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연대 뉴스레터 문화빵

의식적 선택! 다르게 사는 삶

베를린과 서울에서 본 밥상공동체

다르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또한 무엇으로부터, 무엇과는 다른 삶이라는 것인가?
자본주의 사회가 강요하는 삶의 기본적 조건과는 다른 방향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평소와는 다르게 생각하고 다른 삶의 조건을 만들어가며 자신의 인생을 풀어가고자 하는 것을 의미하는가?
그 무엇이든지 간에 다르게 사는 삶에 대한 지향은 현재적 삶의 모습에 만족하지 않는 사람들이 언제나 꾸는 꿈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부질없는 꿈으로, 한갓 이루어 질수 없는 유토피아의 모습만은 아니다. 분명 ‘다르게 사는 삶’을 선택하여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 삶의 방식은 현대사회에서 허덕이고 있는 우리들에게 던져주는 이야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 그것은 단지 그러한 삶을 선택한 그들만의 삶이 아니라, 우리 내부를 돌아볼때 언제나 발견되어지는 삶의 방식이다. 단지 우리는 아직 그러한 삶에 대해서 ‘의식적인 선택’을 미루고 있는 것은 아닐지...

생태예술공동체 마을의 실험

베를린에서 동남쪽으로 10km거리에 있는 캐셀베르그는 ‘다르게 사는 삶’을 실험하고 있는 곳 중의 하나다. 부지는 50만평, 대부분 숲이다. 2차대전 당시 나치의 군사기지였다가 동베를린 시절 비밀경찰서가 되었고 동서냉전이 무너지면서 생태운동가들과 예술가들이 숲속에 위치한 몇 개의 건물과 숲 전체를 점거하여 사용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의 공동스쾃인 것이다. 어마어마한 공간을 점거해서 사용하고 있는 이들을 골치 아프게 생각한 정부가 외부에 팔려고 내놓자 운동가들과 예술가들은 자신의 사재를 털었고, 시민은 모금을 하였다. 이렇게 십시일반 모인 돈이 현재 베를린 시에서 30분만 차로 달리면 도착하는 케셀베르그이다. 이로써 전쟁과 긴장을 준비하던 공간이 새로운 삶의 실험장으로 변하게 되었다.

나와 김강이 이곳을 방문한 것은 2003년에 이어 지난 6월, 2번째의 방문이었다. 이번에는 지난번보다 더 오랜기간동안 머무를 수 있었기에, 좀더 그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고,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생태예술공동체마을을 지향하고 있는 이 마을의 시설은 창고형 목조건물 5,6채와 입구 쪽에 공동식당, 공동 드레스룸, 공동작업소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외에도 숲에 별다른 상처를 주지 않는 한도 내에서 마련된 거처들이 여럿 있다. 이 독립채들은 북아메리카 인디언식, 몽고의 파오식, 낡고 작은 목조 캠핑카, 등산용 텐트까지.. 거처의 종류도 다양하지만 인종도 다양하다. 독일사람들 뿐만아니라 멀리 쿠바에서 온 사람들까지 40명 남짓 비교적 적은 인원인데도 다국적 공동체마을이다. 여기에 입주하기를 희망하는 사람은 먼저 한 달을 살아야 한다. 먼저 살아온 사람들에겐 이 사람이 함께 살만한 사람인지를 확인할 기회가 되고, 신청자 입장에서도 섣부른 판단을 줄이기 위한 안전한 대책이다.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한 최소한의 이 규정은 매우 설득력 있는 방법이다. 같이 살아본다는 것이 얼마나 구체적인 경험인가. 그 후 살기로 결정되면 매월 10유로씩(한화 약 1만4천원) 회비를 낸다. 이 돈은 공동운영비로 쓰인다. 그러나 이마저도 없으면 자신의 노동으로 대신한다. 이쯤 되면 자연스럽게 여기 사람들이 어떻게 경제활동하고 먹고 사는가에 대해 궁금할 것이다.

