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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86호 이슈와 현장] 위협으로부터 지켜내고 싶은 것

- 밀양 송전탑 투쟁 현장에 다녀와서

1. 밀양에 가기 전에 품었던 질문들

지난 10월 27일부터 약 일주일 간, 765kV 송전탑을 막기 위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밀양에 다녀왔다. 가서 한 일은 카메라를 들고 현장 상황을 촬영하는 것이었다. 사실 그 전에 촬영이란 걸 해 본 것도 아닌데, 그냥 어쩌다 보니 그런 역할을 맡게 되었다. 카메라라도 안 들면 밀양에 가서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가봤자 싸움에 큰 도움이 될까’ 같은 질문을 하며 밀양에 가기 직전까지도 한참을 망설였는데, 돌이켜 보면 그게 뭐 내가 밀양 송전탑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한 거시적인 전략 안에서 나 자신을 어디에 위치시킬지에 대해 심도 있게 고찰하고 있었다기보다 그냥 겁이 나서 그랬던 것 같다. 밀양에 계신 분들 입장에서 보면 나 같은 애 한 명 쯤 와서 큰 도움 안 되더라도 머릿수 채워주는 것만으로도 나쁘진 않을 것 아닌가. 그냥 내가 겁이 나서 망설였다. 뭐가 겁이 났냐고 물으면 딱 집어서 대답은 못하겠다. 한전 직원한테 맞거나 경찰한테 잡혀갈까봐? 다른 해야 할 일이 이만큼이나 쌓여 있는 게 부담스러워서? 막상 갔는데 별로 하는 일 없이 애물단지 취급 받으면 자존심 상할까봐? 앞으로 얼마나 지속적으로 연대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그냥 면피용으로 한 번 가는 것 같아서? 지금도 이유는 잘 모르겠다. 이유를 알았으면 어떻게 결정을 하던 별로 망설이지는 않았을 텐데, 뭐가 겁이 나는지 실체가 없으니 머릿속으로만 가능한 불안요소를 전부 헤집으며 두려움을 한없이 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난 밀양에 갔다. 꼭 가보고 싶었던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그걸 단단히 붙잡기로 했다. 그게 뭐였으려나? 밀양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한 이야기는 작년에 이치우 어르신이 분신하신 후 처음 듣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그때까지의 밀양 싸움에 대한 내용을 담은 <밀양의 전쟁>이란 영상을 봤다. 내가 감정을 발산하는 데에 익숙하질 못해서 눈물이 별로 없는 편인데, 그걸 보면서 조금 울었다. 어디서 울었는지는 그 영상을 본지가 오래되어서 잘 기억이 안 나는데, 할머니들이 인부들이 나무를 잘라내는 걸 막으려고 늙으신 몸을 끌고 오르내렸던 산길이 나오는 장면은 대강 기억이 난다. 나도 우리 할머니를 보고 자랐기 때문에, 할머니들이 그 산을 매일같이 오르내리고 있다는 게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는 건 직감할 수 있었다. 내가 남에게 감정이입하는 게 노력해도 잘 안 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걸 보면서는 그 할머니들이 우리 할머니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전부터 노동자들이 탄압받는 이야기, 철거민들이 죽는 이야기 같은 것들을 보고 들으며 심지어 직접 가보기도 했고, 그 사람들을 위해서 함께 싸우는 게 옳다는 건 당연하다는 듯 이해하고 있었지만, 싸움의 정당성과 이겨야할 필요성에 대해 이 정도로 감정적인 확신이 든 건 처음이었던 것 같다. 도대체 밀양의 어떤 점이 나처럼 무기력한 사람을 움직이게 했을까?

▲ <밀양의 전쟁>(미디어커뮤니티 풀똥, 2012)

