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셀(Aricell) 화재 사건은 한국에서 이주 노동자가 가장 많이 희생된 산업재해였다. 사망자 23명 중 18명이 비(非)한국 국적의 이주 노동자였다. 단순한 목숨의 상실을 넘어, 아리셀 사고는 한국 산업의 숨겨진 진실을 드러냈다. 겉으로 보기에는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중소기업들에서 실제로 노동을 수행하는 것은 바로 산업 전체를 지탱하는 이주 노동자들이었다. 그들은 가장 무거운 대가와 위험을 감당하지만, 산업의 최말단에 오랫동안 숨어 있었다. 한국이라는 이 거대한 산업 국가의 몸속에서, 이주 노동자들은 오랫동안 희생되어 온 "관절"이었다.
이 글에서는 한국의 이주 노동 정책이 노동자들을 어떻게 분리하고 제한해 왔는지를 되짚어 본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과 표면적으로는 모순되지만, 내적으로는 긴밀하게 연결된 현실—즉, 농장과 공장에서 이주 노동자들이 어떻게 "유연한" 노동력으로 간주며, 산업 구조의 가장 아래에서 위험하고 고된 노동을 떠맡으며 산업 체인의 마지막 위험 부담자로 배치되는지—를 살펴본다.
한국 국가인권위원회의 통계에 따르면, 2023년 한국에는 총 144만 명의 외국인 이주 노동자가 있었다. 이주 노동자 단체들은 이들을 일반적으로 "이주 노동자(移住劳动者)"라고 부른다. 하지만 우리는 "이주 노동자"라는 단어로 모든 외국인 노동자를 통칭하지만, 이들의 처지는 절대 평등하지 않다. 이는 비자 제도, 생활 환경, 사회적 인식 등 여러 측면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한국의 이주 노동 제도는 노동자들을 철저히 분할하여 각각을 고립된 집단으로 만들어 놓았다. 이들 사이의 분리는 마치 높은 장벽처럼 서 있으며, 여러 겹의 제한이 가해진다. 이러한 구조는 이주 노동자들의 자유를 가로막을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 사이의 연대를 어렵게 만든다.
중국 이주 노동자들이 밀집해 있는 대림동에 위치한 NGO 단체 ‘이주민센터 친구(移住民中心朋友)’의 소장 송은정은 “분할 문제”가 한국 외국인 노동자 문제의 핵심적인 모순이라고 보고 있다. 그리고 한국이 이주 노동자들에게 이토록 다양한 비자 구분을 적용하는 이유는 결국 특정한 시기, 특정한 산업, 그리고 자본의 시장 수요에 맞추기 위한 대응책일 뿐이다.
누가 ‘동포’인가? 시장이 결정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해외 한인들이 한국에서 생활하고 일할 수 있도록 발급되는 동포 비자이다. 처음에 한국은 해외 동포를 위한 비자로 F-4 비자만을 운영했다. 이 비자는 한국의 ‘재외동포법’에 근거하여 1999년에 도입되었다. 당시 한국은 아시아 금융 위기로 인해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입었고, 동포 비자 제도의 도입은 혈연적·문화적 목적 때문이 아니라, 해외 한인들의 자본을 유치하여 시장을 회복하기 위한 필요성에서 비롯되었다. 따라서 한국은 해외 한인들이 쉽게 한국을 오갈 수 있도록 조치를 마련했다. 그러나 이 비자는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 지역의 한인들만을 대상으로 했다. 반면, 중국 및 구소련 지역의 한인들은 자본을 보유한 동포로 간주하지 않았으며, 한국 경제 발전에 기여할 수 없다고 판단되어 배제되었다.
누가 동포가 될 수 있는가? 한국의 제도적 맥락에서 이는 혈연·역사·문화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경제적 필요로 결정되는 문제였다. 이러한 시기에도 다수의 조선족 중국 노동자들이 이미 한국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신분은 회색 지대에 놓여 있었다. 이들은 주로 방문 비자를 이용해 한국에 입국한 후 불법적으로 노동에 종사했으며,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쉽게 강제 추방될 위험에 처해 있었다.
