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 아들은 제가 계속 살아갈 힘을 주는 사람이에요

[특별기획] 1980년대 미국에서 있었던 일

열여덟 살의 순진한 아이

제 기억이 맞다면, GED(고등학교 졸업 학력인정시험)를 마쳤을 때였어요. 학교에서 취업할 수 있는 곳들을 소개해 줬는데, 그중 한 곳이 바로 그 회사였어요. 그렇게 그 일을 시작하게 된 거죠. 학교에서 연결해 줘서 들어가게 됐어요.

회사에서는 그게 미래 하이테크 산업의 새로운 시작이라고 말해줬어요. 앞으로는 스캐닝 기술의 시대가 올 거라고요. 매일 식료품점에 가면 계산할 때 "" 하는 소리가 들리잖아요. 가게에서 물건을 스캔할 때 나는 그 소리요. 제가 앞으로 그런 기술에 쓰일 제품을 만드는 일을 하게 될 거라고 했어요.

(그래서 자부심을 느끼셨나요?)

, 그럼요. 하지만 저는 정말 세상 물정을 몰랐어요. 열여덟 살의, 순진한 아이였죠. 그래도 "잘됐다!" 하는 마음이었어요. 독립해서 살아가는 젊은 여성이 된다는 게 정말 기뻤거든요. , 그 일자리를 얻게 돼서 정말 행복했어요.

제가 맡았던 일은 작은 방에서 하는 작업이었어요. 그 방에는 저와 다른 남자 직원 한 명, 이렇게 둘만 있었죠. 저는 방 한쪽에서 일했고, 그분은 반대쪽에서 일했어요. 저는 레이저가 작은 관을 통과하는 부분의 끝을 만드는 일을 했어요. 그 끝부분을 가공하는 작업이었죠. 설명하기가 좀 어렵네요. 레이저 끝이 정확하게 나오도록 여러 가지를 분사해서 세척하는 작업을 했어요. 그래야 제품이 완성됐을 때 레이저가 제대로 스캔될 수 있었거든요.

제 기억으로는 냄새가 좀 났던 것 같아요. 그래도 그게 제가 해야 하는 일이니까, 저는 그 일을 했어요. 방 안에 둘이 함께 있다 보니 가끔은 밖으로 자주 나가서 바람을 쐬어야 했어요. 그때는 그냥 공기가 답답하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답답한 게 아니었어요. 화학물질이 빠져나갈 환기시설이 없었던 거예요. 저는 그 화학물질을 계속 들이마시고 있었던 거죠.

제 기억으로는 1975년에 일을 시작했던 것 같아요. 열여덟 살이었고, 아이가 태어난 1979년에 일을 그만뒀어요. 일주일에 5~6일 일했고, 하루에 8시간에서 10시간 정도 근무했어요.

마크는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아이예요

18살의 이베테와 어린이 시절의 아들 Ⓒ박정원

원인이 뭐였냐고요? 결국 제가 임신한 아홉 달 동안 그곳에서 화학물질 냄새를 계속 맡았던 것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때는 몰랐어요. 그 사실을 알게 된 건 수십 년이 지난 뒤였죠.

아이가 태어났을 때 의사들은 그저 인큐베이터에 있어야 한다고만 했어요. 그 당시에는 아이 상태에 대해 저에게 특별히 설명해줄 수 있는 것도 별로 없었고요. 그런데 아이가 자라면서 저는 뭔가 다르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어요. 발달 과정에서 거쳐야 하는 단계들을 따라가지 못했던 거죠.

첫아이라 저도 초보 엄마였어요. 저는 몰랐죠. 아이는 고개를 들지도 않았고, 기어다니지도 않았어요. 성장하면서 발달 단계에 맞지 않는 부분이 정말 많았어요. 언제부터 학교에서 특수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저는 지금도 제 아이를 그렇게 보지는 못하겠어요.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 아이는 제 아들이에요. 저는 제 아들을 정말 많이 사랑해요.

이런 이름을 붙이는 건 정말 싫지만, '정신지체(mental retardation)'¹의 일종이라는 말을 들었어요. 저는 그런 꼬리표가 싫어요. 그냥 제 아들이고,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아이일 뿐이에요. 그동안 아이의 상태를 두고 '심하다'는 말도 많이 들었지만, 저는 그런 말들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어요. 그리고 이렇게 말했죠. "아니, 이 아이는 내 아들이에요. 우리도 밖에 나갈 거고, 이 아이도 삶을 마음껏 즐기며 살아갈 거예요." 밖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은 친절하지 않아요.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정말 많이 만났어요. 그래도 그게 우리를 멈추지는 못했죠.

