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울주군 온산국가산업단지 내 반도체 생산 공정 관련 화학물질을 제조하는 공장에서 유해화학물질 누출 사고를 당한 노동자가 치료 중 목숨을 잃었다.
숨진 노동자는 주식회사 삼영순화 온산공장의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 A씨(58)다.
10일,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에 확인해 본 바에 따르면, 고인은 지난달 12일 온산공장에서 수산화테트라메틸암모늄(TMAH) 용액을 20리터 용량의 '말통'에 소분하는 과정에서 누출된 용액이 튀어 얼굴과 팔 등에 닿는 사고를 당했다. 고용노동부는 용액을 주입하는 기계의 '노즐'과 소분 용기 사이 연결부가 어긋난 상태에서 용액이 분사되면서, 누출이 일어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A씨는 이날 현장에서 심정지 상태로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아왔으나 이달 3일 오전 결국 숨을 거두었다.
"황산테러보다 위험한 TMAH 접촉"
반도체 생산 공정에 필요한 핵심소재 중 하나인 TMAH는 암모니아 냄새가 나는 무색의 액체다. 피부접촉만으로도 단기간에 사망에 이를 수 있는 급성 유해화학물질로,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제16·17·225·273조)에 따른 '위험물질(급성 독성 물질)'이다. 또한 환경부의 「유해화학물질관리법」에 의한 '유독물'에 해당하기도 한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TMAH 취급 가이드북에 따르면, TMAH 용액이 눈과 피부에 닿으면 수 분에서 단기간 내에 죽음에 이르거나 치명적인 부상을 입을 수 있고, '황산테러'보다도 TMAH 접촉이 더 치명적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TMAH는 강염기성 물질로 피부접촉 시 화학적 화상을 일으켜 피부로 쉽게 흡수되고, 흡수된 물질은 신경세포로부터 신경전달을 차단해 단시간내 호흡곤란 및 심장 마비를 일으킬 수 있다는 설명이다.
삼영순화 온산공장, 유해화학물질 누출 사고 현장. 울산소방본부 제공
"반복된 참사, 사업주와 정부 비롯해 반도체 공급망 사슬 전체의 책임 물어야"
TMAH 누출 사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21년 1월 경기도 파주 LG디스플레이 공장에서는 협력업체 노동자 5명이 배관 변경 작업을 하다 TMAH에 노출돼 2명이 사망했고, 3명은 심한 화상을 입었다. 2012년 4월에는 충북 음성 소재 반도체 현상액 제조 회사에서 한 30대 노동자가 탱크로리 세척작업 중 TMAH가 함유된 '잔류 현상액'에 노출되어 사망에 이르렀다. 2011년 12월에도 경기도의 한 사업장에서 TMAH가 함유된 세척제를 테스트하던 39세 노동자의 손과 팔, 다리에 물질이 닿아, '피부 접촉에 의한 급성 TMAH 중독'으로 목숨을 잃었다.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하 '반올림')은 10일 성명을 발표해 "반복된 사망사고에도 정부는 TMAH 제조, 사용회사에 대한 관리감독을 철저하게 해오지 못했다"면서 이 때문에 "TMAH를 제조생산하는 사업장에서 기본적 안전수칙도 지켜지지 않은 채 피부노출로 인한 사망사고가 발생한 것"이라 짚었다. 그러면서 "기본적 안전조치도 갖추지 않아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 삼영순화 사업주와 경영책임자를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엄중 처벌하라"고 촉구했다.
삼영순화는 한솔케미칼과 일본 기업 미쯔비시가스케미칼이 합작해 설립·운영하는 회사로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생산 과정에서 사용되는 초고순도 화학물질을 제조한다. 제조된 화학물질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에 공급된다.
반올림은 성명에서 "삼성, SK, LG 등 TMAH 소재를 사용하는 종합 반도체 대기업들도 자신의 소재 공급 기업에서 벌어진 죽음에 책임이 있다"면서 "공급망 기업에 대한 책임을 다하라는 국제적인 요구에 걸맞게 피해지원과 재발방지대책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국가 차원의 반도체산업 확장을 위해 각종 인허가 규제 완화를 명시한 반도체특별법이 하반기 국회에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까지 되어 있는 상황에서 반도체 산업에서 반복되어 온 급성중독 중대재해가 발생했다"면서 "정부와 국회는 반도체기업만을 위한 특별법이 이 나라 반도체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위한 근본대책부터 마련하라"고 강조했다.
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는 10일 <참세상>과의 통화에서 "각종 경제지뿐만 아니라 정부가 나서 정책적으로 "반도체가 미래 먹거리"라고 강조하면서 반도체 산업에 대한 각종 규제 완화 조치를 추진하고 있다"며 "TMAH를 비롯한 온갖 유해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현장에 대한 안전관리에는 소홀하고, 무작정 산업만 키우려고 하다 보면 노동자들만 죽어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노무사는 "삼성이나 SK 하이닉스 같은 대표적인 종합반도체 기업뿐만 아니라, 공급망 사슬 전체를 살펴보면 삼영순화를 비롯한 다양한 소재·부품·장비 회사에서 일하는 수많은 반도체 산업 노동자들이 있다"면서 "반도체 산업을 키운다는 국가는, 각종 유해물질을 다루며 위험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반도체 노동자들의 안전에 대한 책임부터 다해야 한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노동자의 안전도 담보하지 못하면서 반도체 산업의 성장만을 이야기하며 기업의 이윤만을 위한 반도체특별법을 추진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회사 측 사고 원인으로 "작업자 과실" 주장해
한편, 삼영순화의 관계자는 사고 원인을 묻는 질문에 대해 "(충전 기계와) 소분 용기가 제대로 결합되지 않은 상태에서 용액을 주입하면서 작업자의 과실로 비산(飛散)사고가 일어난 것으로 파악됐다"고 주장했다. 또한 "회사는 보호구 일체를 제공했으나, 작업자가 얼굴 전체를 가릴 수 있는 '페이스 가드'를 모자에 장착만 하고, 실제 사용하지 않았다"고도 말했다.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에 따르면 현재 부산지방고용노동청의 광역중대재해 수사과에서 삼영순화의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이다. 경찰도 삼영순화 사업주 등을 대상으로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수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