이후, ‘재외동포법’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을 받았고, 동시에 한국은 노동 시장의 저숙련 노동력 부족 문제에 직면했다. 이에 따라 중국 노동자들과 민간 단체들이 주도한 일련의 항의 시위를 거친 끝에, 2004년 ‘재외동포법’ 개정이 이루어졌으며, 중국 및 구소련 중앙아시아 지역의 한인들도 동포 범주에 포함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형식적으로는 일정 수준의 형평성을 달성한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해외 동포들이 주로 사용하는 F-4 비자가 고숙련 노동 비자로 분류되었으며, 농업·어업·건설업·서비스업과 같이 노동력이 절실히 필요한 저숙련 직종에서는 사용할 수 없었다. 이는 중국 한인 노동자들의 현실적인 고용 조건과 맞지 않았다.
이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책은 특수 F-1-4 비자를 도입하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중국 노동자들은 비숙련 직종에서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었다. 동시에, 한국은 2003년에 동남아시아·남아시아·중앙아시아 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고용허가제’(雇佣许可制, Employment Permit System, EPS)를 도입했다. 이후 2007년, 한국 정부는 중국 노동자를 위한 H-2 비자를 신설하여 기존의 제한이 많은 F-1-4 비자를 대체했다. H-2 비자는 한국 행정 시스템에서 고용허가제의 일부로 간주하다. 이 정책을 통해 중국 노동자들은 직장 변경과 고용 절차에서의 제약이 완화되었으며, 기존의 고용허가제 노동자(E-9 비자 소지자)보다 더 유연하게 노동 시장에 참가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H-2 비자를 가진 중국 노동자들은 고용 시장에서 더 쉽게 이동할 수 있었고, 더 많은 임시직을 수행하게 되었다.
현재 한국에 도착하는 조선족 노동자들은 대부분 방문 비자를 소지한 채 입국하며, 6개월간의 직업 훈련을 거친 후 5년 기한의 H-2 비자로 전환된다. 이후 이들은 제조업, 농업, 어업 등에서 주로 비숙련 노동을 수행한다. 이후 H-2 비자는 F-4 비자로 전환될 수도 있지만, 이를 위해서는 기술 자격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아리셀(Aricell) 사고에서 사망한 17명의 중국 국적 노동자들은 총 4가지 서로 다른 비자를 소지하고 있었다. 가장 높 비율을 차지한 것은 앞서 언급한 F-4 비자로, 총 12명이 이 비자를 가지고 있었다. H-2 비자를 소지한 노동자는 3명이었다. 이 외에도 1명은 F-5 비자(영주권자), 1명은 F-6 비자(결혼이민 비자)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들은 각기 다른 비자를 가지고 있었으며, 법적으로는 수행할 수 있는 업무 범위도 달랐다. F-4 비자는 전문직에 종사해야 하며, H-2 비자는 비숙련 노동만 수행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들이 모두 같은 작업장에서 동일한 일을 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모순적인 현실이다.
‘이주민센터 친구’의 이제호 변호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F-4 비자와 H-2 비자가 수행할 수 있는 직종은 법적으로 명확히 규정되어 있다. H-2 비자는 비숙련 노동만 할 수 있으며, F-4 비자는 비숙련 노동을 제외한 전문직에서만 일할 수 있다. 그러나 아리셀 사고에서는 F-4와 H-2 비자 소지자들이 동일한 작업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만약 아리셀이 비숙련 노동을 수행하는 공장이었다면, F-4 노동자들은 불법 고용 상태가 된다. 반대로, 아리셀이 전문직 노동을 요구하는 사업장이었다면, H-2 노동자들이 불법 고용 상태가 된다. 결국, 법적 규정은 실제 노동 현장에서 큰 의미가 없다."
이제호 변호사
조선족 중국 국적 노동자들에게는 서로 다른 비자 시스템이 현실과 동떨어진 번거로운 법적 절차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으며, 자유롭게 일할 곳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이주 노동자들에게는 상황이 다르다. 이들은 비자 제도가 노동 권리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며, 동시에 그들의 주요한 족쇄가 되기도 한다. 바로 고용허가제(Employment Permit System, 이하 EPS) 하에서 일하는 이주 노동자들이다.
고용허가제: 자유시장 속의 노예 노동
현재 한국에 있는 144만 명의 외국인 이주 노동자 중 약 61만 명은 조선족 중국 노동자이며, 약 60만 명은 EPS 국가 출신 노동자들이다. EPS 국가란 한국이 합법적으로 이주 노동자를 도입하는 국가를 의미하며, 현재 총 17개국이 포함된다. 이들 중 가장 많은 노동자를 공급하는 국가는 베트남, 네팔,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등 동남아시아 및 남아시아 국가들이며, 중앙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우즈베키스탄이 포함된다. EPS 국가 출신 노동자 60만 명 중 일부는 영주권(F-5)이나 결혼 이민(F-6) 등의 방식으로 한국에 체류하고 있지만, 대다수는 E-9 비자(비전문 취업 비자)를 통해 고용허가제 노동자로 한국에 들어온다. 2023년 기준, E-9 비자를 가진 EPS 노동자는 총 31만 명이었다.
