이자 강경한 나토 비판자로 묘사하며, 그는 푸틴과 종교와 애국심을 융합한 그의 접근법에 공감을 표한 바 있다. 제오르제스쿠는 헝가리 극우 성향의 총리 빅토르 오르반을 지지하며, 특히 오르반의 외교 정책을 칭찬했다. 유럽연합에 대해서도 비판을 멈추지 않으며, EU가 루마니아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가 실제로 EU 탈퇴를 선호하는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그의 강경한 반(反)나토 및 반(反)EU 정서는 외국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으며, 그의 당선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는 헝가리에 이어 또 다른 인접 국가가 키이우에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루마니아는 우크라이나, 러시아, 튀르키예 사이에 위치해 나토의 지역 내 전략적 자산으로 간주된다. 2022년, 제오르제스쿠는 남부 루마니아에 위치한 미국의 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가장 강하게 비판한 인물 중 하나였다.
제오르제스쿠는 공학자이자 토양 과학의 한 분야인 토양학 박사 학위를 보유한 대학 교수이며, 지속 가능한 발전 전문가로 활동해왔다. 그의 이력은 기술관료적 성격을 강하게 띤다. 그는 1990년대부터 환경부와 외교부에서 근무했으며, 총리직에 여러 차례 지명된 바 있다. 가장 최근에는 2021년 극우 성향의 AUR(루마니아 연합을 위한 동맹)으로부터 총리 후보로 제안받았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그는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UNHCHR)에서 인권 및 유해 폐기물 특별보고관으로 활동했다. 이후 그는 로마클럽 윈터투르 유럽지원센터(European Support Center in Winterthur of the Club of Rome)의 회장을 지냈으며, 유엔 글로벌 지속가능지수연구소의 이사직을 맡았다.
제오르제스쿠는 오랫동안 루마니아의 식량 및 에너지 수입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캠페인을 벌여왔다. 2021년, 그는 "조상의 땅" 운동을 시작하겠다고 발표하며, "식량, 물, 에너지"라는 국가 프로젝트를 실행하겠다고 밝혔다. 이 프로젝트는 루마니아 농업을 부흥시키기 위해 소규모 생산자, 농부, 장인들의 탄탄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문화 축제를 포함한 다양한 활동을 조직함으로써 국민을 현재의 소외감에서 벗어나게 하겠다는 목표를 담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루마니아 노동계층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는 일정 수준의 "포퓰리즘적" 매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는 주로 수사적 차원에 그칠 뿐, 세금 감면이나 기타 실질적인 정책적 제안을 통해 목표를 달성하려는 구체적인 정치·경제적 비전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새로운 정체성 정치와 루마니아 국민 공동체의 약속을 내세운다.
제오르제스쿠는 루마니아 북부와 흑해 연안 지역에서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다. 이 지역들은 최근 몇 년간 우크라이나 전쟁 난민 유입이 가장 많았고, 긴장 고조에 대한 불안감이 가장 높은 곳이다. 그러나 그의 우익 포퓰리즘적 매력에도 불구하고, 제오르제스쿠는 루마니아 남부와 동부의 가장 가난한 농촌 지역에서는 부진한 성과를 보였다. 이 지역들에서는 사회민주당과 연대된 후보가 가장 많은 지지를 얻었다.
논란
최근 몇 년간 컬린 제오르제스쿠는 푸틴과 오르반에 대한 지지, 코로나19 팬데믹의 축소, 거칠고 필터 없는 소셜 미디어 발언, 철의 경비대와 루마니아 나치 협력자들을 찬양하는 노골적인 반유대주의 발언 등으로 여러 논란을 일으켰다. 2022년, 그는 철의 경비대 지도자 코르넬리우 코드레아누와 친나치 성향의 총리 이온 안토네스쿠를 “국가적 영웅”으로 칭한 발언으로 인해 집단 학살에 책임이 있는 인물들의 숭배를 조장했다는 혐의로 형사 사건에 휘말렸다.
제오르제스쿠는 2020년 “안토네스쿠와 코드레아누는 민족 역사를 살아 숨 쉬게 한 영웅들로, 오늘날 루마니아를 이끄는 세계주의 세력의 하인들로는 절대 대체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발언은 루마니아 반유대주의 감시 및 퇴치 센터, 루마니아 홀로코스트 연구소, 그리고 지역 유대인 공동체 옹호자들로부터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들은 그의 발언을 “무책임하고 위험한 행위”라고 비판했다. 파시스트 시대에 대한 그의 향수는 비판자들이 그를 이탈리아 총리 조르자 멜로니에 빗대 “루마니아의 멜로니”라고 부르게 만들었다. 이는 멜로니가 과거 베니토 무솔리니와 다른 파시스트 지도자들을 찬양했던 전력과 유사하다.
