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10년ㅣ6월 l 기획ㅣ 노안활동가에게 듣는다] 우리가 되기 위한 나의 벽 허물기


우리가 되기 위한 나의 벽 허물기



▸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노동안전보건국 국장, 산업보건연구회 김 은 미 동지
▸ 인터뷰 & 정리 _ 한노보연 상임활동가 타 래


대구 경북지역에서 지난 20여 년간 노동안전보건운동의 선도적 주체로 활약해온 산업보건연구회(이하 산보연), 노동자 건강권 쟁취를 위해 끊임없이 분투하며 자리매김 해온 산보연의 역사에는 김은미 동지의 노력과 굳건함이 있었다. 차분한 음성에 여린 모습이지만 대화를 나눌수록 외유내강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강인한 의지와 열정, 활동가 다운 기개가 느껴지는 동지였다.

“제가 대단한 활동가도 아니고 별로 내세울 만한 것도 없는데 인터뷰라니요...”
인터뷰 요청을 하자 쑥스러워하며 한사코 주저해 온 김은미 국장. 인터뷰를 위해 그를 만나기 힘들었던 것은 산업보건연구회의 사무국장으로,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노동안전보건국에서 겸임으로 활동하느라 몸도 시간도 남아나질 않아서인 듯 했다. 그래서인지 김은미 동지의 얼굴은 여름도 멀었는데 벌써부터 까맣게 그을려 있었고, 겨우 시간을 내어 잡은 인터뷰 당일도 바쁜 일정을 마치고 돌아와 숨 돌릴 틈 없이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 직후엔 건설노동자, 산재노동자와 함께 매주 화요일 저녁마다 하고 있는 “걷기모임”이 일정으로 잡혀 있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지역의 조건들, 또 개인적인 사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매우 힘든 시기를 보냈어요.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고 몸도 안 좋았어요. 그런 상황이 7~8년 이어졌고 병원도 여러 번 찾아갔었어요. 의사 말이, 연료가 바닥난 자동차를 억지로 한참을 몰고 온 상태라더군요. 그러면서 의지도 박약해져 갔고 마치 바닥에서 지하로 꺼질 것 같은 위기감을 느꼈어요. 그런 상태를 어떻게든 탈출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심신수양을 위해 단식을 2008년부터 시작해서 1년에 한 번씩 하고 있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바닥에서 조금 위로 끌어 올려놨지요.
최근에는 걷기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몸 많이 나빠지기도 했지만 산업보건연구회 활동이 많이 어려워졌어요. 열심히 활동하던 회원들이 많이 있다가 활동을 그만두고 각자 활동을 찾아 가면서 회원도 줄고 산보연이 계속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런 과정에서 뭔가 좀 새롭게 해보려고 산재노동자 모임도 하고 현장노동자와 좀 더 가깝게 지내려고 노력도 많이 했는데 여전히 힘든 부분이 많았어요. 그런 과정에서 심신을 단련하고자 단식도 하게 되었고 회복과 유지 차원에서 열심히 걷고 있습니다.


어떻게 노안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첨부터 노안활동을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막연히 노동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막상 시작하려니 겁이 많이 났죠. 전투적인 노동운동을 떠올리면서 저같은 사람은 할 수가 없는 거라고 여겼죠. 그러다 이십대 초반에 아는 선배소개로 노동탁아소에 갔어요. 아주 영세한 공장에 다니는 저소득 노동자들의 자녀들을 돌보는 일이었어요. 그렇게 노동자를 직접 만나고 노동자의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면서 조금씩 자신감이 생겨 현장에 갈 수 있었어요. 그 당시 대구 지역에서는 전략사업장을 몇 개 지정해놓고 활동가들이 들어가곤 했는데 저도 그렇게 나름 준비를 해서 우여곡절 끝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자동차 부품인 헤드램프를 조립하는 곳이었어요.
거기서 제가 첨으로 산재를 당했죠. 램프 체결 작업을 하던 도중 기계에 손이 끼는 사고를 당했는데 젤 먼저 든 생각은 ‘내가 뭔가 잘못 했구나!’였어요. 기계 오작동이나 다른 원인에 대해선 전혀 생각이 안나더라구요. 무서워서 장갑도 못 벗고, 다친 손을 거머쥐고는 부들부들 떨면서 “내가 왜 이랬지, 내가 왜 이랬지...” 이러고 있었어요. 그렇게 겁에 질려 울면서 서 있으니까 동료가 와서 조장에게 얘기했고 그때서야 장갑을 벗어보니 살갗이 벗겨지고 피멍이 들어 있더군요. 지금 생각해보면 병원에 가야 할 정도였는데 약 바르고, 반창고 붙이고 다시 일했죠. 아마도 그 때, 그 기억이 지금 제가 노안활동을 하게 된 데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 같아요. 그 당시엔 노조조직이 목적이었기에 그 일은 그냥 그렇게 넘어갔지만...
노동조합을 만들어 보려고 저와 동지 한 사람, 이렇게 둘이서 현장 안에 모임도 만들고 이런 저런 준비를 해가던 시기에 새로 들어온 사람이 회사에 일러바치는 바람에 해고 되었죠. 1년 반쯤 복직 투쟁을 했지만 좌절되었고 그러던 중, 장기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 산보연에 들어오게 되었어요. 벌써 16년째구나...올해가 벌써....이렇게 말하니 너무너무 부끄러운데....후배를 못 키워서 아직도 (상근으로) 혼자 있어요.


