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오름

[인권오름] [청소년의 눈으로 본 학교 성교육] 나의 성은 왜 성이 아니란 말인가

[편집인 주]
올해 4월, 교육부가 내놓은 ‘학교 성교육 표준안’이 성소수자에 대한 내용을 배제한 것이나 보수적인 성별 관념을 담고 있는 것이 지적되며 논란이 불거졌다. 그러나 교육부가 올해 내놓은 성교육 표준안이 ‘특별히’ 후퇴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동안 학교에서 이루어져 온 성교육은 애초부터 수많은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 차례의 연재를 통해서 당사자인 청소년들이 자신이 경험한 학교 성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청소년들의 삶의 현실을 바탕으로, 현재 학교 성교육이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를 제안한다.

학교에 있다 보면 굉장히 많이 성교육을 받게 된다. 1학년인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받은 성교육만 세 차례가 넘는다. 하지만 사실, 이 횟수에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하는 얘기가 다 똑같기 때문이다. 분명 주제는 다른데 정말 놀라울 정도로 결론이 똑같다. ‘성관계는 임신의 위험이 있으니 책임질 힘도 없는 미성년자인 너희들이 해서는 안 되고, 참아야만 한다.’ 여기에 나는 여고에 다녀서 그런지, 한마디가 더 붙는다. ‘남자애들도 남자애들이지만, 너희 여자애들이 알아서 자기 몸 지켜야 한다.’고. 말이다. 성소수자의 얘기가 언급조차 되지 않는 건 예삿일이다.

그래, 물론 아주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모든 성관계에는 임신 가능성이 따르고, 법적 성년이 아닌 이들은 실질적으로 육아를 감당하기 어렵다. 위협적인 상황에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건 정말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게 과연 성교육일까? 미성년자는 섹스를 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 백 시간 하는 것보다 콘돔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왜 콘돔을 써야 하는지 가르치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고 유용하지 않을까? 마찬가지로 여성들에게 백날 호신술 가르치는 것보다 남성들에게 “그 어떤 상황이나 이유로도 강간을 해서는 안 된다.”라고 가르치는 게 훨씬 효과적이지 않을까? 정말로 모두가 이렇게 아무것도 모른 채로, 비정상적이라고 불리는 포르노로 섹스를 배워야 하는 게 맞는 걸까? 학교에서 ‘섹스’를 가르치면 안 되는 걸까? 학교 성교육은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

잠시 나의 이야기를 해보자면, 나는 여성 청소년이다. 학교에 다니고, 성적도 나쁘지 않다. 여기까지는 다들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다. 오히려 호의적으로 받아들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내가 이런 말을 하면 그 시선은 모두 차갑게 변한다. 그 말은 무엇일까? “나는 ‘처녀’가 아닙니다.” 다. 그래, 나는 처녀가 아니다. 나는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성관계를 맺었다. 경악하는 이들이 많겠지만,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때의 내가 경솔하게 행동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강제적이지 않은 분위기에서, 콘돔을 끼고 아주 안전하게 섹스를 했다. 하지만 이런 걸 학교에서 배운 건 아니었다. 학교에서 내가 배운 건 “섹스를 하지 말라.”는 말과 “그래서는 안 된다.”라는 말뿐. 내가 안전한 섹스에 대해 알게 된 건 도서관에 박혀있던 책 덕분이었다. 지금은 그 책이 어떤 책인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나의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듯이 학교 성교육은 실질적으로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학교 성교육 받을 시간에 도서관에 가서 성과 관련된 아무 책이나 읽는 게 훨씬 도움이 되는 지경이다.

학교에서 받는 성교육 시간에는 기본적으로 “청소년인 너희는 섹스를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 주장에 대한 근거는 이러하다. ‘만약 임신을 한다면 그 경제적, 신체적 부담을 청소년이 어떻게 감당하나.’ ‘청소년은 성인에 비해 자제력이 부족해서 좋지 않은 결과를 부를 수도 있다.’라니. 논리가 빈약하기 짝이 없는데다가, 그 논리대로라면 가난한 성인도 섹스를 해서는 안 된다. ‘만약 임신을 한다면 그 경제적, 신체적 부담을 가난한 당신들이 어떻게 감당하나’라는 말을 성인에게는 이렇게 교육까지 해가면서 말하지는 않는다. 왜? 섹스는 그들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적 차원에서는 말해줄 수 있을 것이다. 듣는 이는 상당히 기분이 나쁘겠지만. 오히려 이런 말보다는 피임법을 조언해주는 게 효과적일 것이다. 그런데, 왜 청소년에게는 피임법조차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그저 하지 말라는 말만을 고장 난 라디오마냥 반복하는가?

요즘엔 그나마 콘돔을 어떻게 쓰는지 라도 얘기한다. 그건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전제도 웃음이 나오다 못해 화가 날 지경인 것은 마찬가지다. 성교육에서 콘돔을 꺼내들면서 혹시라도 강간을 당할 뻔하거나 할 때는 꼭 콘돔을 하라고 말하라면서 콘돔을 설명하는데, 물론 그 상황에서 범인을 설득해 콘돔이라도 쓰게 만드는 건 원치 않는 임신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좋은 방법이지만 이들에게 청소년이 합의된 섹스를 하는 건 아예 고려대상에 들어가지도 않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청소년들은 무성욕자가 아니다. 아주아주 어린 아동들도 무성욕자가 아니다. 무성애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다. 거의 모든 이들이 성욕을 가지고 있고, 그것은 청소년도 예외가 아니라는 거다. 왜 청소년에게만 성욕을 가지지 말라고 강제하는가.

그러고 보니 성교육을 듣다보면 이런 얘기가 나올 때도 있다. 청소년 성경험 시작연령이 점차 낮아져서 고민이라는 말이다. 그들이 말하는 연령은 보통 (만)12~13세 정도인데, 물론 모두가 깜짝 놀란다. 다들 성경험이라곤 해본적도 없는데, 강사는 청소년들이 (만)12~13세 때 성경험을 한다는 이야기를 하니까 말이다. 그래서 자료를 준비해봤다. 이와 관련된 통계가 있는 기사(한국경제신문 2014년 7월 31일 자)이다.

“10대 청소년들의 성관계 시작 연령이 점차 낮아지고 있다. 첫 성경험 연령은 2005년 13.6세로 조사된 이후 8년간 13.6~13.9세 사이를 오르내리다 2013년 13세 밑으로 내려갔다. 청소년들의 성경험 비율도 남학생 7.4%, 여학생 3.1%에 이른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문장이 있다.

“청소년들의 성경험 비율도 남학생 7.4%, 여학생 3.1%에 이른다.”

성경험이 아예 없다면 성경험 연령을 조사하는 데에 대한 표본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이것은 성경험을 한 남성청소년 7.4%와 여성청소년 3.1%를 조사한 결과다. 각각 10%조차 넘지 못하는, 특히 여성청소년은 5%조차 넘지 못하는 수의 표본을 들고 와서 들이미는 꼴이 우습다. 이런 수치를 들이밀며 너희는 이렇게 발랑 까진 것들이고, 위험하며, 성욕이고 뭐고 제발 가만히 좀 있으라는 교육을 지금 몇 년째 반복하는 건지 모르겠다. 한 번만 하는 것도 아니지 않나. 진부하다 못해 진절머리가 날 것 같은 성교육.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성교육을 지속할 것인가? 이제 그만 좀 하자! 쫌!


덧붙이는 말

하루유키 님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회원입니다.

태그

청소년 , 자기결정권 , 성교육 , 성관계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하루유키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