제오르제스쿠의 나치 협력자 옹호 발언은 극우 진영 내에서도 갈등을 초래했다. 멜로니와 가장 가까운 정당인 AUR의 지도자 조르제 시미온은 “이러한 애매모호한 발언은 우리에게 해를 끼칠 뿐”이라며 “정치적 미래와 당의 미래를 훼손할 어떤 발언과도 단호히 거리 두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제오르제스쿠는 AUR과 관계를 단절하고 총리 후보직 협상을 종료했다. 2024년, 그는 무소속으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제오르제스쿠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겠다는 공약으로 소셜 미디어에서 빠르게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그는 친러시아적 발언으로 인해 많은 비판을 받았으며, 일부 루마니아 평론가들은 그를 루마니아 내 친크렘린 세력의 대변인으로 간주했다. 2022년 우크라이나 불법 침공 이후, 제오르제스쿠는 미국 군산복합체를 비난하며 “우크라이나 상황은 명백히 조작되었으며, 이는 미국의 이익을 위한 갈등을 유발하여 미국 군산복합체를 확장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토와 EU에 대해서도 그는 “루마니아는 아무것도 협상하지 않았고, 그래서 모든 것을 잃었다”고 선언했다. 또한 미국과 EU가 “루마니아를 경제적으로 무력화하고, 우리의 민족 정체성과 DNA를 지웠다”고 비판했으며, 나토가 러시아와의 직접적인 무력 충돌에서 어떤 동맹국도 방어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2015년 한 인터뷰에서 제오르제스쿠는 “적대국보다 기업 권력이 루마니아에 더 큰 위협을 가하며, 특히 기업과 투자자들, 헤지펀드 같은 비국가적 침입자로부터 국가 정체성을 보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를 “영웅”이라고 칭하며, “케네디 이후 유일하게 기업의 악마에 도전한 대통령”이라고 칭찬했다.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그는 “지난 35년 동안 루마니아 국민에게 부과된 경제적 불확실성이 오늘날 정당들에게도 불확실성을 안겨주었다”고 언급했다. 수사적 차원에서 반자본주의적 아이디어를 이용하는 것은 동유럽의 탈파시스트들 사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며, 이는 전간기 파시스트들에게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제오르제스쿠는 그의 자유주의적 동료들과 달리, 소련 블록 붕괴 이후 권위주의적 신자유주의가 루마니아에 가져온 경제적 도전과 긴축 문제를 무시하지 않았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독특하지 않다. 헝가리 극우 성향의 미 하장크(Mi Hazánk)당 역시 1989년 이후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가장하지만, 제오르제스쿠와 마찬가지로 자본에 인종적 특성을 부여하며 반유대주의적 음모론을 퍼뜨린다. 이들은 조지 소로스와 “세계주의자들”을 국가적, 경제적 쇠퇴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그러나 제오르제스쿠와 지역 내 다른 탈파시스트들은 계급을 초월하거나 세계화를 해체하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단순히 “민족주의적 자본주의”를 홍보할 뿐이다.
위기 기반 민족주의자
지속 가능한 발전과 환경주의라는 특수한 배경을 가진 컬린 제오르제스쿠는 기후 붕괴, 경제 침체, 탈사회주의적 소외, 세계화 등 위기로부터 비롯된 새로운 사회적 적대 관계에 대한 해답처럼 보였다. 리처드 시모어는 최근 저서 ⟪위기 기반 민족주의⟫(Disaster Nationalism)에서 사람들이 극우 정당에 표를 던지는 동력이 단순히 경제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분노라는 감정이라고 설명한다.
위기 기반 민족주의의 확산은 단순히 허위 정보와 잘못된 믿음 때문이 아니라, 현대 사회에 순환하는 분노의 경제가 이러한 믿음을 매력적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문화적 마르크스주의자”, “공산주의자”, “안티파(Antifa)”, “반(反)민족주의자”, “아랍 애호가” 또는 마닐라, 케노샤, 뉴델리, 상파울루 거리에서 살해될 수 있는 다른 “배신자”라는 현대적 마녀는 민족국가에 특정된 불운, 즉 어떻게 주권 국민이 주권을 잃게 되었는지에 대한 가짜 설명을 제공한다.
이 현상은 제오르제스쿠의 사례에서 두드러진다. 그는 루마니아의 민족 정체성이 “세계주의자”들에 의해 부패했다고 한탄하며, 새로운 소속감과 민족적 자긍심을 제시한다. 시모어는 “재난 민족주의자들은 계급의 언어를 사용한다. 그들은 ’버려진’, ’배신당한’, ’소외된’ 유권자층을 대변한다고 주장한다”고 설명한다. 제오르제스쿠는 실제로 “버려진”과 “소외된”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국가사회주의 붕괴 이후 실질적으로 소외된 루마니아 농민과 노동자들을 묘사했다. G. M. 터머시 역시 이 현상을 폭넓게 분석하며, 이러한 “버려진 사람들”이 탈파시즘과 신파시즘의 틈새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찾으려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제오르제스쿠의 선거 성공은 지난 35년간 그들을 저버린 신자유주의 체제에 대한 평범한 사람들의 분노를 그가 효과적으로 활용했기 때문으로 간단히 설명될 수 있다. 1989년 이후 미국 주도의 충격 요법과 체제 전환의 여파는 농민과 노동자들을 굴욕적이고 취약한 상태로 남겨두었고, 자유주의 엘리트들은 그들의 고통과 절박한 호소를 무시했다. 권력의 중심에 오른 무지하고 도덕적으로 허무주의적인 자유주의 엘리트 계급의 35년은 바로 지금의 상황으로 이어졌다. 이는 헝가리의 오르반을 낳은 역학이며, 루마니아가 동유럽의 다음 국가가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제오르제스쿠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든 그렇지 않든, 그는 루마니아에서 자유주의 질서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을 위험하고 반동적인 방향으로 이끌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제 이 현상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
[출처] Nationalist Leader Promises a Self-Sufficient Romania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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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타 줄르잔(Anita Zsurzsán)은 부다페스트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독립 학자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