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10년ㅣ03월ㅣ연구소리포트] 현대자동차 영업, 연구분야 노동자들의 직무스트레스(3)




- 연구 분야 노동자들의 직무스트레스

한노보연 집행위원장 콩


1. 들어가며
2007년, 10~11월에 걸쳐 실시한 남양연구소 노동자들의 설문조사에는 당시 남양연구소위원회 조합원 4,066명 대비 67.5%에 해당하는 2,746명이 참여했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 직군은 연구직(61.0%)이고, 생산직은 응답자 중 31.6%였지만, 실제 조합원 규모를 고려할 때 설문 참여도가 가장 높은 직군은 생산직(968명 중 89.6% 참여)이었고 연구직과 일반직은 조합원 중 약 60%의 참여도를 보였다.
설문조사 결과에서 이들의 주요 직무스트레스 요인은 ‘조직체계’, ‘직무 불안정’, ‘관계갈등’ 영역으로 나타났다. 여성 노동자들은 이에 더하여 ‘직장문화’ 영역의 직무스트레스 위험도 높았다. 이 결과는 2005년 3월 금속연맹의 조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시에는 ‘물리환경’, ‘직무요구’, ‘관계갈등’, ‘직업불안정’, ‘조직체계’에 대한 직무스트레스가 한국 평균보다 높게 나타났다.
다만 이번 연구에서는 직무스트레스 실태를 성별과 직무에 따라 나누어 분석하고 심층면접조사를 통해 그 배경이 되는 노동조건을 좀 더 상세히 파악할 수 있었다. 여기에서는 대표적인 세 가지 영역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자.



■ 물리적 환경 영역의 스트레스


이번 조사에서 작업방식의 위험이나 신체 부담 등 ‘물리적 환경’에 의한 직무스트레스는 전국 참고치보다 높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직군과 성별로 나누어 분석해보면 생산직 남성 노동자들에서 전국 참고치보다 훨씬 높은 스트레스 위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이유는 이들이 수행하는 다양한 시험 업무나 장비 조작 등이 항상 크고 작은 안전 사고나 근골격계 질환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이들은 70% 이상이 일상적인 사고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거나 직접 크고 작은 사고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응답했다.
노동자들이 이처럼 사고를 자주 겪는 이유는 사고 예방 조치가 빈약하거나 형식적이어서 실제 노동 과정에서는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적은 수의 인원이-심지어 혼자서- 업무를 서둘러 마감해야 할 때야말로 가장 사고의 위험이 높은 때인데, 이런 경우에는 시간에 쫓기기 때문에 안전 조치를 무시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물론 물리적 환경이 그리 나쁘지 않다고 평가한 노동자들도 있었다. ‘사고 위험이 있긴 하지만 늘 그런 건 아니니까 괜찮다’, ‘유해물질을 사용하긴 하지만 매일 쓰는 것도 아니고, 죽을 병에 걸리는 것도 아니니 괜찮다’라는 얘기를 심층면접조사에서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다. 수십 킬로그램의 부품을 들어올리다가 허리를 다쳤던 노동자에게 보조설비가 필요하지 않냐고 질문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하루에 한두 번 하는 일인데 호이스트를 달라고 하긴 좀 그렇죠.”
이처럼 작업환경에 대한 평가기준을 ‘안전하고 건강한 삶’에 두지 않고 ‘죽거나 심각한 부상이나 질병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낮게 설정해 둔 노동자들이 얼마나 많을까. 일자리를 빼앗기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절박하기 때문에 몸에 해롭고 위험한 일도 묵묵히 견디는, 어쩌면 견디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인식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얼마나 많을까.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남양연구소 혹은 대한민국 노동자들의 ‘물리적 환경’ 영역의 직무스트레스는 심각하게 과소평가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 직무 요구 영역의 스트레스


