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10년|7월|칼럼]기후변화와 노동자의 대응

한노보연 회원 김 경 근



북극곰아 미안해 !! 그런데 북극곰아, 미안하긴 한데.....
작년 초, 북극의 눈물이라는 다큐멘터리가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주위의 빙하들이 다 녹아버리는 바람에 자그마한 얼음 위에서 어쩔 줄 몰라하던 북극곰의 모습이 사람들에게 참 인상적으로 다가왔었지요. 지구 온난화로 인해 북극의 생태계가 얼마나 치명적인 영향을 받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었습니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지구 온난화(요즘은 기후변화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하지요)의 심각성을 깨닫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어요.
그렇지만, 북극곰에 대한 안타까움이 우리네 삶을 크게 바꾸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곰들의 운명이 특별히 우리랑 상관이 없다고 느껴지기에 관심이 없을 수도 있을 테지만, 무엇보다 곰들에게 관심이 있다할지라도 당장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기 때문일 듯해요. 그래서 북극곰에 대한 미안함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의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남이가 !! 해결해야할 게 두 가지나 있는데.
하지만 기후변화는 단지 북극곰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기후변화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탄소배출 축소는 이미 한국의 노동자들에게 직접적이고 시급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기후변화 문제로 인해 노동자들에 닥칠 변화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가 ‘필연적이고 정당한’ 변화라면, 반대로 ‘의도적이고 부당한’ 변화도 있습니다.
부당한 변화들 중 대표적인 것은 구조조정과 이윤논리 강화입니다. 기후변화를 빌미로 지난 10여 년간 계속되었던 신자유주의 공세를 더욱 강화시키는 거죠. 이러한 시도에 대해서는 노동자들의 적극적인 저지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탄소배출 축소는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과제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능동적인 대응을 통해 노동운동이 주도권을 확보하는 기회를 삼아야 합니다.


기회는 이때다 !! 고장 났으면 고치든가 버려야지.
지구 생태계 파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하여, 모든 사회구성원들은 그것의 원인이 무엇인지 그리고 해결책은 무엇인지를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기후변화 문제는 노동운동에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할 수 있는 거죠. 다시 말해 기후변화문제는 현대인들의 세계관과 가치관, 그리고 삶의 방식을 반성하고 성찰하도록 만듭니다. 좋든 싫든, 이제 지구인들은 현재의 자신을 바꿔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현대인들의 자본주의적 세계관은 이윤을 절대적 가치로 추구하며 효율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들은 모두 남에게 전가시켜 버립니다. 즉, 노동자와 자연은 돈벌이의 도구에 불과하고, 돈벌이에 부적합한 가치(예컨대 생태, 공공성, 정의)들은 인정하지 않는 거죠. 하지만 생태계 파괴 앞에서 현재와 같은 성장 지향적 발전은 지속될 수 없으며 시장원리를 통한 해결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기존 질서에 대한 대안 제시가 당위성을 가지게 되는 거지요.

