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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l 8월 l 특집] 돈을 줄테니 산재신청을 포기하라? - 삼성의 산재은폐 규탄 증언대회



돈을 줄테니 산재신청을 포기하라?
삼성의 산재은폐 규탄 증언대회가 열리다...


7월 12일 삼성을 규탄하는 증언대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故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 故연제욱씨의 어머니와 동생 미정씨, 투병중인 한혜경씨와 어머니 김시녀씨가 참석해서 돈으로 산재를 숨기려 하는 삼성의 태도를 소리 높여 비판했다. 이 자리에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지난 3월 31일 사망한 故박지연씨의 어머니가 동영상을 통해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증언했다.

故박지연씨의 발인이 있던 4월 2일, 삼성은 지연씨 어머니의 은행계좌로 돈을 입금했다. 조건은 반올림, 민주노총, 시민사회단체와 연락하지 않고 현재 진행중인 산재소송에서 빠지는 것. 그렇게 합의하고 받은 돈으로 쌓여있던 빚을 갚게 되었지만 지연씨 어머니는 ‘내 딸을 팔았다’는 비참함에 술이나 약을 먹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이것이 ‘두근 거리는 내일을 생각한다’는 삼성전자의 태도이다. 5조100억원이라는 삼성전자의 분기 이익에는 유미씨, 지연씨, 민웅씨, 숙영씨, 그리고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피해 노동자들의 빼앗긴 삶이 있을 것이다. 쉽지 않은 결심으로 그 자리에서 증언한 피해자와 가족들의 이야기를 간추려 독자들께 전한다.

한노보연 선전위원 흑무


故황유미씨 이야기

우리 유미 고등학교 3학년 때, 내가 ‘너는 공부를 잘하는 편이 아니니 전문대학에 가라’고 그랬어요, 전문기술을 배워서 일을 하라고. 그랬더니 유미가 ‘아빠, 동생도 있으니까 내가 돈을 벌어서 동생 대학도 보내고 그러겠다’고 해요. 삼성전자 직원 모집이 있어가지고 유미가 2003년 10월에 삼성전자 견습생으로 들어가서 3-4주 교육을 받고 삼성전자 기흥공장 3라인에 배치 받았지요. 예전에 최00이라는 사람하고 우리 유미하고 2인 1조로 일했는데, 그 최00이라는 사람이 유산을 하더니 사표를 냈어요, 그리고 그 자리에 이숙영씨라는 사람이 들어와서 2인 1조로 하다 우리 유미가 2005년 6월 급성골수성백혈병 진단받았고 이숙영씨가 2006년 6월가 같은 병을 진단받고 그 해 8월에 죽었고 우리 유미가 2007년 3월에 죽었어요. 우리 유미가 병원에 입원해있을 때 그 병원에 삼성에서 일하다 같은 병에 걸린 사람이 입원해있다고 해서 만나보려고 했는데 나중에 생각나서 가보니까 퇴실했더라고요, 그게 알고 보니 故황민웅씨더라고요. 아니, 무슨 백혈병이 감기도 아니고 둘이서 일하다 둘 다 같은 병으로 죽었는데 이게 어떻게 개인 질병이에요.

유미 병원비가 8천만원이 들었어요. 삼성에서 김00 과장이라는 사람이 집으로 찾아왔길래 내가 산재처리를 해달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김 과장이 그건 안 된다며 하는 말이, 아버님이 이 큰회사를 상대로 이길 수 있으면 해보래요. 그러더니 3천만원을 보태줄테니 사표를 쓰래요. 빈 A4 용지를 반으로 접더니 이름하고 주민번호를 쓰라고 해서 옆방에 있던 유미를 불러 쓰게 했어요. 그 뒤로 유미가 병이 재발했는데 회사에서 나를 찾아와가지고선, ‘돈이 5백만원밖에 없어서 요것밖에 못주니까 아버님이 받던지 말던지 마음대로 하시라’고 그래요. 마음 같아서는 한 대 패주고 싶었는데 그 돈이라도 없으면 안 되니까 받았어요. 나중에 삼성이 다시 찾아와서 이제 유미는 자기네 직원도 아닌데 어쩌구 저쩌구 그러더라고요.

