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10년ㅣ10월ㅣ이러쿵저러쿵] 밉지만 짠한 게으름


밉지만 짠한 게으름


한노보연 회원 김 재 광

한 이틀 한가했습니다. 한가했다는 것은 회의도 없고, 당장 해야 할 일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글을 써내라고 하니 이것도 스트레스입니다. 핸드폰 일정표에는 동그라미가 없는 날이 거의 없습니다. 늘 쫒기는 일상입니다. 참 바쁩니다. 생업이 바쁘면 그나마 경제적으로 윤택해 질 텐데 딱히 그것도 아닙니다.(참고로 저는 자영업자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근면한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오늘에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그래서 늘 약속한 날이 되면 똥줄이 타는, 지금도 그렇습니다. 언젠가 버트런트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을 책방에서 발견했을 때,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들어 무조건 산적이 있습니다.(독자 분들도 한번 읽어 보시길)
게으름의 인생의 숙제입니다. 천천히 조금 느리게 살고 싶습니다. 그저 멍 때리는 시간이 많았으면 합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천성이 게으른데,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 더 죽겠습니다. 그래서 게으름이 밉습니다. 주위를 들러보니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두 바쁩니다. 활동을 하건 안하건 모두 여유가 없습니다.


OECD 최장 노동시간, 야간 노동의 천국 한국은 모두를 너무 바쁘게 합니다. 비가 엄청 오고 난 다음날인 휴일, 자전거를 타고 한강 변에 나간 적이 있습니다. 정말 하늘도 바람도 공기도 너무 좋아 한국의 서울 같지가 않았습니다. 가족과 친구와 혹은 홀로 한강변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외국 사람들 같았습니다.
생각해보니 게으름은 현실에서는 밉기는 하지만 참 짠합니다. 근면과 게으름은 대체로 상대적인 것이라 내 기준 내 마음 대로 될 수 가 없습니다. 속도와 경쟁은 많은 사람들을 게으름뱅이로 만듭니다. 세상에 조응하지 못하니 심리적 부채가 생깁니다. 속도와 경쟁을 조장하는 자와 싸우려니 우리도 그 만큼 게으를 시간이 없습니다. 할 일과 일정이 너무 많고, 제대로 하지도 못하니 문득 문득 왜 이렇게 사나 싶습니다.
혹자는 계획성이 없어서 시간을 잘 활용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일면 맞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반면 과로사하는 사람들의 옆에는 유명한 프랭클린 다이어리가 있거나, 촘촘한 작업표가 여지없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넉넉한 여유를 계획하지 못하게 합니다.
여유로운 삶은 게으름을 피울 공간과 시간이 전제되어야 가능합니다. 창조는 빡빡한 수첩에서 튀어 나올 수 없습니다. 쉬엄쉬엄 일하는 것이 미덕인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나같이 게으른 자도 마음에 부채 없이 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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