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10년 l 8월 l 특집] 반도체 노동권을 향해 달리다

반도체 노동권을 향해 달리다!
한노보연 선전위원 푸우씨와 타래


◀반달 첫째 날 (7월 19일)▶

◂ 반달 발대식과 기자회견 -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2010 반달 공동행동’의 시작을 알리는 첫 일정부터 삼성과의 마찰은 피할 수 없었다. 삼성은 출·퇴근 전세버스와 수많은 경비직원를 동원해 사업장 주변을 에워싸고 출입을 통제했다.
삼성 기흥공장 앞은 사측의 유령 집회신고을 통해 집회나 기자회견을 막아서기로 악명 높은 곳. 19일 삼성의 유령 집회신고에 대해 반올림은 법원에서 ‘집회허가 행정가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삼성은 법원의 처분을 비웃듯 뻔뻔하게 집회를 방해했고 이에 대해 경찰과 구청은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못했다. 경찰이 삼성에 전세버스를 빼라고 하자 버스 운전기사들이 없어 전제버스를 이동시킬 수 없다며 거부했고, 불법 주차된 버스들을 견인하라는 요구에 구청은 사유지라는 이유로 꽁무니를 뺐다. 새삼 대한민국이 ‘삼성왕국’임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런 삼성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은 많은 관심을 보였다. 한 생산직 여성노동자는 관리자와 경비의 눈을 피해 ‘교대시간까지 이곳에서 기자회견을 해서,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해달라’고 반올림 활동가에게 호소하기도 했다.

◂ 천안역 선전전과 충남 대책위 간담회
천안역에서 시민들을 만났다. 더위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와중에도 관심을 보이며 반올림 부스로 다가와 국제청원운동과 한혜경씨 치료비 모금에 함께 해주신 분들이 꽤 많았다. 낮에 진행된 충남 대책위와의 간담회에서는 삼성이 반도체·전자·전기관련 사업을 전략적으로 확장하고 있는 지역이니만큼 중장기적 대응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진행되었다.

◂ 천안역 촛불 문화제
땅거미가 질 무렵부터 시작된 천안역 촛불 문화제는 밤10시가 다 되어서야 마칠 수 있었다. 특히 온양공장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에 걸려 사망한 박지연씨를 알고 있는 지역의 많은 활동가들이 참여해 삼성 규탄의 큰 목소리를 냈고, 더 이상의 죽음을 막아내자며 연대의 의지를 다졌다.

◀반달 둘째 날 (7월 20일)▶

◂ 천안공장, 탕정공장, 온양공장 출근선전전, 기자회견
이른 아침, 반달 참가자들은 3개 조로 나누어 각각 천안공장, 탕정공장, 온양공장 앞에서 출근하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선전전을 진행했다. 연일 이어지는 살인적인 폭염만큼이나 삼성경비대들의 진압도 참으로 극심했다. 특히, 1년 전 스물여덟의 나이로 숨진 故연제욱씨가 근무했던 탕정 LCD공장에서는 선전전을 시작하기도 전에 수십 명의 경비들이 달려들어 피켓을 든 참가자들을 옴짝달싹 못하게 겹겹이 둘러싸고 떠미는 등, 치졸하기 짝이 없는 방해와 폭력을 일삼았다. 그사이 통근버스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더니 둥그런 차벽을 만들어 참가자들을 그 속에 가두어 버렸다. 완전히 봉쇄하고 난 후 경비대의 폭력은 더욱 심해졌는데, 급기야 故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가 경비에 밀려 넘어지면서 어깨 부상을 입어 병원으로 후송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연제욱씨를 비롯한 LCD공장 노동자들의 잇단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 아들의 영정사진을 안고 故연제욱씨의 어머니와 여동생이 찾아왔다. 삼성은 유가족에게 공장이 떠나갈 듯 크게 틀어놓은 댄스음악으로 응대했고, 그 경망스런 울림으로 유족들의 피 끓는 절규와 울분을 조롱했다. 한 시간 정도로 예상했던 삼성공장 출근선전전은 삼성의 무자비한 폭력 속에서 5시간이나 이어졌다.

◂ 하이닉스 반도체 선전전, 청주 촛불문화제
반달 참가자들은 기진맥진한 몸을 추스르고 또 하나의 반도체 노동자들이 있는 곳, 하이닉스 청주공장으로 향했다. 민주노총 청주지역본부, 하이텍알씨디코리아지회, 이화여대학생들이 함께 하였고 반도체ㆍ전자산업의 노동재해 실태를 알리는 선전전을 진행했다. 한창 작업을 하고 있을 하이닉스의 노동자들에게 반달의 외침이 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청주시내 철당간에서 진행된 선전전과 촛불문화제에도 많은 시민들이 관심을 보였다. 故박지연씨 추모영상을 함께 보고 유족과 참가자들의 발언에 귀를 기울이며 연대의 마음을 보탰다.

◀반달 셋째 날 (7월 21일)▶

◂ 기흥공장 선전전
셋째 날도 출근선전전으로 반달 공동행동이 시작되었다. 삼성 기흥 반도체공장의 정문과 통근버스가 지나는 길목마다 현수막을 설치하고, 1인시위를 했다.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노동자들 중 단 한명이라도 더 보았으면 하는 맘으로 두 팔 높게 피켓을 치켜든 참가자들은 금세 매연과 땀에 뒤범벅이 되었다. 물론 한 명이라도 덜 보게 하려는 삼성의 움직임도 분주했다. 후문 앞에선 또다시 버스들이 문을 봉쇄하고, 현수막과 1인시위자를 막아섰다. 또 수십 명의 경비대가 출동해 바리케이트를 이리저리 옮기며 1인시위에 맞서(!) 호들갑스럽게 대응했다. 시위자들은 각자 성가시게 달라붙는 경비로부터 사유지타령을 들어야 했는데, 그 중에는 삼성통근버스가 다니는 길은 삼성 사유지라는 억지도 있었다.

