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15년|11월|시간의 재발견] 밤을 잊은 그대가 놓치고 있는 밝은 시간들

정하나 상임활동가, 노동시간센터 회원


심야 라디오와 함께 시작된 올빼미형 습관

수면패턴에 따라 흔히, 아침형 인간과 올빼미형 인간으로 나눈다. 나는 주로 올빼미형 인간으로 살아왔다. 더듬어보면 초등학교 때에는 깨우지 않아도 7시에 바로 일어나 아침 어린이 프로그램도 보고, 밥도 먹고, 씻고도 시간이 남아 심지어 아이 걸음으로 30분은 넘게 걸리는 학교까지 걸어가기까지 했던 거 같다. 생각해 보면, 라디오를 듣기 시작한 다음부터 ‘올빼미스러움’이 내 안에 배양되기 시작했던거 같다. 고등학교 시절, 이제는 고인이 된 신해철의 ‘음악도시’는 자정부터 새벽 2시까지 하던 프로그램이었는데 거의 매일 빼놓지 않고 듣고 잤던 기억이 있다. 종종 새벽 2시 음악도시가 끝난 후 ‘***의 영화음악’을 듣고 3시에 잤다. 왜인지 모르게 컨디션이 좋은 날이나 다음날 학교 안 가는 토요일 같은 날에는 영화음악 프로그램이 끝나고 난 후 하는 ‘밤을 잊은 그대에게’라는 방송까지 들었다.

당시 대한민국 고등학생들이 모두 그랬듯, 9시 정식 1교시가 시작되기 전 아침 자율학습이 우리 학교에도 있었다. 아침 7시 반까지 등교를 해야 했는데 매일 새벽까지 라디오를 듣고 잠드니 아침에 일어나는 게 죽을 맛이었다. 다행히 고등학교는 집에서 뛰어가면 10분이면 주파할 수 있었다.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 아침 7시에 엄마의 등짝 스매싱을 맞고 일어나서 세수만 겨우 하고 교복 챙겨 입고 넘어질 듯 뛰며 겨우 등교했다. 학교에 가서도 정신이 차려질리 만무했고, 남들 다 긴장하고 공부하는 고3 때에도 나는 새벽 라디오 청취를 끊지 못해 2교시까지는 거의 비몽사몽 ‘공부 포기 모드’의 학생이었다.

유흥가에 접근성이 커진 성인이 된 후에는 말할 것도 없었다. 물론 아르바이트나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출근 시간이 정해져 있고, 밤의 자유를 즐기는 것은 나름의 조절을 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올빼미형 인간이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그 근거는 첫째, 전날 일찍 잔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아침에 일어나는 것은 힘들다는 것. 물론 (아직 젊다고는 해도) 20대 후반을 지나 30대를 지나면서 나도 몸이 아프지 않은 이상 예전처럼 하루 12시간씩 자거나 하지 않게 되고, 피곤해도 아침 8시면 눈이 떠지긴 한다. 그렇지만 아침은 늘 피곤한 시간이고 그리 생산적인 일을 할 수가 없다. 둘째, 하루 중 집중력이 제일 발휘되는 시간은 오후 3시~4시 정도, 그리고 밤 10시 경이다. 읽히지 않던 자료, 안 써지던 글도 이 시간에는 속도가 휙휙 잘 나간다. 비교적 시간 활용이 자유롭던 대학원에 다니던 시절, 수면시간에 변화를 줘보면서 ‘집중력 폭발시간’을 바꿔보려고 해봤는데 결과는 별로 변화가 없었다. 고딩시절부터 단련한 올빼미 스타일이 이미 몸에 각인되었나 보다.

  심야에만 운영하는 N버스 생긴 서울, 한 블로그에서는 올빼미족들에게 심야버스 퇴근 노선도를 제공하고 있다 (출처 : 한화생명 블로그)


노는 것도 밤이 편한 올빼미? 실은 ‘시간이 없다’

이런 몸이다 보니, 노는 것도 밤에 노는 게 좋다. 일없는 주말에 영화를 한 편 보려고 해도 4시 이후 저녁 타임 걸 예약하게 된다. 가격도 싼 조조할인도 있는데도, 영화는 날 밝을 때 보는 게 왠지 이상하다. 도리어 새벽에야 끝나는 심야영화를 선택하는 판이다. 하루 일과 중 ‘일’을 하는 시간이 늦게 종료가 되는 탓도, 습관이 그렇게 배긴 탓도 있을 것이다.

사실, 나뿐 만 아니라 임노동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주 중에 여가를 갖기란 어려운 일이다. 최소한 퇴근 시간인 6시 이후부터야 가능하다. 9시 출근 전에 수영을 하러 다니거나 외국어 공부학원을 다니는 직장인 친구들을 본 적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1~2달 하다가 퇴근 시간 이후로 시간을 변경하였다. 하지만 퇴근 이후에도 그리 넉넉한 여가는 가질 수 없다. 출근 시간 지옥철부터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다 보면, 빨리 집에 들어가 드러눕고 싶은 마음이 더 많이 든다. 게다가 칼퇴근하는 날이 뭐 얼마나 많으랴. 체력의 잔여량 정도로나, 하루 중 남은 시간의 양으로나 그리 넉넉하지는 않을 것이다.