일에 대한 시간적 압박이나 업무량의 증가, 과도한 책임감, 다기능화 등 ‘직무 요구’ 영역의 스트레스는 주로 연구직 노동자들에게서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신차 개발 일정에 따라 업무가 폭주하는 시기가 있는데, 차종이 다양해짐에 따라 이런 업무 폭주 기간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런 때에는 단지 업무량이 많아질 뿐만 아니라 정신적 압박감도 극심해지며, 심한 경우 일에 매달리느라 “거의 몇 달씩 아무 것도 못하고” 업무 이외의 것들을 포기한 채 생활하기도 한다.
이렇게 사람이 몇 달씩 바보처럼 사는 데가 없는거 같아요. (남들은) 바쁘다 바쁘다 해도 저녁 7시면 집에 가고 특근한다고 해도 많으면 한달에 두 번 일하시는데, 저흰 거의 몇 달씩 아무것도 못하고… 결혼도 되게 눈치 보면서 하고요. 신혼여행 때문에 정말 죄인이 되가지고…
특히 사람은 늘지 않고 개발하는 차종만 많아지다 보니 한 사람이 책임져야 할 업무량이 늘어나고 있어, 연구직 노동자들은 하루 12~14시간씩 일하고도 모자라 주말이나 휴일에도 일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시간이 모자라기 때문에 개발 차량 각각에 대해 예전보다 시간이나 노력을 덜 기울일 수밖에 없고, 그러다보니 업무에 대한 만족도나 성취감이 저하되는 상황이었다.
일이 많아진 것 자체도 스트레스지만, 업무량이 늘어나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기 때문에 스트레스는 한층 가중된다. 심층면접조사 중 회사를 다니면서 제일 힘들고 고통스러운 경험에 대해 질문했을 때, 어느 연구직 노동자는 ‘묵묵히 일을 하면 할수록 더 많은 일을 떠맡게 되는 것이 억울했다’라고 답했고, 또 다른 연구직 노동자는 ‘위에서 너무 현실을 모르고 일을 준다’라고 답했다. 즉 업무량 문제는 단지 일이 얼마나 늘었느냐는 것이 아니라 왜 늘었으며 어떤 결정 과정을 통해 늘었는지, 과연 그 일을 떠안아야 할 노동자 스스로 그 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등등 조직 체계와 현장 통제력의 문제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 조직 체계 영역의 스트레스


조직의 전략 및 운영체계, 조직의 자원, 조직 내 갈등, 합리적 의사소통 결여, 승진가능성, 직위 부적합 등과 관련된 직무 스트레스 위험요인들을 포괄하는 ‘조직 체계’ 영역의 직무 스트레스는 남양연구소 내 모든 성별과 모든 직무의 노동자들에서 전국 참고치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 이는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의 조직 구조나 조직 운영 방식이 모든 노동자들에게 예외없이 직무 스트레스 위험을 높이고 있으므로,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1996년 팀 체계로 개편한 이후 남양연구소는 센터-실-팀-워킹그룹의 체계로 운영되고 있다. 그룹장은 워킹그룹 안에서 업무 지시 뿐 아니라 일상적인 근태관리나 고과권을 비롯한 절대적인 권력을 갖는다. 따라서 그룹장의 성향에 따라 그룹의 일상적인 업무 수행이나 분위기는 천차만별이다. 또한 이들 그룹장들에 대해 팀장이, 팀장들에 대해 실장이, 실장들에 대해 센터장들이 각각 막강한 영향력을 미친다.
그러나 관리와 통제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이런 수직적 구조 속에서 노동자들은 적성이나 능력과 관계없는 마구잡이식 업무 배치, 공평하지 않은 업무 분배, 본연의 역할을 얼마나 잘 수행했느냐와 아무 상관없는 업무 평가, 진급에서의 학력 차별, 관리자의 사적인 감정을 토대로 한 고과 평가, 상명하달식 업무 지시와 ‘까라면 까는’ 군대식 조직문화 등 수많은 스트레스 요인들에 시달리고 있었다.
또한 차종을 늘리려면 그에 맞는 인원도 늘려야 하는데 인원 충원은 최소한으로 한 채 각 개인을 쥐어짜는 방식, 그렇게 많은 일을 하도록 강요하면서도 일을 좀 더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는커녕 심지어 처음 접한 업무를 어떻게 수행해내야 하는지 아무런 교육이나 지원을 하지 않는 현실, 말로만 ‘자기개발’을 하라고 할 뿐 실제로는 전혀 노동자들의 자기개발을 배려하지 않는 이율배반적인 태도에 대한 실망과 분노도 많은 노동자들의 경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2. 직무스트레스의 영향



