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지구 향하던 한국인 평화 활동가, 이스라엘군에 납치... "한국 정부 즉각 조치 나서야"

여권 효력 빼앗긴 활동가 해초와 승준도 곧 나포될 위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향하는 구호선단에 참여해 평화 항해에 나섰던 한국인 활동가가 탑승한 배가 이스라엘군에 나포됐다. 항해를 이어가고 있는 다른 두 명의 한국 활동가도 곧 납치될 위험에 처해 있다. 한국 시민사회는 이 같은 이스라엘 점령군의 ‘불법 행위’를 규탄하는 한편, 한국 정부가 한국인 활동가를 포함한 평화 항해 활동가들의 조속한 석방과 안전을 위한 외교적 조치에 적극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항해 한국본부(KFFP)에 따르면, 한국 시간 기준 18일 오후 4시 35분경 KFFP 소속 활동가들이 참여하고 있는 자유선단연합(FFC)과, 함께 항해하는 글로벌수무드선단(GSF) 소속 구호선단 배들이 가자지구로부터 약 463km 떨어진 키프로스 인근 해역에서 이스라엘 점령군에 의해 공격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김동현 활동가가 탑승한 ‘키리아코스 엑스호(Kyriakos X)’는 오후 5시 28분경 완전무장한 이스라엘 점령군 해군 특수부대에 의해 나포됐고, 김 활동가를 포함한 모든 항해자가 납치됐다고 한다.

현재 나포된 선단 탑승자들의 행방은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이스라엘 언론 보도에 의하면 이들은 해군 상륙정에 임시 수용되어 이스라엘의 아슈도드 항구로 이송된 후, 그곳에서 정보기관의 취조를 받게 될 예정이라고 한다.

지난 8일 가자지구를 향한 항해에 나선 김동현 활동가. KFFP 인스타그램.

김동현 활동가를 비롯한 KFFP 소속 한국인 활동가 3명은 지난 5월 2일과 8일 각각 가자지구를 향한 항해에 나섰다. 5월 2일 출항한 ‘리나 알 나불시(Lina Al-Nabulsi)’호에는 해초·승준 활동가가, 5월 8일 출항한 ‘키리아코스 엑스호’에는 김동현 활동가가 탑승했다. ‘리나 알 나불시’는 1976년 5월 15일 학교를 마치고 귀가하던 길에 이스라엘군에 살해당한 17세 팔레스타인 소녀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며, ‘키리아코스 엑스’는 반전 평화 운동을 했던 그리스 무정부주의 활동가 고 키리아코스 시미티리스(Kyriakos Xymitiris)를 기리는 이름이다.

이들이 바다로 나선 것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집단학살과 육해공 봉쇄, 군사점령이 이른바 ‘휴전 협정’ 이후에도 각국 정부의 공모 아래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KFFP는 설명했다. 

김동현 활동가는 이번 항해에 나서며 “이미 모든 일이 벌어진 이후 가자지구로 간다는 점에서 아주 늦어버렸고, 이미 끝났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그럼에도 여전히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이스라엘이 긴급 구호 인력과 언론인,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한 민간인들을 살해해온 현실만으로도 항해에 나설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말했다.

이번 나포는 한국 활동가가 가자지구로 향하는 평화 항해 도중 이스라엘군에 붙잡힌 두 번째 사례다. 지난해에도 해초 활동가가 국제 활동가들과 함께 가자 봉쇄를 깨기 위한 항해에 나섰다가 이스라엘군에 나포된 바 있다. 올해 다시 항해에 오른 해초 활동가는 현재 승준 활동가와 함께 ‘리나 알 나불시’호에 탑승해 가자지구로 향하고 있다. 이들 역시 언제든 이스라엘군에 의해 나포될 위험에 놓여 있다.

