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10년ㅣ6월] 유노무사의 상담일기

정보통신기술의 확산에 따라 사업분야를 망라하여 개별 사업장에서는 생산성 강화를 위해 다양한 형태의 관련 기술 도입이 급증하고 있다. 게다가 정보통신기술이 업무과정의 핵심적 요소로 쓰이면서 작업통제 등을 위한 감시수단으로도 사용되고 있어 해당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작업과정은 물론 사적인 영역에서까지 권리 침해의 가능성에 상시 노출되어 있다.

노무법인 필 노무사 유 상 철



“누군가 벽에 구멍을 뚫고 나를 지켜보고 있다.”
작년 겨울, 강추위가 엄습한 날. 잠바를 턱 위까지 올린 남성이 상담실로 들어섰다. 서울역 근처의 쪽방촌에서 살고 있는 남성은 주변 이웃들이 자신을 24시간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한다. 동네 슈퍼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무슨 책을 읽었고 어떤 TV를 보았는지 모두 알고 있다는 것이다. 벽이나 천장에 구멍이 뚫려 있는지 찾아본 적도 많지만 발견할 수는 없었다고 한다.

“누군가 나의 직장생활을 감시·통제하고 있다.”
얼마 전 이직한 다른 남성은 누군가 자신의 일상생활을 감시하고 통제한다고 말한다. 입사 후 1~2주 정도 지나 회사 생활에 적응할 무렵이면 사람들의 태도가 변한다는 것이다. 맡은 업무를 열심히 하는데 늘 주변 사람들은 자신과 대화도 하지 않고 때로는 불필요한 업무를 지시하며 자신을 지치게 한다는 것이다. 핸드폰 통화를 하더라도 대화 도중 끊어버리는 일도 빈번해지면서 또다시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는 것이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자신이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도록 주변을 통해 감시하고 통제하여 사회에서 매장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앞의 두 가지 상담의 경우 공통점이 있다. 두 사람은 어떠한 이유인지 모르지만 감시․통제라는 불안과 강박으로 인해 스스로 고립되어 고통 받고 있다는 것이다. 정신과적 치료를 권유하고 싶지만 매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다.


#. 일상을 파고드는 전자감시시스템

지난 토요일 어린이집에서 학부모 참여수업이 있었다. 어린이집을 옮기고 처음 보육실에 들어가며 맨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천장에 달려 있는 CCTV였다. 서울형 어린이집은 서울시에서 민간어린이집을 인가해주고 국․공립 시설에 준하는 일정한 지원을 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서울형 어린이집으로 인가 받기 위한 주요 평가기준에 CCTV 설치를 통한 IPTV 생중계 여부가 있는 것이다. 어린이집에 설치된 CCTV에 눈길이 갔던 것은 IPTV 생중계와 관련하여 노동조합 담당자와 상담을 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어린이집의 CCTV는 대부분 보육노동자의 동의조차 거치지 않았고, 보육아동에 대한 관리를 넘어 보육노동자에 대한 과도한 감시․통제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해법이 필요한 실정이었다.


# 사업장 전자감시와 노동자의 인권


사업장에 전자감시시스템을 도입하는 이유를 보면 최소한 사업에서의 필요성이 있다는 것, 사용자의 권리와 전자감시기술의 활용범위가 확대되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반면 이 과정에서 전자감시 시스템에 직접 노출되는 노동자의 기본권 침해, 전자감시의 오․남용 등에 대한 기술적 제약의 필요성, 노동자의 권리 보호를 위한 제도적 규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점에 대한 해법은 뒷전으로 밀려있다.
2007.11월 인권위는 「사업장 전자감시에서 근로자의 인권보호를 위한 법령․제도 개선권고」를 하였다. 인권위는 사업장에서 각종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통제와 감시는 특히 사생활을 비롯하여 개인정보뿐만 아니라 노동기본권 등에 대한 침해를 야기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노동자의 인권에 관한 중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개별 사업장들의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감시실태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책 및 입법적 개선의 필요성을 인정하였다.
사업장 단위에서 전자감시를 적극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별도의 법률을 마련할 때 ① 사업자에서 전자감시의 명확한 허용범위를 규정, ② 전자감시의 도입과 운영에서 근로자의 최소한의 권리보호, ③ 전자감시로 수집된 근로자 정보의 보호, ④ 사용자의 전자감시 오․남용으로 인한 피해에 대한 구제방안 등을 규정하도록 하였다.

나. 전자감시의 도입과 운영에서의 근로자의 최소한의 권리보호 장치로서,
1) 사용자가 전자감시 이외에는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없다는 불가피성을 사전에 객관적인 방법으로 제시하도록 할 것,
2) 사용자는 전자감시 장비의 설치내역, 감시정보의 보관사항, 감시종류․기간․방법 등 세부내용을 전자감시를 도입하기 전에 일정기간을 정하여 그 기간 내에 공개하도록 할 것,
3) 이러한 공개사항에 대해 근로자들의 참여와 평가가 동 법률상 권리로서 보장될 수 있도록 할 것,
4) 전자감시를 새롭게 도입하거나 기존의 전자감시 설비를 확대할 경우 근로자의 사전동의를 받도록 하되, 사용자의 충분한 사전 설명과 교육이 있어야 할 것 등을 규정하여야 하며,


하지만 인권위 권고 이후 바뀐 것은 노사협의회에서 “사업장 내 근로자 감시 설비의 설치”에 대해 협의하도록 한 규정외에 별다른 입법적,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고 있다. 그러는 사이 전자감시시스템을 이용한 노동자 감시․통제는 필요 최소 범위를 넘어 노동자의 일상에까지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어린이집 IPTV 생중계를 반대하는 보육노동자는 다음과 같이 외쳤다. “우리는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고객의 물건을 잘 보관하는 도구로 전락시키는 노동조건을 거부한다. 이 거부는 아이들과 부모들과 노동자들을 위한 거부이다. 그것의 시작이 CCTV와 IPTV설치 반대인 것이다. 보육현장에 CCTV를 내리고 아이들에게 관심과 돌봄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인력확충, 보육활동에 대한 교사-학부모간 충분한 소통과 이를 통한 신뢰구축이 본질적인 대안임을 알려 나갈 것이다. 교사와 영유아의 유일한 생활공간인 ‘보육실 IPTV 생중계’가 갖고 있는 위험성에 대해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하는 이 시점에서 모두 같이 출발했으면 한다.” 전자감시시스템을 통한 감시․통제의 문제에 대한 다양한 해법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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