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10년ㅣ10월ㅣ특집] 외주출판노동자 실태조사에 관하여


외주출판노동자 권리선언’이라는 책의 ‘서문’


- 외주출판노동자 실태조사에 관하여 -



불안노동철폐연대 비공식노동자조직화팀 슈 아


비정규직 800만 시대라고 이야기 한다. 이는 기간제, 임시직, 특수고용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비정규 고용형태의 확대를 의미 할 뿐 만 아니라 사용자가 누구인지 찾는 것이 쉽지 않은 (혹은 불가능한)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 노동과 비공식 노동이 가능한 노동시장이 확대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대표적 사례가 ‘프리랜서’로 통칭되는 독립계약자 혹은 외주자 /외주노동자들이다. 특정기업의 고용계약에 의해 관리․통제를 받지 않으나 일의 수행을 위해서는 지속적인 지시․감독을 받는 특수고용형태의 비임금-비정규 노동(독립사업자, 프리랜서, 상품판매원 등)시장의 확대이다. 이들 비임금 노동자는 실질적으로 특정사용자에 대한 경제적 종속관계에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타 임금노동자들이 누리는 노동권과 근로기준의 법적 보호, 그리고 사회복지제도 등이 적용되는 공식적 고용의 영역 밖으로 배제되고 있다. 외주노동자의 확대는 출판산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외주출판노동자는 어떻게 만들어 졌는가?

1년에 30-50종 정도의 책을 내니까, 한사람의 편집자가 기획에서 마케팅에 이르는 전 과정을 관리하고 홍보까지 다 해요. 종수가 늘어나면서 외주를 많이 했어요. 외주자의 경우 회사출신자들이 많아서 팀워크가 된다고 봐야죠. 이렇게 하는 게 효율적이고, 출판사 내부에는 머리 부분만 남는게 좋지요 (출판사 경영자 인터뷰 중)

한참 크는 아이들 육아와 교육 문제에 걸려 프리랜서를 선택하였지만, 실은 자유롭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강했던 것 같아요. (외주자 글 내용 중)


출판산업의 불황은 한두 해의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이 불황의 짐은 사용자측보다는 오히려 노동자 측에게 고스란히 돌아갔다. 출판사가 불황의 타개책으로 선택 한 것은 책의 종수를 늘리고 책의 부수를 줄이는 ‘다품종 소량 생산체계’이며 대대적인 인원 감축과 업무 외주의 확대였다. 실제로 한 출판사 당 평균 종수의 통계를 보면, 1993년에는 1년에 11.6종이였는데, 2003년에는 23.3종으로 대폭 늘어난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다품종생산체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식적으로는 출판사의 노동량과 인력이 대폭적으로 증가되어야 한다. 하지만 오히려 출판사 노동인력은 대폭 줄어들었다. 1990년에는 5명 미만의 출판사가 전체 출판사의 26.8%였지만, 2000년에는 56%로 증가되어, 출판사의 절반이상이 적은 인원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럼 출판사는 인원을 감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종수의 책을 내기 위해 부족한 노동량을 어떻게 보충하였을까? 이는 출판과정의 첨단기계화와 외주업무(아웃소싱)의 확대로 설명이 가능하다.

39세 전에 퇴사하는 출판사 분위기
노동자 다수가 여성임 : 결혼, 임신, 자녀양육 문제
출판사재직자 -------------------------------------> 외주자 양산
출판사의 복지 미약/ 임금 낮음/ 업무량 많음


출판사 내부인력 줄임. 고정비용 줄임
경영인 ---------------------------------------> 외주거래량 증가
DTP의 적극적 활용, 다품종 소량생산

앞서본 도식처럼 출판사 경영자 측은 내부 구조조정과 많은 종수의 책을 빠르게 생산하기 위해 효과적인 방법으로 외주거래량이 더욱 증가되었다. 또한 외주출판 노동시장도 함께 성장하였는데, 이는 출판사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노동인력의 과포화 상태가 맞물리면서 더욱 저렴하고 큰 외주출판 노동시장을 만들어 내었다.


외주출판노동자들은 누구인가?

프리랜서, 외주자, 외주출판노동자 등. ‘외주의 형태로 출판 일에 종사하는 이들’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진다. 이들은 출판 업무에 따라 직종 또한 다양한데, 편집자, 디자이너, 그림작가, 원고입력자, 번역가, 글작가, 대필가 등이 있다.
과거의 외주출판노동자들은 몇 가지 출판업무 분야에만 한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출판 산업의 외주화의 확대는 출판관련 거의 모든 업무의 외주화가 가능한 방향으로 진행되어 지고 있다. 기존의 외주업무였던 작가군(번역가, 글작가, 그림작가)의 업무에 있어 외주화가 더 확대 되었을 뿐 아니라 기획, 편집, 교정교열, 디자인, 영업, 원고입력 등의 업무에 있어서도 외주업무가 가능하게 되었다. 또한 외주화 된 업무의 수준도 ‘가내노동’으로 명명되는 단순한 업무에서부터 ‘프리랜서’로 명명되는 전문적인 업무까지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외주출판노동자의 고용형태 또한 매우 복잡하다. 독립사업자 형태로 도급계약을 맺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기획사나 유사 파견업체를 중간에 끼고 하는 외주출판노동자도 있으며 외주작업을 하지만 출판사에 출퇴근하는 상근외주, 출퇴근외주와 같이 기형적인 고용형태들도 보여 진다. 하지만 이처럼 다양한 출판관련 종사자들은 ‘외주’라는 공통된 특성으로 인해 유사한 노동조건에 놓이게 된다.


