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에는 이제 더 이상 황금색 아치 로고가 없지만, 그 기업은 복귀를 기대하고 있을까? 출처: Janet Ganbold, Unsplash.
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고 있음에도, 일부 다국적 기업들은 러시아와의 관계 회복 가능성에 대비해 조용히 움직이고 있다.
2022년 전면 침공 이후 러시아 자산을 급히 매각하며 철수했던 기업들 중 상당수는 이제 선택지를 재검토하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애초에 완전히 철수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점차 드러나고 있다.
명확한 것은, 많은 경우에서 철수는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 임시 조치였다는 점이다. 기업들은 매각 계약에 ‘재매입 조항(buy-back clause)’을 삽입하거나, 나중에 쉽게 재진입할 수 있도록 철수 구조를 설계했다.
이러한 전략은 전혀 새롭지 않다. 우리가 아파르트헤이트 시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의 외국인 철수 사례를 조사한 결과, 이는 비즈니스 세계에서 흔히 밟아온 수순임을 확인했다.
당시 남아공에서는 제재가 의도치 않게 지배 정권과 연계된 현지 백인 엘리트 기업들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다국적 기업들은 압박에 못 이겨 자산을 헐값에 매각했고, 이 자산은 정치적으로 연줄이 있는 현지 기업들이 인수했다. 이후 이들 외국 기업은 자산을 다시 프리미엄을 주고 사들였다.
오늘날 러시아에서도 동일한 패턴이 재현되고 있을 수 있다.
러시아가 2022년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1,600개 이상의 다국적 기업들이 러시아에서 철수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지난해 보고서에 따르면, 철수를 선언했던 일부 기업을 포함해 총 2,175개의 외국 기업들이 여전히 러시아에 남아 있었고, 운영에 대해 점점 더 공개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 기업 CEO는 “러시아에서 비즈니스를 한다는 것에 대해 투자자들이 도덕적으로 신경 쓰지 않는다”며, 자신들이 철수하면 경쟁사가 그 자리를 차지할 뿐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실제로 철수한 기업들의 경우에도, 많은 철수가 실질적이라기보다는 상징적인 성격에 가까웠다. 여러 연구들은 완전히 철수했다고 주장한 기업들조차도 나중에 복귀할 수 있는 선택지를 남겨두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예를 들어, 자동차 제조업체 닛산(Nissan)은 2022년 자사의 러시아 법인을 국영 기업 나미(NAMI)에 매각하면서, 6년 안에 이를 다시 인수할 수 있는 재매입 조항을 포함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닛산은 “향후 6년 이내에 이 법인 및 그 운영을 재인수할 수 있는 선택권”이 계약에 포함되어 있다고 밝혔다.
또한 패스트푸드 대기업 맥도날드(McDonald’s)는 자사의 러시아 사업을 15년 이내에 다시 인수할 수 있는 권리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2년 발표된 맥도날드의 성명은, 자사 역사상 처음으로 주요 시장에서 ‘M’ 아치를 내린다고 밝히면서도, 언젠가 복귀하길 바란다고 암시했다.
이러한 조항들은 종종 조용히 철수 계약서에 포함되어 다국적 기업들이 단기적으로는 제재를 준수하면서도, 미래 복귀의 문을 열어두도록 만든다.
많은 경우, 기업 운영은 새 소유주 아래서도 거의 끊김이 없이 계속되고 있다. 러시아에서 브랜드 이름은 바뀌었을지 몰라도, 직원과 제품 디자인은 거의 동일하게 유지되고 있다. 심지어 외국의 공급망과 지식재산권도 여전히 활용되고 있는 경우가 있다.
누가 이익을 챙기는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사례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1980년대, 외국 기업들은 주주, 활동가, 각국 정부의 압력에 따라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를 이유로 철수를 단행했다. 그러나 실제로 완전히 떠난 기업은 극히 드물었다. 대부분은 자신들의 사업체를 현지 엘리트, 즉 지배 정권과 연계된 강력한 재벌 그룹에 매각했다. 이후 이들 외국 기업은 비공식적인 뒷길을 통해 제품을 공급하고, 상표권을 허가하고, 운영을 지원했다.
대러시아 제재의 목적은 크렘린의 경제적 기반을 약화하는 것이다. 출처: Getty Images, Unsplash+
제재의 목적은 대상 국가를 약화하는 데 있다. 그러나 우리의 연구는 남아공 내 다국적 기업이 창출한 경제적 가치가 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러시아에서도 2022년 이후 외국 기업들이 자산을 큰 폭의 할인 가격에 러시아 재벌이나 국가와 연계된 기관에 매각했다. 일부 경우, 인수자는 오랜 현지 파트너나 프랜차이즈 운영자였고, 다른 경우는 소비자에게는 생소하지만, 크렘린과 밀접한 관계를 맺은 것으로 보이는 기관들이었다.
그 결과는 예측할 수 있다. 정권의 경제 기반이 약화하기보다는 오히려 강화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남아공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외국 기업의 철수는 국내 엘리트층을 강화하고, 그들이 새로운 자산과 시장 지배력을 축적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에서 철수했던 일부 기업들은 자사의 결정을 재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건이 바뀔 경우 운영을 어떻게 재개할지를 두고 물밑 협상이 진행 중이다. 이들의 복귀는 철수 당시 마련해 두었던 구조들—재매입 조항, 라이선스 계약, 현지 파트너십—에 의해 더욱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다.
이 전략은 우리가 남아공에서 확인한 바와 유사하다. 1990년대 아파르트헤이트가 종식된 이후, 외국의 다국적 기업들은 대거 남아공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이들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지 않았다. 대부분은 과거에 자신들이 매각했던 자산을 훨씬 비싼 값에 현지 엘리트로부터 되사들였다.
요약하자면, 적어도 남아공의 경우에는 ‘철수’라고 불리던 시기가 사실상 재진입을 치밀하게 준비하는 시기였다. 그 사이, 남아공의 대기업들은 이 예기치 않은 수익을 활용해 해외 확장에 투자하고, 새로운 경제 질서 속에서 자신들의 지배력을 공고히 다졌다.
의도치 않은 결과
제재는 여전히 국제 외교에서 핵심적인 수단이다. 그러나 우리의 연구는 제재의 효과가 그것을 기업들이 ‘어떻게’ 이행하느냐, 그리고 ‘누가’ 매각된 자산을 소유하게 되느냐에 달려 있음을 보여준다. 그 자산이 정치적으로 연줄이 닿은 내부자에게 일관되게 이전된다면, 제재는 오히려 그 정권을 강화하는 장기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따라서 제재 정책은 기업이 단순히 철수했는지만 따질 것이 아니라, 어떻게, 그리고 누구에게 철수했는지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선의에서 출발한 조치라 해도 전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는 정부가 제재를 부과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기업의 철수 방식에 대해 투명성, 모니터링, 책임성을 확보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마련해야 함을 의미한다.
남아공에 대한 제재는 일반적으로 아파르트헤이트 종식에 유익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다. 그러나 오늘날까지도 높은 실업률과 불평등이 과거 제도적 분열선을 따라 계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남아공의 경험은 분명한 역사적 경고를 제공한다. 제재가 책임과 변화를 촉진하려는 목적이라면, 언론의 관심이 사라진 그 이후에 벌어지는 일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번역] 하주영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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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루이즈(John Luiz)는 서식스대학교(University of Sussex) 국제경영 및 전략학 교수다. 헬레나 바나드(Helena Barnard)는 프리토리아대학교 고든경영대학원(Gordon Institute of Business Science) 박사과정 디렉터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