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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9월|지붕뚫고 보건학] 통계치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통계치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한노보연 선전위원, 산업의학 전문의 류 현 철

다양한 광고에서부터 보도기사, 국정홍보까지 우리는 무수히 많은 통계치들과 접하게 되고, 그것들은 우연일 수도 있는 현상을 과학적으로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무엇으로 만들거나 또는 그 반대로 상식적이고 명백하다고 믿고 있던 사실을 의심스러운 그 무엇으로 만드는 것에 이용되기도 합니다. 과학의 영역인 통계학에서 빠져나온 다양한 통계치 들은 일상의 영역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하게 되고 대중은 통계학으로서가 아니라 통계치 혹은 그에 기반하여 해석된 정보를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지요.

보건학이나 산업의학의 영역에서 많이 등장하는 역학조사라는 것도 이러한 통계적 방법론에 적지 않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인간에게서 발생하는 질병의 원인을 밝히는 것은 대상자체에 대한 실험적인 연구가 대단히 제한적이기 때문에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따라서 다양한 변수가 존재하는 일상 조건에서의 관찰연구가 중요하게 되는 것이며, 이 과정에서 잘 설계된 역학적 방법과 통계적 처리과정이 필요하게 됩니다.

이처럼 사회의 다양한 현상을 분석해서 여러 주장의 근거로 삼도록 하는데 필수적인 요소처럼 보이는 통계들은 얼마나 믿어야 하는 것일까요?

“세상에는 세가지 거짓말이 있다. 평범한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학.”

“그가 통계를 사용하는 것은 마치 술주정뱅이가 가로등 기둥을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 불을 밝히는 데 쓰는 것이 아니라 그저 지지대의 용도로 쓰는 것이었다.”

“통계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있는 사실을 알아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없는 사실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통계에 대한 회의로 가득 찬 (비록 모두 인문학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나온 것이기는 하지만) 유명한 언급들입니다. 연구나 조사의 결과로 제시되는 다양한 통계적 수치들은 그야말로 불확실성의 정도인 확률의 표현형이며 그 자체로 어떤 의미를 가진다기보다는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달려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중요한 것이 진리나 사실 보다는 “통계적 유의성”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불을 밝히는 것보다 지지대의 용도가 커지는 경우이지요.

그래서 통계치나 그것을 위한 정보를 구성하는 과정을 바라보는데 있어서의 몇가지 고려해야할 점을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통계치의 산출과정의 문제라기보다는 그것을 이용하기 위한 애초의 목적부터 문제가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통계라는 것은 많은 자료와 정보를 수집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따라서 어떤 목적으로 정보를 수집 하는가 에서부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폐암과 흡연에 대한 논쟁을 들 수 있습니다. 이제는 상식처럼 되어있는 흡연과 폐암의 관계가 “공식적으로” 입증된 것은 그다지 오래전 일이 아닙니다. 현재 미국의 노동안전보건국(OSHA)의 수장이기도한 데이비드 마이클스의 저서인 『청부과학』에 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20세기 초부터 흡연의 위험을 경고하는 보고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1950년대 이후에는 저명한 과학저널에 흡연과 폐암의 상관성을 입증하는 연구논문들이 다수 실리게 됩니다. 그러나 담배업계의 후원을 업고 발행된 의사와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한 잡지에서는 수많은 반증 자료와 논문들을 찾아 싣습니다. 제목이 이렇습니다.

- 흡입 테스트 결과 폐암 유발 불가. 바이러스 의심

- 과학계 보고. “폐암 증가는 결핵 감소와 관련 있다”

- 광산 노동자, 폐암 발생률 3배 더 높아

- 심리적 가족적 요인이 폐암의 원인 가능성

- 네덜란드 연구진 “3월 생, 폐암 잘 걸린다”

- 뉴올리언스 내과의 "대머리는 폐암 드물다“

- “폐암은 직업병” 독일의 대규모 연구 결과 밝혀져

- 폐암환자 1000명중 절반은 비흡연자

일부 언급들은 언듯 이해가 갈만 한 것도 혹시 그럴 수도 있지 않나 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인용과 조사의 목적은 이권을 둘러싸고 단지 폐암과 흡연의 연관성을 부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이지요. 결국 이러한 부단한 공작에도 불구하고 폐암과 흡연의 상관성이 인정되게 되었습니다만 수 십년 간 담배업체들의 수익은 연장되었지요.