광범위한 관점에서 보면, 자본주의 자유시장 체제 아래에서는 모든 노동자가 생산 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채 노동력을 판매하는 "노예"와 같은 존재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대부분의 노동자는 어디에서, 누구를 위해 노동력을 제공할지 선택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유를 가진다. 그러나 EPS 이주 노동자들은 그러한 자유조차 가지지 못한다. EPS 노동자는 자유롭게 고용주를 변경하거나, 일자리를 바꿀 수 없다.
"가장 큰 문제는 자유롭게 일터를 옮길 수 없다는 점이다. 이런 자유가 없기 때문에 이주 노동자들은 고용주에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거나 노동 환경에 대해 논의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자유롭게 직장을 변경할 수 있는 권리는 안전한 노동 환경을 보장하는 기초적인 권리이다. 만약 이주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일터를 선택할 수 있다면, 강제 노동 문제를 개선할 수 있을 것이며, 위험한 작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스스로 떠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기업들 노동 환경을 개선하도록 압박할 것이다. 또한,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자유롭게 직장을 옮길 수 있는 권리는 현 상황을 변화시키는 핵심적인 요소이다.“
이와 같이 한국 최대의 이주 노동자 노조인 이주노동조합(MTU, Migrants' Trade Union)의 위원장 우다야(Udaya)는 설명했다. 그는 네팔 출신 노동자로서, 오랫동안 이주 노동자의 고용주 변경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싸워왔다. 현행 EPS 제도에 따르면, 노동자가 자유롭게 고용주를 변경하거나 근무 기한을 연장하려면 반드시 기존 고용주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다만, 공장이 폐업하거나, 고용주가 노동법을 명백하게 위반했다는 증거가 있을 때만 예외적으로 이직이 허용된다. 이주 노동자들이 고용주 변경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은 아직까지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오히려 윤석열 정부하에서 이러한 규제는 더욱 강화되었다.
MTU 위원장 우다야 라이(Udaya Rai)
2023년 10월 19일부터, 한국 정부는 EPS 노동자들에게 "고용주 변경 지역 제한" 정책을 시행했다. 이 정책에 따르면, 외국인 노동자는 최초로 근무했던 지역 내에서만 직장을 변경할 수 있으며, 전국은 다섯 개 지역으로 나뉜다. 수도권, 경남권, 경북 및 강원권, 전라 및 제주권, 충청권. 이에 따라 이주 노동자의 고용주 변경 권리는 더욱 엄격하게 제한되었다. 이는 곧, EPS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안전 문제나 임금 분쟁에 직면했을 때 더욱 발언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에서 계속 일하고 싶다면,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부당한 상황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왜냐하면 고용주가 불만을 가지는 어떤 행동이라도 강제 출국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에서 일하기 위해 수년간 투자한 교육 비용, 오랜 기간 한국어를 공부한 노력, 여러 단계의 시험과 심사를 통과한 과정이 한순간에 무산될 수도 있다.
이처럼, EPS 제도는 외국인 노동자가 합법적으로 한국에서 일할 수 있는 공식적인 경로이지만, 이 제도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유일한 전제 조건은 노동자가 합법적이고 소통이 가능한, 그리고 노동자를 존중할 의사가 있는 고용주를 만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순간, 노동자들은 언제든지 합법적인 고용 시스템에서 밀려나 "불법 체류자”로 낙인찍히고, 미등록 이주 노동자로 전락할 위험에 처하게 된다.
EPS 제도에서, 이주 노동자는 본국에서 일정 기간 학습을 거쳐야 하며, 한국어 능력 시험을 통과하고 한국 문화와 관련된 문제에 답해야만 한국에 올 수 있는 기본적인 자격을 얻는다. 또한, 한국 입국 전후로 수일간의 취업 교육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은 구체적인 직무 기술을 다루지 않으며, 대신 한국에 입국한 노동자가 "한국 생활에 적응하고", "한국 문화를 이해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고용주가 부담하는 비용에는 전체 신청 절차를 처리하는 데 필요한 행정 인력 비용과 이주 노동자가 한국에 입국한 후 부담해야 하는 각종 보험료(출국보증보험, 체불임금보증보험, 귀국비용보험, 상해보험) 비용이 포함되지 않는다. 이주 노동자가 부담하는 비용은 출신 국가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여기서는 인도네시아를 예시로 든다.
