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 앞 TMTG 한국지부 기자회견 현장. 참세상 류민.
정부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평화를 위한 국제적인 비폭력 항해 운동에 참여해온 활동가에 대해 여권 무효화 조치를 강행하고 나서, 시민사회의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에 따르면 외교부는 지난 3월 25일,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항해 ‘가자로 향하는 천 개의 매들린호’(Thousand Madleens to Gaza, 이하 ‘TMTG’) 한국지부에서 활동하는 해초(김아현) 씨의 국내 거주지로 여권 반납 명령을 발송했다. 명령에는 7일 이내에 여권을 반납하지 않을 경우 여권을 자동으로 무효화하겠다는 통지가 담겨 있다.
다수 언론 보도에 따르면 외교부 당국자는 이후 31일 여러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난해 10월 가자지구 방문을 시도했던 우리 국민 1명이 가자지구 방문을 재차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면서 “중동 전쟁 상황 속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 확보”에 대한 우려로 “관련 법령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입국 시 형사 처벌 가능성”도 언급됐다.
외교부가 해초 활동가 국내 주소지로 발송한 여권 반납명령 통지서. 민변 제공
해초 활동가는 지난해 9월 가자지구로 향하는 구호선단에 탑승했다가 이스라엘에 나포된 뒤 풀려난 바 있다. 올해 3월에는 외교부의 관련 통지 이전에 이미 출국해 TMTG가 GSF(글로벌수무드함대), FFC(자유선단연합)과 함께 준비하는 2차 항해를 위해 필요한 지원 활동 등을 계획하고 있으나, 선원으로서 직접 선박에 탑승할지에 대해서는 결정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TMTG 한국지부는 2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정부종합청사 외교부 청사 앞에서 진보정당 및 시민사회 각계 여러 단체들과 함께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여권 무효화 조치가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국제적 비폭력 항해 운동에 대한 탄압이자 시민의 이동과 표현, 양심과 결사의 자유에 대한 부정의한 억압이라 규탄했다. 또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명분으로 내건 정부 조처가 오히려 이미 해외에 체류 중인 해초 활동가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항해활동 탄압하는 외교부를 규탄한다". 참세상 류민.
이날 기자회견에서 김종철 변호사는 외교부의 여권 무효화 시도가 절차와 내용 양면에서 모두 중대한 위법성을 띠고 있다고 비판했다. 외교부가 해초 활동가에게 여권 반납 명령을 통지하면서도 정작 처분의 구체적 사유를 설명하지 않았고, 사전 통지나 의견 제출의 기회조차 부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행정절차법상 기본 절차를 어긴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해초 활동가는 인도주의적 목적의 비폭력 시민사회 활동에 참여해 왔을 뿐인데, 이를 여권법상 ‘대한민국의 안전보장·질서유지나 외교정책에 중대한 침해를 일으킬 우려가 있는 경우’로 보는 것은 과도하고 자의적인 해석이며, 이미 출국한 사람에게 여권 반납 명령과 효력 정지까지 통보한 것 역시 법의 취지와 한계를 벗어난 조치라고 짚었다.
김 변호사는 특히 여권 무효화가 해외 체류 중인 당사자를 사실상 ‘무국적 상태’에 가까운 위험에 놓이게 해 귀국조차 어렵게 만들 수 있다며, 외교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당사자를 더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는 이동의 자유와 양심·표현·결사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는 가장 침익적인 수단일 뿐 아니라, 국제 구호선단 활동가에 대해 국적국 정부가 직접 여권 무효화에 나선 경우는 좀처럼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 조치는 세계인권선언과 자유권규약 등 국제인권 기준에도 반할 소지가 크고, 결국 인권옹호 활동에 대한 위협이자 보복으로 읽힐 수밖에 없다고 환기했다.
"평화활동가 말고 네타냐후를 체포하라!". 참세상 류민
한편,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한국 정부가 팔레스타인 민중을 비롯한 모두의 평화와 존엄을 위한 국제적 연대와 실천을 가로막을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자행해온 집단학살에 대한 직·간접적 공모의 사슬을 끊고 전쟁범죄와 식민지배를 종식시키기 위한 정치적·외교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사단법인 아디에서 활동하는 셀림은 이스라엘이 자행한 “처참한 학살”과 점령의 역사를 언급하며 “대한민국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했는가”라고 물었다. 이어 “정부가 진정 국민의 안전을 걱정한다면 가자지구로 향하는 평화 활동가를 범죄자 취급할 것이 아니라, 학살의 가해자인 이스라엘에 단호한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그것이 “‘항구적인 세계 평화’를 국가의 의무로 명시한 헌법에 따른 국가의 책무”라고 강조했다.
플랫폼C 김지혜 활동가는 “한국 정부는 한국과 세계의 평화를 위해 나서기는커녕 전쟁범죄국가 이스라엘과 중동 국가들에 무기를 판매하고, 미국의 이란 침략전쟁과 파병 요구에도 침묵하고 있다”면서 “위험을 무릅쓰고, 맨몸으로 가자지구의 봉쇄를 부수려는 항해 활동가들을 격려하고 보호하지는 못할망정 협박과 처벌로 일관하는 외교부와 이재명 정부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날 참여자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외교부를 포함한 한국 정부는 평화 활동가가 스스로의 양심에 따라 생명과 정의를 위한 비폭력 항해 행동에 나서는 것을 방해하는 대신,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이스라엘의 집단학살과 전쟁범죄, 식민지배와 인종청소를 멈추는 데 전력을 다하고 이에 상응하는 정치적, 경제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면서 “우리는 한국 정부가 민족의 역사에, 세계인의 양심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존엄에 부끄럽지 않은 선택을 할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회견문을 맺으면서는 “해방된 팔레스타인 땅에 닻을 내리는 순간까지, 우리의 항해는 멈추지 않는다”라며 “국가권력의 공격이나 바다의 변덕스러운 날씨가 잠시 우리의 여정을 방해할 수는 있을 것이나, 오직 팔레스타인의 해방이 우리의 종착점이며 이에 도달할 때까지 매들린호의 항해는 계속될 것”이라 결의를 밝혔다.
기자회견 후 외교부에 여권 반납명령 통지에 대한 이의신청서를 제출하고 있다. 참세상 류민.
"항해가 아니라 전쟁을 막아라!". 참세상 류민.
이날 기자회견을 마친 이들은 외교부의 여권 반납 명령에 대한 이의신청서를 제출했다. 앞서 1일에는 민변이 외교부를 상대로 여권 반납 명령 취소소송과 집행정지 신청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 같은 정부의 여권 무효화 조치에 맞선 법적 대응과 함께,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한국 시민사회의 국제적 실천도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오는 4일 토요일에는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이 주최하는 ‘가자지구 집단학살 규탄 한국 시민사회 64차 긴급행동’이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 뒤편 청계천 쪽에서 열린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향한 TMTG의 활동에 참여하고 싶은 이들은 이 링크에서 활동 소식과 참여 방법 등을 확인할 수 있다.
가자지구 집단학살 규탄 한국 시민사회 64차 긴급행동 웹포스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