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3년, 계엄령 아래 노동권 위해 싸우는 우크라이나 좌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3년째에 접어든 가운데우크라이나의 좌파 진영은 여전히 신자유주의와 러시아의 침략 양쪽에 맞서 싸우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소찰니 루흐(Sotsialnyi Rukh)는 전쟁 중 키이우 도심에서 시위를 주도한다. 출처 : 소찰니 루흐(Sotsialnyi Rukh)

소찰니 루흐(Sotsialnyi Rukh, “사회운동”)는 우크라이나 최대이자 가장 오래된 민주사회주의 조직이다. 2013~2014년 유로마이단 항쟁(Euromaidan,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유럽연합과의 통합을 요구하며 시작한 대규모 항쟁직후에 결성된 이 조직은러시아의 침공 이후에도 원칙 있는 좌파 정치를 굳건히 지켜오고 있다소찰니 루흐에게 유로마이단은지금의 전쟁만큼이나 존재 기반을 형성한 사건이었다유로마이단은 당시 대통령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모스크바와의 관계를 강화하고, ‘유럽연합-우크라이나 연합 협정을 거부하기로 한 결정에서 촉발되었다이 결정은 사실상 우크라이나를 유럽연합과 멀어지게 하고러시아 및 동부 지역의 전쟁으로 향하는 길로 이끌었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전면 침공 직후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이후우크라이나 내 좌파 활동은 사실상 정지 상태에 놓였다시위는 대부분 금지되었고젤렌스키 대통령이 이끄는 국민의 종(Sluha Narodu, Servant of the People)’ 정당은 신자유주의적이고 반노동조합적인 정책 기조를 채택하고 있다.

소찰니 루흐 대표 비탈리이 두딘(Vitaliy Dudin, 37)은 조직 설립 초기부터 활동해 온 인물이다그는 키이우 도심에서 인터뷰를 가졌으며이는 도시 외곽에 대한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12명이 사망하고 90명 이상이 부상당한 지 이틀 후였다소찰니 루흐는 우크라이나 자유노조총연맹(Confederation of Free Trade Unions of Ukraine), 우크라이나노동조합연맹(Federation of Trade Unions of Ukraine) 등 다양한 노동조합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두딘은 자신을 노동조합 활동가라고 말한다.

비탈리이 두딘(Vitaliy Dudin)은 4월 27일 소찰니 루흐(Sotsialnyi Rukh) 주최로 열린 “전시 상황에서 핵심 기반시설 노동자 보호” 회의에서 연설했다.  출처 : 테이아 샤텔(Theia Chatelle)

두딘은 인터뷰 직전 노동 분쟁의 무료 법률대리인으로 법정에 있었다고 밝혔다. “오늘 판결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어요하지만 공습경보가 울리면서 재판이 연기됐습니다다음 심리는 5월 26일에 열릴 예정입니다지금은 많은 노동 분쟁이 당사자 출석 없이 처리됩니다왜냐고요? ‘그게 더 효율적이니까요.’” 두딘은 전쟁 발발 이후 우크라이나 정부의 반노동자적 수사와 정책이 뚜렷하게 강화되었다고 강조했다그는 재판이 공습으로 연기되었음에도 열릴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운이 좋은 일이라고 했다.

지쳐 보이는 모습으로 두딘은 말했다. “러시아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에서의 좌파 활동 현실이 이렇습니다우크라이나의 계급투쟁은 지금 너무 지루해요지루해요왜냐하면 이건 시위가 아니라법정과 행정절차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전면 침공 이후우크라이나는 계엄령 하에 있으며이에 따라 공공 집회 제한통행금지 등이 시행되고 있다이 같은 규제는 노동권을 요구하는 좌파 활동가들에 대한 억압 도구로 자주 활용되고 있다.

소찰니 루흐(Sotsialnyi Rukh) 활동가들은 개정 노동법전 시행을 규탄하는 포스터를 들고 있다. 출처 : 소찰니 루흐(Sotsialnyi Rukh)

2022년 3월 우크라이나 의회를 통과한 노동법 개정안은 노동권 약화 흐름에 결정타를 날렸다해당 법은 다음과 같은 조항을 포함한다△병가나 휴가 중인 노동자 해고 허용 △최대 주 60시간 노동 가능 △국방 관련 사유일 경우계약 외 노동 강제 가능