산업보건연구회는 어떤 곳인가요?


구성원은 노동자, 사무직 노동자, 보건의료쪽, 산재노동자도 있고, 노동조합 단위도 들어있어요. 노동조합 같은 경우는 산보연 활동에 참여하기보다는 후원하는 정도이고요. 산재노동자들 같은 경우, 요양 중에 회원이 되었다가 종결이 되고 난 후는 단절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중 몇 명은 아직도 남아서 활동하고 있어요. 근데 전적으로 산보연 활동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없는 상태죠. 다들 각자 다른 단체 활동을 하고 있거나, 상근을 하거나, 노동조합 일을 하거나, 자기 업이 있거나 해서 산보연에 전념하기 힘든 상황이죠.
첨엔 이런 형태의 단체가 아니었고 87년도 즈음해 민중진료실, 노동진료실이라는 이름을 거치며 보건의료인이 중심이 되어 활동을 해왔었죠. 그러다 제가 상근으로 들어오면서 좀 더 노동운동적인 방향으로 중심이 이동했고 주체도 바뀌었어요. 후원이나 측면지원보다는 현장에서 주체들이 형성되어야 된다고 생각했고 당시의 전반적인 사회변혁운동의 방향이나 흐름도 그랬던 것 같아요. 초기에는 금속 중심으로 사업을 진행했어요. 금속이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아가게 되면서 다른 업종에 눈을 돌리고 활성화 시키려고 노력을 했는데 좀 지지부진한 면이 있었죠.


당시 진행했던 금속중심이 아닌
다른 업종에서 전개했던 활동 중 한 가지만 소개해 주신다면?


지금의 근골실태조사처럼 -당시엔 ‘근골격계 질환’이라는 말을 잘 안 썼어요- 96년 당시 버스노동자들을 상대로 ‘요통실태조사’를 통해서 버스 노동자들의 건강권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어요. 당시엔 버스 노동자들이 산재인정이 거의 안 되었거든요. 이런 상황에서 회원들이 역할을 나눠서 1년 동안 ‘척추건강상담소’라 이름을 붙여 버스노동자들과 만나 상담도 하고 사례도 모으면서 실태조사의 한 축으로 배치를 하고 교육도 배치했죠. 그 성과로 조사연구 발표회도 하고 개개인의 사례를 모아 투쟁도 만들어 내고...그나마 이런 노력들 속에서 버스노동자들이 실제로 산재인정투쟁도 하고 그런 과정들을 통해 산재인정이 비교적 나아졌죠. 우리가 해서 그렇게 되었다기보다는 우리가 지원한 교육활동이나 연구활동들이 버스노동자가 스스로 의식도 변화시켜내고, 주체가 되어 투쟁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재료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최근에 집중하고 있는 활동은 무엇인가요?


산보연 자체적으로 활동을 만들어 가기엔 역량이 부족한 상황이라 민주노총 본부활동에 매진하는 편이예요. 작년부터는 민주노총 중심의 사업들이 진행되고 있는데 총연맹에서 기획되는 것을 지역화하는 활동을 주로 하고 있어요.
지금은 환경미화 노동자들의 씻을 권리에 대한 캠페인이 진행 중인데 단순히 캠페인으로 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환경미화노조 중심으로 현장을 조직하는 것들,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시민선전을 통해 사회 여론화 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컨대 서비스 노동자 의자 캠페인처럼 “의자를 주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실제로 그 의자에 앉을 권리에 대한 쟁취를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현장내에서의 조직이 더 중요하거든요. 마찬가지로 환경미화 노동자도 씻을 수 있는 시설을 만들어 준다 한들, 실제로 노동자들이 그것을 사용하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죠. 노동자들의 의식적인 변화와 노력속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아가야 하고 더불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직영화 즉, 직고용투쟁도 같이 가야하죠. (대구)시가 직접적으로 환경미화 노동자를 고용하고 사업을 해야지, 하청업체의 위탁으로 운영되어서는 절대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죠.
또, 삼성 백혈병 같은 경우에도 그동안에 ‘반올림’에서 계속 활동을 해왔잖아요, 근데 지역에서 적극적으로 알려지지 못한 부분이 있어서 현재 1인 시위도 하고 있고 추모제나 강연회도 기획중이에요. 또 대구나 인근 지역 같은 경우는 하청업체들이 굉장히 많거든요. 반도체 하청노동자들의 건강권 문제로 폭을 넓혀서 가야 할 것 같은데, 노안 단체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봤을 때, 현재 수준이 그렇게 하기도 참 힘들고. 그래서 사실은 갑갑해요.