출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야외식당은 이 공동체의 성격을 한눈에 보여준다. 이 야외식당은 이곳의 생활방식 중 가장 중요한 장소로써, 언제나 누구든지 와서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알아서 취사하고 치우는 자율식당이자 거주자들이 모이는 사랑방이다. 취사는 숲의 간벌작업에서 나온 장작으로 해결하고 전기는 풍력과 태양에너지다. 공동옷장은 누구나 가져다가 입을 수 있고 가져다 놓을 수 있다. 특별히 규정이 없는 것이 이곳의 규정이다. 자율인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의 독일사람들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게 먹는다. 대신 모두 유기농식단이다. 적게 먹고, 생태친화적인 먹거리를 먹는 것이다. 직접 재배하는 몇 가지들이 있기도 하지만, 아직은 대부분 시내에서 유기농 농산물을 구입해서 먹는다. 이들이 유기농 농산물을 구입하는 것은, 독일의 유기농 재배 농장에도 작지만 힘이 될 것이다. 좀더 자연과 친해지는 방식의 섭생을 지향하는 것이다. 또한, 여기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돈 쓸 구조를 지양하고 있다. 몇몇 사람들이 베를린시내까지 일하러 나가지만 조금 일하고 조금 번다. 덜 버는 만큼 자본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사고방식이 깔려있다.

한편 여기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본이 요구하는 시간을 되돌려받은 그 시간을 활용하여 자연약재를 연구하거나, 산책을 하거나, 겨울 땔감을 준비하고, 생활에 필요한 무언가를 손으로 만든다. 물론 여름이니 강가에서 하루종일 수영을 즐기기도 한다. 자칫 무료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 숲속 생활에서 이들은 천천히 움직이고, 천천히 사고하며, 조용히 살아간다. 또한 이들은 대부분 대단한 예술적 능력을 가졌는데, 그것은 쓰레기를 재활용하는 것에서도 발견된다. 베를린시에서 나오는 각종쓰레기는 이곳의 건축보조재료로 쓰이거나 장식품, 아이들 장난감 등으로 다양하게 재활용된다.

몇몇 예술가들은 야외정원조각 및 설치작품재료로 사용하거나 작은 유리조각 같은 것들은 장식공예품으로 둔갑한다. 폐비닐로 옷을 만드는 작가도 있다. 누가 예술가이고 비 예술가인지를 구분하기는 한국에 비해 매우 어렵다. 다만 여기서는 그들의 행위들을 보고 예술가라고 여길 뿐.

조용한 반란, 밥상공동체의 꿈

지난 8월 22일 점심. 청계천변 삼일아파트 1동 옆에서 작은 행사가 열렸다. 같이 밥을 나누는 이 행사는 노숙인들로 구성된 <더불어 사는 집>이 주관했다. 서울시내 곳곳에는 무료급식소들이 있지만 대부분 종교단체에서 운영하거나, 노숙인 관련 시민단체들에서 운영하는 곳들이다. 밥을 퍼주는 사람은 노숙인이 아니고, 밥을 먹는 사람은 노숙인이다. 그러나 <더불어 사는 집>의 밥 나누기는 밥을 퍼주는 사람도, 밥을 먹는 사람도 모두 노숙인이었거나, 노숙인들이다.

노숙인들이 노숙인들을 위해서 식사를 준비한다는 것이 한국사회에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그들은 자신들이 기존무료급식소에서의 경험을 떠올리며 말했다. “한 끼를 먹어도 인간답게 먹고 싶었다.” 자본으로부터 탈락하여 거리에 내팽개쳐졌던 사람들이 바닥을 털고 일어나 새 생활을 준비한다는 것! 그리고 최초의 외부활동으로 같은 처지에 있는 노숙인들과 도시빈민을 위해 밥상을 준비한다는 것은 대단히 상징적인 행동이다. 그 어느 빈민운동가들의 웅변력도 미칠 수 없는 삶의 철학이 담긴, 삶을 고양시키는 문화의 현장인 것이다. 이 자리에는 그동안 계속 노숙인들과 활동해온 두어 명의 빈민운동가 외에는 빈민운동가들이 오지 않았다. 함께 먹는 밥상을 준비한 <더불어 사는 집> 노숙인들은 거창하게 운동을 얘기할줄 모른다. 그저 함께 밥을 먹기 위한 준비를 하고, 함께 밥을 ‘사람답게 먹는 것’ 그것만을 행동으로 옮겼다. 이들의 밥상 나눔은 현장정신이 결여된 채 공허한 논리로 무장된 많은 활동가들에게 던져주는 이야기가 된다. 누구나 비판의식으로 정신무장할 수 있고, 새로운 삶의 방식에 대해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들의 활동을 결정하고 직접 몸을 움직여 행동하는 것은 모든 부문에 걸쳐 매우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행위이며 의식적인 선택인 것이다.

새삼 캐셀베르그의 야외식당이 말하는 적게 먹지만 같이 먹을 줄 아는 공동의 정신과 더불어사는 집의 가난한 밥상공동체의 정신이 수만 킬로미터를 시공적으로 연결되어 통해 보인다.


김윤환, 예술가/ 예술기획/ 오아시스 프로젝트 기획진행 중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김윤환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