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10년 5월-세 세상 열기] 활동보조는 장애인의 생존권

세 번째 이야기

 활동보조는 장애인의 생존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교육국장  남 병 준

namtoosa@naver.com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유난히 추웠던 2005년 말 경남 함안에서 독신 생활을 하던 40대의 장애남성이, 수도관이 터져 방안에서 동사(凍死)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언론에서 크게 다루지는 않았지만 장애인의 슬픔과 분노는 너무나 컸고, 이동권투쟁으로 단련된 장애인들은 더 이상 절망만 하고 있지 않았다. 그동안 가족의 짐이 되어 살거나, 시설에 처박혀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 죽음을 기다려야했던 중증장애인들이 자신들에게 강요된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선택을 거부하고 인간다운 삶의 권리를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목숨을 건 활동보조 제도화 투쟁

2006년 3월부터 시작된 활동보조 제도화투쟁은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기 시작했다. 활동보조란 말 그대로 장애로 인해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의 일상 활동을 보조하는 유급보조원 파견서비스로서, 장애인의 자립생활에 무엇보다 중요한 사회서비스이다.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싶은 때에 먹고, 가고 싶은 곳을 가고 싶은 때에 가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은 때에 하고, 나아가 자기 스스로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은 인간의 당연한 권리이다. 활동보조를 통해 장애인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수십 년 장애인의 생활에 필요한 활동보조서비스가 무상으로 제공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한강다리를 기어서 건너는 투쟁과 23일간의 집단단식투쟁 등 중증장애인들의 목숨을 건 극단적 투쟁의 결과 비로소 2007년에 전국적으로 시행되게 되었다.


예산에 질식당한 인간의 권리

중증장애인의 투쟁으로 활동보조제도가 시행되었지만,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하고 문제가 많은 상황이다. 복지부의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활동보조를 필요로 하는, 즉 일상생활의 대부분을 타인의 도움에 의존하는 장애인은 약35만 명으로 추산되지만, 2010년의 사업계획은 고작 3만 명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1급 장애인으로만 서비스신청자격을 제한하고, 또다시 필요도 조사를 통해 최중증장애인으로만 서비스를 제한한 것이다.

서비스제공시간 역시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에는 어림없는 수준이다. 아무리 장애가 중하고 환경이 열악해도 월 최대 이용시간은 고작 100시간에 불과하고, 최중증 독거장애인에 대한 특례도 월 최대 180시간에 불과하다. 게다가 장애인에게 월 최대 8만원까지 본인부담금을 내도록 강요하고 있다. 이러한 장치들은 오직 장애인의 권리를 제한하고 예산을 아끼기 위한 것이다.


장애인복지마저 후퇴시키는 이명박 정권

활동보조 제도개선을 위한 장애인들의 투쟁은 전국 각지로 번져갔고, 투쟁을 통해 지역에서 추가적인 복지를 쟁취하는 사례가 늘어갔다. 장애인운동이 발전하는 한편으로 장애인운동에 대한 탄압도 거세어졌다.

지난해 복지부와 서울시는 불법집회에 참여하는 장애인에게 활동보조를 제공하지 말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가 비판이 거세지자 슬그머니 말을 바꾸었다. 중증장애인의 생존이 달린 문제를 가지고 협박을 한 것이다. 지난 연말, 복지부는 활동보조 예산이 바닥났다며 8개 지자체에 대해 서비스 신규신청을 금지시켰다. 장애인복지가 선착순으로 전락한 것이다.

지난해 12월 31일, 한나라당이 날치기로 2010년 예산을 처리하면서 장애인활동보조 예산까지 대폭 삭감시켰다. 서비스가 확대되고 제도가 개선되기는커녕 복지부는 예산부족을 이유로 활동보조 사업지침을 개악하였다.


장애인의 생존을 위협하는 활동보조 지침개악

활동보조 제도개선에 대한 장애인의 염원과는 반대로, 복지부는 장애인의 삶을 위협하고 인권을 짓밟는 지침개악을 강행하였다.그동안 월 최대 4만원으로 제한되었던 장애인의 본인부담금을 월 최대 8만원으로 인상하였고, 활동보조서비스를 신청하는 사람 뿐 아니라 2년 이상 서비스를 이용한 사람도 장애등급심사를 받도록 지침을 개악하였다. 활동보조인 교육비 자부담이 인상되었고, 서비스를 못 받은 경우에도 다음 달로 이월을 금지시켰다. 예산의 논리로 장애인의 권리를 정면으로 탄압하기 시작한 것이다.


