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첫 번째 시즌이 현대 자본주의의 병폐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면, 기대를 모은 두 번째 시즌은 그에 대항하는 조직화의 어려움을 반영한다.
2021년 처음 공개된 오징어 게임은 순식간에 전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켰다. 이 디스토피아 생존 드라마에서 재정적으로 절박한 참가자들은 막대한 상금을 얻기 위해 한국 전통 어린이 게임을 변형한 일련의 도전에 참여한다. 판돈은 치명적이다. 게임에서 지면 영구적으로 "제거"된다.
약 400명의 참가자 중 한 명이 사망할 때마다 총 상금은 1억 원이 증가한다. 각 라운드가 끝난 후, 참가자들은 게임을 계속할지 여부를 대중 투표로 결정할 기회를 얻는다. 참가자들이 6라운드가 완료되기 전에 게임을 중단하기로 투표하면, 상금은 남은 참가자들 사이에 균등 분배된다.
첫 번째 시즌에서는 참가자들이 첫 라운드가 끝난 후 게임을 중단하기로 성공적으로 투표했다. 그러나 일상의 빚과 재정적 절망으로 가득 찬 현실로 돌아온 후, 그들은 다시 게임에 참여하기로 결정한다. 현실 세계에서 푼돈을 위해 몸부림치기보다, 참가자들은 빈곤과 빚에서 벗어날 기회를 위해 목숨을 건다. 참가자들을 게임으로 되돌아오게 한 것은 바로 자본주의 시스템의 가혹한 착취와 불공정함이었다.
출처: Unsplash, Anil Baki Durmus
오징어 게임 2는 투표를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자본주의를 유지하는 데 있어 선거의 역할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스포일러를 피하고 싶다면 지금 읽는 것을 멈추기 바란다.) 두 번째 시즌에서, 주인공 성기훈은 첫 번째 시즌의 게임에서 얻은 456억 원의 상금을 가지고 돌아온다. 그의 목표는 더 많은 부를 얻는 것이 아니라, 게임을 운영하는 가학적인 초부유층(sadistic ultrarich elites) 집단을 찾아내 이를 영원히 끝내는 것이다.
반군식의 전략이 실패한 후, 기훈이 가진 유일한 선택은 다른 참가자들을 설득해 게임을 중단도록 투표하자고 하는 것이다.
익명의 “게임마스터”는 기훈에게 게임의 “자비로움”에 대해 강의한다. 그는 이 게임이 한국 사회에서 소외된 빈민들에게 피로 얼룩진 게임의 허울뿐인 능력주의를 통해 스스로를 구원할 기회를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기훈은 그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려 한다. 그러나 의료비에서 가상화폐 사기에 이르기까지 빚에 시달리는 참가자들은 자신을 구하기 위한 투표 대신 게임에 계속 참여하기로 간신히 결정한다. 점점 커지는 상금이 들어 있는 거대한 빛나는 돼지 저금통에 이끌려, 참가자들은 “이번 게임만 더 하고” 게임을 끝내겠다고 서로 설득한다.
게임마스터는 참가자처럼 위장해 기훈에게 선거 결과가 자신의 주장을 입증한다고 자랑한다. 그는 참가자들이 이기적이고 어리석으며 돈에 굶주려 자신을 구할 의지도 없으니, 구할 가치도 없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참가자들은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투표”를 하고 있으며, 따라서 어떤 결과가 오든 마땅히 받아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오징어 게임 2의 허무한 선거는 보통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어리석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노동계급의 행동을 어떻게 제약하고 강요하는지를 완벽히 비유한다.
마르크스주의 사회학자 비벡 치버(Vivek Chibber)는 ⟪계급 매트릭스⟫(The Class Matrix)에서 자본주의 사회에 신뢰할 수 있는 노동계급 조직 형태가 없을 때, 노동자들이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주장한다. 노동조합과 노동자당이 없는 상황에서는 자본가 계급에 맞서 집단 행동을 하는 데 따르는 비용이 지나치게 높아진다. 노동계급 조직이 존재할 때만 우리는 자본주의에 대한 체계적이고 집단적인 도전을 볼 수 있다.
치버는 여기서 허위의식과 문화적 헤게모니의 개념에 반대한다. 노동자들이 혼란스러운 것이 아니라(프리드리히 엥겔스의 허위의식 개념의 기본 전제), 집단 행동을 바람직하거나 가능하게 만드는 기존의 조직 형태가 없는 상황에서 개인적 행동을 택하는 것이 자신의 물질적 이익에 따른 합리적 선택이라는 것이다.
이는 심지어 마르크스주의 사상가들 사이에서도 문화가 지배적이었던 이야기를 물질적 관점에서 재해석한 것이다.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에서, 자본가 계급은 지배적인 위치를 이용해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사회의 아이디어, 신념, 가치를 형성하는데, 이를 문화적 헤게모니라고 부른다. 이는 다시 노동자들이 속았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치버는 노동자들이 무엇을 하느냐를 주로 결정하는 것은 그들의 아이디어가 아니라(옳든 그르든 간에) 우리 사회의 물질적 구조라고 본다. 치버의 표현을 빌리자면, “노동자들은 시스템을 정당하거나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에 받아들인다.” 자본주의는 “경제적 관계의 둔한 강제력”이 노동자들을 매일 그들의 일터로 돌아가게 만들기 때문에 안정성을 유지한다.
오징어 게임 2에서 참가자들이 다른 사람들이 눈앞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계속해서 게임을 진행하기로 투표하는 모습을 통해 이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기묘한 스피커를 통해 익명의 아나운서는 참가자들에게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의 정당성을 존중하라고 촉구하며, 기훈처럼 다른 참가자들에게 게임을 그만두라고 설득하려는 사람들을 처벌하겠다고 위협한다. 그러는 동안 무장한 경비원들이 줄지어 참가자들 앞에 서 있다.
참가자들은 단순히 속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비합리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게임에서의 그들의 선택은 게임 밖에서의 경제적 조건에 대한 선택의 부재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투표”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저항의 암울한 전망을 냉정히 평가하고 대신 개인적 성공에 베팅하고 있는 것이다. 기훈의 과제, 즉 정치의 과제는 집단 행동을 실행 가능한 합리적 선택으로 만드는 것이다.
[출처] Squid Game 2, an Allegory of Capitalism Versus Democracy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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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틀린 클라크는 민주적 사회주의자 연합(DSA, Democratic Socialists of America) 회원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