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10년ㅣ10월ㅣ기획ㅣ노안활동가에게 듣는다] 횃불보다는 함께 타오를 수 있는 촛불처럼


횃불보다는
함께 타오를 수 있는 촛불처럼


▸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노동안전국장 정상래 동지
인터뷰 & 정리 _ 한노보연 상임활동가 타래


부산지역에서 20여년간 노동안전활동을 꾸준히 해오며 노안운동에 참으로 많은 것을 기여했고 지금도 불철주야로 노력하고 계신 정상래 국장을 만났다. 정상래 국장은 노동운동과 민주화 열풍이 거세게 몰아지던 87년부터 지금까지 줄곧 한길로 한발 한발 내딛으며 노안의 역사에 뚜렷한 종적을 남긴 거목이라 할 만하다. 특유의 차분한 말투로 진행된 인터뷰 중에 문득 문득 필자를 감동시켰지만 지면에는 살리지 못한 그의 시적인 표현들이 아쉽다. 인간에 대한 따스한 시선과 섬세한 감성이 투사로서의 그의 삶에서 가장 큰 무기가 아니었을까?

참으로 오랜 기간 활동을 해오셨는데 어떤 계기로 노안운동을 하게 되셨는지요?
80년 회사에 입사했고 자연스럽게 노조활동을 시작했어요. 제가 노조활동을 하던 시기에는 민주화 운동과 노동운동이 거세게 몰아치던 시절이었는데 사회모순에 대한 고민을 심각하게 하던 시기였어요. 그러다 산재추방운동 등의 경험으로 90년 경 부터는 노조안전부장을 맡게 되었고 노안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어요. 97년에 금속연맹 부양본부 산안부장을 맡으며 활동하다가 타 연맹, 미조직, 건설, 비정규 등 노안활동영역의 확대를 위해 2003년 민주노총 부산본부에 노안국을 만들었고 현재까지 노안국장을 맡아 활동하고 있습니다.

최근 발생한 건설현장 추락사고에 대한 대책활동과 4대강 문제로 참 바쁘게 지내시는 듯 해요. 최근 근황은 어떠세요?
늘 정신없이 바쁘지요. 질문하신대로 건설현장 추락사고 문제 해결을 위해 노동부에서 좀 전 항의면담을 하고 왔는데 지속적으로 정부를 압박해서 제도적으로 풀어나갈 문제라고 생각해요. 건설의 경우 원하청 관계에서 안전관리에 대한 시스템이 작동되지 못하는 결함이 있습니다. 다단계 하청으로 넘어오면서 안전보건의 문제마저 떠넘겨 지는데 그 과정에서 책임의 소재가 불분명해지고 급기야 증발해 버리죠. 원청이 책임지는 것이 지금 현실적으로 가장 시급하고, 노동조합이 감독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해요. 그러나 원하청의 근본적인 구조가 개선되지 않는 한은 어디까지나 차선책이겠지만...현재 이러한 시스템적 결함으로 인해 불법적 작업이 이뤄지고 불법으로 개조한 장비가 현장에 들어와도 근본적 관리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아요. 지속적으로 압박하고 집요하게 요구를 해서 현실적인 제도로 바꿔내고 안전관리에 대한 시스템이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 지금으로선 가장 절실합니다.

