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일터]2010년2월호 칼럼

복수노조와 전임자 급여,기로에 선 민주노조운동

- 이글은 ‘위기의 노동운동 더 아래로, 더 왼쪽으로’(2010. 출판사 -메이데이)에 수록된 글을 축약한 것이다.


한노보연 기획위원장 김 재 광

왜곡된 역사가 오늘의 논란을 만들었다
복수노조와 전임자 급여에 대한 논란과 결과를 들여다보면 내용은 둘째 치고 복수노조와 전임자 급여 문제는 마치 노사 양측이 교환하거나, 일괄처리 되어야만 하는 것 같은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킨다. 결론적으로 복수노조와 전임자 급여의 문제는 별개의 문제이다.

그럼에도 이와 같은 현상이 생긴 이유에는 역사적 사정이 있다. 단결권 침해의 핵심이 되는 ‘복수노조’ 금지의 역사는 매우 뼈아프다.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군사정권은 복수노조를 금지하고, 이후로도 복수노조 금지는 법적으로 강화되었다. 복수노조 금지의 족쇄는 이후 전노협과 민주노총을 불법단체로 만들었고, 1997년에 3월에 이르러서야 초기업별 노조의 경우 복수를 허용하게 되고(이로써 민주노총의 합법화의 근거가 마련되었다) 이때 민주노총이 바로 합법화 된 것은 아니다. 가맹노조인 전교조의 합법 문제 등으로 정부 측은 설립신고를 반려하여 결국 1999년 11월에 합법화되었다. 기업별노조는 부칙을 통해 5년을 유예하여 2002년부터 허용하게 되었다. 이 당시 복수노조와 관련된 노동조합의 설립의 제한이 완전히 해제되었고, 단위 사업장의 복수노조 허용은 부칙 개정을 통해 다시금 2002년 개정시 5년 유예, 2006년 개정시 3년 유예되었다.

한편 자본 측은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민주노조’운동이 노동운동의 대세를 이루기 시작하자, 1990년 초부터 전임자 급여에 대하여 본격적인 문제제기에 나서게 된다. 전임자 급여지급과 부당노동행위와 관련된 대법원의 판결은 “노조전임자에 대한 급여지급으로 조합의 자주성이 저해된다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부당노동행위라 할 수는 없다”(1991.5.28, 대법 90누6392 제물포버스노조 사건) 하였다. 이 판결은 전임자의 급여에 대한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최초의 대법원 판결로 이에 자본 측은 적극적인 입법화를 요구하게 된다. 1996년 12월 26일 날치기로 개정된 노동법은 마침내(?) 노동조합의 전임자 급여지급을 부당노동행위로 규정하고 형사 처벌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역사적, 인식의 왜곡된 결정적 이유는 무엇일까? 전면적인 복수노조의 허용은 ‘민주노조’진영을 중심으로 한 노동계의 요구였고, 전임자 급여 금지의 요구는 자본의 요구였다. 1996~97 총파업의 기세와 정당성을 보자면 날치기법은 전면 폐기되는 것이 운동적으로나 논리적, 법적으로 맞다. 이럼에도 적당한 수준에서 양측의 요구가 입법화되고, 이후 계속적으로 유예한 것은 그 간의 ‘민주노조운동’의 대의와 헌법상의 원칙, 국제적 지원의 노력을 저버리고, 적당한 수준에서 자본과 거래한 것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역사는 결국 복수노조와 전임자 급여 문제를 한 세트로 만들었고, 노동계의 입장을 궁색하게 만들고 있다. 반드시 지키고 거부해야 할 것의 기준을 놓치는 순간 그 파장이 얼마나 크며, 부정적인 것인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복수노조 금지의 역사는 단결권을 침해한 역사다.
수많은 헌신적 활동가와 노동자의 투쟁, 그리고 국제사회 압력 등으로 그 실체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정권과 자본은 복수노조를 입법화하게 되었다. 복수노조 금지의 역사는 결국 자주적인 노동자의 의사와 행위를 제약하고 무력화하고자 하는 역사였으며, 전면적인 복수노조 보장에 대한 요구는 자주적인 노동조합을 지지하는 정당하고도 역사적인 ‘민주노조 운동’의 정신인 것이다.