밀양에 송전탑이 세워져서는 안 되는 이유에 대해서 수많은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765kV의 고압 송전탑이 주민들의 건강과 경제 상황에 가하는 위협, 송전탑의 배경인 핵 발전이 우리의 삶에 가하는 위협, 산업용 전기의 수요 제한이 되지 않은 채 공급만 끊임없이 늘어나는 문제, 765kV가 아닌 345kV 송전탑의 지중화로도 충분하다는 대안, 그리고 이렇게 설득력이 없는 사업을 강행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폭력에 대한 지적 등. 그런데 송전탑을 세워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이런 논리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고민을 하고 결론을 내린다기보다 그냥 귀를 닫은 것 같다. 밀양과 관련된 인터넷 신문 기사에 달린 댓글들은 잔인하다. 굳이 인용은 하지 않겠지만, 대강 ‘너네는 전기 안 쓰고 사냐.’라든지 ‘보상금 더 받으려고 저렇게까지 한다.’ 같은 이야기들을 악의적인 언어로 표현한다. 한전도 가지고 있는 생각은 비슷한 것 같은데, 그걸 ‘대규모 전력난이 발생할 위험’이라든지 ‘성의 있는 보상’ 같은 좀 더 점잖은 언어로 표현한다. 뭐가 어찌 됐든 송전탑을 더 세우고 더 많은 전기를 확보해야 한다는 믿음은 털끝만큼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 사람들을 도대체 어떻게 설득시킬 수 있을까? 나였다면 어떻게 해야 설득 당했을까? 아까 말한 것처럼 나를 움직이게 한 건 송전탑의 위험에 대한 수많은 논리 이전에, 송전탑을 막고 있는 할머니들 자체였다. 할머니들이 저렇게까지 고생하시는 것에 대한 안쓰러움이 아니라, 그런 고생을 감내하면서도 흔들림이 없는 어떤 힘에 대한 자연스러운 끌림이 있었다. 아마 밀양에 있는 한 미디어 활동가가 ‘할머니들의 진정성’이라고 이야기했던 것, 고병권이 ‘밀양식 보수주의’라고 이름 붙였던 것이 그런 게 아닐까 싶다(*주1). ‘너희는 너희들의 한평생을 돈으로 바꿀 수 있냐’는 밀양 할머니의 질문에 담긴 것. 그걸 멀리 떨어져서 제한된 정보를 가지고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할머니들과 얼굴을 맞대고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나도 힘을 보태고 싶어졌다.

2. 할머니들

밀양에 가서는 주로 상동면 도곡마을에 가 있었다. 도곡마을은 109번, 110번 송전탑 건설 현장으로 올라가는 길목이다. 지금은 경찰들이 주민들이 건설 현장에 접근하는 것 자체를 차단하고 있기 때문에, 주민들은 도곡마을 언저리에 자리를 잡고 공사현장을 오르내리는 한전 직원들을 막아서고 있었다. 건설 현장에서 야간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한전 직원들은 아침저녁으로 교대를 하는데, 이 교대 시간마다 충돌이 일어난다.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평균 연령 80세 정도의 할머니들인데, 할머니들의 수가 적을 때는 막아서는 할머니들을 피해서, 밀쳐서, 혹은 뛰어 넘어서 지나가 버리기도 하고, 수가 좀 많다 싶으면 경찰이 등장해서 할머니들을 한 곳에 몰아넣고 사지를 들어 길옆으로 옮겨 버린다. 아마 주민들의 부상을 방지한다는 명목 하에 그렇게 하는 것 같지만, 그 과정에서 매일같이 부상자가 발생한다. 이러한 ‘작업’을 진행하는 여경들은 최대한 착하고 사무적인 말투로 다음과 같은 말을 반복해서 외친다. “할머니, 위험하세요.”

▲ 출처: 페이스북 밀양 (www.facebook.com/milyang79)

하지만 할머니들은 굴하지 않고 끝까지 움직일 수 있을 만큼 몸을 움직여서 한전 직원들을 막아서고, 할 수 있는 만큼 한전과 경찰에게 소리를 지르시며 격렬한 항의를 한다. 경찰이나 한전 직원과 맞서고 있는 한두 명이 아니라, 거기 있는 거의 모든 할머니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소리를 지르신다. 욕도 (정말) 잘 하시지만, 대단한 건 우리가 왜 억울한지, 왜 당신들이 이러면 안 되는지를 한전 직원을 붙잡고, 경찰을 붙잡고 끊임없이 설명하신다는 거다. 신문이나 영상과 같이 분리된 공간이 아니라, 현장 안에서 치열한 여론전이 펼쳐지는 것이다. 9년 동안 같은 문제를 가지고 싸워 왔는데 한전이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은 척도 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싸움은 이어 나가더라도 소통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기대를 접어버릴 법도 한데, 할머니들은 정말 어떤 의심이나 회의감 같은 것은 요만큼도 없이 끝까지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하신다.