노안 일상활동 중 가장 필요한 역량과
실제 집행상의 어려움은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음...교육역량? 특히 대구같은 경우는 교육역량이 굉장히 부족해요. 그래서 다른 지역에 있는 바쁜 사람 불러서 대가도 치르지 않으면서 거의 떠맡기다시피 교육하는 일들도 많이 있어요. 현장의 활동가들이 충분하게 안정이 되면 이 사람들이 자기들 나름대로의 전문영역들을 하나씩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교육역량과 더불어 선전역량도 부족해요.
파업을 준비하기 위해서 파업 조직을 막 하잖아요, 노안 가지고는 조직이 안 움직여요. 원래는 노동자 건강권의 문제로 현장을 조직해야 해요. 노동자 건강권, 이것 하나만으로도 노동조합의 모든 운동이 다 같이 갈 수 있어야 하는데, 노안만 하는 노안부서, 노안국 담당자들만의 활동이 아니라 전체가 함께 가줘야죠. 이런 내용으로 일상적으로 교육할 수 있어야하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노안활동가들의 교육역량, 선전역량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노안활동가로서 다른 이들과 나누고 싶은 경험이나 고민꺼리에 대해서?


대구에 ‘3공단’이라고 있어요. 아주 영세하고 열안한 공장들이 몰려 있는 곳인데 예전엔 산보연에서 상담도 많이 하고 지원활동도 했었거든요. 그러다 한동안 끊겼죠. 2006년도에야 노동자들 건강권도 알려내고 조직도 할 목적으로 다시 찾아갔었는데, 공장도 바뀌고 거기 있던 사람들이 다 바뀌었더군요. 그래서 지도 석장을 준비해서 일곱 구간으로 나눠 일주일에 한 두 번 갔는데. 주로 식사시간에 가서 “같이 밥 먹읍시다” 면서 너스레를 떨며 다가갔죠. 그런데 거기 있는 노동자들이 너무 반가워하고, 우리가 하는 이야기에 솔깃해 하고 자기들이 평소에 궁금해 했던 것을 물어 보고, 반응이 정말 좋았어요.
‘휴일에 나만 놀면 찍혀서 해고 되고 하니까 내 대신 이야기 좀 해달라’고. ‘제발 적게 일하고 돈 받아 갔으면 좋겠다.’ 이런 이야기들...특근 문제들, 노동절에 쉬지 못하고 일하는 것들 이런 아주 기본적인 것에 대한 열망들이 있었죠.
한편으로는 드는 생각이, 왜 우리가 그동안에 버려두고 있었는가? 여기 정말 도움을 필요로 하는 노동자들이 있는데, 정말 가난하고 힘 없는 노동자들, 노동자들 가운데서 하층, 왜 이 노동자들에게 진작 찾아가지 못했는가? 그런 것을 많이 느꼈죠. 그래서 지역에서 그 노동자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방안들이 뭘까, 그러려면 우리가 거기 들어가서 살지 않으면 안 되는데...이런 고민들이 생겼어요.
예전엔 노동단체들이 미조직노동자들 대상으로 교육도 하고 상담도 하고 그랬거든요. 지금은 그렇게 하는 데가 거의 없어요. 지금은 노동조합으로 묶어내는 작업들이 되다 보니까 그런 노동자들이 옛날보다 더 버려지죠. 그래서 그 노동자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방안들을 찾고 이제는 결단도 내려야한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선 거점이 있어야 하는데, 그 거점을 어디에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가 현재 가장 큰 고민이에요.
지금은 한 번씩 들여다보는 수준인데요, 우리가 있다는 것, 언제든 도움을 받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곳과 사람이 어딘가에 있다는 것을 몰라서 당하는 그런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우리를 알리기 위해서라도 틈틈이 편하게 찾아가다 보면 안면이 생기는 사람도 생기고, 이야기도 해보고, 이름도 알게 되겠죠. 시간이 굉장히 더디게 걸리겠지만 우선은 “이 사람들이 언제쯤이면 온다.” 이런 것이 정착이 돼야 하거든요.


끝으로 일터 독자들 나아가 노동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내 사업장, 내 공장, 내 것...’이런 것들을 던져버렸으면 좋겠어요. 공장에 있는 노동자들이, 특히 조직된 노동자들이 자기 틀 안에서만 활동하고 옆을 잘 보지 않는 것 같아요. 내 사업장 일은 중요하지만, 내 옆에서 어떤 일이 있어도 신경을 안 쓰고 안 쳐다보는 것 같아요. 노동조합이 자기 지회, 자기 조직, 자기 상급단체...이런 것에 갇혀있어요. 지역 전체를 보지 못하고, 함께 나누지 못하고 손도 못 잡아주는 태도를 고쳐야 해요. 힘들게 일하는 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을 찾아가서 자신들의 경험과 힘을 나눠줘야 하는데 내 안에만 갇혀 있으니까, 오히려 누군가가 간섭하는 것조차 뭐라 하는. ‘당신네 사업장에 이런 문제가 있다’ 이렇게 이야기 하면 외부에서 왜 그러냐 하고, 뻔히 문제가 있는 것을 아는데, 드러내야만 해결이 되는데, 안에서 감추기만 하니 해결이 안 되죠. 자기 틀 안에서 벗어나 옆에도 보고, 옆에 손도 내밀어 보고, 발도 내딛어 보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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