한국의 노동 관련법은 자본주의 세계에서도 후진적이다. 특히 김영삼 정권 이후 국내외적으로 노동3권을 침해하는 대표적 악법이 바로 “복수노조 금지, 공무원노조 금지, 강제 중재”였다. 현재 공무원 노조는 매우 제한된 형태로 인정되고, 강제중재는 필수공익사업장 쟁의 시 필수유지업무로 변형되어 시행되고 있다. 복수노조의 경우는 주지하다시피 13년간 유예하고 있다. 앞서 2가지 악법을 ‘꼼수’를 통해 국내외의 비난을 모면하려는 것과 같이, 복수노조에 대해서도 정부는 ‘꼼수’를 쓰려하고 있다. 바로 ‘교섭창구 단일화’다.

‘교섭창구 단일화’의 요지는 각각의 노조에 교섭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사업장 내의 혼란과 자본의 교섭 및 경제적 부담을 이유로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조차 부정하는 것이다. 만일 복수의 노조에 교섭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노동조합의 존립의 의미가 없으며, 결국 하나의 노조로 정리되는 것을 강제하는 것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조합원 대상의 과반수 노조에 교섭권을 전부 부여한다면, 소수노조는 몇몇 사업장의 현장조직만도 못한 실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결국 복수노조 허용은 문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전면적인 복수노조를 주저할 이유가 없다
복수노조의 전면적 허용은 기존노조 및 현장의 혼란, 자본의 교섭 부담, 심지어 부당노동행위(사용자의 노조활동에 대한 지배개입), 사용자에 의한 어용노조의 조직적 출현 등이 우려된다 하더라도 지체 없이 시행되어야 한다. 문제는 교섭권를 무력화하는 ‘교섭창구 단일화’를 어떻게 무력하게 만드는가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복수노조를 전면적으로 허용하고, 교섭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법은 이미 개악되었고, 자본과 정권의 태도로 보아 그냥 넘어갈 리는 만무하다. 그렇다면 노조운동의 더욱 더 적극적인 태도와 행동이 필요하다.

전임자 급여 금지- 억지를 반복하다 보면 진실이 되는 격이다
전임자가 사용자로부터 받는 금원은 ‘임금’이라고 할 수 없다. 노동법 상 “임금이란 근로를 제공하고 받는 대가”로 정의하고 있다. 한편 노동조합 업무는 노동조합 활동에 전념하는 것이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운영의 한축인 점을 고려하면 자본의 기회비용인 것이다. 물론 이런 논리는 노자간의 정치적 의미를 가지는 측면을 사장시킬 우려가 있으나, 법적인 측면에서도 자본의 논리가 어긋난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노동조합의 전임자에 대한 자본과 정권의 논리의 전제는 “한국의 노조 전임자가 너무 많다”, “사용자가 노조전임자의 급여를 지급하는 나라는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제는 심지어 노동조합 조합원 및 활동가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논리의 근거 자료는 한국노동연구원의 자료(1993.7)를 기초로 김영삼 정부의 노사개혁위원회(1996)에서 제시한 것이다. 당시 한국노동연구원 자료는 1989년 일본 잡지를 인용한 것인데, 이 자료조차 20년에서 35년 전에 나온 것으로 노동조합의 구조와 역사가 다른 한국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큰 오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변의 사실로 굳어져서 현실을 왜곡하였다.

한편 전임자의 급여 문제 역시 마치 사용자가 지불하는 않는 것과 같이 호도하고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각 나라의 사정에 따라 편차를 가지고 있으나, 자본의 주장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따라서 자본의 일방적 주장은 정확한 사실에 근거한 주장 이라기보다는 바람에 가까운 주술呪術이라 할 수 있다. 거짓을 반복하면 진실로 인식되는 격이다. 전임자 급여 지급을 부당노동행위로 처벌하는 현재의 규정과 주장은 법률적으로 살펴봐도 상당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우선, 사용자의 전임자 급여 지급을 부당노동행위, 즉 노동조합의 활동에 대한 불이익 취급, 지배개입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단체협약을 통해 전임자 급여를 받는 마당에 이것이 불이익이나 지배개입으로 성립할 여지가 거의 없고, 해당 노동조합 및 노동자가 구제신청(시정 신청) 및 사용자 처벌을 구하는 경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부당노동행위로 노동법상 규정하거나 규제하는 것은 법 논리적으로도 오류이며, 현실적이지도 않다.

둘째로, 노조의 자주성에도 문제가 없다. 집단적 노동관계법은 노조의 자주성을 중요한 실체적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자본은 노동조합이 자주적인 재정을 꾸려야 하는데, 전임자 급여로 이것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한국의 노조운동 및 제한의 역사를 깡그리 무시하는 것이다. 전임자 급여는 한편으로 노조운동의 투쟁의 역사이고, 자주적인 역사인 것이다.

