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이스라엘대사관이 가자지구로 향하던 평화항해 활동가들에게 자국 군이 자행한 가혹행위를 부인한 가운데, 이를 반박하는 활동가들의 구체적 증언과 의료진의 진단이 나왔다. 의료진은 귀환한 활동가들에게 지속적인 구타와 결박, 테이저건 공격 등으로 인한 고막 천공과 갈비뼈 골절, 근육 손상 등 심각한 신체적·정신적 피해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석방이 하루만 늦어졌어도 계속된 폭력으로 피해가 더욱 심각했을 수 있다는 소견도 제시됐다.
이스라엘의 평화항해 활동가 가혹행위 증언 및 규탄 기자회견 현장. 참세상 류민
지속되는 팔레스타인 집단학살과 가자지구 봉쇄에 맞서 국제 구호선단에 참여했던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항해 한국본부(KFFP) 소속 해초, 동현, 승준 활동가는 28일 서울 중랑구 녹색병원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공해상 나포 이후 구금과 추방, 귀환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이스라엘군에 의한 폭행과 장시간 결박, 총구를 겨눈 협박, 굴욕적 수색, 의료 조치 거부 등 심각한 가혹행위가 반복됐다고 증언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책임뿐 아니라, 이미 출국한 활동가의 여권을 무효화해 항해와 귀환 과정을 위태롭게 하고 이스라엘과의 무기·군사 협력을 이어 오며 이스라엘 전쟁범죄에 공모하고 있는 한국 정부의 책임도 함께 제기했다.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항해 한국본부(KFFP),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는 이날 ‘이스라엘의 평화항해 활동가 가혹행위 증언 및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해초·승준 활동가는 이달 초 이탈리아에서 출항한 ‘리나 알 나불시’호에, 동현 활동가는 그리스에서 출항한 ‘키리아코스 엑스’호에 올라 국제 평화항해선단에 함께했다. 동현 활동가가 탄 배는 18일 가자로부터 약 460㎞ 떨어진 공해상에서, 해초·승준 활동가가 탄 배는 20일 약 220㎞ 떨어진 공해상에서 이스라엘 점령군에 나포됐다. 해초와 동현은 22일 한국으로 귀국했고, 승준은 튀르키예를 거쳐 25일 귀국했다.
감옥선에 끌려간 활동가들, “한 명도 빠짐없이 체계적으로 맞았다”
앞서 주한이스라엘대사관은 26일 활동가들의 피해 증언에 대해 “현재까지 입증된 바 없다”고 밝혔다. 한국 국적 활동가들에 대해서도 “구금된 사실이 없다”며 “아슈도드항 도착 즉시 수속을 마쳤으며 신속 절차를 통해 추방됐다”고 주장했다. 외교부도 지난 21일 정부 요청에 따라 이스라엘이 한국 국민 2명을 “구금시설을 거치지 않고 바로 추방”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러나 활동가들의 증언은 특정 수용소 수감 여부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폭력을 가리켰다. 해초와 동현 활동가는 크치오트 군사 수용소로 이송되지는 않았지만, 나포 직후 군함을 개조한 감옥선과 아슈도드 항구, 공항 유치장과 추방 절차에서 폭행과 결박, 굴욕적 수색, 의료 조치 거부를 겪었다고 말했다. 승준 활동가는 감옥선과 아슈도드 항구를 거쳐 크치오트 수용소까지 이송됐고, 그 과정에서도 폭행과 장시간 결박, 고통을 유발하는 자세 강요, 의료 지원 거부가 이어졌다고 증언했다.
이스라엘군이 자행한 심각한 폭력을 증언한 해초, 동현, 승준 활동가(왼쪽 두 번째부터). 참세상 류민
해초 활동가는 “완전무장한 군인들이 배에 올라타 몸수색을 명목으로 몸을 뒤졌고, 옷을 벗겨 얇은 옷 한 겹만 걸치게 했다”고 말했다. 이후 불 꺼진 컨테이너 안으로 혼자 끌려갔고, 총구에 달린 불빛을 보라는 명령에 고개를 들 때마다 얼굴을 맞았다고 했다. 그는 “두 번째에 귀에서 ‘삐’ 소리가 났고 세 번째에 코피가 터졌다”고 증언했다. 귀국 뒤 해초 활동가는 외상성 고막 천공 진단을 받았다. 그는 감옥선 안팎에서 테이저건 공격과 섬광탄 사용, 국제 활동가들에 대한 성적 가혹행위 증언도 잇따랐다고 덧붙였다.