왜 EPS 제도는 이주 노동자의 자유로운 이동을 엄격히 통제하는가?
이주 노동자가 고용주를 자유롭게 변경할 권리를 갖지 못하는 것은, 고용주가 노동자를 더욱 쉽게 통제하고 착취할 수 있도록 만든다. 하지만 동시에 이는 노동력이 절실히 필요한 기업에도 걸림이 되며, "인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이주 노동자를 도입한다"는 취지와 모순된다. 정부가 기업을 위해 '노예 노동'을 조장하는 것이 일부 원인일 수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중요한 원인은 한국 사회 자체가 외국인 노동자를 낙인찍고 배척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보수적인 사회적 힘이 작용한 결과, 정부 관료들은 이주 노동자가 한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제도를 설계하도록 강요받았다. 이는 어쩌면 EPS 제도의 핵심 목표 중 하나일 수도 있다. 이주 노동자의 자유로운 고용주 변경을 제한함으로써, 한국 사회는 두 가지 효과를 얻는다. 자국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빼앗길 걱정을 덜게 된다. (특히 조건이 좋은 대기업의 일자리 보호) 이주 노동자가 한국 사회에 접촉하고, 적응하거나 동화될 가능성을 줄인다.
2021년, 한국 헌법재판소는 EPS 제도가 이주 노동자의 고용주 변경을 제한하는 문제에 대해 판결을 내렸다. 다수의 재판관은 이러한 제한이 위헌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판결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되었다.
"자국 노동자의 고용 기회를 보호한다는 원칙에 따라, 체계적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도입해야 한다. 외국인 노동자가 개인의 의사에 따라 자유롭게 일터를 변경하는 것을 금지하고, 예외적인 사유가 있을 때만 이를 허용해야 한다. 이를 통해 중소기업이 안정적으로 노동력을 확보하도록 보장하고, 자국 노동자의 고용 기회와 노동 조건을 교란하는 것을 방지하며, 동시에 외국인 노동자의 효율적인 고용 관리를 촉진할 수 있다.“
즉, EPS 제도는 단순히 한국의 저출산·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이 아니다. 오히려 특정한 산업, 즉 중소기업과 하청업체들이 안정적으로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제한된 형태로 설계되었다. 보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만약 헌법재판소가 한국 사회의 기본적인 입장을 반영하는 기관이라면, 이는 한국 사회가 EPS 제도를 체계적으로 활용하여 이주 노동자를 '희생'시키고 있음을 스스로 인정한 것과 다름없다.
한 자동차 부품 공장의 노동 환경. 이 공장은 현대자동차 공급망에 속한 업체이며, 전체 직원의 거의 절반이 EPS 이주 노동자로 구성되어 있다.
무등록 이주 노동자: “언제든 기계 안에서 사람이 죽을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동포 비자를 보유하거나 EPS 제도를 통해 한국에 입국한 이주 노동자들은 ‘합법적인’ 이주 노동자에 속한다. 이들은 일하는 산업과 노동 조건이 한국인과 명확히 구분되지만, 적어도 건강보험과 노동법상의 기본적인 권리는 보장받을 수 있다. 그러나 EPS 노동자보다 더 많은 숫자의 또 다른 집단이 존재하며, 이들은 이러한 기본적인 보호조차 받지 못한다. 이들은 완전히 ‘신분 없음’ 상태에 놓인 무등록 이주 노동자들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무등록 이주 노동자의 수가 합법적인 신분을 가진 이주 노동자보다 항상 많았다. 2023년 기준, EPS 노동자는 31만 명이었지만, 다양한 비자 경로를 통해 한국에 체류하는 무등록 이주 노동자는 이미 42만 명에 달했다. 이들 중 일부는 관광 비자로 한국에 입국한 후 체류 기한을 넘긴 경우이며, 또 다른 일부는 친척 방문을 명목으로 한국에 들어온 경우이다. 그리고 일부는 원래 EPS 노동자였지만, 직장에서 문제를 겪고 어쩔 수 없이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경우이다. 무등록 이주 노동자를 고용하는 공장은 비정규적인 소규모 작업장이거나, 심지어 정식 이주 노동자조차 감당할 수 없는 저성장 산업에 속한 경우가 많다.