유미를 싣고 속초에서 수원 아주대병원에 갔다오는 길이었어요. 유미가 덥다 그래서 에어컨을 틀어줬는데 좀 있으니까 다시 춥대요, 그래서 히터를 틀어줬어요. 좀 이따 집사람이 뒤를 돌아보더니 ‘아니, 얘기 왜이래’ 하고 소리를 쳐요. 그래서 돌아보니까 애가 눈이 하얗게 되가지고 숨이 넘어가고 있었어요. 갓길에 차를 세워놓고 유미를 봤어요, 꺽꺽대며 마지막 숨이 넘어가고 있었죠. 그렇게 유미 죽고 장례를 치르는데 다시 삼성에서 찾아왔어요, 우리 유미 죽었다고 연락도 안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장례를 잘 치르고 나면 보상을 깔끔히 해주겠대요, 그러더니 몇 일 지나서 과장과 차장이 찾아와서는 자기네랑 아무 상관없으니 아버님 마음대로 하래요.

유미 죽은 해 9월에 산안공단에서 역학조사가 있었어요. 나도 갔는데 유미 말로는 땀이 너무 나서 힘들었다 했는데 막상 그렇치가 않은 거에요. 선선하니 일하기 딱 좋게. 다르지 않냐고 막 항의했어요. 끝나고 회의실에 갔더니 삼성에서 그래요, ‘아버님 가만히 계시면 10억쯤 해드릴께요. 사회단체 사람들 절대 만나지 마시고 민주노총도 만나지 마세요’ 근데 너무 많이 속아서 또 나를 속이는 것 같더라고요. 그 길로 수원에 있는 민주노총에 가서 이종란 노무사님에게 다 얘기했죠.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는 진짜 삼성에서 챙겨줄라 했었어요. 그 뒤로 삼성에서 끈질기게 쫒아다녔어요. 집에 찾아와서 가지도 않고 집 앞에 계속 있고, 집 안으로 들어오고, 내가 쫓아내기도 하고 피해다녔어요, 자꾸 속는 것 같아서.


삼성 LCD 피해 노동자 한혜경씨 이야기

우리 혜경이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입사를 했어요. 그리고 병을 얻어서 수술을 하고 그 후에는 정상적인 생활을 못하고 있어요. 수술을 또 해야하는데 돈이 없어서 외래만 하고 있어요. 그런데 삼성에서 전화가 왔어요. 그래서 내가 ‘그동안 연락 한 번 없다가 왜 연락했냐’ 그랬더니 혜경이 입사할 때부터 인사과에 있던 사람이래요. 나랑 한 번 만나고 싶다면서 집 주소까지 다 알고 있더라고요. 우리가 집을 여러번 이사했거든요, 그런데 바뀐 집 주소를 알고 있었어요. 그러면서 위로금을 주고싶대요. 그래서 왜 주고 싶냐고, 조건이 뭐냐고 그랬더니 산재 소송에서 빠지래요. 그래서 그건 모르겠다고, 이종란 노무사에게 다 위임했다고 말하면서 전화는 받을테니 하라고 했어요. 그러고서도 전화 안 끊고 집은 전세냐, 월세냐 하면서 별 걸 다 물어보더라고요.

그러더니 6월 10일쯤 삼성에서 다시 전화가 왔어요. 자기네가 춘천으로 올테니 만나달라고요, 그래서 ‘그럼, 기자들하고 다 부를테니까 와라’ 그랬더니 그 뒤로 전화연락이 없었어요. 그 놈들이 왜 그러는지는 세 살짜리 애도 아는 일이죠. 우리 혜경이는 지금 사지가 비틀어지고 있어서 빨래짜듯 뼈가 아프대요.
“삼성이 원인을 제공한거잖아요. 원인을 제공했으면 어떻게든 해야지, 이게 뭐에요. 나같은 사람 또 생길 거에요. 죽은 사람도 있잖아요. 삼성이 원인을 제공했으면 책임을 져야지. 이러면 안되죠. 아파도 수술도 못받고. 이러면 안되죠 삼성...” (한혜경씨 발언)


故연제욱씨 이야기

우리 오빠는 2004년 6월에 입사했습니다. 7라인 포토공정 식각공정에서 라인을 셋업하는, 유지보수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 2008년 2월 가슴통증을 느껴 병원에 갔는데 종격동 암이라는 희귀질병을 진단받았습니다. 그리고 사망했습니다. 우리 오빠는 담배 안피우고 술도 거의 마시지 않았습니다. 헬스도 꾸준히 하며 몸 관리를 했습니다. 그런데 회사에서 일하며 어깨 아프다, 허리가 아프다고 하기 시작했습니다. 라인에 들어가면 몸이 흠뻑 땀에 젖는다고 했고 코피도 자주 난다고 했습니다. 노동강도가 너무 세서 어깨가 자주 빠졌고, 동료들이 오빠의 빠진 어깨를 끼워주는 일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병원에 갔더니 담당 의사는 종격동암이라는 생소한 병이름을 얘기하며 후진국병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오빠가 미혼이라 항암치료를 들어가기 전 정자를 채취하려고 했는데 무정자증이라 했습니다.