1) 노동의 소외


남양연구소 노동자들은 노동 과정 전반에 걸쳐 심각한 노동의 소외를 겪고 있다. 자신의 노동에서 보람을 찾지 못하고, 창의력을 발휘하거나 의견을 개진할 기회는커녕 불합리한 업무지시에 순종해야 하는 일상의 경험이 쌓이면서 노동자들은 노동의 주체가 아니라 수동적인 대상이 되고 있다. 대상화-소진-수동적 대응-창의력 제한과 왜곡-대상화 심화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2) 육체적 건강의 훼손


자신의 건강 상태를 주관적으로 평가하는 ‘주관적 건강 수준 지표’를 조사한 결과, 부정적인 평가는 일반 인구 집단에 비해 두배 가량 높은 16.2%였고, 긍정적인 평가는 일반인구 집단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77.1%가 만성 피로에 시달리고 있었고, 심지어 ‘고도의 피로 상태’로 즉시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하는 이들이 54.3%에 이르고 있었다. 만성 피로의 원인은 업무로 인한 육체적․정신적 부담(61.0%), 동료나 상사와의 불편한 관계(11.7%) 등 대부분 일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설문참여자의 62.6%는 근골격계 증상 경험자였고, 증상이 심하여 즉시 의사로부터 진찰을 받아야 하는 이들도 약 30%에 달했다. 증상 경험자 가운데 87.4%는 자신의 증상이 업무와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산재보험으로 치료받은 경우는 2.0%에 불과했다.
실제로 의사로부터 진단을 받은 만성 질환 유병률을 일반 인구 집단과 비교할 때 남양연구소 노동자들은 추간판탈출증(디스크), 위십이지장 궤양, 간경변증, 고지혈증, 알레르기성 비염, 악관절 질환 등의 유병률이 높았다. 모두 노동환경이나 직무스트레스에 의해 발생 혹은 악화되기 쉬운 질환들이다.



3) 정신적 건강의 훼손


사회심리적 스트레스 지표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들 중 단 2.6%만이 ‘건강군’에 속하며, 67.7%는 ‘잠재적 스트레스군’, 29.7%는 ‘고위험 스트레스군’으로 진단되었다. 고위험 스트레스군의 경우 현재와 같은 스트레스 상황이 지속될 경우 각종 정신질환의 위험이 높아진다고 해석한다. 이에 실제 정신건강 지표들 가운데 대표적인 우울 증상을 조사했더니 12.5%가 중등도 이상의 우울 상태로 나타났다.



4) 일상의 황폐화


남양연구소 노동자들의 하루 일과는 오로지 노동으로 채워지고 있으며, 특히 노동시간에 대한 자기 결정권이 거의 없는 연구직 노동자들은 더욱 심각했다. 오전 8시 전에 회사에 도착해서 오후 9시에 퇴근하면 13시간을, 오후 7시 반에 퇴근하면 11.5시간을 회사에 머무르는 셈인데, 여기에 출퇴근에 소요되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이들에게 ‘개인 시간’은 거의 없었다.
이러다보니 연구직 노동자들에게 개인 취미 생활은커녕 가족이나 친구, 동료 등 최소한의 사회적 유대 관계를 유지하기조차 벅차고, 심지어 최소한의 노동력 재생산을 위한 수면시간조차 부족할 정도다. 아래 몇몇 연구직 노동자들과의 심층면접조사에서 파악된 하루 일과를 요약하여 소개한다.

아침 6시 20분에 일어나 동물적인 본능으로 출근 준비를 마치고 6시 40분쯤 출근 버스를 탄다. 아침 식사는 안 먹는다. 그 시간에 더 자야 된다. 저녁 7시 40분 버스로 퇴근한다. 밤 10시 퇴근 버스가 없어져서 다행이다. 주말엔 잠만 잔다. 맞벌이를 하는데, 집은 부부의 공동 숙소일 뿐이다.
5시 30분에 일어나 6시 30분 출근 버스를 탄다. 저녁 7시 30분에 퇴근하려고 노력한다. 예전엔 9시에 퇴근해서 집에 가면 10시 30분이었다. 다 내 손해일 뿐이었다. 도저히 못 버티겠더라. 앞으로 애들 생기면 애들이 아빠를 못 알아볼까봐 걱정이다.
아침 5시 40분에 일어나 6시 20분에 출근 버스를 탄다. 9시 버스를 타고 퇴근 후에는 인터넷이나 영화를 보다가 12시 30분쯤 잔다. 자는 시간이 모자라서 버스만 타면 기절했다가 내릴 때가 되면 저절로 깬다. 수요일만이라도 5시에 퇴근하는 게 위안이다.