동현 활동가는 “무기도 없고 저항할 의사도 없다고 밝혔지만, 군인들은 기습적으로 테이저건을 쏘고 오직 고통을 주려는 목적으로 손을 뒤로 묶었다”고 말했다. 아슈도드 항구로 이동하는 5분에서 10분 남짓한 시간 동안에도 주먹과 발로 수없이 맞았고, 이후 손이 뒤로 묶인 채 머리와 두 무릎을 땅에 대고 움직이지 못하는 자세를 2시간에서 3시간가량 강요받았다고 했다. 화장실이나 의료진 면담 요구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과호흡이 오면서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승준 활동가는 “여권과 신원 확인이 끝나면 자연스러운 다음 절차가 구타였다”고 했다. 그는 어두운 컨테이너 안에서 복면을 한 무장 병사들에게 군홧발로 짓밟히고, 소총 개머리판으로 가격당했으며, 테이저건 공격을 당했다고 증언했다. 그 결과 오른쪽 갈비뼈가 골절됐다. 그는 “내가 탄 감옥선의 184명 중 한 명도 빠짐없이 체계적으로 폭행당했다”며, 이 폭력이 일부 군인의 일탈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인과 팔레스타인 해방을 지지하는 이들을 비인간화하는 구조 속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말했다.
KFFP 등은 기자회견문에서 이타마르 벤그비르 이스라엘 국가안보장관이 활동가들을 조롱한 영상도 군함을 개조한 감옥선과 아슈도드 항구 구금시설에서 촬영됐다고 지적했다. 주한이스라엘대사관의 설명에는 이 영상이나 감옥선·항구에서의 처우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활동가들이 입은 심각한 신체적·정신적 피해를 입증하는 의료적 소견을 밝힌 임상혁 녹색병원장. 참세상 류민
“목숨 위협할 정도의 심각한 폭력”… “하루만 늦었더라도”
활동가들의 증언은 의료진의 진단에서도 확인됐다. 세 사람을 진료한 임상혁 녹색병원 원장은 동현 활동가에게 횡문근융해증 소견이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횡문근융해증은 심한 외상이나 압박으로 근육세포가 파괴되는 질환으로, 심하면 급성 신손상과 생명 위협으로 이어질 수 있다.
동현 활동가의 CK 수치는 입원 당시 5620이었다. CK는 근육 손상 정도를 보여주는 혈액검사 지표로, 근육세포가 파괴될수록 수치가 높아진다. 녹색병원 기준 정상 상한치의 약 30배다. 임 원장은 “대형 교통사고처럼 근육이 심하게 망가질 때 나오는 수치”라며 “하루만이라도 석방이 늦어 구타가 지속됐다면 피해가 굉장히 컸을 것”이라며 우려와 안도가 뒤섞인 안타까운 심경을 드러냈다. 해초 활동가의 고막 천공, 승준 활동가의 갈비뼈 골절과 근육 손상을 입증하는 의료기록도 함께 제시됐다.
임 원장은 세 활동가 모두 신체적 치료와 함께 정신적 트라우마에 대한 상담과 안정 조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폭행을 당하고 동료가 맞는 장면을 강제로 목격한 경험, 죽음의 공포를 느낀 시간 역시 치료가 필요한 피해라는 것이다. 전진한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도 “단순히 구타가 있었느냐 없었느냐를 따질 수준이 아니라 목숨을 위협할 수 있을 정도의 심각한 폭력이 존재했다”고 말했다.
외교부의 여권 무효화와 영사 조력, 과연 활동가 “보호”했나
한국 정부의 책임도 짚어졌다. 외교부는 앞서 해초 활동가가 가자지구 방문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그가 이미 출국한 상태에서 여권 효력을 정지했고, 나포 이후에도 이를 복권하지 않았다. 시민사회는 40여 개국 활동가가 참여한 이번 항해에서 자국민의 여권을 무효화한 사례는 한국뿐이라고 지적했다. 이미 출국한 활동가의 여권을 무효화한 조치가 안전을 보장하기는커녕 현지에서의 이동과 귀환, 항해 활동을 더 취약하게 만들었다는 비판도 나왔다.