셋째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81조 4호는 전임자의 급여를 부당노동행위로 규정 하고 있다. 이때 ‘전임자’는 동법 제24조에 의하여 다음과 같이 규정되어 있다. “근로자는 단체협약으로 정하거나 사용자의 동의가 있는 경우에는 근로계약 소정의 근로를 제공하지 아니하고 노동조합 업무에만 종사할 수 있다.” 즉 노동조합 활동을 위해 전체 근무시간에 대하여 근로를 제공하지 않는 자이다. 그렇다면 이 조항은 100%로 근무시간 면제자에게 적용되는 것으로, 엄격히 따진다면 심지어 99% 노동조합 활동을 자에게는 적용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법의 실효성도 달성할 수 없고, 불필요한 노사분쟁만을 조정하는 모순 덩어리 법률 규정인 것이다.

따라서 전임자의 급여 금지를 규정하는 제 법률조항은 삭제하고, 전임자 급여 문제를 노사의 관계로 형성하게 하는 것이 최상의 입법적, 현실적 대안이다. 그럼에도 법은 상식을 초월하여 개악되었다.

노조 운동을 점검할 시기임은 분명하다
자본의 공격이 없다하더라도 위 문제에 대한 현재의 노조운동의 태도와 입장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구조와 질서가 온전히 유지되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를 돌이켜 봐야 한다. 노조의 결사의 자유 및 교섭권의 확대는 노조운동의 원칙임을 차치하고서라도, 현재의 노조운동은 기존의 질서만을 고집한다고 해서 유지 및 진전될 수 없다는 점을 유의 깊게 살펴야 한다. 조합원은 수동화 되고, 노조의 간부는 피로가 누적되고 관성화 되어 있어 현재의 노조운동이 답답한 지경에 놓여 있다는 것은 노조의 구성원 모두가 공감하는 지점이다. 지난 시기 양적 성장과 제도적 안정을 구축한 것은 사실이나, 이것이 노조 조직을 활성화하고, 조합원을 능동적이고 급진화 하였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지난 시기 위계적 구조는 강화되었고, 조합원은 대리 또는 대행에 익숙해지고 있다. 이러한 모습에 대한 주체의 비판적 검토에서 복수노조의 전면 허용(직접적으로는 교섭창구단일화 폐지)을 살펴봐야 한다. 물론 복수노조의 허용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비책일 수는 없다. 복수노조가 허용된다고 하여 지적된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복수노조를 내심 반기지 않는 이유는 어디에서 연유하는 지 솔직하게 점검되어야 한다. 복수노조에 대한 우려가 진정 무엇인지 점검되지 않으면, 복수노조의 허용이건 금지이건 간에 노조운동의 미래는 대단히 어둡게 될 것이다.

한편 이 시점에서 노조의 재정자립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사용자에게 전임자의 급여를 계속 받는 것과 노조의 재정 자립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특히 요즘과 같이 단체협약의 해지 등 공격이 전면화 되는 상황에서 노조가 뒷심을 가지고 투쟁할 수는 있는 재정적 환경을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재정적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조합원의 기여가 중요한데, 이는 단순히 조합비 인상의 문제가 아니다. 즉 조합원의 기여는 노조활동에 대한 포괄적 동의와 적극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관성적 구조 아래서 쉽게 동의되는 것이 아니다. 결국 노조의 충분한 재정적 환경을 만드는 것은 조합원의 자발성과 참여를 확보하지 않고는 가능하지 않은 것으로, 현재 노조운동의 변화는 불가피하다.

악법은 결국 자본의 의도대로 개정되었다. 복수노조는 교섭권과 쟁의권의 제한으로 그 의의를 실현하지 못하게 되었다. 과거의 경험한 바와 같이 개악된 악법을 분쇄하기 위해서는 실질적이고, 끈질긴 투쟁이 요구된다. 투쟁을 통한 악법의 개정이건 무효이건 간에 복수노조와 전임자 급여의 문제는 노자관계건 노조내부와 기존의 질서를 변화시키는 제도적 변화임은 분명하다. 노조운동은 새로운 질서를 어떻게 노동의 것으로 만들 것인가의 기로에 서있다. 변화에 대처하는 중요한 원칙은 노동자 대중이 스스로에 대한 근본적 회의를 걷어내고, 민주적이고, 자주적인 노조운동의 초심을 회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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