모든 할머니들이 매일 현장에 나와 있는 것은 아니고, 근처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돌아가며 당번을 한다. 요즘은 한 해 농사를 잘 마무리해야 하는 바쁜 시기라 현장에 오지 않을 때는 농사일을 하셔야 하기 때문이다. 현장에 와서는 또 열심히 싸우시다가, 별다른 충돌이 없이 조용할 때는 보통 마냥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신다. 그냥 앉은 자리에서 한 두 사람이 이야기를 시작하면, 주변에서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계시다가 어느새 자연스럽게 끼어서 같이 이야기를 하신다. 이야기의 주제는 아무래도 송전탑 문제에 관한 것이 많다. 싸울 때 경찰과 한전을 붙잡고 하시던 이야기들을 여전히 지치지 않고, 그저 조금 덜 높은 목소리로 (그래도 가끔 되게 높아진다) 이어 나가신다. 하지만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송전탑 문제에서 멈추는 것은 아니다. 서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꺼내고 질문을 주고받다 보면 자연스레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 농사 얘기, 관절이랑 혈압 얘기, 먹는 것 얘기, 다른 집안 소식, 그러다가 어느새 다시 송전탑이랑 한전 이야기 같은 것들이 어느 한곳에도 멈추지 않고 유려하게 흘러간다. 할머니들의 이야기 속에서는 지금 하고 있는 송전탑 싸움과 자신들의 삶이 분리되지 않는다. 이건 아마도 이야기만 국한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하루하루 농사를 짓는 것도, 꼬박꼬박 새벽같이 밥을 싸들고 나와서 데모를 하는 것도, 다 같이 삶을 지키고 유지하기 위한 일이다.

할머니들이 지키고 싶은 삶이라는 건, 그저 죽지 않도록 생명을 유지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할머니들은 송전탑을 막다가 죽겠다고 이야기하지 않는가. 할머니들이 지키고 싶은 것은 오히려 그것 없이는 목숨을 부지할 의미가 별로 없는 것들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뭔가 거창한 것일 것 같지만, 사실은 꽤 단순한 것들이다. 조상님들의 묘가 있는 마을, 일제시대와 6.25를 버텨내며 이제야 좀 밥 안 굶고 편안해진 삶, 홍수 피해 한 번 없었던 좋은 날씨, 담장이 없어도 걱정 없는 범죄 없는 마을. ‘문어 대가리’ 등등의 이름이 저마다 붙어있는 커다란 바위들. 하나하나 떼어놓고 보면 목숨을 걸 만큼 큰 가치는 없는 것 같지만, 이것들이 모여서 대체할 수 없는, 나의 것 혹은 우리의 것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할머니들 고유의 삶을 구성한다. 물론 할머니들의 삶에도 돈은 중요하고 필요하지만, 보상금을 아무리 많이 준대도 그 삶 자체를 돈으로 바꾸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할머니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며 타협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싸움은 평화로운 삶에 끼어든 이질적인 것이 아니다. 1920~30년대부터 한국 사회의 격변기를 전부 살아온 사람들의 삶에 고통스럽지 않았던 시간이 얼마나 되겠나. 할머니들은 평생 온갖 고난과 위험을 껴안은 채로 지금의 삶을 지켜내고 만들어 왔으며, 송전탑 싸움도 결국 그렇게 계속되는 삶의 일부이다. 할머니들이 송전탑 싸움을 통해 보여주는 확신과 생명력은 이러한 삶의 태도에서 나온다.

3. 우리의 안전

송전탑 건설의 찬반을 둘러싼 논리를 아우를 수 있는 핵심 단어 중 하나는 ‘안전’ (혹은 뒤집어서 위험, 불안 등)인 것 같다. 송전탑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전자파가 밀양 주민들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것을, 그리고 더 나아가 무분별한 핵발전소 건설이 전 국민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것을 얘기한다. 송전탑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전력 수급의 불안을 해소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그렇게 되면 찬성과 반대 사이의 싸움은 각각이 주장하는 불안 요소가 실제로 얼마나 불안한지를, 그리고 상대편이 얘기하는 불안이 얼마나 근거 없는 것인지를 증명하는 것이 그 내용이 된다. 물론 이러한 논리의 싸움은, 한전이 아무리 반대의 목소리를 들은 척도 안하고 자기 얘기만 하면서 공사를 강행하더라도, 그러한 무책임함에 속수무책으로 밀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둘 중 어떤 것이 더 안전하지 못한가를 묻기 이전에 하고 싶은 질문이 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안전이고, 불안으로부터 지켜내고 싶은 것이 뭔가? 아까 말했다시피 밀양의 할머니들은 그 지켜내고 싶은 것을 확실히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그 분들이 보여주는 힘의 원천이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이다. 이건 꼭 송전탑 건설에 찬성하고 전력 수급의 필요성에 대한 맹목적이다시피 한 믿음과 의지를 가진 사람들에게만이 아니라, 송전탑과 핵 발전을 반대하는 의견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로 해볼 만한 질문이다. 우리는 도대체 뭘 지키려고 하는 걸까? 우리가 이 질문에 대해서 밀양의 할머니들만큼 의심의 여지없는 대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 출처: 페이스북 밀양 (www.facebook.com/milyang79)