김 씨는 대구에서 10년 동안 일해왔으며, 그동안 한 번도 고향인 인도네시아로 돌아가지 못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그는 EPS 제도를 통해 입국한 합법적인 이주 노동자였다. 그는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체력을 키우며, 직업 기술을 연마했고, 1년 이상 노력 끝에 시험에 합격하여 마침내 한국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그의 안정적인 직장 계획은 곧 무너졌다. 한국에서 일한 지 2년째 되던 해, 고용주가 임금을 체불하기 시작했다. 5개월 동안 월급을 받지 못한 그는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었고, 고향에서 빌린 돈도 갚을 수 없었다. 궁지에 몰린 그는 결국 도망칠 수밖에 없었고, 그 순간부터 ‘자유로운’ 무등록 이주 노동자가 되었다.
우리는 김 씨를 대구의 한 전통시장에서 만났다. 그곳은 한국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이었으며, 이주 노동자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김 씨는 자전거를 타고 가볍게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그는 한국 생활에 익숙해 보였으며, 심지어 한국식 이름까지 지어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터에 한 이야기가 나오자, 그의 가벼운 말투 아래 깊은 절망이 묻어났다.
현재 그는 대구의 한 섬유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그가 담당하는 작업은 ‘열 정형(熱定型)’ 공정으로, 직물이 고온 증기 기계를 통과하며 가열되는 과정을 담당하고 있다. 이 과정을 거치면 직물의 섬유 조직이 안정화되며, 쉽게 변형되지 않는다. 간단히 말하면, 그는 거대한 전기다리미 같은 기계를 조작하여 모든 직물을 ‘다림질’하는 일을 하고 있다. 물론, 일반적인 다리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기계는 거대하고, 훨씬 더 위험하다. 대구는 과거 한국의 경제 성장기 동안 양잠업(누에를 키우는 산업)의 중심지에서 ‘섬유 산업의 수도’로 변화했다. 그러나 지금은 섬유 산업이 쇠퇴하면서 노후한 공장들이 여전히 운영되고 있지만, 대부분의 공장주들은 기계를 새로 교체할 유인도, 여력도 없다. 김이 일하는 공장의 증기 가열 기계는 몇십 년이 지난 노후 장비이며, 검게 변색한 손잡이와 녹슨 강철 외관이 기계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김 씨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몇 달 전, 한국인 노동자 한 명이 사망했다. 그는 기계 안으로 들어갔지만, 다시 나오지 못했다. 나중에야 사람들이 그가 기계 안에서 죽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김 씨의 설명에 따르면, 기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는 틈이 생겨 잠시 휴대전화를 보거나 쉴 시간이 있다. 그러나 문제는 오래된 기계가 자주 고장 난다는 점이다. 기계가 멈추면 노동자들은 직접 기계 내부로 들어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보통은 기계가 완전히 식을 때까지 기다린 후 정비를 해야 하지만, 이 공장에서는 기본적인 안전 조치조차 갖춰져 있지 않다.
공장에서 필요한 기본적인 안전 조치는 다음과 같다. 기계가 완전히 식을 때까지 기다린 후 정비를 진행해야 한다. 기계 내부에 사람이 들어가면, 반드시 다른 작업자가 기계 작동을 감시해야 한다. 기계가 갑자기 작동하지 않도록 철저한 안전 확인 절차를 따라야 한다. 그러나 김 씨가 일하는 공장에서는 이러한 안전 조치가 전혀 시행되지 않고 있었다.
한국 섬유 공장 내 이주 노동자의 노동 환경
기계가 완전히 식기도 전에, 노동자는 기계 안으로 기어들어 가 최대한 빨리 수리해야 한다. 협력할 사람도 없이, 매번 담당 노동자가 혼자 들어가야 했으며, 만약 사고가 발생하면 도와줄 사람조차 없었다. 한 70대 한국인 노동자가 기계 안으로 들어간 후, 다시는 나오지 못했다. 김 씨는 이 이야기를 담담하게 말했다. 마치 이런 일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상적인 사건처럼 보였다. 사고가 발생한 후에도, 그는 여전히 같은 공장에서, 같은 작업을 계속했다. 왜냐하면, 이것이 무등록 이주 노동자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김이 일하는 섬유 공장에는 약 60명의 노동자가 있으며, 이 중 절반 이상이 이주 노동자이다. 그들은 전 세계 6개국에서 온 다양한 국적의 노동자들이다. 한국인 노동자는 거의 모두 고령자이며, 젊은이들은 더 이상 이런 직업을 선택하지 않는다. 그러나 고용주들은 EPS 제도를 통한 정식 이주 노동자를 채용할 경제적 여력이 없다. 따라서 값싸고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는 무등록 이주 노동자가 최후의 선택지가 된다. 만약 무등록 이주 노동자가 없다면, 이 공장은 아마 10년 전에 이미 사라졌을 것이다.
