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10년 l 8월 l 현장의 목소리] 어느 건설노동자의 하루

어느 건설노동자의 하루


건설노동자 진 춘 환

새벽 6시, 아파트 현장 앞 함바집(밥집)은 이른 새벽부터 북적입니다. 6시 50분에 시작되는 안전조회에 늦지 않으려고 밥 한술 국에 말아 후루룩 마시고 현장 정문을 들어서면, 황색제복을 입은 이들이 음주측정기를 들이댑니다. 이윽고 삐삐 소리가 들립니다. “술 마셨죠. 집에 돌아가세요!” 어제 조금 늦게까지 술을 먹은 김 씨 형님은 물 한잔 먹고 다시 한 번 음주측정기에 입김을 불어보지만, 돌아오는 것은 집에 돌아가라는 단호한 말 뿐입니다.

6시 50분 아침 조회 시간. 체조를 마치고 안전대리가 단상에 올라와 안전관리자라고 불리는 황색제복들이 어제 현장에서 찍은 사진을 빔으로 보여줍니다. “형틀목수 김00씨는 안전 고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벌금 만원, 철근 팀의 박00씨는 이동 중에 담배를 물고 있습니다. 역시 벌금 1만원” 여기저기서 욕지거리가 튀어나옵니다. 씨팔놈들 벼룩의 간을 빼 묵어라!

안전 대리의 채근이 이어집니다. “근로자 여러분이 개인보호구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사고가 많이 납니다. 제발 자기 몸은 자기가 지키도록 하십시오. 회사가 없는 돈 들여 공짜로 준 안전보호구를 왜 착용하지 않는 겁니까?” 석 달째 안전화도 안주는 놈들이 보호구 타령은.

10시, 벌써부터 온몸이 흠뻑 젖도록 망치질을 하고나니 담배 생각이 절로 납니다. 20kg이 넘는 600*1200 유로폼을 들어 올려 벌써 40장째 붙여 나가고 있습니다. 잠깐 부속품을 찾아 못주머니에 넣으면서 안전 고리를 풀었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황색제복이 사진기를 들이댑니다. 벌금 만원 날아갔구먼. 무슨 일제 강점기 순사들도 아니고 감시하는 애들을 붙이고 지랄이야, 하긴 니들 황색제복들이 안전만 관리하겠냐. 현장에서 문제 생기면 써먹으려는 용역 놈들이지.

오후 1시, 오늘은 8월 정기 안전교육이 있는 날입니다. 한 시간짜리 안전교육시간은 잠자는 시간. 부리나케 서명부터 하고 잠잘 준비를 하고 있는데, 열혈 안전 김 과장이 초장부터 열을 올립니다. “개인보호구만 잘 착용하고 안전고리만 잘 매도 안전사고의 절반이 줄어들 것입니다. 회사에서는 앞으로 벌금제도를 더욱 강화해서 시행할 것입니다.” 줄줄이 이어지는 위반사례들. 니들이 한번 나랑 바꿔서 폼붙이고 갈고리질 해봐라~ 그게 지 맘대로 되나. 기가 차다는 수군거림들….

새로운 얼굴이 보입니다. 산업안전공단인지 뭔지에서 왔다는 늙수구레한 영감님의 특별강의가 있답니다. 정부와 공단에서는 고질적인 건설현장의 안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장광설이 이어집니다.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하품, “건설현장은 1년에 600~700명씩 사망사고가 일어나는데 정부와 공단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10년째 사망사고가 줄지 않고 있습니다. 이를 규명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원인을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친놈들, 내 약속하는데 현장에서 법대로 직영으로 건설노동자들을 고용하고 불법적인 강제도급을 금지해봐라 당장 사망사고 절반으로 줄어든다. 돈내기 도급으로 죽어라 두들기는데 안전 챙길 시간이 어디 있냐. 하루 여덟 시간만 일하게 해봐라, 내가 이래 골병이 들겠나.

계속되는 강의 “결국 건설현장에서 사망사고가 줄지 않고 있는 문제는 건설근로자들의 안전의식부재 때문입니다. 안전의식만 제대로 갖고 있어도 많은 사고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개풀 뜯어먹는 소리하고 있네. 일하다 다치고 죽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냐. 다 죽지 못해 일하느라, 그놈의 도급 때문에 그러는 것이지. 나도 내 몸 챙기면서 일하고 싶다고요.

오후 3시 30분, 오후 참을 먹고 다시 일을 시작하려는데 오전 내내 했던 받아치기(자재를 아래층에서 위층으로 올리는 작업, 순전히 사람 힘으로 한다) 탓인지 어깨를 올리기도 힘이 듭니다. 엊그제 병원에서 타온 약을 털어 넣습니다. 의사선생 말로는 너무 힘든 일을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해서 생긴 직업병이랍니다. 한마디로 골병이 들었다는 애기입니다. 무거운 자재를 들어 올리는 일을 하지 않는 한 낫기 힘들다고 하면서 보다 편한 직업으로 바꾸라는 처방을 내립니다. 배운 게 도둑질인데 갈 데가 어뎃노!

오후 5시, 옹벽을 파내려가던 포클레인 기사들이 작업을 마치고 퇴근을 합니다. 집에 갈려면 아직도 한 시간이나 기다려야 합니다. 2호기 타워기사는 벌써 네 시에 퇴근을 하고 내일 토요일에도 집에서 쉰다는데, 20년 목수인생 주당 48시간 노동은 고사하고 여섯시 퇴근시간이나 줄어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섯 시에만 끝나도 그나마 나을 텐데.
드디어 6시, 지옥 같은 하루 작업이 모두 끝났습니다. 온몸은 땀에 젖어 쉰내가 나는데 옆에서 일하던 정씨형님 한잔하자고 꼬드깁니다. 오늘도 새벽 다섯 시부터 저녁 여섯시까지 건설노동자 하루일과를 이렇게 마칩니다.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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