그래도 저는 아직 버티고 있어요

지금은 저도 혈액암의 일종을 앓고 있어요. 미국에서도 드문 병이라고 하더라고요. 지난 12년 정도 매일 항암제를 먹고 있어요.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저는 아직 버티고 있어요. 그리고 제 아들이야말로 제가 계속 살아갈 힘을 주는 사람이에요.

마크를 임신하기 전에 한 번 유산을 했어요. 가끔은 기억이 희미한 부분도 있지만, 그때 극심한 통증을 느끼면서 직장 화장실로 뛰어갔던 일만은 절대 잊을 수 없어요.

그때 한 여자 동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했던 기억이 나요. 그 사람이 상사에게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그랬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그 직후에 저를 집으로 돌려보냈거든요. "감기에 걸린 것 같으니까 집에 가세요." 그게 전부였어요.

이런 일을 겪으신 적이 있나요?”

수십 년이 지난 뒤였어요. 라디오에서 광고를 하나 들었어요. 아마 라디오 광고였던 것 같은데, "이런 일을 겪으신 적이 있나요? 당신의 아들에게 이런 일, 저런 일이 있었나요?" 하고 묻더라고요. 저는 앉아서 그걸 들으면서 계속 "맞아요. 맞아요. 맞아요." 하고 있었어요. 하나하나 다 제 이야기 같았거든요. 그래서 결국 그 광고를 내보낸 법률사무소에 전화를 했어요. 그 일을 계기로 조금씩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고, 그때 맨디를 만났어요. 그때부터 모든 것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기 시작했죠. 정말 "뭐라고?" 하는 심정이었어요.

재판 준비 절차(pretrial)를 하는 동안 멍했고, 혼란스러웠고, 화도 났어요. 제가 이걸 해낼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지만, 정말 거짓말이 아니라 제 안의 힘을 끌어낼 수 있었던 건 맨디 덕분이었어요. 맨디가 응원해 주고, 이것저것 정말 많은 걸 설명해 줬거든요. 그 시절에는 맨디가 제 삶의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어요. 맨디가 없었다면 저는 이 일을 해낼 수 없었을 거예요.

제 안의 힘은 원래부터 있었던 게 아니라, 맨디가 그걸 제 안에서 끌어내 준 거였어요. 그래서 저는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죠. 그리고 제 아들을 위해서 해야만 했어요. 아들을 위한 일이었어요.

너는 엄마를 돌보고, 엄마는 너를 돌보는 거야

매일 가장 힘든 건, 제 다른 두 아이들처럼 마크는 혼자 밖에 나가 평범한 일상을 보낼 수 없다는 걸 보는 거예요. 저는 사실상 하루 스물네 시간, 일주일 내내 마크와 함께 있어야 하거든요.

정말 매일매일 마크를 돌보는 데는 엄청나게 많은 일이 따라와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마크도 엄마인 저를 돌봐줘요. 저는 늘 "너는 엄마를 돌보고, 엄마는 너를 돌보는 거야."라고 말하죠. 마크는 제가 그냥 지나쳤을 아주 작은 것들도 알아차려요. 또 누가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인지도 느낄 줄 알아요. 저는 오히려 마크에게서 정말 많은 걸 배웠어요. 무엇보다도 인내심을 배웠죠. 예전의 저는 인내심이 없는 사람이었거든요.

(한국에 있는 사람들에게) 제 이야기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사람들이 제 이야기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얻어 갔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들은 강인함과 침착함으로 인내하며 여기까지 온 사람들이고, 자신이 다루는 것이 무엇인지, 그게 자신에게 해로운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어떻게 보호할 수 있는지 질문을 던졌어요.

하루하루 버텨 나가세요. 그리고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우리만 봐도 그렇잖아요.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어요. 긴 시간을 걸어왔고, 앞으로도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 있어요. 우리는 모험을 좋아하지만, 이런 모험은 아니에요. 그러니 어떤 일을 겪게 되더라도, 그걸 견뎌낼 수 있는 강인함과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인터뷰하는 이베테와 마크 Ⓒ미디어뻐꾹
(1) 20세기 후반 의학·교육·복지 분야에서는 정신지체(mental retardation)라는 용어가 공식적인 진단명으로 사용되었으나, 비하적, 낙인적 의미 때문에 지적 장애(intellectual disability)라는 용어로 대체되었다. 한국에서도 정신지체는 과거의 공식 용어였으며, 2007년 「장애인복지법」 개정 이후 공식 명칭이 지적장애로 바뀌었다. 본문에서는 인터뷰이가 당시 들었던 진단명을 표현하기 위해 정신지체라는 용어를 부득이하게 사용했음을 밝힌다.
*아래 링크에서 영어 구술 원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sharps.or.kr/english/?bmode=view&idx=173027630

인터뷰 미디어뻐꾹

임다윤

그림 박정원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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