사고 발생 후, 기계 수리 절차가 일부 개선되었다. 이제는 공장에서 두 명이 한 조를 이루어 기계를 정비하도록 했다. 기계 내부에 사람이 들어가야 할 경우, 반드시 한 명의 동료가 밖에서 감시하며 협력해야 한다. 또한, 사고 이후 처음으로 공장에서 안전 교육이 진행되었다. 김이 한국에서 처음으로 받은 산업 안전 교육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안전 교육이 과연 노동자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김 씨는 회의적이었다. "그런 교육은 사고 직후 단 두 번뿐이었다. 그 이후로는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갔다. 새로 공장에 들어오는 노동자들은 이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더 큰 문제는 기계가 점점 더 낡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공장의 위험 요소는 시간이 지날수록 증가할 수밖에 없다. 이는 고용주가 바꾸고 싶어 하지 않는 문제이자, 노동자가 저항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위험 속에서 일하는 것이 내 일상이다." 김 씨는 언제 또 다른 사고가 발생할지 모른다고 했다. 그는 그 위험을 어떻게 예방해야 할지도 알지 못했다. 이것은 단순히 안전 지식의 문제가 아니다.
각기 다른 길, 같은 목적지: 한국은 ‘유연한’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한국의 이주 노동자 제도는 겉으로 보기에는 상반되는 두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다. 표면적으로 보면, 비자 시스템과 이주 노동자 유형이 다양하게 존재하며, 이주 노동자들은 서로 다른 법적 체계에 따라 세분된다. 그러나 내부적으로 보면, 시장의 역할이 핵심이며, 한국 산업계가 이주 노동자를 필요로 하는 이유는 단순한 노동력 부족 때문만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 산업이 효율적이고, 유연하며, 비공식적인 노동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MTU 위원장 우다야는 아리셀 사건을 설명하며 ‘위험 외주화’라는 개념이 ‘이주 노동자 위험’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즉, 이주 노동자가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전부터, 혹은 이주 노동자의 수가 많지 않았던 산업에서도, 위험을 외주화하는 것은 이미 일반적인 경향이었다. 외주화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한국 대기업이 위험하고 수익성이 낮으며, 더럽고 힘든 업무를 중소기업에 외주로 넘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업 내부에서도 정규직 노동자 비율이 줄어들고, 임금 절감 및 책임 회피를 위해 파견 노동자, 외주 노동자 등 비정규직을 선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위험 외주화’의 최종 단계가 바로 ‘이주 노동자화’이다. 이주 노동자는 기업 입장에서 가장 취약하고, 가장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며, 가장 저렴하면서도 안정적으로 공급될 수 있는 노동력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위험 외주화’는 자연스럽게 ‘이주 노동자 위험’으로 이어진다. 즉, 이주 노동자 제도는 본질적으로 한국의 외주화 시스템의 일부이며, 이러한 과정은 시장 논리에 따라 위험이 점진적으로 이전되는 결과물이다.
한국의 이주 노동자 유형별 인구를 보면 같은 흐름이 반복됨을 알 수 있다. 조선족 중국 노동자가 61만 명으로 가장 많고, 무등록 이주 노동자가 42만 명, EPS 노동자가 31만 명으로 가장 적다. 조선족 중국 노동자의 수가 가장 많은 이유는 문화적·언어적 친숙함 때문만이 아니라, ‘동포’라는 신분으로 다양한 비자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유롭게 직장을 구할 수 있고, 근무지를 변경할 수 있으며, 단기 외주 및 파견 노동을 하는 것도 일반적이다. 반면, 무등록 이주 노동자는 EPS 노동자보다 더 유연하고 비공식적인 노동 형태를 보인다. 앞서 언급한 김(金)도 EPS 노동자에서 무등록 이주 노동자로 전환되면서 더 ‘자유롭고 유연한’ 일자리를 얻었다.