정신없는 싸움의 와중에도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지키고 싶은 것이 명확하지 않은, 실체가 없는 불안이 핵발전소와 송전탑 건설에 대한 논리를 뛰어 넘은 지지의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좀 순진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우리가 지키고 싶은 것,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것 중에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을까? 그런 것이 없어질수록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 방법은 돈을 모으는 것밖에 남지 않게 된다. 그것도 많이. 모은 돈을 가지고 사고 싶은 게 뭔지 명확하지 않으니 필요한 돈의 규모도 명확하지 않고, 아무리 돈이 많이 모이더라도 여전히 불안하다. 안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다. 지키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안전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감각도 사라진다. 뭐가 됐든 안전하면 안전할수록 좋은 것이다. 삶의 불안을 0으로 수렴시키려는 노력은, 결국 전기의 경우엔 핵 발전과 같이 가장 많은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대규모 해결책에 기대는 것으로 귀결된다. 하지만 그런 해결책은 불안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한 쪽으로 몰아넣어 보이지 않게 만들 뿐이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밀양의 시골 할머니들처럼 돈 없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향한다. 안전이 일부에게 독점되고 희소성을 가지게 되면서 돈으로 살 수 있는 뭔가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제한 없는 안전의 추구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면, 송전탑 건설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지금 실제로 위험에 빠진 사람이 누구인가라는 당연한 질문을 망각한 채 밀양의 할머니들에게 지역 이기주의라는 꼬리표를 붙일 수 있게 된다. 더 나아가서,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우리에게 필요한 안전이 어느 정도인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이 싸움의 정당성에 대한 마음 한 구석의 의심을 떨쳐내기가 힘들며, 연대의 방식은 전기를 좀 더 아끼는 것 같이 내 삶의 안정을 최대한 해치지 않는 선으로 제한된다.

그러니 우리는, 송전탑의 위험성에 대해 정확히 알고 한전과 경찰의 행태에 분노하며 할머니들이 가진 에너지에 경탄하는 것과 더불어, 밀양의 할머니들이 던지는 질문을 우리의 삶에도 적용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한평생 중에서 돈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을 뭐라도 하나 가지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 말과 행동으로 나름의 대답을 내놓으며, 타협할 수 없는 실체를 가진 나만의 삶을 구성해 나가야 한다. 그 과정이 우리의 삶에 필요한 안전의 크기에 대한 감각을 되살리고, 더불어서 타인이 겪고 있는 불안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법을 좀 더 배우도록 할 것이다. 삶의 목표는 최대치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불안은 우리 삶의 일부이다.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결국 밀양 문제에 무관심하거나 적대적인 사람들을 설득하는, 그리고 우리가 각자의 삶에서 지치지 않고 밀양 할머니들을 비롯하여 다른 소외된 사람들의 오랜 싸움에 연대할 수 있는 힘을 얻는 길이다.

밀양에서 카메라를 들고 촬영을 하고 있으면, 할머니들이 이거 찍으면 뉴스에 나가는 거냐고 심심찮게 물으시곤 했다. 뉴스는 고사하고 유튜브에도 올라가면 좋을 텐데, 촬영이란 걸 처음 해 본 터라 내가 찍어 놓은 게 버려지지 않고 편집이 될지조차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라 죄송스럽다. 그래도 뭔가 밀양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데에 일익을 담당해야 할 것은 같아서, 내가 하는 이야기가 과연 맞는 것인가, 혹은 다른 사람들이 이미 했던 얘기를 반복하는 것이 별 쓸 데가 있겠나 하는 의구심을 떨쳐내며 꾸역꾸역 글을 썼다. 명색이 미디어 연구 저널에 실리는 글인데 미디어 얘기가 너무 없는 것 같아서 마지막으로 밀양에서의 미디어 활동의 의미라든지 역할 같은 것에 대해서 좀 얘기하고 싶은데, 겨우 일주일 촬영 갔다 와서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겠나. 그저 더 많은 사람들이 영상이건 글이건 말이건 쓸 수 있는 미디어를 통해 밀양에 대해서 얘기하면 좋겠다. 밀양의 할머니들처럼 각자가 하고 싶은 얘기를, 완벽하게 옳거나 엄청나게 설득력 있는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자신 없어 하지 말고, 지치지 않고 했던 얘길 또 하고 또 했으면 좋겠다. 송전탑이 왜 문제인지, 할머니들이 송전탑의 위협으로부터 지켜내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 각자는 과연 무엇을 지키려고 사는 것인지. □

*주1: 고병권, ‘엄니의 보수주의는 아름다워’ (사람매거진 나들 제 9호)
http://na-dle.hani.co.kr/arti/culture/35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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