외교부는 26일 브리핑에서 여권 제재가 국민의 생명·신체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였고, 재발급은 해초 활동가가 다시 가자지구 방문을 시도하지 않겠다고 확약해야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시민사회는 이를 팔레스타인 연대와 평화항해를 중단하라는 압박으로 보고 있다. 해초 활동가의 여권 복구를 요구하는 서명에는 1만3000여 명이 동참했다. 해초와 동현 활동가는 6월 2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함께 외교부를 면담할 예정이다.
영사 조력 과정에 대해서도 문제가 제기됐다. 해초 활동가는 공항 인근 구치소를 찾은 한국 영사가 이스라엘 점령군이 주는 빵을 거부하는 자신에게 “다이어트 하냐”고 말했고, 폭행 사실을 알려도 답이 없었으며 전화도 빌려주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외교부는 이에 대해 “영사가 ‘다이어트하냐’고 언급한 사실이 전혀 없다”며, 전화기 대여는 접견 장소가 공항 경찰서 내부라 어려웠다고 밝혔다.
이번 평화 항해의 의미와 이스라엘의 전쟁범죄에 공모하는 한국 정부의 책임을 환기하는 전진한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가운데). 참세상 류민
“평화 항해, 우리 모두의 평화와 생명 위한 것”
활동가들의 증언은 이스라엘의 폭력이 나포 현장의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 가자지구를 봉쇄하고 고립시키는 폭력의 연장선에 있음을 환기했다. 이 항해가 팔레스타인만이 아니라 전쟁과 학살이 확산되는 현실 속에서 모두의 평화와 생명을 위한 행동이었다는 점도 함께 제기됐다.
전진한 정책국장은 “40여 개국 430여 명이 식량과 의약품을 싣고 갔다. 이 항해야말로 인류애가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고 말했다. 그는 가자지구에서 병원과 의료진이 공격받고 전기와 물, 의약품이 차단되면서 중환자와 신생아가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각국 정부가 이스라엘을 제재하고 가자 봉쇄를 중단시키기 위한 충분한 조치에 나서지 않는 동안, 시민들이 직접 봉쇄를 가로지르려 했다는 것이다.
그는 “거기에 한국인이 한 명도 없었다면 정말 부끄러웠을 것”이라며 “우리는 세 사람에게 모두 빚지고 있다”고 했다. 또 팔레스타인에서 용인된 폭력이 이란·레바논 등 더 넓은 지역의 전쟁과 안전 위협으로 확산되고 있다며, 세 활동가의 항해가 팔레스타인만을 위한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평화와 생명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전 정책국장은 한국이 이스라엘과 외교·군사 협력을 지속하고 무기를 수출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는 “이스라엘이 전범 국가라면, 그 손에 무기를 쥐여주는 한국은 학살 공모국”이라며 “네타냐후를 전범으로 언급한 대통령의 비판이 실제 조치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동현 활동가는 평화항해의 방식이나 시기, 운동 전략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가자로 향한 이유 자체는 분명하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가 이스라엘과 맺어 온 군사·경제적 관계에서 자유롭지 않은 만큼, 팔레스타인 집단학살과 봉쇄에 맞서는 책임 역시 남의 일이 될 수 없다는 취지다. 그는 이를 외면하지 않는 것이 “우리 모두가 지고 있는 역사적 책임”이라고 말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이스라엘의 공해상 나포와 항해활동가들에 대한 가혹행위를 규탄하는 데서 나아가, 한국 정부가 이스라엘과의 협력 관계를 중단하고 집단학살과 봉쇄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이스라엘에 △집단학살 중단과 가자지구 봉쇄 해제 △팔레스타인 수감자 가혹행위 중단과 석방 △항해활동가 가혹행위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한국 정부에는 △네타냐후 체포영장 집행 등 국제형사재판소 관련 조치 △주한이스라엘대사 추방 △이스라엘 무기수출과 협력 중단 △영사의 자국민 보호 방기 책임 추궁 △해초 활동가 여권 효력 복권을 촉구했다.
가자지구 집단학살 규탄 한국 시민사회 68차 긴급행동 웹포스터
오는 30일 오후 5시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 뒤편 청계천 쪽에서는 ‘가자지구 집단학살 규탄 한국 시민사회 68차 긴급행동’이 열린다. 이날 집회에서는 이스라엘의 학살·봉쇄 중단과 가혹행위 책임자 처벌, 한국 정부의 대이스라엘 무기수출·협력 중단을 요구할 예정이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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