비록 불법 체류 상태에 놓이게 되었지만, 그의 일자리 자체는 완전히 보호받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김 씨에 따르면, 무등록 노동자들은 대부분 한국인 브로커(중개인)를 통해 일자리를 찾으며, 이들은 단순한 알선 역할을 넘어 노동자와 고용주 간 조율까지 담당한다. 만약 산재 사고나 임금 체불 문제가 발생하면, 중개인도 이에 개입해야 한다. 왜냐하면 한국에서는 무등록 이주 노동자도 산업재해보상보험과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기 때문이다. 물론, 무등록 노동자가 이러한 문제를 제기하면 신분 노출 위험이 따르지만, 중개인·이주 노동자 단체·이주 노동조합이 이를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
김 씨와 같은 무등록 이주 노동자들이 한국에서 장기적으로 일하며, 지역 사회에 일정 부분 통합되는 현상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이는 무등록 이주 노동자의 존재가 이미 한국 행정 시스템에서 ‘묵인된 현실’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예를 들어, 비슷한 산업 구조를 가진 대만도 대규모 외국인 노동자를 도입하고 있지만, 무등록 이주 노동자의 규모는 한국보다 훨씬 적다. 대만의 외국인 노동자는 80만 명 이상이지만, 무등록 노동자는 10만 명 미만으로 한국보다 비율이 훨씬 낮다. 이것이 단순히 한국의 단속이 느슨하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한국의 무등록 이주 노동자가 EPS 노동자의 수를 초과하는 현상은, EPS 제도의 엄격한 고용 규정이 본질적으로 ‘반(反)이주 정서’를 달래기 위한 장치라는 점을 보여준다. 반면, 무등록 노동자들을 묵인하고 최소한의 보호를 제공하는 것은 노동 시장이 유연한 노동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결국, EPS 노동자, 조선족 중국 노동자, 그리고 비고용 비자를 이용해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는 행정적으로는 서로 다른 제도 속에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모두 한국 산업이 필요로 하는 ‘유연한 노동력’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들은 결국 한국 산업이 단계적으로 외주화한 ‘위험’을 떠안고 있다.
아리셀 사고 이후, 한겨레 기자 한 명이 구직자로 위장하여, 사고와 관련된 파견업체인 ‘메이셀(Maycell)’을 통해 유사한 외주 업체에서 일했다. 그녀가 경험한 내용은 위험이 외주화 및 파견 시스템을 통해 이주 노동자에게 어떻게 이전되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였다.
이주 노동자들은 전혀 생소한 공장으로 파견되었고, 안전 교육은 단 1분간 진행되었으며, 전부 한국어로 이루어졌다. 노동 계약 및 안전 보장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유령 노동자’처럼, 이들은 공식적인 신분 기록조차 없이 일했다. 임금 지급 방식과 근무 시간도 불투명하고, 공장 내 안전 지침도 전혀 다국어로 제공되지 않았다. 탈출 경로를 모르는 상태에서 위험한 작업을 수행해야 했으며, 휴식 시간조차 보장되지 않았다.
이 기자가 만난 노동자 중 한국인은 한 명도 없었으며, 그들은 대부분 여성으로, 카자흐스탄, 파키스탄, 중국,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출신이었다.
위험 외주화 과정은 한국 법적 보호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를 보여준다. 한국의 노동법은 한국인 정규직 노동자를 기준으로 설계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외주 노동자는 이미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으며, 외주화된 이주 노동자는 법적 고려 대상조차 아니다. 직업안전보건법은 안전 교육을 최소 1시간 이상 하도록 규정하지만, 이주 노동자들은 이를 제대로 제공받지 못한다. 노동 계약서와 급여 명세서 미제출은 명백한 위법이지만, 비정규 이주 노동자들에게는 거의 적용되지 않는다. 한국 법은 기업의 파견 노동자 고용을 제한하지만, 노동 감독 시스템은 비공식 이주 노동자에게는 거의 작동하지 않는다. 즉, 이주 노동자에 대한 법적 보호는 문서상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거의 작동하지 않는다.