노동안전보건 활동의 핵심과제와 해결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당장은 연맹별로, 사업장별로 담당자가 배치되는 게 가장 시급하죠. 아직도 노동재해 실태파악에 있어서 노동부와 정부의 통계에 의존하는 부분이 많은 것도 문제고, 회의 체계도 미흡하고 노안활동이 많이 침체되어 있습니다.
노안활동의 수준이 올라가야 하는데 제도적으로, 시스템적으로 고민이 필요합니다. 또 안전보건의 문제를 현장 안의 문제로 국한시켜서는 안 되고 사회적 의제로 상정해서 국민적 차원에서 알려내야 하고, 시민운동과의 결합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 해요. 시민의 지지를 받는 운동으로 전개해 나가야 하고 안전보건에 대한 의식수준을 고양시켜 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환경문제에도 관심이 많으시고 열심히 활동을 하시는 것 같은데?
환경 문제도 ‘보건’의 문제와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하구요, 95년 경 LG전자 유기용제 중독사건으로 시민대책위가 꾸려지고 공청회도 열리고 언론에 알려지면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지요. 개인적으로 ‘보건’의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 계기인데 노동자의 건강을 위협하는 각종 유기용제나 발암물질 같은 것은 사업장 바깥으로 나가면 환경의 문제가 되는 것이잖아요. 석면문제도 마찬가지고... 때문에 환경문제에 대응 하고 참여하는 것은 좀 더 높은 수준으로 확장된 노안활동이라고 생각해요. 결국 건강을 위협하는 모든 활동을 하려다보니 자연스럽게 환경운동에 참여하게 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노안 활동을 해오며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이상관 투쟁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 투쟁에 참여했던 노안활동가나 노안단체 등의 견해에 차이가 있었고 갈등과 분열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발전적으로 진화분열 했다고 생각하는데 많이 안타까웠죠. 노안활동은 ‘동지적 애정’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개인적, 지역적, 운동적 조건이 다른데 그것을 서로 존중해야 합니다. 다른 빛깔의 촛불들이 함께 타오를 수 있도록 서로를 소중히 여겨야 하는데 간혹 횃불로 그것을 꺼버리려고 하는 경향이 있어요. 활동가들이 소중한 자산인데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분열하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지요. 항상 역지사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봐요.

국장님의 강의를 들으면 내내 차분한 어조로 조곤조곤 진행하던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졸지 않는 비결이 무엇인가요? (웃음)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교육이 아니라 노동안전의 문제를 함께 들여다보는 보는 것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편입니다. 회사에서 의무적으로 하는 교육은 도식적이고 형식적인 면이 없지 않아요. 노동자 부주의로 몰아가는 교육, 주눅 들게 하는 교육, 딱딱한 교육이 대부분이죠. 공감할 수 없는 교육은 교육이 아니죠. 함께 공감하고 노동자로서의 체험을 체화해내는 자리가 되도록 예컨데, “강 건너 불이 났는데...”식이 아니라 “내가 지금...” 이렇게요. 노동력이라는 상품을 팔러 온 노동자가 자신의 몸을 오롯이 느끼게 하는 최면 상태를 유도하기도 해요. 교육 중에 눈물을 쏟는 조합원도 계셨죠. 다칠 수밖에 없는 불가항력의 구조를 자각시키고 계급의식 분명히 하고 현장을 바꿔내는 데 동참할 수 있도록 이끌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주제와는 조금 다른 얘기인데 활동가 이전에 아주 뛰어난 예술가라고 생각이 드는데 예술가로서의 삶에 대해서도 듣고 싶네요. (그의 작품은 전국 각지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사실은 예술가로서의 꿈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활동이 끝나면 비로소 ‘정상래’의 문을 두드리고 나의 세계로 들어오게 되는데 붓을 잡고 서예를 하고, 전각, 서각 등 작품을 할 때 나의 본능과 만나게 되는데, 가장 행복해 지는 순간이고 스트레스를 풀고 재충전을 하는 시간이죠. 녹초가 되어 돌아와서도 그때만큼은 정신이 육체를 이기는 것 같아요. 예술관에 대해서 말로 하자면 끝도 없는데...(웃음)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렇게 나온 작품을 나누는 것이 좋아요. 함께 활동하는 동지들에게 활력을 주고 싶을 때 깜짝 이벤트를 열기도 하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참 기쁘고... 제가 만든 작품은 나눌 때 비로소 그 의미가 완성되는 것 같아요.

끝으로 일터 독자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씀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건강이고 그 건강을 해치는 것이 우리 현장입니다. 이런 현장을 바꿔내려면 관심과 참여가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함께 바꿔나가야 합니다. 개개인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라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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