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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전일제로 일할 권리마저 빼앗기나

박근혜 정부의 여성 일자리 정책의 문제점

재탕 삼탕 여성정책

2월 25일 박근혜 정부의 경제혁신3개년 계획이 발표되었다. 여성 일자리를 150만 개 창출하겠다는 계획도 포함되었다. 주로 시간제 일자리로 여성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이보다 3주 전인 2월 4일에는 「일하는 여성을 위한 생애주기별 경력유지 지원방안」이 발표되었다. 역시 시간제 일자리 확대와 함께, 일하는 여성들의 돌봄 공백을 다른 여성들의 저임금 노동으로 채우려는 내용이다. 박근혜 정부의 여성정책은 ‘여성 고용률이 낮은 것은 출산과 육아 때문이며, 육아를 하면서도 병행할 수 있는 시간제 일자리를 늘려 여성 고용률을 높이겠다’는 시나리오 하에서 약간씩 말을 바꾸거나 수치가 수정되어 재탕, 삼탕 발표되고 있다.

[출처: 민주노총]

진짜 이유

그러나 여성이 일을 중단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여성들의 질 낮은 일자리다. 출산과 육아로 인한 부담은 일을 중단하는 하나의 계기로 작용하는 것일 뿐이다.
비정규직 여성들은 현실적으로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없다. 또 출산 전보다 출산 후에 특별히 일자리의 질이 나빠지지도 않는다. 출산 전에 이미 불안정하고 저임금인 일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여성에게는 육아를 병행하며 일 할 수 있는 수단도 부족하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일자리가 힘들게 육아와 병행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도 어렵다. 당연히 출산‧육아기에 일을 그만두게 된다.
이명박 정부 때 시작해 박근혜 정부도 주요 정책으로 언급하는 경력단절 여성 취업지원 제도가 이러한 현실을 보여준다. 경력단절 여성 취업지원 기관인 ‘여성새로일하기센터’에서 일자리를 소개받은 여성들 중 절반 이상이 6개월 내에 취업한 일자리를 관두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다고 한다. 여성들이 오래 쉬다보니 일에 적응하지 못해서일까? 아니다. 자신이 훈련받은 것에 비해, 그리고 실제 일하는 것에 비해 임금과 노동조건이 너무나 열악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추천되는 일자리는 월급 85만 원의 초등돌봄교사나 월급 57만 원의 보육코디네이터와 같은 일들뿐이다.
좀 더 나은 정규직‧전문직 일자리는 어떨까. 커리어를 쌓아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야근‧특근 등의 시간 외 노동을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여성노동자들은 출산휴가나 육아휴직,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제도를 활용할 수 있겠지만 회사는 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모성의 권리를 찾으려 할수록 회사에서는 주변화된다.
이중부담에 직면한 여성들의 선택에 결정적 요인이 된 것은 가족이 아니라 일이다. 그러나 정부는 여성들의 어려움을 자신들이 원하는 시나리오대로 끼워 맞춰 해석하고 있다.

시간제 노동 확산의 현주소

가족이 아니라 일이 여성들의 선택에 결정적 요인이라면 여성들이 이중부담의 해결책으로 시간제 일자리를 원한다는 정부의 가정은 틀린 것이다. 시간제 일자리는 더더욱 여성들이 그 일자리를 빠르게 떠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시간제 일자리가 채워지는 것은 이러한 일자리를 원하는 여성들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다. 개별 가구의 경제적 위기가 더욱 심해지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시간제 일자리라도 감내해야만 하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가 창출하겠다고 한 ‘반듯한’ 시간제 일자리는 지금 전혀 없다. 안전행정부가 예시로 내놓은 시간제 직무 가능 분야는 전자문서 등 문서접수 분류·관용차량 운전·차량 등록·주정차 단속업무·전화교환·지방의회 속기업무·농기계 수리·사서업무 등이고, 수치를 강제로 할당받은 지자체‧공공기관 등은 억지로 숫자를 늘리기 위해 전일제 일자리를 쪼개 시간제를 뽑으라는 지침을 내리고 있다.
민간기업의 경우 공고만큼 채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삼성그룹의 경우 개발지원, 사무지원, 판매지원, 생산지원 등의 분야에서 6000명을 선발한다고 공고했지만 2월 현재 뽑은 인원은 1500명에 불과하다.
이마트, 홈플러스의 사례는 충격적이다. 이마트는 최근 만 55세 이상의 촉탁직 노동자 720여 명에게 ‘시간제 일자리’ 전환을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주 40시간에서 주 25시간으로 근무시간을 줄여서 계약하지 않으면 오는 10일로 계약 만료, 즉 해고가 된다. 그러나 주 25시간 일해서는 현재 120만 원 남짓한 월급은 거의 반토막이 된다.
홈플러스의 경우 그 동안 4.5시간~7.5시간 계약제를 유지했다. 홈플러스 노동자들에게는 노동시간 증가가 승진과 같다. 하루 1시간 차이로 월급은 20만 원 정도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회사가 선호하는 젊은 노동자는 빨리 7.5시간까지 올려주는 반면 10년이 넘도록 5.5시간제에 머무는 경우도 있다. 작년 출범한 노동조합의 요구안조사에서 노동자들은 8시간 노동을 제1요구로 꼽았다. 노조의 투쟁으로 0.5계약제는 폐지하였지만, 5~7시간짜리 시간제 노동은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시간제 일자리가 대부분 단순 업무로 한정되고, 전일제 노동을 원하는 여성들에게까지 시간제를 강요하여 여성 일자리 전반을 하향평준화 할 것이라는 예상이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반쪽짜리 노동을 거부하자

여성노동자들의 투쟁 구호 중 ‘여성의 노동은 반찬값이 아니다’라는 구호가 있다. 이는 여성들의 노동이 가구의 부수적인 수입을 충당하면 충분하다는 인식을 비판하고, 여성 비정규직의 노동조건 개선이 필요함을 함축한 구호다. 그러나 이 구호와는 정반대로, 시간제 노동 확산으로 인해 이제 여성은 노동시장에서도 가구에서도 '0.5소득자'로 고착화될 위험에 처해 있다.
일을 통해 사회적 성취를 이룰 권리,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권리, 자신의 생계를 스스로 책임질 수 있을 권리. 아주 오래 전부터 여성들이 요구해 온 여성의 권리이다. 106주년 여성의 날, 여성들이 원하는 것은 시간제 노동이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 여성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방식은 시간제 노동이 아니다. 아이의 양육을 사회가 함께 책임지면서 온전한 일자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여성노동자들 스스로가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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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제 , 안전행정부 , 일하는 여성을 위한 생애주기별 경력유지 지원방안 , 여성새로일하기센터 , 106주년 여성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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