외주출판노동자 OTL : 누가 우리를 자유롭다고 했는가?

제가 기획사 사장에게 북에디터(출판관련 구인구직이 가능한 홈페이지) 같은 데서 보니까 다들 단가가 낮은 일은 하면 안 된다고 하던데 참 자괴감 든다고 했더니 그 사장 왈, 다들 앞에서는 그렇게 말해도 사실은 더 싼 일도 한다고 하더군요. (외주자 글 내용 중)

외주출판 노동시장은 외주자들의 과잉경쟁을 부추기고 더 저렴한 노동력, 더 열악한 노동조건을 만들어 내고 있다. ‘프리랜서’라고 하면 선망의 직업으로 명명되어 지는데, 이는 기존의 회사에 메여있는 노동으로 통칭되는 것들에 대한 불만으로 생긴 신화에 불과하다. 몇몇 소수의 고소득 프리랜서들을 빼고 나면 대다수 프리랜서들은 복지와 안정적인 수득 보장이 힘들고 매우 열악한 노동조건을 가지고 있다. 단순 업무중심으로 이루어진 가내노동자들의 열악하고 싼 노동을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가깝다. 자신의 집에서 일을 하고 자신의 노동시간을 자신이 자유롭게 관리하며 일과 생활을 함께 안정적인 영위 할 수 있는 직업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현실을 정반대이다.

외주출판노동자들도 마찬가지인데, 일과 생활의 균형은 매우 쉽게 깨어진다. 오히려 집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생활’이 라는 것은 전혀 없이 ‘노동’으로 일상이 모조리 채워지기 일쑤다. 낮은 단가의 일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외주 출판노동자들은 일감이나 노동량을 더 늘릴 수 밖에 없고 이는 하루 8시간 노동이 아니라 10시간, 12시간 노동을 해야 하는 형편에 놓이게 된다. 당연히 야간 업무는 많아지고 주말에도 업무는 계속된다. 그리고 출판 업무의 특성상 ‘마감’이라는 것이 있다. 그래서 마감 일정이 가까워질수록 -외주노동자들의 작업은 출판사 재직자들 보다 짧은 마감시간이 주어짐- 노동 강도는 더욱 강해 질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한 스트레스는 더욱 가중된다. 또한 안정적으로 외주 일감이 들어오기 위해서는 자신이 직접 ‘영업’까지 뛰어야 하며 불안정한 외주 일감은 간혹 턱없이 낮은 단가의 일이 들어오더라도 일감을 거절할 수 없는 형편에 놓이게 만든다. 문제는 이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외주 작업을 끝내더라도 그 댓가의 지급이 일사천리로 이루어 지지 않는다. 기존의 계약과 다르게 단가를 깎거나 지불 날짜를 차일피일 미루기 일쑤며 그러다가 몇 년씩 못 받는 경우도 적지 않게 발생한다. 이 외에도 4대 보험 및 기업의 기본적 복지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불안정한 수득은 은행 신용등급도 최하위로 만들어 대출 하나 제대로 받기 힘들다. 이처럼 불안정노동은 불안정한 삶, ‘외주출판노동자 OTL(좌절)’로 이어진다.

실태조사 : ‘외주출판노동자 권리선언’이라는 책의 ‘서문’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외주출판노동자를 비롯한 ‘프리랜서’들의 사회적 권리에 대한 자기 목소리내기는 미약한 수준이다. 오히려 자신의 권리를 얘기하려다 일감이 떨어질까 무서운 것이 현실이다. 현재는 인터넷 커뮤니티 중심으로 정보 교환과 더불어 작게나마 외주출판노동자들의 노동권을 비롯한 사회적 권리들을 얘기하고 있다. 한계도 있겠지만 다들 작업장이 ‘집’이기에 쉽게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인터넷 공간 이었던 것이다. 외주출판인회의, 출판노동자협의회 등 다양한 커뮤니티가 만들어져 활동하고 있다.

이렇게 구성된 모임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목소리 내고자 하는 움직임으로 2009년 초부터 고민 했던 것 중 하나가 ‘외주출판노동자 실태조사 사업’이였다. 결국 시작은 2010년 하반기에야 본격적 가능하게 되었지만 그만큼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고가며 준비되었던 측면이 있다.
외주출판노동자 실태조사는 노동실태와 4대 보험에 대한 인식, 교육·주거 등 사회적 권리와 관련한 생활상의 요구를 구체적으로 파악하여, 외주출판노동자의 조직화 프로그램과 모델을 만들기 위한 기초자료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실태조사는 외주출판노동자 주체를 비롯한 4개 단체가 함께 심층인터뷰와 설문조사를 병행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올해 기본적인 조사를 마치고 이를 정리해 중간결과를 발표를 하며 이후 실천적 사업과 운동적 대응에 대한 논의까지 진행하여 최종결과를 발표하는 순서로 진행 할 것이다. 이미 수차례의 워크숍 및 논의 그리고 사전인터뷰까지 완료된 상황이며 주체들의 목소리를 모아가는 방식으로 실태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실태조사는 책으로 보면 ‘외주출판노동자 권리선언’이라는 책의 ‘서문’에 해당하는 것이다. 거의 모든 얘기가 간단하게 정리되어 있지만 본격적으로 풀어내기 전의 이야기, 큰 그림 그리기 인 것이다. 매우 중요하게 손과 시간이 많이 드는 작업 아닐 수 없다. 하나의 완성된 책을 만들듯 작업을 해 나가고 있다. (이 서문 작업에 따끔한 충고와 격려를 잊지 마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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