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두고 맞선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반도체특별법 통과를 위해서는 손을 잡으려는 모양새다. 노동조합과 진보정당, 시민사회는 더불어민주당이 "금투세 폐기, 원전 예산 정부안 합의, 가상자산 과세 유예에 이어 네 번째 '퇴행'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연구개발 노동자들에게 주 52시간 노동시간 상한을 적용 제외하는 반도체특별법 통과에 합의하는 것은 "광장 시민들에 대한 배신"이라 짚었다.
16일 오전, 국회 앞에서 '반도체산업 주52시간 적용 제외 반대' 기자회견이 열렸다. 반올림,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전국금속노동조합, 3·8 여성파업 조직위원회, 노동당, 녹색당, 정의당이 함께 주최한 이날 기자회견 참여자들은 반도체특별법은 "근로기준법이 노동자의 건강과 삶을 위해 정한 주 52시간 근로시간 상한을 흔드는 일이며, 반도체 산업의 부진을 노동자 갈아넣기로 때우겠다는 무책임한 법안"이라 목소리를 냈다.
"반도체는 과로를 먹고 자라는가". 정의당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발의한 반도체특별법 논의 초기에 주 52시간 적용 제외 조항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으나, 그와 다른 행보들도 속속 이어지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해 11월 한국경영자총연합회와의 대화에서 “노동시간을 일률적으로 정해놨더니 집중적 연구개발이 필요한 영역은 효율성이 떨어지고, 노동자들에게도 불리하다는 주장이 있는데 실제로도 그런 것 같다”며 “만약 그런 면이 있다면 개선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간사인 김원이 민주당 의원도 지난 13일 열린 반도체 산업 관련 국회 간담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이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연구개발 노동자 등에 대한 노동시간 규제 적용 제외) 도입에 관한 정책 토론회를 다음달 초에 열 계획이라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손우목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위원장은 "특정 업종이라는 이유로 주 52시간제 예외를 인정하겠다는 발상은 그 업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소모품처럼 취급하는 것과 다름없다”면서, "주 52시간제는 노동자들의 건강권과 삶의 질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이를 함부로 흔들거나 완화하려는 어떤 시도도 절대 정당화될 수 없다. 국회는 왜 노동자들과 먼저 대화하지 않는가. 현장에서 일하는 반도체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철저히 배제한 채 정치권이 일방적으로 법 개정부터 서두르는 모습은 매우 무책임하다"고 짚었다.
이상섭 전국금속노조 수석부위원장은 "내란을 옹호했던 고용노동부 김문수 장관과 김민석 차관, 국민의힘에 이어서 이번에는 민주당까지 반도체특별법 제정을 추진하면서 반도체 연구개발 노동자에 대해 노동시간 상한 예외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시민이 바라는 세상이 정녕 무제한 노동과 과로로 노동자가 죽어 나가는 사회인지 명심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종란 반올림 상임활동가는 "많은 연구 노동자들이 과로, 과중한 업무 때문에 자살을 선택하는 슬픈 역사를 우리는 가지고 있다. 그런데 지금 무한대로 근로시간 상한제를 풀어서 또다시 과로자살을 조장하는 세상이 될까 정말 두렵다"고 말했다. 그는 “노동자를 희생시키는 것을 경쟁력 확보의 방법으로 삼아야 한다는 자본의 노골적인 발언에 우리는 분노를 금치 못한다”며, “반도체 산업이 아니라 노동자의 권리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이백윤 노동당 대표는 "지금 광장에서는 추운 날씨에도 수많은 시민들이 응원봉을 밝히며 윤석열 다음 새로운 세상이 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면서 "불평등과 낮은 삶의 질 때문에 노동자 시민이 고통받는 사회를 바꾸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도체특별법 같은 것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확대 적용 혹은 노조법 2, 3조 개정과 같이, 노동의 빈자리 사회의 어두운 곳을 어떻게 밝힐 것인가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현 녹색당 대표는 "윤석열과 함께 노동자 민중의 삶을 착취하고 황폐화하던 악당 정책 대책들을 모두 폐기하고 사회대개혁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 광장 시민의 의지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또한 "반도체 산업에 필요한 것은 더 안전하게 노동할 수 있는 환경과 안전망이다. 노동시간을 고무줄처럼 늘려서 한정된 인간의 육체를 어떻게든 뽑아 쓰려고 확대하는 노동 착취 시스템이 아니다. 더 이상 산업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노동자들이 소모품처럼 쓰이고 버려져선 안된다"고 이야기했다.
권영국 정의당 대표는 "보수 정당과 보수 언론들, 경영계 일부가 지나칠 정도로 극렬하게 반대한 결과 탄력근로제와 선택근로제, 특별연장근로제 등 주52시간 상한제에 구멍이 뚫렸다”며, "반도체특별법을 통해 삼성이나 sk와 같은 재벌과 대기업에 특혜를 부여하고, 노동자들에게는 노동시간 단축의 역사를 되돌려 장시간 노동 과로노동을 또다시 부활시키려고 하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대표는 무엇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는 것인가. 윤석열과 닮아있는 정치가 도대체 시민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가. 삶을 바꾸지 않는 정치를 우리는 왜 바꿔야 하는 것인가" 소리 높였다.
참여자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모든 노동자의 건강과 행복한 삶, 우리 사회의 지속을 위하여, 노동시간 규제는 어떠한 예외도 존재하지 않는 불가역적인 정책이어야만 한다. 시대착오적이고, 반노동적이며, 시민의 삶을 해치는 반도체특별법을 단호하게 반대한다"고 밝혔다.
한편 노동계를 비롯한 시민사회에서는 "노동시간 단축의 역사를 퇴행시키는" 반도체특별법을 비롯해 반도체 산업 전반의 '부정의'에 대한 고민들도 자라나고 있다. 체제전환을 위한 기후정의동맹과 민주노총 기후위기대응특위를 비롯한 단체들은 오는 22일 '정의로운 반도체 산업은 가능한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관련한 고민들을 나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