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평화를 추구하는가, 아니면 전쟁을 준비하는가?

[번역자주지난 6유럽연합은 벨기에 브뤼셀에서 특별 정상회의를 열고 27개 회원국 만장일치로 8000억 유로(1258조원규모의 유럽 재무장을 결정했다

유럽연합은 전략적 의존성을 줄이고유럽전역의 방위 산업 기반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이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나토 국가들이 돈을 내지 않으면 그들을 방어하지 않겠다고 밝히고지난 2월 28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갈등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지원을 중단하자 유럽 전체가 군사적 불안감이 높아진 결과다이에 유럽연합은 8000억 유로 중 6500억 유로를 각국이 자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며 이로 인한 회원국의 큰 폭의 재정 적자도 예외로 인정하기로 했다.

유럽연합 특별 정상회의에서는 우크라이나 지원 역시 27개 국의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려 했으나 친러 성향이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가 이에 반대하면서 공동 성명이 아닌 별첨 문서’ 형태로 발표되기도 했다.

11일(현지시각),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우크라이나 대표단을 만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방부 장관은 '30일 휴전'을 제안했고 우크라이나는 이를 수용했다. 이에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군사, 정보 지원을 재개했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직접 푸틴을 설득하겠다"고 나섰다. 

미국 대표단과 우크라이나 대표단은 11일,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만났다. 출처: 젤렌스키 대통령 공식 페이스북 

이제 유럽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방이 결정되었음을 인정하고군사적 확전을 통해서가 아니라 외교적으로 학살을 끝낼 때다.

16명의 유럽 지도자가 참석한 런던 우크라이나 정상회의는 2025년 3월 2(일요일저녁향후 평화 계획을 발표하며 마무리되었다정상회의에서는 영국과 프랑스가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기로 합의했다또한영국과 프랑스는 1개월간의 휴전을 제안했다회의에서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확대우크라이나의 군사적 입지 강화우크라이나로의 병력 파견유럽의 재무장 문제도 논의되었다.

유럽 전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복귀가 "서방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광범위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2월 28일 백악관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은 노골적인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이에 영국 총리 키어 스타머(Keir Starmer)는 다음 날 런던에서 긴급 정상회의를 소집했으며회의는 즉각 열렸다.

이번 회의에는 캐나다와 터키를 비롯해 14개 유럽 나토 회원국이 참석했다또한유럽이사회유럽연합 집행위원회나토 대표도 함께했다그러나 유럽연합과 나토 소속 유럽 국가들 중 절반가량은 초청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스타머 총리는 이번 회의를 "의지가 있는 국가들의 연합"이라고 표현했으며초청 대상은 명백히 중요한 국가들이거나이념적으로 특별히 뜻이 맞는 국가들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회의에서는 휴전과 평화 계획의 발전 가능성이 논의되었으나즉각적인 결론은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와 그의 노선을 지지한다는 입장 표명이었다런던 정상회의에서 지도자들은 휴전 합의가 성사되더라도 군사 원조를 지속하고필요하면 확대하여 우크라이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고 러시아의 추가 공격을 막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또한참석국들은 국방 예산을 증액할 계획을 발표했다스타머 총리는 지난주 영국의 국방비를 2027년까지 GDP의 2.5%로 인상하고이후 3%까지 확대할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이에 따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위원장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은 "우리는 유럽을 시급히 재무장해야 한다"고 선언하며,"이를 위해 3월 6일 유럽이사회에서 유럽 재무장 종합 계획을 발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럽은 미국에 의존할 수 없다면자체적인 중()항공기물류 및 감시 시스템그리고 전체 군사 인프라를 갖춰야 한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빠르게 지적했다영국과 프랑스는 핵무기를 활용해 유럽을 보호할 방법을 찾아야 하며국방비는 GDP의 4~5%까지 증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이는 "냉전 시기에는 정상적이었던 수준"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그러나 나토가 더 이상 신뢰받지 못하고 영국이 EU에 속해 있지 않은 상황에서이러한 계획을 실제로 어떻게 실행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은 불투명하다.

2월 28일 밤백악관에서 벌어진 충돌이 사전에 계획된 것이었는지그리고 그 목적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추측이 언론에서 난무하고 있다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J.D. 밴스 부통령의 외교적이지 못한 공황적 행동이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서로 다른 내러티브 간 충돌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볼로디미르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가 민주주의와 자유를 대표하며서방의 가치와 규칙 기반 국제 질서를 공격하는 침략자에 맞서 영웅적인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내러티브를 상징한다반면트럼프와 MAGA 운동의 우크라이나 내러티브는 명확하지 않다트럼프는 우크라이나의 민주주의에 의문을 제기하며나토와 우크라이나도 전쟁의 책임을 공유해야 한다고 시사해 왔다.

트럼프의 핵심 주장은 국가적 이기주의일 가능성이 높다이 전쟁은 미국에 지나치게 큰 비용을 초래하고 있으며미국의 최우선 과제는 중국과의 경쟁에 있다는 것이다트럼프의 표현 방식이 무모하고 조잡할 수 있지만그의 의문과 주장에는 일리가 있는 부분도 있다예를 들어, 2023년 ‘V-Dem 보고서에 따르면우크라이나는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 "선거적 독재"로 분류되었다. 2024년에는 계엄령과 "국민 단합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선거가 연기되었으며, 12개 이상의 정당이 금지되었고언론의 상당 부분이 국가 통제하에 있으며정치범 수가 증가했다.

또한이 전쟁의 근본적인 원인은 나토 확장과 우크라이나의 언어 정책과 관련이 있었다는 증거도 있다예를 들어, 2022년 3월 이스탄불 양해각서에는 러시아의 핵심 목표로 나토 확장 저지와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어 사용 인구의 지위 향상이 기록되었다그러나 주요 나토 국가들이 이를 기반으로 한 합의를 거부했다.

