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10년|9월|일터 다시보기] ‘도대체 우리가 줘야 할 것이 무엇이 또 있다고..’를 읽고]

 2009년 2월호 <일터> 현장의 목소리,

‘도대체 우리가 줘야 할 것이 무엇이 또 있다고..’를 읽고

 

 

한노보연 선전위원 호 나 라

 

   이 글을 지금도 뜨거운 아스팔트위에서 힘겹게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위니아만도지회 정원투 동지들을 위해 적어 봅니다. 그리고 제 개인적으로 막아내지 못한 미안함, 끝까지 결사항전 하지 못한 미안함, 그리고 끝까지 함께하지 못한 죄스러운 마음을 이 글을 통해서 전해봅니다.

 

불행의 시작! 그리고 저주의 칼날.

   2009년 한해가 시작도 되기 전 위니아만도 사측은 회사가 어려우니 인적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는 일방적인 통보와 함께 희망퇴직 시행 구조조정대상자 선별과 조합원의 회유와 협박을 통한 강제퇴직을 순차적으로 시행하였고 정리해고자 명단 발표와 개별통보를 통해 구조조정을 단행 하였다. 이에 노동조합은 투기자본 분쇄! 함께살자! 구조조정 분쇄!를 위해 투쟁을 조직하고 계획했으며 힘차게 전개하기위해 그리고 승리하기위해 고군분투하였다. 하지만 사측은 집행부의 투쟁의지를 조직적으로 분쇄하고 살아남은 비해고자와 정리해고자를 원천적으로 분리하고 봉쇄하며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이데올로기로 서로에게 칼끝을 겨누게 하여 결국 패배하게 되었고 결국 집행을 포기한 채 새로운 집행부를 선출하게 되는 과정이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집행부마저 최소한의 원칙마저 지키지 않으며 미온적인 투쟁전술과 전략으로 정원투는 물론 현장의 혼란을 야기시키고 있다.

  

적 그리고 적

  지난해 2009년 위니아만도는 정리해고를 통해 많은 노동자가 공장을 떠나야 했다. 희망퇴직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을 내밀어 선량한 노동자를 회유하였고 회유되지 않는 노동자에게는 자존심을 뭉게는 협박으로 노동자로서의 자존감을 짓밟았으며 수긍하지 않거나 버티는 노동자에게는 해고의 칼날을 날려 일순간에 모든 삶을 날려버렸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자본의 칼날에 두 동강이 난 채 한 몸둥이는 치욕을 견디며 엄청난 노동강도를 참아가며 노동의 삶을 살아가고 다른 한쪽은 그래도 살아야한다는 오기와 끈기로 기필코 복직한다는 희망을 안고 길바닥인생을 살며 투쟁을 외치고 있다. 그리고 서로에 대한 증오와 죄책감에 억눌리며 서로에게 칼끝을 겨누며 무서운 적이 되어 삶을 살아가고 있다.

 

죽음의 덫!!! 자본의 덫!!!

우리에겐 이미 더 이상 빼앗길 것이 없었다. 하지만 쓰레기 악질자본과 그들의 수하들은 수없이 많은 덫을 놓았고 그들에게 저당잡히 우리의 삶이 결국 가장 큰 덫이었다. 삶에 지친 몸둥이와 책임져야 할 가족은 그저 부담스럽고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 할 나의 삶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비열한 쓰레기자본은 나의 삶을 통째로 저당잡고 나의 동지를 죽이라고 명령을 내리기 시작 한 것이다. 동지를 죽이지 않으면 네가 죽는다. 그러면 너의 삶 모두를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고 협박을 했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서로를 죽이고 몸둥아리를 잘라 낼 수밖에 없는 과오를 저지른 것이다. 자본의 덫에 걸려 꼭뚜각시가 된 좀비처럼....

 

제어장치 없는 고속생산열차 그리고 사라져버린 저항의 틀...

  살아남은 자들의 노동현장은 제어장치 없는 고속생산열차가 되었다. 그 누구도 높아진 노동강도에 대하여 이야기 하지 않는다. 노동조합도 이러한 현장의 모습을 관망하며 자주적인 저항의 틀이 만들어지길 원하기만 할 뿐 저항의 틀을 전혀 만들어 주지 않는다. 오히려 만들어 지지 않기를 바라는 느낌이다. 더 이상 기대어 저항의 힘을 만들지 못하는 나의 삶 터...

  

그래도‘함께 살자!’고 외쳐야만 한다.

  우리에게 원칙은 무엇이며, 원칙을 정함에 있어 무엇을 어떻게 그리고 어디에 기준을 정 할 것인가? 또 ‘함께 살자 동지여!’ 라는 구호는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말인가, 아니면 너와 내가 함께 살고 함께 죽자는 구호인가? 나는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그것을 결정 하는 것은 너도 아니고 나도 아니다. 바로 우리가 결정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함께 살자!’라고 외쳐야 하는것이 아닌가. 이것이 원칙이다. 변하지 않는 원칙이다.

 

      다시한번 해 보자, 작은 저항 그리고 함께하는 투쟁!!!

  공허한 투쟁의 구호는 이젠 무의미하다. 작은 실천이 큰 저항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할 시점이다. 내 현장에서 그리고 내 공장에서 내 삶터에서 우리는 작은 저항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나부터 실천을 해야 한다는 약속을 다시 한번 해 본다. “동지와 함께라면 끝까지 투쟁하겠습니다...투쟁!” 나는 이렇게 외친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의 나를 보면 분명 거짓이었다. 공허한 약속이었으며 거짓된 구호였다. 다시는 이렇게 공허한 약속을 하지 않을 것이며 진정성 있는 작은 실천부터 해 볼 것이다. 다 함께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삶터를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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