취지는 좋은데, 뭔가 부족해.
진보진영에서 어떤 이들은 기후변화문제의 해결책으로 “기존 일자리를 줄이고, 다른 친환경적 일자리를 늘리자” 라는 방안을 제시합니다. 이러한 방안은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의 연대를 모색한다는 장점도 존재하지만, 구조조정에 대해 별다른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고 정당성을 인정한다는 한계점도 있습니다. “구조조정의 결정 요인은 생산량이다”라는 잘못된 이데올로기에 동조하게 되어버리면, 작업현장은 자본의 의도대로 재편되기 십상이지요. 게다가 기후변화 문제를 일으킨 자본주의적 합리성(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이윤을 추구)을 전혀 극복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중요한 것은 탄소배출량의 감축에 따른 고용 감소를 계산하기 이전에 노동자들이 현재 어떠한 조건에서 노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파악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적정한 노동시간과 적정한 노동강도, 심야노동의 유무가 먼저 기준으로 제시되어야 합니다. 또한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의 준거점이 달라져야 합니다. 이제까지의 합리성은 ‘효율성 극대화’였지만, 새로운 합리성은 ‘지속가능성’이 되어야 하는 거죠. 자연과 노동은 더 이상 단순한 도구로 간주되어서 안 되며, 이윤보다 생명·정의·공존의 가치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구조조정에 대한 관점도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기후변화 문제의 근본적 원인인 자본주의적 합리성과 ‘대량생산-대량소비’의 악순환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생산성 증가에 따른 고용 축소가 아니라, 생산성 증가에 기반한 노동시간 단축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고용 말고도 해야 할 게 많아.
기후변화 문제로 인해 기존의 노사관계와 노동현장의 질서·규칙은 불가피하게 변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때의 변화는 선험적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지요. 즉 노동자들이 어떻게 대응하냐에 따라서 결과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이후 한국 노동운동의 관심사는 거의 전적으로 ‘고용’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고용안정에 대한 노동자들의 열망은 엉뚱하게도 비정규직의 확대와 노동조건의 하락이라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노동자와 기업 간의 위계적 갈등은 한정된 수의 일자리를 둘러싼 노동자들 간의 수평적 갈등으로 전환되고, 기업의 경쟁력과 고용안정을 동일시함에 따라 노동자들이 생산성 향상에 자발적으로 협력하게 됩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 속에서, 노동자들은 자본주의적 합리성을 내면화하게 되는 거죠.
이제 노동운동은 고용과 노동조건과 환경을 함께 추구해야 하여, 이를 통해 현재의 노사관계와 노동현장의 규칙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고용-노동조건-환경이 삼각 축으로 구성된다면, 노동운동은 고용 문제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노동시간과 노동강도와 자연의 지속가능성이 고려된다면, 노동자와 자연의 생명이라는 가치가 이윤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면, 자본이 더 이상 노동과 자연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고용 문제를 더 쉽게 풀어갈 수 있게 되는 거죠.

노동자는 북극곰을 살릴 수 있다. 그러면 북극곰은 노동자를 살릴 것이다.
지속가능한 지구는 지속가능한 노동현장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노동자는 지속가능한 지구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주체 중의 하나입니다. 이 주체의 힘이 강화되기 위해서는 노동권의 보장이 필수적입니다. 동시에 지속가능한 노동현장은 지속가능한 지구 없이는 존재할 수 없지요. 지구가 생태적인 문제를 발생하게 되면, 인류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기 때문이다. 게다가 생태 위기는 사회적 약자에게 더 큰 비용을 부담지우기 때문이지요.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바로, 성장과 이윤 중심적 사고가 노동현장 차원부터 지구적 차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에서 다른 사고방식으로 대체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노동자들은 노동과정에서 자신의 건강 심지어 생명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을 감수하고 있습니다. 이윤이라는 절대적 가치를 위해 자신을 도구화시키고 있는 것이지요. 아울러 노동자 분할과 위계화에 동의하면서, 경쟁과 효율성의 원리를 내면화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생명조차 온전히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동료와 생존을 두고 경쟁해야하는 조건에서, 지구 생태계 나아가 미래 인류의 생존에 대한 고려가 존재할 수는 없습니다. 노동현장에서조차 지속가능성을 지켜내지 못한다면, 지구에서 지속가능성을 지켜내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거꾸로, 지구적 차원의 문제를 해결할 때조차 기존의 시장 원리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노동현장 차원에서 시장 원리가 관철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 것입니다. 인류의 공통적인 문제이자 절대적 중요성을 가지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조차 자본주의적 합리성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가뜩이나 여러 조건이 열악한 한국의 노동현장에서 자본주의적 합리성을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대응은 지구 생태계를 지키기 위한 환경운동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노동자를 지키기 위한 노동운동입니다. 북극곰의 눈물과 노동자의 눈물은 하나입니다.
일터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한노보연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