4) 노동의 소진과 비전 부재


남양연구소 노동자들은 회사를 신뢰하지 않는다. 그나마 업계 최고의 회사라는 자부심조차 접은 지 오래다. ‘최고의 자동차를 만드는 최고의 장인’이 되고 ‘자신의 적성과 전공을 제대로 살리고 싶’어 입사했던 자신의 꿈도 접었다. 노동자들이 꿈꿨던 자아 실현에 회사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으며, 오로지 명령에 고분고분 따르는 도구가 되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혼자 아무리 노력해보아도 넘쳐나는 업무량 때문에 그 어떤 일에도 창의력과 정성을 쏟을 틈이 없고, 그러다보니 일을 통해 만족을 느낄 수도 없다. 뒤를 돌아보면 무얼 해왔는지도 모르겠고, 앞을 내다보아도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생활. 어떤 삶이 될지 하루하루 몸과 마음이 소진될 뿐인 남양연구소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여기가 제일 내가 즐겁게 일 할 수 있는 데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들어왔는데 실상은 이제 자동차를 만들기보다는 보고서를 만들고 있으니깐… 그게 좀… 포부요?
그런 건, 제가 그런 게 많이 없어져 가지고. 입사했을 때 상당히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죠. 내가 주도하는 어떤 차량 개발 그걸 실제로 구현해 내는 것이 목표였는데. 지금은 뭐 가장 큰 목표는 가능한 한 몸 건강히 할 수 있는 업무를 하자 그게 이제 목표구요.
제가 여기 들어올 때 열 가지를 딱 적었어요. 열 개는 딱 하고 가자. 내가 다 설계한 걸로 차 한번 다 만들어보자… 그리고 할 거 되게 많았는데. 생각나는 게… 다 사라졌네. 바보가 되는거죠.
처음에는, 진짜 최상의 자동차를 만드는데 내가 이제 이 한 몸을 불살라가지고 혼을 다해서 만들어보자, 이런 생각 있었죠, 그런 마음이 많이 깎여나갔죠.
아, 살아보니깐 정말 변했어요 아주.
꿈을 잃어버린 것 같아요. 회사에서 주어진 일만 하다 보니까 꿈은 솔직히 지금 없어요. 그런 꿈을 가질 수 있게끔 회사가 꿈과 희망을 줘야하는데 이거는 뭐 오로지 지쳐가는… 21시에 퇴근해서 무슨 자기개발입니까.




3. 직무스트레스 발생 기전



1) 과도한 개발기간 단축과 다층적인 과다업무량


자동차 산업에서 신차 개발기간 단축은 개발 비용을 줄여 원가를 절감하고, 개발단계부터 투입된 자금을 보다 빠르게 회수하며, 시장의 수요 변화에 맞추어 적기에 상품을 내놓을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경쟁 요인으로 여겨진다. 이에 세계 자동차 자본들은 너나할 것 없이 신차 개발기간 단축에 힘을 쏟고 있으며, 현대자동차 자본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도요타의 4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연구개발 인력 규모로 세계 수준의 개발기간 단축과 다품종화 추세를 따라가려 한다는 데 있다. 게다가 CI(원가절감)나 특허 따기 등 부수적인 업무가 너무 많아 본연의 업무를 할 시간이 모자라고, 노사 공동의 검토를 거친 최소한의 업무 표준조차 없이 중간 관리자가 업무에 대한 전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상황이 더욱 악화되곤 한다.