한편트럼프의 MAGA 이데올로기와는 거리를 두면서도 비판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수도 있다예를 들어사회민주주의적 관점(원래의 의미에서즉 신자유주의적 왜곡 없이 본래의 사회민주주의 개념에 따른 시각)에서 보면문제의 본질은 서구가 오랫동안 유지해 온 이중잣대에 있다서구는 역사적으로 자신들이 내세운 이상과 반복적으로 배치되는 행동을 해왔다.

"유럽 국가들은 독립 전쟁 동안 식민지와 그 주민들을 비참하게 대했다냉전 시기 동안 미국은 소련에 맞서기 위해 잔혹한 독재 정권들을 기꺼이 지원했다이는 이란에서 모하마드 모사데그를 전복시키고칠레에서 살바도르 아옌데를 축출한 사례에서 분명히 드러난다냉전 이후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재앙적이었다. ...... 미국은 한때 다자주의의 옹호자였으나트럼프 이전부터 이미 글로벌 기구들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워싱턴은 오랫동안 UN, 유네스코세계무역기구를 비판하며 예산 지원을 삭감했다국제형사재판소 규정을 비준하지 않았으며국제사법재판소의 관할권을 거부했고교토 의정서를 외면했다이로 인해 기후 변화 대응이 최소한 25년은 지연되었다. '미국 우선원칙은 트럼프 이전부터 존재해왔다."

트럼프 행정부는 수십 년간 지속된 미국의 관행을 더욱 급진화했으며그 과정에서 질적으로 중대한 변화를 초래했다트럼프 집권하에서 미국은 계몽주의의 유산과 결별했으며그동안 스스로 대표하고 주도한다고 주장했던 "규칙 기반 국제 질서"를 사실상 포기했다물론미국은 이 질서를 과거에도 자주 따르지 않았다이런 관점에서 보면러시아 및 중국과의 점진적인 갈등 확산은 미국의 자기중심적 일방주의에 대한 대응 과정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처음에는 다른 국가들이 미국의 일방주의에 맞서 동일한 방식으로 반응하는 법을 배우고그러다가 과정이 심화되면서 미국 스스로 일방주의와 자기중심주의를 공식적인 원칙으로 채택하는 흐름으로 발전한 것이다.

2025년 3월 2일 런던에 모인 서방 지도자들은 우크라이나를 "영웅"으로러시아를 "팽창주의적 악의 축"으로 규정하는 기존 서구의 흑백 논리를 유지하려는 의도를 보였다휴전과 평화 프로세스 논의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조치일 수 있지만회의의 핵심 초점은 오히려 전쟁 준비에 맞춰져 있었다런던에서는 우크라이나로의 병력 파견 가능성도 논의되었다.

그렇다면 이 그룹은 실제로 평화 프로세스와 우크라이나의 안보에 얼마나 진지하게 임하고 있는가스타머 총리는 "의지가 있는 국가들의 연합"을 구성하여 평화 합의를 이행할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영국은 병력과 항공기를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입장이다.

군대의 역할에 대한 세부 사항은 여전히 불분명하지만논의에서는 평화를 확보하고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보장하는 것이 강조된 것으로 보인다폰 데어 라이엔은 "국경은 무력으로 변경될 수 없다"고 강조했는데이는 평화 유지 작전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다른 방식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러시아가 점령한 영토를 포기할 때까지 전쟁을 지속해야 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만약 우크라이나가 영토를 완전히 되찾을 때까지 전쟁이 계속되어야 한다면우크라이나는 더 강력한 군사 지원이 필요할 것이며이는 무기나 자금 지원뿐만 아니라 병력 파견까지 포함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런던 회의에서 제시된 단순한 이분법적 서사뿐만 아니라나토 국가들이 우크라이나에 병력을 파견할 경우전쟁이 확전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나토군이 우크라이나에 투입된다면이는 러시아와 나토 간의 직접적인 충돌로 이어질 위험이 있으며최소한 "의지가 있는 국가들의 연합"과 러시아 간의 전면전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평화를 확보하기 위한 군대 동원은 이론적으로는 더 나은 선택이지만현실적으로 실행 가능성이 거의 없다이는 사실상 러시아의 의사에 반하는 방식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러시아의 승인 없이 나토군이 우크라이나에 파병된다면이는 러시아의 핵심 목표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조치로 해석될 것이며공격 행위로 간주될 위험이 크다.

진정한 평화 프로세스가 작동하려면갈등 당사자들에게 최대한 중립적인 중재자와 평화유지군이 필요하다런던에 모인 국가들은 자신들이 내세우는 이상을 보다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만약 목표가 다자주의 기구를 강화하는 것이라면유엔과 유럽안보협력기구가 평화 프로세스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유엔과 유럽안보협력기구는 평화 협상과 평화 유지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하며평화유지군은 나토가 아닌 제3국에서 파견되어야 한다협상에서는 모든 의제가 테이블 위에 올라와야 하며모든 문제가 합의될 때까지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지역 문제에 대해서는 임시 국제 행정 모델을 활용할 수도 있다유엔과 유럽안보협력기구의 핵심 목표는 군비 확장이 아니라 협상을 통한 군축이며이를 감독하는 것이다.

어떠한 과정도 진정한 대화 없이는 진전될 수 없다대화는 상대방의 입장을 듣고타협하고뉘앙스를 이해하며최선의 경우 자신과 상대방에 대한 더 나은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포함해야 한다.

[출처] Is Europe seeking peace or is it preparing for war?

[번역] 이꽃맘 

덧붙이는 말

헤이키 파토마키(Heikki Patomäki)는 헬싱키 대학교 세계 정치학 교수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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