차장이라는 사람에게 저희 어머니는 ‘우리 제욱이는 회사에서 일하다 병에 걸린 것이니 산재처리를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산재를 하실거면 회사를 통해 하세요. 회사에 담당자가 있어요’라 말하며 몇 가지 서류를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몇 개월 뒤 불승인이라는 결과를 받았습니다. 회사의 작업환경측정결과 몇 장을 보고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젊은 노동자가 죽었는데 어떻게 종이 몇 장으로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까. 어머니는 다시 전화를 걸어 당연히 산재가 될 줄 알았다고 말씀하셨는데 회사 담당자라는 사람은 불승인 결정이 난 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LCD도 반도체처럼 라인공개라도 해야하는 것 아니냐 묻자 얘기해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5월 25일쯤, 회사에서 전화가 와서 일이 잘 될 것 같다며 찾아뵙고 얘기하겠다 했습니다. 그 즈음 추적 60분에서 삼성반도체 집단 산재신청이야기를 보았습니다.

환경안전팀에 있는 홍00차장과 박00차장이 찾아왔습니다. 집으로 들어오라니 절대 싫다고 손을 내저었습니다. 그러더니 가족들에게 오빠 여자친구는 지금도 만나는지, 이사는 안갈 건지, 저는 언제 퇴사했는지 등을 캐물었습니다. 자기들은 결정권이 없으니 위에 보고하겠다며 삼성에는 산재처리공식이 있다고 했습니다. 삼성화재에서 5천만원이 보상금으로 나왔으니 공식에 따라 2억원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회사는 냉장고 값 흥정하듯 오빠 목숨값을 흥정했습니다. 그러면서 반올림을 통하면 힘들기만 하다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반올림이 봉사단체도 아니고 이득을 보려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생활을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고, 생활고를 미끼로 집요하게 합의를 요구했습니다.

그 와중에 산재 재심사를 요청해야하는 기일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회사에서는 90일이 마음에 걸리면 우선 회사를 통해 심사청구를 하고 위로금을 받고나서 취소하면 되지 않느냐 했고 제가 공상처리하는 것이냐고 물으니 그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제욱씨 병은 개인적인 건데 삼성은 초일류기업이니 임직원이었던 사람에게 성의를 표시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덧붙여 ‘반올림과 함께 하면 이것도 못 받는다’며 ‘이렇게 돈을 드리는 것만 해도 제욱씨의 명예를 되찾는 것’이라 말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황상기씨에게 거액의 돈을 들고 찾아간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건 뭐냐, 어떤 공식에 따른 거냐 물으니 ‘증거 있으면 가져와 보라’며 제게 ‘어른들과 얘기하러 온거니 미정씨는 조용히 있으라’고 했습니다. 회사 담당자의 그 위협적인 눈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대화 후 할 얘기 끝났으면 가라고, 다시는 오지 말라고, 당신들은 부모 아니냐고, 무슨 짓을 하는지 아느냐고 말하며 내쫓았습니다. 인사팀 차장은 아버지를 불러 산재공식을 보러 회사에 가자며 끈질기게 회유했습니다.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서 사는 유족들을 찾아와 어떻게 그런 말들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로지 돈으로 엎으려고만 하고... 유해물질이 혹시라도 있었는지 찾아보겠다고 해야하는거 아닌가요. 아버지는 술로, 엄마와 저는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습니다.

삼성은 사과해야합니다. 사람들이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생활고에 시달리지 않도록 해야합니다. 탕정 사업장이 디스플레이 씨티로 바뀌면서 사원아파트를 추가 분양했습니다. 사원들의 긍지를 높이겠다고요. 우리 오빠는 사원 아파트를 분양받았지만 그 아파트에서 몇 일 살아보지도 못하고 죽었습니다.
삼성은 작업환경을 개선해야 합니다. 노조 설립을 방해하는 행위를 중단해야합니다. 근로복지공단은 노동자의 편이 되어 인정할 것은 빨리 인정해야합니다. 노동부는 삼성 LCD에 대한 역학조사를 해야합니다. 우리 오빠와 같은 죽음은, 더 이상은 없어야 합니다.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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