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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ㅣ1월ㅣ일터다시보기] “나도 웃고 싶을 때 웃고 울고 싶을 때 울고 싶어요”

“나도 웃고 싶을 때 웃고
울고 싶을 때 울고 싶어요”


한보노연 선전위원 이 지 연

영화 ‘핸드폰’을 보셨는지. 간단히 정리하면, 대중에게 감춰야할 여배우의 동영상이 들어있는 잃어버린 자와 그 핸드폰을 우연히 손에 넣게 된 자와의 쫓고 쫓기는 이야기다. 잃어버린 매니저(배우 엄태웅)는 때려서 되찾아오든, 돈 주고 되찾아오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핸드폰을 찾아오려하는데 핸드폰을 손에 넣은 자(배우 박용우)는 점점 삐딱해져만 간다. 핸드폰을 주은 영화 속 ‘이규’는 핸드폰을 돌려주는 몇 가지 조건을 내걸었는데 이 조건이 좀 이상하다.
첫째, 전화를 공손하게 받을 것, 둘째, 반말하지 말 것, 셋째, 자신이 지목한 누군가를 손봐줄 것. 조건을 보아하니 도심 한 가운데서 수 십대의 차량이 엉키고 헬기가 붕붕 날아다니는 영화는 아닌 듯 한데....
‘이규’를 연기했던 배우 박용우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관객이 영화를 보기 전 감정 노동자라는 단어를 한 번 쯤 떠올려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렇다. 이 이상한 조건에는 감정노동자인 ‘이규’의 삶이 있다.
“예, 알겠습니다, 고객님”을 하루에도 수백 번 반복해야했던, 그래서 무너지고야 말았던 영화 속, 대형마트 관리자 ‘이규’의 이야기는 영화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2009년 10월호 일터 뉴스로 다루어진 「서비스 노동자의 감정노동 문제와 대책 토론회」는 2006년 방영된 ‘그것이 알고 싶다’ -웃다가 병든 사람들, 감정노동을 아십니까?- 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대형마트, 백화점, 종합병원 간호사 등 감정노동의 한복판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이야기. 병원에서는 ‘대인관계 좋고 성격 좋다’고 평가받는 한 간호사는 집에 돌아오면 폭식과 술로 병원에서의 스트레스를 풀어냈다. 진료비가 많이 나오는 것은 내 잘못이 아닌데 왜 나에게 그 불만을 쏟아내며 욕하는 건지, 대기 시간이 긴 것을 가지고 왜 나를 때리는 건지. 하지만 병원은 그녀에게 친절, 친절, 또 친절하라고 말하며 환자나 보호자에게 정작 뭐가 문제인지를 설명조차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리고선 그저, 죄송합니다, 잘 하겠습니다만을 연발하게 했고 그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그녀는 술에 취해 울며 소리 지르고, 집안의 물건들을 죄 부수고 있었다.
감정노동은 ‘연기를 하듯 타인의 감정을 맞추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통제하는 일을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노동’이다. 노동자들은 불만족스러운 조직 문화와 조직 체계, 고객에 대한 감정노동, 스트레스 해결에 대한 미약한 관리로 인해 감정의 부조화와 높은 직무스트레스를 느끼게 된다. 이로 인해 감정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은 정신적 고갈 상태에 이르러 우울증, 공황장애나 적응장애, 외상후스트레스장애, 도박이나 약물 중독이 발생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서비스 사업장의 우울증상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살펴보기 위해 버스, 노동조합 상근자, 공무원 해직자, 상용직 노동자 등과 비교를 해본 결과는 아래와 같다고 한다.

이 토론회에 참석해서 받은 자료집은 나의 물음표들로 가득하다. 서비스노동자가 고객에게 제공해야하는 친절이란 어디까지 일까, 고객일 때의 나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 걸까. 다큐멘터리 속 컨설턴트라는 자가 말한 “고객은 왕이 아니다, 고객은 신도 아니며, 고객은 신보다 위대하다. 신에게는 백 날 빌어도 돈이 안 나오지만 신을 대하듯 고객을 대하면 이윤이 생긴다.”는 이 끔찍한 현실을 어떻게 넘어서야 할까.
어떠한 고객이든 ‘최상의 친절로 모셔야’하는 서비스노동자, 혹시 내 감정을 드러냈다 민원이라도 올라오는 건 아닌지, 고객네 집에 까지 가서 무릎 꿇고 빌어야 하는 상황이 오는 것은 아닌지, 혹시 지금 내 전화가 모니터링에 걸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총 평가가 B에서 C로 평가가 낮아져 이번 달 월급에서 10만원이 깎이는 것은 아닌지, 전전긍긍 조마조마 하는 속에 서비스 노동자들은 병들어 간다.
영화 속 ‘이규’가 엉엉 울지도 못하고, 그 ‘엉엉’을 조용한 눈물에 가득 담아 화장실에서 뚝뚝 흘려보낼 때, 내 가슴 속에서도 그와 같은 눈물이 났다. 짧지만 내 이야기이기도 했던 현실, 그렇게 울었던 얼마 안 된, 아직도 살아있는 내 기억이 떠올라서. ‘나도 울고 싶을 때 울고 웃고 싶을 때 웃고 싶어요.’라는 서비스 노동자의 ‘인간이고 싶다’는 외침은 너무 무리한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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