예전에 방송작가를 하던 지인이 ‘이 일을 시작한 이래, 늘 피곤하고 시간이 없다’라는 불평을 하는 걸 들었다. 시사라디오 방송의 대본작가였던 그녀는, 매일매일 새로운 대본을 써야 했다. 당일 방송 녹음이 끝나면 다음 날 아이템회의를 하면서 대본을 쓰고 퇴근 후 잠들기 전까지 계속 실시간으로 뉴스검색 등을 하면서 대본을 완성해 간다고 했다. 녹음과 회의를 마치면 반드시 방송국에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대본 초고를 잡아놓고 퇴근해 친구도 만나고 문화생활도 즐기긴 하지만 집에 들어가서 완성해야할 일이 있으니 언제나 여유가 없고 뒷 꼭지가 늘 당긴다는 것이었다. 그때 위로랍시고 나는 이런 말을 해주었다. “언니, 일반 직장인들 대부분이 그렇긴 해요. 다음날 출근이 부담스러워서 주중에 약속을 잘 안 잡더라고요.” 물론 그녀에게 전혀 위로가 안 되었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소중한 밝은 시간의 여유

아무리 내가 올빼미이다 손, 요즘 같이 하늘이 높고맑은 날이 많은 이 계절을 이렇듯 스치듯 나가야 하는 게 아쉽다. 나뭇잎의 색깔이 변해가고, 그것이 파란 하늘과 콜라보레이션되어 함께 그려내는 운치는 해 떠 있는 시간에야 감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풍경이 그려내는 시간의 의미를 음미할 시간이 출근 시간 45분 남짓에 불과하다는 게 슬프다. 물론, 사회단체는 일반 기업처럼 엄격한 출퇴근 근태관리가 없으니 커피 한잔을 사서 가느라 늦게 간다 해도 크게 염려할 게 없긴 하다. 그래도 아쉬우면 사무실 옥상에 괜히 더 자주 나가 허리도 펼 겸 가을 공기를 마신다. 건물 앞쪽에서 예쁘게 물들어가는 관악산이 훤하게 보이지만 아쉽게도 옥상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물론, 사무실 안쪽에 있는 큰 유리창으로는 관악산이 훤히 보이긴 하지만, 정작 실내에 있을 땐 창문 쪽으로 고개를 잘 안 들게 된다.

그리고 퇴근길에는 시간이 좀 늦었더라도 생각나는 친구에게 전화한다. 언제 만나자거나 특별히 상의할게 있다거나 하는, 그런 전화는 아니다. 그야말로 안부 전화. 약속을 잡아 실제로 면대면으로 보는 건 좀 미루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 지금 바로 생각날 때 전화라도 안 하면 점점 더 관계가 소원해질 거 같아 안부로 마음을 전한다. 평일이든, 주말이든 관계에 공들이는 시간이나 에너지가 넉넉지 않으니 이렇게라도 한다.

하는 활동이 ‘노동안전보건’이다 보니, 장시간노동과 심야노동이 건강에 끼치는 악영향을 많이 알게 된다. 생체리듬을 교란하고 수면장애를 유발한다, 오래 앉아 있으면 뇌심혈관계 질환 발생률을 높인다, 과로사의 원인이 된다, 면역력을 떨어뜨린다는 얘기들이다. 국제암연구소(IARC)가 야간노동을 ‘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유해요인’(Group 2A)으로 분류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런 ‘과학적인’ 이야기를 마치 증명이라 하듯, 내 몸이 이미 변해가는 것을 본다. 성인이 된 후 알게된 ‘심야까지 이어지는’ 유흥과 공부, 노동은 무엇보다 먼저, 야식습관을 일상화했고 살이 어마어마하게 쪘다. 수면이 부족하고 스트레스가 없으면 코티솔 (코티솔은 혈액 속 지방과 당 수치를 일시적으로 높이기 때문에 코티솔 수치가 높은 상태가 지속되면 비만, 고혈압, 당뇨, 피로, 우울증, 기분저하 등이 생길 수 있다고 한다.)이라는 호르몬이 과다 분비되고, 비만하게 된 다더니 내가 딱 그렇구나 하고 몸소 보여주고 있다. 감기 따위 잘 걸리지 않았는데, 요즘 보면 1년에 한 두 번은 꼭 감기몸살을 앓고 지나간다. 면역력이 확실히 떨어진 것이다. 확실히 나이도 좀 더 들었지만 면역력을 보강할 다른 방도를 취하지 않았으니, 계속 이런 식이면 더 안 좋아질지도 모른다.

인생이 하나 쥐면 하나 놓아주는 것이라 그런가. 올빼미형 인간이 ‘밤을 쥐고, 낮을 놓아주며’ 잃고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특히나 건강영향은 인류로 태어난 이상 누구든 피해가기 어렵다. 올빼미로 살기로 그렇게 태어난 것인지, 아니면 여러 사회 구조적 맥락 속에서 그리 택해진 것인지부터 잘 따져봐야 할 노릇이다. 어느새 놓치고 있는 풍경과 관계, 잃어버린 몸과 정신의 건강 중에서 내가 붙잡고 싶었던 것은 없었는지부터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여전히 나는 올빼미처럼 해가 뉘엿한 시간부터 에너지가 더 나는 사람일 수 있겠지만, ‘올빼미’로만 살고 싶지는 않다. 아침형 인간으로 개조할 필요도 능력도 없긴 하지만, 날 밝은 시간에 가질 수 있는 삶의 소중함도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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