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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l 8월 l 칼럼]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 건강한 여름나기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 건강한 여름나기


한노보연 회원 / 한의사 청 이

매일 같이 폭염이 이어집니다. 무더운 여름을 지치지 않게 보내는 방법 하면, ‘이열치열’이니 ‘자기 몸에 맞는 보양식을 먹어야 하느니’류의 여러 출판지상에 소개되어 있는, 어쩌면 다소 식상할 내용들이 떠오릅니다. 이런 내용들은 사실 소개하는 사람에 따라 상반되기도 하고, 어느 것을 따라해 보고서도 마땅히 비교해볼 방법이 없으니 그저 올해 여름은 좀 낫게 보냈다고 스스로 위안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더위를 이기기 위한 방법으로 소개되는 것들은 한 결 같이 시선을 자신의 몸으로 국한시킵니다. 당장 더위에 내 몸이 괴로운 걸 느끼는 것은 본능일 테지만, 내 더위만 해결하려는 태도는 타고난 게 아니겠죠.

사방 건물들 창문은 모두 닫혀 있고, 에어컨 실외기는 더운 바람을 끊임없이 내뿜는 게 당연한 여름 풍경이 되었습니다. 번화가를 걷다보면 얼마나 에어컨을 세게 틀어놓았는지 매장의 찬바람이 골목까지 쏟아지기도 합니다. 건물 안에 있는 사람들의 당장 더위는 해결되겠지만 도심의 길거리는 해가 갈수록 무더워지는 것 같습니다. 문득 한반도가 아열대화 되어간다는 기사가 떠오릅니다. 한반도의 평균기온이 10년 새 0.7도가 올랐습니다. 0.7도가 어느 만큼인지 실감이 잘 안 난다면 10년 전에 비해 40% 이상 증가한 열대야(최저기온이 25도를 넘는 날) 일수를 보면 좋겠습니다. 한여름 30도를 넘는 도시가 손에 꼽혔던 게 불과 몇 년 전인데, 요즘은 30도를 넘지 않는 도시를 찾기 힘듭니다.

이렇게 해마다 평균 기온이 상승하는 것은 탐욕스런 자본이 더 많은 이윤을 생산하려다 초래한 생태위기 때문입니다. 요즘 신자유주의라는 탈을 쓴 자본주의는 어느 노래 가사처럼 ‘무한 경쟁의 시대가 도래’했다며,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존은 자기 혼자서 책임지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경쟁은 자본주의의 필연적인 속성이라지만, 자본주의의 위기가 다가올수록 자본은 더 많은 사람을 최저의 삶으로 배제시키고, 그곳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한 경쟁을 심화시킵니다. 물론 언제나 그 경쟁은 ‘자신을 위해서’라고 포장되어 있습니다. 명령을 좇아 웰빙 음식을 찾고, 웰빙 습관을 익히지만 정작 그 명령에 충실해 자본이 원활히 굴러갈수록 지구의 온도는 솟아오르고, 예상치 못한 호우를 겪기도, 강수량이 형편없이 줄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만큼 웰빙과 멀어진 삶만이 선택지에 남습니다. 이 아이러니는 길거리에서 실외기의 더운 바람과 문으로 흘러나오는 찬 바람이 만나는 장면만큼이나 씁쓸합니다.

이런 장면들은 실상 한국의 어느 곳에서나 재현되고 있습니다. 공무원이니 임용고사니, 들어갈 길 묘연한 구멍을 통과하기 위해 학생들은 하루 종일 도서관에 앉아 있습니다. 자격시험은 갈수록 종류도 늘어가고, 이를 준비하는 고시학원들은 불황을 모릅니다.

요즘은 의·약학 전문대학원 입학시험인 MEET, DEET, PEET 대비 과목이 최고의 학문이 되었습니다. 직장인들도 쉬지 않고 자기계발해야 하고, 심지어 노동부에서 학원 비용도 지원해줍니다. 생산라인에서는 부서 간 잔업/특근 따내기 경쟁이 자연스럽습니다. 경찰도 성과에 대한 압박으로 고문을 했다고 변명할 정도니, 이런 경쟁이 뻗쳐 있지 않은 곳이 없는 것 같습니다.

나를 챙기기 위한 그 고난에서 상패는 참가자 중 누구에게도 돌아가지 않습니다. 자기 삶을 깎아낸 상처를 훈장마냥 내보이지만, 남는 건 다 같이 궁핍한 삶에 짜증스럽고 더워진 여름뿐입니다. 자신의 삶을 자신에게‘만’ 헌납하려 할수록 더욱 비참해진다는 기막힌 아이러니입니다.

그런데 무더위 속에서, 자본의 명령에 저항해 삶의 권리를 얻기 위해 싸우는 이들이 있습니다. 불법 파견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라고 요구하는 동희오토 노동자들, G20을 핑계로 인간 청소를 하는 것에 맞선 이주노동자들, 따뜻한 밥 한 끼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서울대병원 청소노동자들, 탐욕스런 개발과 철거에 맞선 곳곳의 투쟁들,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는 이들은 가만있어도 뜨거운 여름을 달궈진 아스팔트마저 마다하지 않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 몸의 괴로움뿐만 아니라 다른 이의 괴로움을 함께 생각하는 것을 연대라고 이릅니다. 마르크스가 갈파했듯, 사회적 관계의 총체로서 인간은 나 홀로 건강해질 수도, 나 홀로 행복할 수도 없습니다. 내 한 몸 지키려는 가치관이 자본주의를 강화 유지시키는 이데올로기라면, 연대하는 가치관은 자본주의를 벗어나는 이데올로기입니다. 거리에 나와 있는 이들이 빨리 아스팔트에서 내려와 건강한 여름을 함께 보낼 수 있도록 그 싸움에 연대한다면, 무더위를 가중시키는 자본주의의 수명도 덩달아 줄어듭니다. 그래서 여름을 건강하고 지혜롭게 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뙤약볕에 나앉은 이들과 무더위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시선을 내 몸에서 너에게로, 공동체에게로 돌려봅시다. 우리의 연대가 지구의 온도를 낮춥니다. 시원한 여름, 투쟁으로 쟁취해 봅시다.

멋쩍게 덧붙여보자면, 더위에 축난 몸 보신해보겠다고 닭 삶아먹고 소고기 구워 먹는 게 정작 몸에 얼마나 보탬이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한의학은 질병의 원인을 무엇의 결핍이 아니라 조화가 일그러짐에서 찾습니다. 또한 한의학은 몸의 안과 밖을 엄격하게 나누기보다, 오히려 안과 밖이 유기적으로 관계 맺고 있다고 바라봅니다. 조화도 몸 안에 여러 요소가 골고루 갖춰지는 것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몸 바깥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상응(相應)하는 것을 함께 의미합니다. 그래서 한의학 고전들에도 애초 남의 살로 내 살 메우는 방법에 대해서는 언급한 바가 없습니다. 조화의 일그러짐을 예방하기 위해 외부의 변화에 따라 해 뜨는 것에 맞춰 아침잠을 조금 줄여보고, 너무 시원한 곳만 찾지 않는 것이 여름을 힘차게 나는데 도움이 되겠습니다.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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