더구나 한국 정부가 해초 활동가의 여권 효력을 실효시킨 상태라는 점에서 시민사회는 위험이 더욱 커졌다고 보고 있다. 이에 KFFP와 시민사회는 해초 활동가가 최소한의 국가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지금이라도 여권 효력을 복구해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김동현 활동가에 대해서도 한국 정부가 소재와 안전을 즉각 확인하고, 석방을 위해 모든 외교적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호선단을 나포한 이스라엘을 규탄하고, 한국 정부의 외교적 조치를 촉구하는 기자회견 현장. 참세상 류민.

KFFP는 19일 오전 서울 이스라엘대사관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이같이 밝히고, “이스라엘은 지금 당장 평화 항해 활동가들을 석방하라”, “한국 정부는 이스라엘에 납치당한 활동가 석방에 즉각 나서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이스라엘이 공해상에서 민간 선박을 공격하고 평화 활동가들을 납치한 것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라고 규정했다. 공해에서 타국 국적 선박을 무력으로 나포한 것은 유엔해양법협약 위반이며, 비무장 민간인, 특히 인권옹호자를 위협하고 납치·구금한 행위는 국제인권법에도 위배된다는 것이다. KFFP는 지난 4월 29일에도 이스라엘이 그리스 크레타섬 인근 해역에서 GSF 소속 선박 22대를 나포했고, 활동가들을 구금한 뒤 고문한 바 있다고 밝혔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법률지원단 김종철 변호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특히 외교부가 해초 활동가의 여권 효력 정지를 정당화하며 “가자를 여행금지지역으로 지정했는데도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다”는 취지로 주장한 데 대해 강하게 반박했다. 그는 “과연 누가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느냐”고 물으며, 무력분쟁 중에도 인도주의 목적의 구호 물자 통과는 허용되어야 하고, 민간인을 굶주리게 할 목적의 봉쇄는 정당화될 수 없다고 짚었다. 가자지구 봉쇄 자체가 국제인도법에 어긋나는 상황에서, 공해상 민간 선박을 나포하고 활동가들을 체포·구금한 이스라엘이야말로 국제법 체계를 무시하며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또 정부가 ‘위험’을 이유로 해초 활동가의 여권을 무효화한 태도도 비판했다. 그는 지난해 말 계엄 국면에서 당시 이재명 야당 대표가 시민들에게 국회로 와 달라고 요청했고, 많은 시민들이 가장 위험한 장소였던 광장과 거리, 여의도로 나섰던 일을 환기했다.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음을 시민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국제사회가 이스라엘의 집단학살과 전쟁범죄를 막지 못하는 지금, 구호품을 실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것 역시 국가들의 부작위에 맞선 평화적 행동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정부가 해초가 왜 위험을 무릅쓰고 가자로 갈 수밖에 없었는지 묻지 않은 채, 단지 위험한 곳에 가려 했다는 이유만으로 여권을 빼앗은 것은 자가당착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KFFP와 시민사회는 이스라엘 정부의 불법 행위를 강력히 규탄하면서, 한국 정부가 “확인 중”이라는 말 뒤에 숨지 말고, 즉각적인 외교 조치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한국 정부에 △해초 활동가의 여권 효력 즉각 복구 △이스라엘의 불법 행위에 대한 항의와 탑승 활동가들의 조속한 석방 촉구 △체포된 한국인 활동가에 대한 신속한 영사 보호 제공 △가자 집단학살과 주변국 침략 종식 촉구,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전쟁범죄·식민점령에 대한 국제법적 책임 요구를 제시했다.

한편, 참세상은 이날 외교부에 김동현 활동가의 나포 당시 상황과 현재 소재 및 안전 파악 여부, 활동가 석방 및 안전 보장을 위한 외교적 조치 계획과 함께, 평화 항해를 이어가고 있는 해초·승준 활동가의 안전 보장을 위한 대응 계획과 해초 활동가의 여권 효력 복구 요구에 대한 입장 등을 질의했다. 외교부는 현지 공관과 담당 부서 등을 통해 관련 내용을 확인한 뒤 답변을 공유하겠다고 밝혔다. 

가자지구로 항해 중인 '리나 알 나불시 호'. 여권 효력을 빼앗긴 해초와 승준 활동가가 탑승하고 있다. KFFP 인스타그램.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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