전수경
장기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를 추적해 온 NGO 단체 ‘노동건강연대’의 공동대표 전수경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박근혜 정부 시기부터 기업들은 파견 노동자의 활용을 확대할 것을 강력히 요구해 왔습니다. 박근혜는 기업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응하며, 기업이 제한 없이 파견 노동자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비록 관련 법이 개정되지는 않았지만, 기업들은 불법적인 방법을 통해 지속적으로 파견 노동자의 사용 규모를 확대해 왔습니다. 현재 문제는 정부가 기업과 공장 현장에서 얼마나 많은 불법 파견 노동자가 있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노동부의 감독 횟수가 줄어든 것이 아니라, 파견 노동자의 숫자가 정부가 통제하기 어려울 정도로 증가했기 때문입니다. 매체에서 산업재해 사고를 보도할 때만, 정부는 표면적인 대응 조치를 취할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자유의 허상, 유연한 착취
국경을 넘는 이주 노동자 자체가 ‘이동의 자유’를 상징한다. 국경을 넘어 더 나은 삶과 일자리를 찾는 것은, 모든 사회에서 개인의 기본적인 선택권이다. 노동 중개업체, 노동자를 받아들이는 국가, 심지어 노동력을 내보내는 국가조차 이러한 논리를 사용하여 노동자들이 고향을 떠나 국제 노동 체계에 편입되도록 유도한다. 이것이 동전의 한쪽 면이다.
동전의 반대쪽 면 역시 자유와 관련이 있지만, 그것은 ‘착취의 자유’이며, 자본과 고용시장이 의존하는 ‘유연성’이다. 이것이 바로 더 어둡고 현실적인 측면이다. 보장이 없고, 언제든 교체될 수 있는 노동력. 이 유연성은 한국의 이주 노동자 제도 전반에 스며들어 있다. 이주 노동자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비합리적으로 다양한 제도적 대상들로 분리되어 있지만, 이러한 구분은 정교하게 조정되어 자국 노동자와 사회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선에서 산업별 인건비 절감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것이다.
조선족 중국 노동자는 ‘동포’라는 이름으로 한국으로 유입되었으며, 주로 건설업, 서비스업, 도시 주변 중형 공장에 집중되어 있다. 이러한 노동 환경은 생산 주기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하는 대규모 노동력이 필요하다. 공장이라 할지라도 비교적 공식적인 시스템을 갖춘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이번 화재가 발생한 아리셀 공장은 서울 수도권 외곽에 위치하며, 일정 수의 한국인 기술자를 고용하고 있고, 리튬 배터리 산업은 전통 제조업 중에서도 비교적 수익성이 높은 분야에 속한다. 조선족 노동자들은 한국어 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에 한국 사회와의 연결이 비교적 밀접한 서비스업에 진입할 수도 있다.
EPS 제도를 통해 유입된 이주 노동자는 대부분 지방 도시의 산업단지나 농장에서 중소기업을 위해 일한다. 예를 들면 대구 지역의 섬유업, 성서 산업단지가 대표적인 사례다. 현지의 젊은이들은 더럽고 위험한 일자리를 원하지 않거나, 전통적인 공장의 엄격한 관리 방식에 적응하지 못한다. 이러한 공백을 EPS 노동자들이 메우면서 전통 산업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무등록 이주 노동자들의 처지는 가장 복잡하다. 이들은 관광 비자로 불법 체류하는 중국 노동자일 수도 있고, EPS 제도에서 ‘내몰린’ 중앙아시아 및 동남아 노동자일 수도 있다. 이들은 주로 도시나 산업지대의 숨겨진 일자리에서 일한다. 예를 들면 쇠퇴한 산업에 속한 노후 공장에서 겨우 유지되는 노동력이거나, 도시에서 육체노동을 하며 가장 낮은 계층의 일을 담당하는 경우다. 이러한 고용주들은 불법 고용으로 인한 처벌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무등록 이주 노동자를 고용한다. 대부분의 경우, 일 자체가 비정상적이거나, 기업이 공식적인 고용 절차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제도와 배경을 가진 이주 노동자들은 한국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인공 관절’처럼 작동하며, 경제 시스템의 특정 부분을 지탱한다. 이들은 사회 구조의 틈새에 존재하면서도, 거의 주목받지 못하고 논의조차 되지 않는다. 심지어 공공 여론 속에서 이들은 종종 ‘불법 체류자’ 또는 ‘치안 위험’이라는 낙인을 찍힌다. 이주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보이지 않는 또 다른 모순을 드러낸다.
‘자유’와 ‘유연성’이 교차하는 곳에서, 이들은 경제 발전의 서사에서 필수적인 존재이면서도 의도적으로 잊힌 주인공이 되고 만다.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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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중국 노동자의 상황과 노동 문제를 다루는 비정부 웹사이트인 'China Labor Trends'의 탐사팀이 쓴 글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