2) 위계적이고 비민주적 운영 및 소통


남양연구소는 센터-실-팀-워킹그룹의 체계로 운영되고 있다. 각각의 단계에서 상급자들은 업무지시, 고과, 인사권을 가지고 막강한 위계적 권력을 행사한다. 또한 센터는 센터끼리, 실은 실끼리, 팀은 팀끼리 상호 경쟁하며 소속 노동자들을 수평적으로도 분할한다.
게다가 회사는 연구직과 생산직, 일반직의 차이를 구조적으로 강화하면서 노동자들을 다시 한번 수평적으로 분할한다. 직군에 따른 차이는 나이나 근속기간, 학력 등 개인 인적 사항 뿐 아니라 임금체계나 평가 및 승진 구조 등 노동조건과 노동자 사이의 관계 및 문화에서도 뚜렷이 구별된다.
이런 수직적 통제와 수평적 분할을 통해 현대자동차 자본은 폭력적으로 개발기간을 단축하고도 노동자의 별다른 반발과 저항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는 비민주적 조직운영 방식을 고착화시키고, 일선 작업 역량은 턱없이 부족한데도 이를 통제하는 관리 역량은 넘쳐나는 기형적인 조직 구조를 초래해왔다.



3) 업무 책임을 개인에게 할당하는 운영방식


만성적인 인원 부족 때문에 하나의 과업에 대한 책임을 극소수의, 심지어 단 한 명의 노동자가 전적으로 져야 한다. 개인 할당 업무를 달성하지 못하면 고과-승진-임금-고용 등의 불이익을 감내해야 한다. 이런 현실은 개별 노동자들에 대한 보이지 않는 통제력으로 작동하고 있으며, 특히 연구직에서 그 폐해가 극심하다.
남양연구소 노동자들은 직무스트레스 요인 중 ‘직무자율 영역’의 위험이 그리 높지 않아, 자기 업무에 대한 재량권과 결정권이 부족하지는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업무량은 많고 인원은 부족하며 업무에 대한 책임을 한 명의 노동자가 짊어져야 하는 운영방식 속에서는 자율성이 꼭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노동자들의 상호 연대를 차단하고 자발적인 노동강도 강화를 유도할 위험이 크다. 개인주의와 자발적 노동강도 강화가 이미 노동자들에게 내면화되어 있음을 심층면접에서도 종종 발견할 수 있었다.



4) 고과-승진-임금-고용을 통한 일상적 현장통제


고과-승진-임금-고용을 중심으로 한 현장통제는 그 자체로 노동과정 상의 수많은 문제를 초래하는 동시에 노동강도 강화와 직무스트레스를 야기하는 다른 요인들을 고착시키는 핵심 요인이다.
특히 연구직 노동자들은 생활에 필요한 수준의 임금을 얻기 위해서는 오로지 승진을 해야만 하고, 승진을 하려면 고과를 잘 받아야 하고, 그러려면 고과권을 쥐고 있는 상급자에게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 그러나 막상 승진을 해서 과장급이 되면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을 수 없고 언제든지 해고당할 수 있어 더 높은 직급으로의 승진이 아니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인식이 뿌리 깊다.
이런 집단적인 경험을 통해 연구직 노동자들 스스로 자기 권리를 위한 저항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패배감이 고착화되는 것까지 고려하면, 이 구조의 현장통제력은 실로 막강하다.





4. 요약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 노동자들의 직무 스트레스는 과도한 개발기간 단축과 다층적인 과다업무량, 위계적이고 비민주적 운영 및 소통, 업무 책임을 개인에게 할당하는 운영방식, 고과-승진-임금-고용을 통한 일상적 현장통제 등을 통해 형성, 강화되어왔다. 이는 ‘글로벌 스탠다드’로서 ‘인간존중의 경영’과 ‘환경친화적 생산’을 경영이념으로 내세우는 현대자동차 자본이 사실은 노동자의 몸과 삶보다는 이윤을 절대 선으로 삼아왔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현대자동차 자본은 때로는 비용절감을, 때로는 품질을 최우선의 과제로 내세우며 노동과정을 기획, 운영해 왔다. 그 결과 노동과정과 노동자의 일상은 신차 개발 프로젝트 주기와 경쟁력을 중심으로 왜곡되어 왔다. 기획, 디자인, 설계, 선행해석, 시작, 시험 등 전 업무과정에 걸쳐 노동자들의 몸과 삶이 이토록 훼손당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마른 수건도 쥐어짜면 물이 나온다’라고 하지만, 실제로 마른 수건을 쥐어짜보라. 수건만 찢어지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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