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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l 8월 l 일터 다시보기] 가까이서 들여다 본 의료생협

가까이서 들여다 본 의료생협

한노보연 운영집행위원 김 정 수

최근 웰빙의 바람을 타고 다양한 형태의 생활협동조합에 대한 관심이 증가되고 있는 듯하다. 특히 의료생활협동조합은 작년 말 MBC 9시 뉴스에 소개되더니, 지난 지방선거에서는 어느 경기도지사 후보가 안성의료생협을 방문한 것이 화제가 되면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지난 7월에는 안산의료생협이 사회적기업 대통령상을 수상하기까지 했다니 드디어 의료생협이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뿌리를 내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직 많은 이들에게 의료생협은 무척 생소하다. 전국에 수십개의 의료생협이 있다고는 하지만 생협다운 - 생활협동조합의 설립과 운영의 원칙을 충실히 따르고자 애쓰는 - 의료생협은 한국의료생활협동조합연대에 소속되어 있는 십여개에 불과하다. 각 의료생협은 생협의 원칙상 조합활동 범위가 해당 지자체를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우리나라 전체 지자체 수가 250여개인 것을 감안하면 아직 한참 부족하다. 게다가 운좋게 안성이나 안산, 인천, 원주 등과 같이 의료생협이 있는 곳에 거주해서 조합원으로 가입했다 하더라도 일년에 한두 번 병원 진료만 받을 경우 ‘다른 병의원에 비해 좀 더 친절하고 편한 곳’ 이상의 특별한 의미를 찾기 어려울 수도 있다.
연구소는 예전부터 의료생협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2006년 9월 일터에 원주의료생협 최혁진 전무이사(당시 기획실장)가 쓴 “노동자의 삶터를 지켜나가는 의료생협운동” 칼럼을 보면 연구소가 의료생협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2005년에는 몇몇 연구소 회원들이 마창산추련 회원들과 함께 일본 한신의료생협을 방문했던 적이 있었고, 올 초에는 서울 은평지역에서 여성주의 의료생협을 준비하는 분들을 모시고 열린토론을 진행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도 의료생협에 관심이 많아서 2005년에 일본 한신의료생협에 함께 다녀왔고, 작년부터는 연구소 회원인 고상백 선생님(현 원주의료생협 이사장, 원주의대교수)의 추천으로 원주의료생협에 일주일에 하루 정도 나가서 자원활동을 하고 있다. 주로 방문 진료 혹은 방문 상담이나 보건 교육 등을 하고 있는데, 자원활동을 하다 보니 아무래도 전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서 의료생협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한편으로는 의료생협에 기대하고 있었던 긍정적인 면들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어렵고 힘든 면들도 볼 수 있었다.
의료생협이 다른 의료기관과 가장 큰 차이는 설립과 운영에 지역 주민인 조합원이 직접 참여하는 것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의료생협이 각 지역별로 대의원을 선출하고 지역 주민을 중심으로 이사회를 구성해서, 대의원대회나 이사회에서 의료생협의 운영과 관련된 핵심적인 사항들을 결정하고 있었다. 의료생협의 운영에 지역 주민의 의견이 많이 반영되다보니, 지역 주민을 위한 진료와 다양한 사업들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진료 패턴은 각 의료생협에서 일하시는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 선생님의 성향에 따라 다소 차이가 나는 것 같긴 했다. 어떤 분은 정말 꼭 필요한 약이 아니면 처방을 잘 하지 않는 분도 있었고, 어떤 분은 과잉처방이나 중복처방만 아니면 환자가 원하는 경우에는 원하는 약을 처방해 주는 분도 있었다. 그래도 전반적으로 의료생협은 다른 의료기관에 비해 항생제 및 주사제 처방율이 매우 낮은 편이었다. 조합원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의료생협은 일차의료 강화를 위한 중요한 정책수단으로 오래전부터 도입이 검토되고 있는 ‘주치의제도’에 이미 상당히 근접하고 있는 듯 했다.
의료생협을 가까이서 들여다보기 전에 미처 알지 못했던 것 중 다른 하나는 의료생협이 단순히 지역주민을 위한 의료기관에 그치지 않고 지역 주민의 복지를 위해 무척 다양한 사업과 활동들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원주의료생협만 하더라도 의원, 한의원뿐만 아니라 두 개의 지역아동센터, 주거복지센터, 요양보호사교육원, 노인장기요양기관 등을 운영하고 있다. 10여년 남짓한, 길지 않은 역사를 지닌 의료생협이 그렇게 많은 일들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그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지역주민 복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 혹은 해야 할 일이 너무 다양하고 많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게 녹녹치만은 않아 보였다. 의료생협에서 일하시는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 선생님을 포함한 의료진들은 대부분 다른 의료기관에서 주는 급료의 절반내지는 3분의 2 정도를 받고 있었다. 게다가 환자들의 의료생협에 대한 기대 - 의료진과 충분히 얘기할 수 있고, 자신의 질병과 상태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는 - 와 의료생협 소속 의료인으로서의 소신 때문에 업무는 다른 의료기관에 비해 더 힘들어 보였다. 의료진 외에 의료생협의 운영과 주민 복지를 위한 다양한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활동가들 역시 보통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받는 상근활동비 정도를 지급받고 있었다. 결국 의료생협이 이만큼이나마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들 의료진과 활동가들의 소신과 헌신적인 활동이 있었던게 아닌가 싶다.
또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조합원들이 의료생협의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여유가 갈수록 줄어든다는 것이다. 의료생협에 참여하고 있는 조합원들은 대부분 노동자, 농민, 소상공인 등 말 그대로 서민들이다. 경제위기니 뭐니 하면서 세상살이가 점점 빡빡해지는 통에 의료생협 활동에 참여할 만한 여유를 가지기 어려워진 것이다. 의료생협의 활동가들이 다양한 프로그램과 모임을 통해 조합원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보고자 동분서주하지만 쉽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의료생협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의료생협의 미래는 왠지 밝아 보인다. 왜일까? 아마도 거기에 여전히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의료생협의 발걸음은 원래 좀 느릴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빠른 걸음에 익숙한 우리가 보기엔 답답해 보일 수 있지만 의료생협은 분명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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