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방글라데시에서 강력한 학생 주도의 봉기가 일어나 15년 동안 집권했던 셰이크 하시나 총리의 권위주의적이고 부패한 정부를 무너뜨렸다.
현재 방글라데시는 민주주의 회복의 미약한 징후를 보이고 있다. 과도정부가 집권한 지 수개월이 지난 지금, 대학을 중심으로 정치적·시민적 공간이 다시 열리고 있으며, 주요 국가 기구에 대한 개혁도 시작되었다.
그러나 폭력과 정치적 보복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이번 주, 과도정부는 지난해 수백 명의 시위대가 사망한 사건과 관련된 역할을 조사 중인 특별재판소의 조사에 따라, 하시나 전 총리의 정당인 아와미 연맹을 ‘반테러법’에 근거해 금지 시켰다.
총선도 연기되었으며, 빠르면 2026년이 되어야 치러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불안정한 과도기 속에서, 84세의 노벨상 수상자이자 경제학자인 무함마드 유누스 과도정부 수반이 신뢰와 안정의 상징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의 인기가 워낙 높아 많은 이들이 그가 앞으로 5년 더 지도자 역할을 맡아주길 바라고 있다.
이런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방글라데시는 몇 가지 불편한 질문에 직면해 있다. 지금 과연 선거 민주주의를 감당할 수 있는가? 아니면 제도가 뒷받침될 때까지 안정을 우선시하며 민주주의는 미뤄야 하는가?
그리고 만약 이런 비상 체제가 새로운 일상이 된다면, 그다음은 어떻게 될 것인가?
노벨상 수상자 무하마드 유누스(Muhammad Yunus)는 지난해 과도정부의 수반으로 지명되었다. 출처: 위키미디어
민주주의 회복을 향한 험난한 길
글로벌 민주주의 보고서에 따르면, 방글라데시는 여전히 "선거적 권위주의" 국가로 분류되며, 2024년에는 오히려 상황이 더 악화된 몇 안 되는 사례 중 하나로 꼽혔다.
야당, 특히 방글라데시 민족주의당(BNP)은 과도정부의 정당성에 강하게 이의를 제기하며, 이 정부가 실질적인 개혁을 수행할 민주적 정당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BNP와 그 과거 동맹이었던 이슬람 정당 자마트에이이슬라미(Jamaat-e-Islami)는 방글라데시의 무슬림 다수층 일부에게 호소력을 가질 수 있으나, 이들 정당은 평판에 오점이 많고 젊은 유권자들 사이에서의 지지도도 제한적이어서 지지 기반이 약화된 상태다.
한편, 급진적인 우익 이슬람 세력들은 현재의 권력 공백을 틈타 다시 세력을 확장하려 하고 있으며, 이는 무슬림 다수와 힌두 소수 집단 간의 긴장을 악화시키고 있다.
5월 3일, 다카에서 열린 집회에서 수천 명의 이슬람주의 활동가들이 무슬림 여성의 평등권 보장을 위한 권고안 초안을 규탄하고 있다. 출처: 모하마드 아딜 페이스북
경제적으로도 방글라데시는 하시나 정권 아래에서 입은 피해로 여전히 휘청이고 있다.
부패는 은행 시스템을 텅 비게 만들었고, 주요 기관들은 사실상 파산 상태에 놓였다. 유누스는 유능한 관료들을 기용해 경제를 안정시키려는 조치를 취했지만, 불확실성은 여전히 투자자들의 신뢰를 꺾고 있다.
물가 상승률은 여전히 높다. 특히 청년층을 위한 일자리 창출이 속도를 내지 못한다면, 또 다른 사회 불안을 야기할 씨앗은 이미 뿌려진 셈이다.
치안도 급격히 악화됐다. 국가 경찰은 아와미 연맹(Alami League)과의 연루로 신뢰를 잃었고, 전직 경찰청장은 반인도 범죄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길거리 범죄가 증가하고 있으며, 소수자들은 갈수록 많은 괴롭힘을 받고 있다. 여성들은 온라인과 거리 모두에서 깊은 불안감을 느끼고 있으며, 일부 정당들은 여성에 대한 폭력을 저지하는 데 걸림돌로 인식되고 있다.
