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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7월|이달의 노래] 철의 노동자!

민중가수 최 도 은

노동가요를 대표하는 노래 중 하나인 <철의 노동자>는 1990년 만들어진 노동영화 <파업전야>의 주제곡입니다. 이 노래는 <파업전야>의 영화음악을 담당했던 가수 안치환씨가 만든 곡인데 안치환씨는 영화의 주 무대로 사용된 공장에 현장방문을 갔다가 닫힌 공장의 녹슨 철문을 바라본 기억으로 이 노래를 만들었다 합니다.
<파업전야>는『장산곶매』라는 영화단체에서 만든 노동영화입니다. 『장산곶매』는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우리나라 영화법의 부당함에 저항하며 영화의 제작과 배급, 상영의 자유를 위해 투쟁한 독립영화단체였습니다. <파업전야>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전국적으로 만들어졌던 노조 건설 과정을 둘러싼 노동자들의 일상과 갈등 그리고 고민과 투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로 노동자의 문제를 주제로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노동영화로서 의의를 갖고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더불어 이 영화의 특이한 점은 영화의 제작 현장이 영화제작을 위한 세트장이 아닌 노동자들의 파업 현장으로, 인천에 위치한 ‘한독금속노동조합’이었다는 점입니다. 1987년 7·8·9 노동자 대투쟁 과정에서 노조를 만든 인천 갈산동에 위치한 ‘한독금속노동조합’은 회사 측의 직장폐쇄에 맞서 무려 3년여의 긴 시간동안 공장을 점거하고 파업투쟁을 전개한 인천지역의 대표적 사업장으로 1990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를 만들 수 있었던 지역의 구심인 ‘인천지역노동조합협의회’를 만든 중심 사업장이었습니다. 당시 ‘한독금속’은 병역특례사업장이었는데 노조를 만들자 사측은 직장을 폐업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한독금속노조’는 사측의 직장폐업에 맞서 20대 초, 중반에 이르는 병역특례 노동자들의 병역문제 해결과 직장폐쇄 철회를 외치며 무려 3년여의 긴 시간을 너무도 당당히 투쟁하였던 인천지역의 대표적 투쟁 사업장이었습니다. 오늘날까지 전국 곳곳에서 투쟁을 이어가는 노동현장에는 한독금속노조 출신 활동가들이 여럿 있는데, 삼성일반노조 김성환 위원장님도 ‘한독금속노동조합’ 출신입니다.
영화<파업전야>는 ‘한독금속노동조합’ 조합원들의 땀과 노력이 없었다면 만들어지기 어려웠습니다. 녹슨 기계에 기름칠을 하고, 녹슨 기계를 다시 돌려내고, 영화를 위해 작업장 곳곳을 일일이 정비하고, 영화제작의 뒤안길에서 그 많은 일들을 묵묵히 해낸 ‘한독금속노조 조합원’이 있었기에 영화 <파업전야>가 제작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노동영화 <파업전야>를 볼 때 영화를 만들기 위해 땀 흘려 함께 뛰었던 ‘한독금속조합원’들의 수고를 기억했으면 싶습니다.
1990년 노동자의 이야기를 주 내용으로 한 영화 <파업전야>는 정부에 의해 계급투쟁을 야기하는 불순한 영화로 규정되어 ‘상영금지조치’가 내려집니다. 1990년 4월 5일∼18일까지 이르는 기간 동안 조선·중앙·동아·한겨레 등의 주요 신문에는 영화 <파업전야>와 관련된 기사가 올랐는데, “노동쟁의를 선동하는 영화 <파업전야>를 상영할 땐 처벌한다”, “계급의식을 고취시키는 <파업전야>의 상영을 강행한 8명을 연행했다”는 글과 “필름을 압수했다”는 등의 기사가 연일 실렸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파업전야>의 영화필름은 폭력경찰에 압수되었고, 영화를 상영한 전국 곳곳의 대학가에서는 백골단이 투입되어 영화를 관람하던 관객들이 끌려나오는 일이 계속되었습니다. 한 예로 1990년 4월 14일에는 ‘광주지역노동조합협의회’ 주최로 ‘전남대’에서 <파업전야>를 상영했는데, 영화를 상영하고자하는 노동자와 학생들이 화염병과 쇠파이프로 교내에 침입하려는 폭력경찰에 맞서 저항하자 경찰은 영화 상영장 주변에 헬기를 띄워 관객들을 위협하고 최루탄과 폐퍼포그 전차로 무장한 채 수천여 명이 넘는 경찰 병력을 증원 투입하여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상황을 만든 일도 있었습니다.
당시 검찰과 치안 당국은 이 영화가 파업을 선동하여 '제3자 개입금지조항'에 해당된다며 영화 창작자 이은씨에게 수배령을 내렸으며, 심지어 영화를 보고 온 노동자에게 해고 위협을 하는 사업주도 있었고, ‘영화를 보는 노동자는 해고한다’는 신문 광고도 실리는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지기도 하였습니다.
짓누르면 튀어 오른다고 영화 <파업전야>에 대한 노태우 정부의 폭압적인 탄압이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이 영화는 전국 곳곳에서 상영과 재상영을 거듭하였고, 영화 상영작은 지역 노동자들의 단결을 돕는 연대의 현장이 되었으며, 영화를 상영하는 곳곳마다 결성된 ‘노동자·학생 사수대’는 전국 각 지에서 노·학연대의 살아있는 현장이 되었습니다. 정부와 언론, 검찰과 경찰, 백골단의 폭력에 맞서 싸우며 지켜낸 영화 <파업전야>와 이 영화의 주제가 <철의 노동자>는 이후 많은 노동자의 가슴에 남아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파업전야>에 참여한 많은 창작자들은 지금 이 시간 우리나라 영화계를 대표하는 충무로 영화계의 대표적 감독들로 변해 있는 게 현실이고(<JSA> 이은, <접속> 장윤현 등), 더불어 영화음악을 담당했던 안치환씨도 지금은 대중적 유명세를 누리는 가수가 되어 있습니다만, 1990년 이 영화가 만들어진 당시 시대 사회적 배경에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날이면 날마다 벌어진 노동자의 투쟁이 있었기에 영화가 만들어 질 수 있었던 것이고, 더불어 노동자의 투쟁이 한국사회의 전면에 섰기 때문에 1980년 5월 항쟁 이후 우리사회에 진보적 의식으로 고민하고 그 고민을 예술로 실천하려 했던 예술가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생각 됩니다. 날이면 날마다 노동자들의 투쟁의 열기가 드높았던 그 현장에서 노동자의 영화도 노동자의 노래도 만들어졌음을 기억하면서 이 달의 노래 ‘철의 노동자’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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