장애인의 수를 줄여 복지예산을 줄이려는 복지부

장애등급심사 의무화의 위력은 실로 엄청나다. 종전에는 의사의 진단으로 장애등급이 확정되었는데, 이제는 장애등급심사센터에서 장애등급판정이 타당한지 여부를 서류심사를 하도록 된 것이다.

정부는 복지의 형평성과 예산집행의 효율성을 말하지만, 실제는 장애등급판정을 엄격히 하여 중증장애인의 수를 줄여 예산을 절감하기 위한 것이다. 최근 3년간의 장애등급심사로 무려 30%에 달하는 장애인들의 등급이 하락된 사실이 이를 잘 입증하고 있다. 복지를 늘여 장애인의 고통을 줄여야 할 복지부가 중증장애인의 수를 줄여 복지예산을 깎으려는 것이다.

장애등급심사 결과 2급으로 하락되면 아무리 활동보조가 필요한 사람이라도 활동보조가 중단되고, 3급으로 하락되면 장애인연금의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혼자서 거동할 수 없는 수많은 중증장애인들이 2,3급으로 떨어져 서비스가 중단되고 있다.


시장경쟁에 내던져진 장애인의 인권

2010년 장애인계의 가장 큰 화두는 장애인장기요양제도이다. 2007년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을 만들 당시 국회에서의 부대결의를 통해 2010년에 제도도입에 관한 논의를 하기로 예정된 상태이고, 복지부는 그동안 추진단을 구성하여 장애인장기요양제도 건설을 준비해왔다. 활동보조제도가 신변처리와 외출 등의 서비스로 제한된 반면, 장기요양제도는 활동보조에 방문간호나 간병 등이 추가된 더욱 폭넓은 제도로 논의되고 있었다. 장애인에 대한 서비스가 확대된다면 마땅히 환영할 일이겠지만, 지금 정부의 장기요양제도 추진과정은 오히려 개악의 우려만을 낳고 있다.

이명박 정권에 의해 만들어진 장애인연금제도가 기존의 장애수당을 이름만 바꾼 사기극으로 판명이 난 것처럼, 이명박 정권에 의해 만들어질 장애인장기요양제도 역시 장애인들의 기대와는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장애인장기요양제도란, 활동보조에 비해 서비스의 개념은 확대될지 몰라도 서비스의 양에 있어서는 기존의 활동보조제도에서 크게 확대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정부는 장애인복지예산을 오히려 축소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도입하려는 장애인장기요양제도의 진짜 목적은 사회서비스를 시장화시키기 위한 시스템의 개편에 있다. 현재 활동보조 제도는 형식적으로나마 정부의 책임이 있는데, 이제 장기요양제도를 만들어 시장경쟁에 내던지려는 것이다.


사회서비스 시장화의 음모

활동보조제도는 정부가 책임지는 공적서비스가 아니라 장애인에게 일종의 서비스 이용권(바우처)을 발급하고 민간의 바우처사업기관에서 서비스를 파견하는 ‘바우처제도’이다.

바우처제도의 문제점은 심각하다. 서비스 파견기관은 모두 비영리기관들이지만 실제 수수료 수익을 놓고 경쟁하는 구조로 영리기관과 차별성이 없어지고, 지역사회의 복지네트워크는 적대적 시장경쟁 관계로 해체되고 있다. 활동보조인의 노동기본권은 전혀 보장받지 못하고, 시장경쟁 속에서 지역 간 기관별 격차는 심해지고 서비스 질 관리는 개념도 없다.

사회서비스의 공공성을 강화하라는 장애인의 요구와는 반대로 정부는 보험제도의 장기요양제도를 만들어 시장화에 마침표를 찍으려 하고 있다. 자부담을 폐지하고 무상으로 사회서비스를 보장하라는 장애인의 요구와는 반대로 정부는 자부담을 인상하여 장애인의 권리를 부정하려 하고 있다.


또 다시 타오른 중증장애인들의 투쟁

지금 광화문에선 중증장애인들의 치열한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비참하고 억울한 현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광화문광장에서 신문고를 울리려는 장애인과 그것을 가로막는 경찰들의 몸싸움이 매일같이 벌어지고 있다. 예산을 삭감하고, 제도를 개악하고, 권리를 짓밟는 이명박 정권에 맞서 자신의 생존권을 되찾기 위한 중증장애인들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활동보조투쟁은 시설과 골방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투쟁이다. 활동보조투쟁은 동정과 시혜의 대상이 아닌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기 위한 투쟁이다. 활동보조는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의 권리 바로 그것이다.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한노보연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