법률은 강력해 보이지만, 형편없는 법 집행과 피해자 비난 문화로 인해 폭력은 만연하고 있다. 범죄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기란 매우 어렵다.
방글라데시는 국제무대에서도 점차 고립되고 있다.
하시나 정부와 오랜 동맹 관계였던 인도는 과도정부에 등을 돌렸고, 미국 또한 거리를 두고 있다. 미국 국제개발처(USAID)는 2021년부터 2026년까지 방글라데시 국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약 10억 달러(약 16억 호주달러)를 지원하기로 약속했지만, 현재 이 자금은 중단된 상태다.
#US #aid cuts push #Bangladesh's #health sector to the edge #USAID https://t.co/OCHxsNQwph
— The Daily Star (@dailystarnews) May 6, 2025
시민 자유에 있어 일부 진전
올해 방글라데시는 정치적 자유와 시민의 자유를 평가하는 프리덤하우스(Freedom House) 지수에서 지난해 100점 만점에 40점이었던 점수가 45점으로 소폭 상승했다. 이는 올바른 방향으로의 한 걸음이다.
지난 1년간 이루어진 주요 개선 사항으로는 다음과 같은 정부의 조치들이 있다.
* 일부 정당에 대한 제한 해제
* 정치범 석방
* 책임성을 강화하기 위한 주요 사법 개혁 약속
새로운 선거관리위원들의 임명과 사법 및 반부패 개혁을 위한 자문위원회 신설은 제도적 재정비가 진행 중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는 여전히 취약하다. 야권 인사들에 대한 정치적 동기의 기소는 철회되었지만, 이번에는 과거 집권 엘리트들에 대한 새로운 기소가 제기되고 있다. 군의 치안 역할도 확대됐으며, 아와미 연맹 지지자들에 대한 시위대의 괴롭힘도 계속되고 있다.
또한 언론의 자유는 여전히 심각하게 제약받고 있으며, 한 인권 단체에 따르면 과도정부는 지난 8개월간 수백 명의 언론인을 표적으로 삼았다.
A journalist Munni Saha is surrounded by a mob in Dhaka, heckled and called an ‘Indian agent’. Subsequently, she’s detained by the police.
— Padmaja Joshi (@PadmajaJoshi) December 1, 2024
Meanwhile the advisor to Bangladesh Govt says ‘there’s no pressure’ on media in the country #AllIsWell pic.twitter.com/9QxQHCWDDG
이처럼 분열된 환경에서는 시급한 개혁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개혁은 지속 가능해야 하기도 하다. 과도정부가 이러한 개혁을 실현할 시간과 권한, 그리고 지지를 갖추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또한 정부는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실시하겠다는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떠오르는 새로운 정당
방글라데시의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청년층은 이러한 문제들에도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치 지형을 새롭게 재편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2025년 초, 지난해의 학생 봉기를 주도했던 지도자들이 새로운 정당인 국민시민당(NCP, National Citizen Party)을 창당했다. 이 정당은 방글라데시에 ‘제2공화국’을 가져올 정당으로 자신을 규정하고 있다. 프랑스와 미국의 역사적 모델에서 영감을 얻은 이 정당은 새롭게 선출된 제헌의회와 헌법을 구상하고 있다.
과도정부의 조직적 지원과 암묵적인 후원을 바탕으로, 국민시민당(NCP)은 빠르게 유력한 정치 세력으로 성장했다.
그럼에도 이 정당이 나아갈 길은 험난하다. 광범위한 이념적 연합은 메시지를 희석시키고 방글라데시 국민당(BNP)과의 차별성을 흐릴 위험이 있다.
NCP가 거리의 시위를 정책으로 전환하려면 정체성을 명확히 하고 지지 기반을 공고히 하며, 기성 권력에 흡수되거나 측면에서 추월당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 정치적 유동의 순간이 진정한 변화를 가져올지, 아니면 또 다른 환멸의 순환으로 끝날지는 과도정부와 NCP 같은 새로운 정치 주체들이 얼마나 과감하고 지속 가능하게 행동하느냐에 달려 있다. 또한 이들이 전환 과정을 지나치게 오래 끌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출처] After an autocratic leader was toppled in Bangladesh, democratic renewal remains a work in progress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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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티파르 초드허리(Intifar Chowdhury)는 플린더스 대학교 정부학 강사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