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10년 l 8월 l 세상사는 이야기] 노동자의 눈으로 세상보기

노동자의 눈으로 세상보기


한노보연 회원 / 산업의학과 의사 이 진 우

학생 때 짧은 시간이나마 운동을 접하면서 그것이 계기가 되어 산업의학 수련을 결정하게 되었고, 한노보연에도 가입하게 되었다. ‘노동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라는 생각으로 산업의학 의사로서 나름의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oo사 화장품 판매직 여성 노동자들의 직장검진을 하게 되었다. 그녀들은 대형마트나 백화점에서 화장품을 판매하는 노동자다. 나는 평소 검진 때처럼 인사했지만, 다른 검진자들과 달리 묵묵부답이었다. 내 표정이 너무 어두운가 하고 밝게도 해 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몇몇 분들만 그런 것이 아니고 검진자 10명 중 7~8명은 인사에 대한 반응이 아예 없었다. 대부분은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눈앞의 상대에게 무심하고 무례했다.
20대의 젊은 여성이니 자신의 건강에 크게 신경 쓰지 않을 수 있고, 금식하고 병원에 와서 혈액검사 받고 의사와 상담하는 것이 귀찮을 수도 있단 생각은 들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상황을 짐작해보아도 이토록 무반응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문진하다 보니 그녀들의 70-80% 정도가 흡연자이고, 절반정도는 주 3회 이상 소주 1~2병 이상의 음주를 하고 있었다. 특별히 여성이 흡연하는 것에 대한 반감은 없지만 화장품 판매직이라는 동일 직업을 가진 집단의 여성들이 흡연율이 유난히 높은 점은 이상했다. 또한 다른 젊은 여성 검진자들과 달리 흡연이나 음주 항목을 일부러 비우거나 실제보다 적게 기입하는 분들도 거의 없었고, 20대 초반의 검진자들 중에 흡연력이 5년 이상인 이들도 상당 수 있었다.
화장품 판매직이 고학력을 요구하는 직종은 아니므로, 검진자들이 대학 진학을 위한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흡연과 음주를 더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못 배워서 교양이 없다’는 뿌리 깊은 편견도 고개를 들었다. 고백하기 부끄럽지만, 그것은 운동을 하면서도 아직 완전히 버리지 못하고 마음 한편에 포개놓았던 것이다. 학력과 성적에 의한 일방적 서열화 과정에서 하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이들을 무시하는 마음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그런 그녀들이 나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직장명에 oo사라고 적힌 검진자들에게 기본적인 반감을 가지고 상담에 임하게 되었다. 점차 기본적인 문진만 하고 되도록 길게 상담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녀들은 그렇게 살아왔고, 그녀들의 건강은 자신의 책임이니까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으려는 검진자들에게 굳이 기력을 낭비하여 상담하지 말고 무반응에 상처 받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검진대상이 500명이었기 때문에 검진은 일주일 간 이어졌다. 매일 복잡한 심정으로 검진을 하던 중에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여러 생각들로 혼란스러웠다. 그녀들은 상당 수 고졸의 학력으로 취업한 노동자들이고 흡연과 음주를 많이 하는 편이다. 하지만 검진하는 동안 볼 수 있는 단편적인 모습만으로 그녀들을 판단해 버리고 그런 사람들이니 사람 대하는 예의가 그 정도 밖에 안 되는 거라고 치부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녀들의 무반응을 이해하기 위해 ‘일터’를 떠올려 보았다. 매일 처음 보는 고객에게 웃음 지어야 하는 감정 노동에 시달렸을 것이다. 힘든 노동임에도 100만원 초중반의 박봉을 받으며 일하게 되고, 노동을 통한 보람을 찾기 힘들고 자아실현도 어려울 것이다. 아마 십년 후에도 이십년 후에도 비슷한 월급을 받으며 지금처럼 살고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그들 중 상당수가 정상체중임에도 더 마르기 위해 다이어트 약을 복용하고, 화려한 옷과 화장으로 외모를 가꾸는데 열심히 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검진하는 의사 나부랭이에게 예의를 차릴 기운 따위는 없을 수도 있겠다.

사실 지난 6월 oo경찰서 출장건강검진 때에도 상당 수 경찰들은 엄청난 과음과 흡연력을 자랑했다. 검진 전에는 단지 대상이 경찰이라는 이유로 반감이 있었다. 하지만 막상 그들과 상담하면서 작년엔 용산, 올해는 G20 때문에 힘들다는 말을 듣게 되고, 그들의 고된 3교대 업무, 비일비재한 초과근무에 대해 듣게 되면서 ‘경찰도 결국 노동자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술과 담배로 스트레스를 풀 수밖에 없는 그들의 상황에 안타까움을 느꼈었다. 나는 왜 둘 사이에서 이다지도 다른 감정이 들었을까?
이들은 직장이 다르고 그 직업을 선택하게 만든 학력과 가정환경을 포함하여 사회경제적 지위가 다르다. 그래서 이 둘의 격차는 쉽게 해소하지 못할 정도로 벌어져 있고, 사회에서 이들 각각에게 기대하는 바도 상이하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검진자를 ‘노동자’로 보지 않고 어떤 종류의 직업을 가진 어떤 사회적 지위의 사람으로 분류하여 보고 있었다. 그들의 일터에서 어떤 노동을 하고 어떤 작업 환경들이 그들의 육체와 정신의 건강에 영향을 주는지 생각하지 않은 채 나쁜 생활습관과 좋지 않은 태도를 그들의 탓으로만 돌린 것이다. 어쩌면 이와 같은 생각과 추측들도 그들을 직업에 따라 달리 판단해버리는 오류를 범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스스로를 예민하게 감시하지 않으면 언제 편견에 사로잡히게 될지 모른다. 일상에서 더욱 촘촘히 고민하고, ‘노동자의 눈’으로 그들과 호흡해야겠다.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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