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일터]2010년2월호 성명

[성명] 석면피해자 죽어간다, 석면피해구제법 속히 제정하라!

법 시행시기 앞당기고, 요양급여시기 발병일로 수정하라!

2009년 12월22일 국회 환경노동상임위원회를 통과한 ‘석면피해구제법안’이 다른 정치적 사안을 둘러싼 여야의 힘겨루기로 법사위와 본회의에서 다루어지지 않고 공중에 뜬 채 현재 계류 중이다. 국회가 ‘민생법안’의 처리를 미루고 있는 사이 석면피해자는 하나 둘 스러져가고 있다. 1970년대 중순부터 15년간 인천지역에서 일용직 건설노동을 하던 민씨는 석면암인 악성중피종(흉막)으로 고생하다 지난 올해 1월 29일 사망했다. 민씨의 유족은 “병원에서 아버지가 걸린 병이 석면때문이라고 알려주었다. 병원비라도 지원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를 하셨는데 갑자기 악화되어 돌아가셨다”며 안타까워했다. 민씨의 경우 발병 후 14개월만에 사망했는데, 석면질환 특히 중피종암은 예후가 극히 나빠 발병 후 생존기간이 평균 9개월에 불과하다.

석면광산이 있던 충남 홍성과 보령 주민들에게서 최근 폐암환자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 석면광산에서 일한 적이 있는 석면폐 환자 정지열씨는 “작년 석면광산 인근주민들에 대한 확대조사과정에서 십 여명의 폐암환자가 진단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병원측과 당국이 쉬쉬하고 있다. 이런 환자들의 경우 조직검사를 통해 석면노출여부를 조사해야 하는데 사망해버리면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못한다”며 추가환자 명단을 밝히고 공개적인 석면관련성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09년 국정감사장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석면공장에서 일하다 암에 걸리면 산업재해로 보상을 받을 수 있지만, 공장밖에 살다 석면에 노출되어 병에 걸리면 아무런 대책이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석면의 환경성피해문제 대책을 호소하던 악성중피종암환자 최모씨는 “나는 사형선고를 받은 몸이다, 죽을 날만 기다린다. 국회가 만든다던 법이 자꾸 연기되어 자포자기 상태다. 몇 푼이라도 보상을 받아 고생하는 가족들에게 조금이라도 미안함을 덜어보려고 했는데 그마저도 안되고 있다”며 한숨을 내 쉬었다.

2009년 1월초 충남 홍성과 보령지역의 석면광산 주변마을 주민들에게서 대규모 석면피해질환이 공식 검진된 후 석면피해대책을 요구하는 여론에 밀려 2009년 1월15일 국회의원 81명에 의해 석면피해구제법안이 처음 발의된 후 3월까지 무려 4개의 유사법안이 여야를 망라하고 발의되었다. 작년 2월 임시국회와 9월 정기국회에서도 여야 정쟁으로 2차례나 연기된 후 연말에 열린 임시국회에서야 겨우 여야가 인과관계증명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피해보상법’대신 긴급히 지원할 수 있는 ‘피해구제법’을 택해 합의안을 만들었지만 이번에는 법사위와 본회의가 열리지 못해 넘어가고 말았다. 대한민국 국회의 이러한 모습은 2005년 6월 일본이 석면공장 주변주민들에게서 다수의 석면질환이 나타난 ‘구보타쇼크’를 겪은 후 불과 9개월만에 피해구제법을 제정해 피해자를 구제하는 기민함을 보인 것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한국에서 석면문제가 사회의제화 된 과정을 살펴보자. 2000년 들어서면서 서울지하철 등 다양한 석면문제가 간헐적으로 제기되다가 2007년 부산지역 석면방직공장 인근 주민과 노동자들에게서 석면피해가 다수 보고되면서 석면문제가 본격적으로 사회문제화 되었다. 2009년에는 석면의 위험성을 우리 사회에 알렸던 충격적인 사건들이 한 달이 멀다 하고 벌어졌다. 1월 충남 홍성과 보령 석면광산 주민피해 확인, 2월 서울지하철 석면오염사건, 충북 제천 석면광산 일대지역 오염사건, 3월 태평로 삼성본관 석면오염사건, 4월 베이비파우더 석면탤크사건, 5월 시멘트 석면검출사건, 환경성 석면피해 사망자 첫 민사소송 제기, 6월 세종로 정부청사와 은평구청 등 공공건물 석면철거 오염사건, 7월 학교건물 석면오염문제, 8월 서울 왕십리뉴타운 홍익어린이집 석면사건, 9월 성남시 석면문제, 10월 서울 뉴타운지역 석면오염조사발표, 부산 재개발지역 석면사건, 11월 염전과 소금의 석면오염사건, 무궁화호 새마을호 등 열차 석면문제, 12월 충남 광천지역 악성중피종환자 발생 등 마치 우리 사회 곳곳에 매설됐던 석면 지뢰들이 연이어 터져 나온 것 같은 일년이었다.

석면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도 시도되었다. 10월에는 국회가 서울 왕십리뉴타운 홍익어린이집 현장에서 국정감사를 열고 석면공해문제의 실상을 체험했다. 정부는 석면종합대책 수정안을 내놓았다. 서울시는 석면주민감시단을 구성하겠다고 했다. 노동조합과 환경단체 그리고 석면피해자들이 나서 석면특별법 제정촉구 국민서명운동을 일년내내 진행했다. 특히 양대노총인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산하 노동조합을 통해 조직적으로 석면문제인식을 제고했고, 석면문제가 일찍 제기된 부산지역 시민들도 적극 참여했다. 이를 통해 11월말까지 모두 93,052명이 참여한 국민서명운동결과가 12월1일 국회에 전달되었다.

이렇게 많은 국민들의 염려와 노력 속에 만들어진 ‘석면피해구제법안’이 두 가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하나는 ‘법시행이 제정 이후 1년 뒤부터’라고 되어있는 점이다. 앞서 누차 강조한 석면질환 예후의 불량함 때문에 일본에서는 법제정 후 3개월 만에 시행에 들어갔다는 사례를 볼 때 우리의 경우 너무 늦다. 구제법이 환자를 구제하기 위한 법이라면 하루빨리 시행되도록 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환자의 요양급여 지급시기가 ‘발병한 날’이 아닌 ‘신청한 날’로 되어있다는 점이다. 지급대상으로 확정되면 병이 발병한 날로부터 요양급여가 지급되는 것은 상식이다. 산재의 경우가 그러하고 일본도 이와 같은 오류가 있어 최근 법을 개정하여 ‘신청한 날’에서 ‘발병한 날’로 요양급여 지급시기를 수정했다. 이번 임시국회에서 국회 법사위는 이러한 문제점을 살펴보아 올바로 수정하여 본회의에 회부해야 할 것이다.

현재의 석면피해구제는 과거 오래 전에 발생한 석면노출로 인한 질환이 대상이다. 사실 더 큰 문제는 지금 우리사회 곳곳에서 대규모 재개발과 리모델링 등으로 석면노출이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여러 부처에 흩어져서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석면관련제도를 모으고 보완하여 효과적인 석면대책을 시행토록 ‘석면안전관리법’과 관련기구설립 등도 시급한 과제다. 석면문제의 불편한 진실은 다 드러나지 않았고 이제부터다.

우리의 주장
하나, 석면피해자 죽어간다, 석면피해구제법 속히 제정하라!
둘, 법 시행시기 앞당기고, 요양급여시기 발병일로 수정하라!

2010년 2월 18일
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 / 한국석면피해자와가족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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