이 모든 변화는 국방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명분으로 정당화되었으나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의 균형을 극단적으로 사용자에게 유리하게 기울였으며법에는 시한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이러한 제도는 전쟁 이후에도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키이우의 학생노조 활동가 아나 바비치(Ana Babić, 27)는 말했다. “지금 우리는 군이 무슨 일을 해도 괜찮은 상황에 직면해 있어요그들이 차량을 파손해도 군인이기 때문에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4월 마지막 주소찰니 루흐는 전시 노동재해 문제에 관한 회의를 주최했다우크라이나 국가노동청에 따르면전면 침공 이후 지금까지 2,747명의 노동자가 부상, 677명이 업무 수행 중 사망했다하지만 두딘은 인터뷰에서, “그들 중 많은 수가 단체협약에 명시된 국가 보상을 아직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 소속 정당인 국민의 종’ 소속 국회의원 파블로 프롤로프(Pavlo Frolov)도 회의에 참석해자신의 정당이 우크라이나 노동자 권리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며실제로 할 수 있다고 말했다회의에는 러시아 침공 이후 부상당한 철도 및 교통 노동자들노동권을 외치는 10대 활동가들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석했다두딘은 회의 연설에서 말했다. “우리가 독립 철도노조와 함께우크라이나 최대 철도회사에 맞서 승소했습니다그러니까 돈 있고 권력 있는 자들과도 싸울 수 있어요우리는 해냈습니다우크라이나에서도 여전히 싸울 수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아직도 권력자와 부유한 자들에 맞서 싸울 수 있다

소찰니 루흐는 2015년부터 활동해 왔지만전쟁 발발 초기 몇 달 동안 그 존재감이 새롭게 부각되었다. LGBTQ+ 권리사회주의 정치러시아 침공에 맞선 우크라이나 국민의 무장 저항권을 지지하면서부터였다.

두딘은 말했다. “미국의 개입 규모와 우크라이나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당연히 논의되어야 할 문제이지만우크라이나가 독립국인 이상자국을 방어할 권리는 당연하다고 주장했다이 전쟁은 최소 1만 2천 명의 민간인과많게는 우크라이나군 7만 명러시아군 26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일부 국제 좌파는 푸틴이 주장한 우크라이나의 나치 이념 만연이라는 논리를 반복하며러시아의 침공을 비나치화(denazification)’ 명분으로 정당화하려 했다그러나 아나 바비치는 말했다. “극우 포퓰리즘과 우익 이데올로기는 확실히 증가하고 있습니다하지만 우리는 지금 전쟁 중입니다전쟁이 벌어지는 어떤 지역에서도 극우는 상승합니다.”

소찰니 루흐는 성별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포괄하는 포용적 좌파 정치에 헌신하며이 반동적 정치 흐름에 대한 해독제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바비치는 강조한다. “민족주의적이고 외국인 혐오적인 우익 정당들에 맞서기 위해서는우크라이나인들에게 논리적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그게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왼쪽 팻말에는 “개정 노동법전”이라고 적혀 있고, 오른쪽 팻말에는 “노동자 권리”라고 적혀 있다. 출처: 소찰니 루흐(Sotsialnyi Rukh)

두딘은 말했다. “우리는 우크라이나 여러 도시에 약 100명의 회원을 조직하고 있고민주적 사회주의·반파시즘·성평등·사회적 평등을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유일한 좌파 조직입니다그리고 지금 10명 이상 회원들이 우크라이나군에 복무하고 있습니다.”

두딘은 소찰니 루흐가 무엇보다 인도주의적 활동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이 조직은 단순히 노동조합과 연대하고노동 분쟁에서 무료 법률 지원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우크라이나의 영토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군인들에게 실질적 물질 지원도 제공하고 있다또한 전투복과 의약 키트를 위한 모금 활동을 자주 진행하는 연대 집단(Solidarity Collectives)’ 등 다른 좌파 단체들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하지만 전쟁이 3년째로 접어들며이 모든 활동은 더욱 어려워졌다두딘은 담담히 설명했다. “지금은 시위 하나 조직하는 것도 감정적으로 훨씬 더 소모적입니다왜냐하면 우리는 거리로 나설 권리를 증명해야만 하거든요계엄령이 시행 중이고시위는 금지되어 있어요만약 정부와 정면 충돌하는 메시지를 들고 나온다면경찰이 그 집회를 강제로 해산시킬 수도 있다는 걸 각오해야 합니다.” 실제로 보건부 앞에서 의료 종사자에 대한 더 나은 보상과 보호를 요구하며 진행된 소찰니 루흐의 시위는 경찰에 의해 건물 진입이 차단되고 해산 시도를 당했다. 

소찰니 루흐(Sotsialnyi Rukh)의 보건의료 노동자 지지 시위. 출처: 소찰니 루흐(Sotsialnyi Rukh)

키이우 거리에서 느껴지는 피로감은 명백하다전쟁은 장기화되고 있으며키이우와 모스크바 사이의 휴전 협상은 진척이 거의 없다이에 따라 소찰니 루흐의 활동가들은 장기전에 대비한 태세로 전환하고 있다아나 바비치는 말했다. “전쟁이 언제 끝날지를 생각하는 걸 거부합니다전쟁은 항상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전제 아래 살아가고 싶어요그래야 인도주의 활동에 집중할 수 있으니까요.”

[출처3 Years Into War, Ukrainian Leftists Fight for Labor Rights Under Martial Law

[번역이꽃맘 

덧붙이는 말

테이아 샤텔(Theia Chatelle)은 라마알라(Ramallah)와 뉴헤이븐(New Haven)을 오가며 활동하는 분쟁 전문 기자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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