다음으로는 다양한 비뚤림(bias)의 가능성을 고려해야 합니다. 비뚤림이라는 것은 서로 비교하고자 하는 집단을 최대한 유사한 조건으로 만들어 주어야 하지만 연구대상을 선정하는 과정이나 조사항목을 측정하는 과정에서 비교하고자하는 집단 중에 특정 집단에만 영향을 미치는 과정이 있을 경우를 말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이러한 비뚤림은 완전히 제거하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이를 최소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며, 간과하거나 해석을 왜곡하는데 이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국내 한 자동차 기업의 사내하청과 정규직 노동자의 재해율을 비교한 연구에서 2005년 재해율을 비교한 결과 정규직 노동자의 재해율은 2.94%인데 비해 사내하청 노동자는 0.75%로 4배에 이르는 차이가 발생했으며, 근골격계질환과 같이 비사고성 산업재해를 제외하고 업무상 사고 재해율만 따져보

아도 정규직은 1.49%, 사내하청 노동자는 0.66%로 정규직의 재해율이 2배나 높았습니다. 조선업종의 경우 건강진단상 일반질병의 유소견율과 유병률이 원청은 10%, 5%를 상회하는 수준이었으나 하청은 6%, 4%로 나타났습니다.

이것을 사내하청노동자들의 더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하고 있다는 근거로 삼을 수 있을까요?

산재율이 높은 경우 원청과의 재계약에서 불이익을 얻게 되는 하청업체의 사정상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불이익을 감수하고 산재신청을 하기 어려운 현실과 고용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이직율이 높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직장을 옮길 때마다 하게 되어 있는 채용 신체 검사에서 건강상의 작은 문제로도 탈락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설명하지 않게 되면 통계치는 현실과는 다른 결과를 보여주는 근거로 작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정보 자체를 수집하기 어렵게 만들어 통계자체가 불가능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미국의 이야기입니다. 1990년이후 노동자들의 근골격계 질환의 위험성은 줄기차게 제기되어 왔습니다. 미국의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서도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이를 예방하기 위한 방안이 필요함을 역설했고 다수의 학자와 연구자들이 이를 지원했습니다. 근골격계 질환이 모든 작업장 질환의 48퍼센트를 차지하고 있고, 정육업 노동자의 경우는 일반 노동자들에 비해 30배나 높은 위험에 처해있다는 보고도 나왔습니다. 약 10년간의 연구의 성과들을 가지고 자본과 그들의 로비스트들의 방해공작 속에 논쟁과 타협의 과정을 거쳐서 1999년에 모든 업종에 대해서 근골격계질환의 예방을 위한 인간공학적 기준안을 완성하고 2001년 1월에 시행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2개월 후 새로운 부시 행정부의 전폭적인 지지하에 의회에서 법안을 폐기하게 됩니다. 대신 그들이 근골격계 질환을 줄이기 위해서 택한 방법은 고용주에게 미국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매년 보고하도록 했던 재해보고서 양식에서 근골격계 장애 카테고리를 제외시키도록 한 것입니다. 2003년 이후에는 공식 통계 자료에서 근골격계 질환은 등장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잘 설계된 역학적 조사와 통계는 다양한 사건과 현상을 과학적 사실로 만들어가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직관과 상식으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짐작할 수 있는 일들에도 여전히 소위 “객관적인 데이터 혹은 통계치”를 요구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도 생각해 볼일입니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서, 더 더럽고 위험하고 힘든 일을 하는 노동자들에게서, 더 늦게까지 더 오랜 시간 일하는 노동자들에게서,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더 낮은 보수를 받는 노동자들에게서, 언제 직장에서 나가야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서 질병과 사고가 많이 발생할거라는 상식적이고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사실들에 대해서도 이를 예방하고 개선하기 위해서는 정책을 위해서는 근거와 자료가 필요하답니다. 정부는 연구 프로젝트를 발주하고 연구자는 연구를 합니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잘 신청도 안한다는 도대체 사내하청이라는 구분은 어디에도 없는 산재통계자료를 들여다보며 연구자는 괴롭습니다.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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