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16년|3월|특집] 제조업 중년 여성노동자 기영 씨의 손목 이야기

경기도의 한 전자제품 조립업체에서 일하는 40대 여성 노동자 기영 씨(가명)는 퇴근 후에도 연신 손목을 주물렀다. 회사에서 물량을 엄청나게 뽑았더니 손목이 시큰거린다. 평소에는 몸 생각해서 무리하게 일하지 않는 편이지만, 마음먹고 물량을 뽑으려 들면 누구보다 잘할 자신 있는 기영 씨다. 그런데 어제 과장이 기영 씨 심기를 거슬렸다. 과장에게 본때를 보이고 싶어 오늘 물량을 달렸더니 손목이 아프다. 같이 일하는 언니들 중에도 한의원 다니고, 물리치료를 여럿 받고 있는데 손목터널증후군 때문이란다.

물량 뽑고 나니, 손목터널이 아파

기영 씨가 일하는 업체 노동자는 대부분 4,50대 여성이다. 결혼·임신·출산·육아 때문에 직장을 그만뒀던 여성들이, 30대 후반 이후 다시 경제활동을 시작하는 'M자' 취업곡선은 여기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삼성, LG등 대규모 전자회사에 취업했던 젊은 여성들은 생애주기에 따라 노동시장을 떠나고, 중년이 된 여성들은 소규모 전자회사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다. 이런 제조업 중년 여성 노동자들이 가장 흔히 호소하는 직업병이 근골격계 질환이다. 2014년 총 90,909 명이 산업재해로 승인되었는데, 이 중 여성 노동자는 18,200 명으로 20%가량 됐다. 사고를 제외한 업무상 질병으로 산업재해를 승인받은 노동자 중 여성 비율은 이보다 좀 낮아 18.33%였는데, 근골격계 질환은 여성 비율이 21%로 전체 평균보다 비교적 높다.

한국인 여성의 평균 근력이 남성의 50~60%밖에 안돼, 여성들이 근골격계 질환에 더 취약할 수도 있고,(이명행, 들기 위치와 성별, 연령 요인이 최대 들기 능력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2011, 인천대 석사 학위 논문) 골다공증 같은 생물학적 요인이 중년 여성 노동자들을 더 불리하게 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성별에 따라 분배되는 업무 자체가 여성들을 특정한 근골격계 질환 위험에 더 노출시키기도 한다. 고령 여성 노동자들이 많이 하는 청소, 요양보호사, 조리사 등은 대표적으로 근골격계 질환이 많이 발생할 수 있는 직종이다.

특히 이런 업무는 불편한 자세, 조금씩 다르지만 유사한 동작의 반복과 같은 위험 요인에 노출되지만 비정형적인 노동이라서 근골격계질환 위험 정도가 실제보다 낮게 평가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같은 청소 업무에서도 보통 남성들이 중량물 취급, 무거운 기계 이용 등 더 어려운 일을 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쪼그려 앉아서 바닥이나 변기 닦기, 여러 구역을 옮겨 다니기, 좁고 불편한 구석 청소 등은 여성 청소노동자들이 더 많이 담당한다. 이런 업무들은 중량물 취급과 성격이 다르지만, 역시 다양한 근골격계 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캐런 메싱, 정진주 외 옮김, 『반쪽의 과학』, 7장)

여성 노동자는 산재 신청도, 승인도 어렵다

이렇게 성별에 따라 작업이 구분되고, 여기에 ‘여성이 하는 일’에 대한 사회적 편견까지 겹치면서 여성 노동자는 남성에 비해, 산재 신청을 하고, 승인을 받는 것도 더 어렵다. 인천 지역에서 2005~2007년, 직업환경의학 의사에 의해 직업성질환이라고 의심되는 질환을 모두 보고하도록 하고 이를 분석했더니, 직업성질환 의심자 중 산재를 신청하는 사람의 수가 매우 적었다. 그 중에서도 여성은 직업성질환 의심 사례 중 겨우 10%만 산재로 신청해 14%인 남성보다 산재 신청 비율이 낮았다.

근골격계질환 의심자 중 산재 신청을 한 사람은 남성은 16%, 여성은 5%로 그 차이가 더 컸다. (정진주 외, 산재보험급여 지급의 성불평등 연구, 2008) 산재를 신청한 뒤에도 성별 차이는 남는다. 같은 허리 염좌로 산재 요양을 받은 경우에도 여성은 남성보다 평균 요양기간, 입원이나 통원기간이 모두 더 짧았고, 요양급여도 15만원이나 적었다.(박은주,여성근로자의 산재보상에 관한 연구, 2012) 여성노동자들의 근골격계 질환 규모가 훨씬 낮게 평가되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근골격계 질환 악화시키는 직무스트레스

저녁 먹고 있는데도 기영 씨 카톡방이 시도 때도 없이 울린다. 같은 과 사람이 모두 들어있는 카톡방인데, 퇴근 뒤에 과장이 ‘오늘의 불량’을 정리해 사진까지 첨부해 올렸다. 더 화가 나는 건 동료들 반응이다. ‘과장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과장님’ 하는 인사가 줄줄이 올라온다. “직장 다니는 사람, 직장 스트레스야 다 똑같지, 뭐.” 기영 씨가 술 한 잔 걸치며 말했지만, 직무스트레스가 남성과 여성노동자에게 똑같지만은 않다.

여성노동자는 남성노동자보다 임금도 덜 받고, 낮은 지위에서 재량권이 적은 경우가 많다. 가사의불균형도 여성노동자의 직무스트레스를 강화시킨다. 2014년 맞벌이 부부 중 남성이 하루에 가사 노동에 쓰는 시간은 40분, 여성이 쓰는 시간은 194분. (통계청, 생활시간조사) 가정에서 여성에게 요구되는 많은 역할은 남성보다 여성노동자들이 일-가정 갈등에 시달리게 한다.

중년 여성노동자 기영 씨의 손목이 아픈 이유를 단순히, 작업 할 때 팔을 몇 도 비틀고, 몇 kg의 부품을 드는지만 평가해서는 도저히 다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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