◂ 한혜경씨 산재 인정 촉구 결의대회
이 날은 한혜경씨의 산재 심사가 있는 날이어서 근로복지공단이 있는 신도림역으로 이동해 시민선전전과 한혜경씨의 산재인정을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했다. 반달 참가자들의 힘찬 응원을 받으며 한혜경씨 어머니와 반올림 활동가들은 근로복지공단 건물로 향했는데, 건물에 들어가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다. 산재위원 한 명이 늦게 온다는 이유로 한 시간을 밖에서 기다리게 하면서, 경비와 공단직원은 출입을 거칠게 가로막았고 조그만 손피켓 하나에도 물리력을 행사하며 과잉반응을 보였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한혜경씨 어머니가 건물 벽에 딸의 산재인정을 촉구하는 내용의 종이를 부착하려 하자 “당신 얼굴에나 붙이라”며 폭언을 퍼부었다.

◂ 수원역선전전, 수원촛불
저녁에는 수원역 시민 선전전과 수원촛불이 있었다. 그런데 선전전 부스를 차리려고 한 그곳엔 삼성마크가 그려진 부스가 하나 차려져 있었고 삼성전자봉사단이라는 조끼를 입은 어린 학생들이 ‘삼성의 선행이 적힌 선물’을 나눠주며 헌혈 캠페인을 벌이고 있었다. ‘백혈병’ 어린이도 돕는다는 내용도 있었는데 참으로 삼성다운 촌극이 아닐 수 없었다. 애꿎은 학생들로 급조된 것처럼 보이는 봉사단은 바로 옆에 차려진 반올림의 선전물을 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떤 학생은 몰래 조끼를 벗기도 했다.
121번째 맞는 수원 촛불에는 수원시민을 비롯하여 21일째 파업을 벌이고 있는 KBS 새노조, 청소년인권단체 아수나로 등 많은 단체들도 함께 했다. 다양한 공연으로 활기차게 진행된 수원 촛불 막바지에 반도체 피해노동자의 추모영상 상영과 함께 반올림 활동가의 반달행동 소개발언이 있었고 수원시민들의 힘찬 지지와 연대의 박수를 받았다.

◀반달 넷째 날 (7월 22일)▶

◂ 매듭간담회
보건의료학생 매듭과 반올림의 간담회가 진행되었다.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백혈병 산재사망 노동자 故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와 같은 공장에서 일하다 같은 병으로 사망한 故황민웅씨의 아내 정애정씨, 온양공장에서 일하다 재생불량성빈혈에 걸려 투병 중인 유명화씨의 아버지 유영종씨가 피해 노동자들의 삶에 대해 발언했다.

◀7/23일 반달 다섯째 날▶

◂ 삼성 직업병 피해 노동자 집단산재신청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아침, 서울 영등포 근로복지공단에서 3명의 삼성전자 피해노동자들에 대해 집단산재신청을 하고 기자회견을 했다. 이번에 산재 신청을 한 사람은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오상근씨(뇌종양), 삼성반도체 온양공장 이윤정씨(뇌종양), 삼성전자 LCD천안공장 이희진씨(다발성 경화증)이다. 삼성에서 일하다가 각종 직업병으로 죽거나 투병중인 노동자가 반올림으로 제보된 것만 해도 60여명에 이르렀고, 그중에 13명의 노동자들이 반올림과 함께 산재신청을 했지만, 근로복지공단은 피해자들에 대해서 업무관련성이 없다며 하나같이 불승인을 내렸다. 반올림 활동가 이종란 노무사는 기자회견을 통해 ‘업무관련성의 증거’는, 다른 것이 아니라 삼성에서 일하다가 병들고 죽어간 수많은 노동자들이 바로 명백한 ‘업무관련성의 증거’라고 밝히며 근로복지공단을 규탄했다.

◂ 서울역 시민선전전, 고(故) 황민웅씨와 연제욱씨 추모제
다행스럽게도 오전 내내 내리던 빗줄기도 잦아들었다. 반달 마지막 일정을 치르기 위해 서울역으로 이동했다. 역 광장에서 선전물을 전시하고 '삼성의 직업병 책임 인정과 안전하고 인간적인 노동조건 제공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광장을 지나던 시민들은 선전물들을 보며 적잖이 충격을 받는 듯 했다. 혀를 차는 사람들, 분통을 터뜨리는 사람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가슴 아파하는 사람들..... 많은 이들이 서명과 모금에 동참했고 격려의 말도 잊지 않았다.
이 날은 故황민웅씨와 故연제욱씨의 기일이어서 6시부터는 이들을 추모하는 행사를 열었다. 광장 한 켠과 역사 계단을 매운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추모식에 함께 했다. 남편을 잃은 정애정씨는 ‘젊은 나이에 죽어나가는 노동자들을 방관하지 말아 달라’며 ‘내가 싸움을 끝내지 않는 한 삼성도 끝낼 수 없다’고, 억울하게 죽은 남편과 두 아이를 위해 끝까지 싸우겠노라 다짐했다.
故 연제욱씨의 어머니는 ‘아직도 제욱이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아들에게 쓴 편지를 읽다 오열했고, 동생 미정씨는 ‘오빠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꼭 진실을 밝히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위로하고 넋을 기리는 촛불들이 광장을 촘촘히 밝히고, 뺨 위로 흐르는 눈물들을 반짝였다. 그리고 울분에 찬 구호가 광장을 가득 매웠다.
“더 이상 죽이지 마라, 더 이상 감추지 마라, 더 이상 상처주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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