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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눈물로 세월호 참사의 아픔과 진실을 가릴 수 없다!



위기는 기회다?

5월 19일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를 통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국민 여러분께서 겪은 고통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30여 분의 담화 말미에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세월호가 침몰한지 34일만이었다.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무능과 무책임으로 인해 박근혜 정부는 출범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한국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4월 첫째 주 61%에 달하던 정부 지지율은 한 달 사이에 46%까지 떨어졌다. 정부는 6·4 지방선거를 목전에 두고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몰려 있었다.
그러나 사과와 눈물이라는 수세적 제스처와 달리 이번 대국민담화의 의미는 상당히 공세적이다. 정부로서는 국면 전환을 위한 ‘한 수’인 셈이다. 담화를 통해 정당성을 획득하고, 중간층을 다시금 자신의 지지층으로 결집시킨 후에는 기존의 국정운영 기조를 변함없이 밀어붙이겠다는 의도가 곳곳에서 드러난다. “여러분께 약속드린 경제혁신 3개년 계획과 비정상의 정상화, 공직사회 개혁과 부패척결을 강력히 추진할 것입니다”라는 대목에 와서는 오히려 정부가 이 위기를 기회로, 즉 단호한 정책 집행의 동력으로 삼으려 한다는 강한 의지마저 느껴진다.

책임회피와 희생양 만들기에 집중

해경 해체, 안행부 축소, 국가안전처 신설이라는 정부 부처의 혁신안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은 예상보다 강력한 조치라고 느꼈고, 조선일보는 ‘충격적 대응’이라고까지 평가했다. 그러나 담화문에는 사고의 원인에 대한 제대로 된 진단은 없고, 대통령에게 집중되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해경과 선장을 강력하게 비난하는 내용만 있었다. 유가족대책위는 대통령 담화에 유가족이 요구한 구체적인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동안 실종자, 사망자, 생존자 가족들이 제기해 왔던 요구, 시민들이 제기했던 근본적 의문들에 책임 있게 답하고 있는가? 담화문은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은폐하고 있는가?
먼저, 박근혜 대통령은 참사 초기대응 실패의 책임을 해경의 무능, 그리고 재난 컨트롤타워의 부재에서 찾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해경을 해체하고, 해경·안전행정부·해양수산부의 업무 중 안전과 관련된 업무를 분리하여 새로운 정부 부처인 ‘국가안전처’가 관장하도록 만들겠다고 한다.
무려 세 개의 기관을 재편하는 과감한 결단처럼 보이지만 제대로 된 진상 규명 없이 성급하게 꼬리를 자르려고 한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해경부터 청와대까지 철저한 진상규명이 이루어지고, 그 결과를 반영하여 부처 개편이 이뤄지는 것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서둘러 청와대를 쏙 빼놓고 부처개편안을 발표한 것이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지난 16일 면담에서 유족들이 요구한 ‘대통령까지도 포함한 성역 없는 진상조사’는 담화문 어디에도 언급되지 않았다. 참사 대응 과정에 대한 여러 의혹과 불신이 청와대를 향하고 있음에도 대통령은 손쉽게 책임자의 위치에서 빠져나온 것이다. 말로는 대통령 자신의 책임을 인정한다 했지만 실제로 지는 책임은 없었다.

담화문이 은폐한 참사의 구조적 원인

재난대응시스템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재난 예방을 위한 해법이다. 예방을 위해서는 사고의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원인에 대한 성찰이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담화문이 이번 참사를 불러온 주요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는 것은 ‘사회 전반의 끼리끼리 문화와 민관유착’이다. 보수언론이 지속적으로 참사의 배후라 지목해 왔던 ‘관피아’를 척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참사 이전부터 정부가 외쳐 온 공공부문 정상화의 맥락과 정확히 겹친다.
그러나 관료의 비리, 민관유착은 참사의 여러 원인 중 하나일 뿐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다. 대통령은 참사 이후 여러 전문가와 시민들이 참사의 주된 원인으로 제기해 왔던 ‘규제 완화’의 문제를 교묘하게 피해갔다. 선박 규제만 놓고 보더라도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완화된 규제가 20건이 넘는다. 선박의 연령 제한을 25년에서 30년으로 늘리고, 과적 및 적재 기준을 완화하고, 선박검사·수리 기술자를 파견노동자로 쓸 수 있도록 하는 등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모든 조치가 정부에 의해 행해졌다. 자본을 위한 규제완화를 국정 과제로 삼아온 정권의 문제이지 일부 관료의 도덕성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은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 ‘선장과 일부 승무원들의 직무유기, 증축·과적 등 청해진해운의 비정상적 이윤추구’라고 밝혔다. 그러나 한국 자본주의에서 청해진해운이 과연 비정상적인 존재인가? 청해진해운에서 극단적인 형태로 드러나기는 했지만, 안전업무 외주화·노동유연화 등 비용절감이라는 명목으로 안전에 대한 투자를 최소화하는 것은 신자유주의 시대 자본이 취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전략이다. 청해진해운 역시 느슨해진 규제를 활용하면서 안전 비용을 줄여 이득을 봤던 하나의 기업이며, 세월호 선장은 그런 구조 속에서 무책임을 체화한 개인이었을 뿐이다.
따라서 구원파라는 종교집단의 특수성과 엮어 악마화되고 있는 청해진해운과 세모그룹에게 모든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이들에게 충분한 책임을 묻는 것과 동시에, 우리 사회의 기본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이 있어야 한다.

제대로 된 진상조사와 대책마련은 지금부터!

애도의 분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 발표된 이번 대통령 담화문은 사고의 원인에 대한 제대로 된 성찰을 차단하고 참사의 원인을 일부 비정상적 관료와 기업만의 문제인양 왜곡시키고 있다. 이는 유족을 포함한 수많은 국민들이 제기해 온 문제들을 철저히 외면하는 처사이다.
사고의 원인을 만들고 참사를 키운 책임자인 정부에 맡겨두어서는 안 된다. 유가족이 요구한 독립적 진상조사 기구를 통한 성역 없는 수사는 반드시 필요하다. “아이들아 미안하다”는 국민들의 비통한 외침은, 생명보다 돈을, 안전보다 효율을 우선시해왔던 한국 사회에 방향 전환이 시급하다는 뼈아픈 성찰에서 나온 것이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이 된 규제완화, 외주화를 중단하고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근본적이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한국사회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비극은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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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주화 , 규제 완화 , 눈물 , 대국민담화 , 국가안전처 , 관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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