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11년ㅣ1월 l 노안활동가에게 듣는다] 건강한 노동세상 장안석 동지

“서로 지지하고, 북돋우며 사람의 향기가 넘치는 노안활동을 하고 싶어요.”

▸ 건강한 노동세상 장안석 동지
▸ 인터뷰 & 정리 _ 한노보연 선전위원 푸우씨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각종 매체를 통해 반올림 활동이 소개될 때 꼭 거론되는 몇몇 인물이 있다. 장안석 동지도 그 중 한명이다.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인 황상기씨가 딸의 억울한 죽음과 삼성반도체 백혈병의 진실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 이곳저곳을 찾아다녔을 때, 처음 만났던 인물로 항상 지목되기 때문이다.
인천지역의 노동안전보건 단체인 ‘건강한 노동세상’ 장안석 동지를 만나 그와 함께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눠보았다.


바쁘지만, 더 바빠야 할 것 같아요.

장안석 동지는 몸을 바쁘게 부리는 사람이다. 잠시도 쉴 틈을 두지 않는 성격 탓에 남의 일도 제 일처럼 팔을 걷고 나선다. 그런 그가 2010년 한해는 매우 바빴다고 말하니,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이 간다. 특히 바빴던 이유를 물으니 이유인즉, 같이 일하던 사무국 동지의 육아휴직으로 한동안 혼자 건강한 노동세상(이하 건노세)의 살림을 꾸려야 했고, 반올림 활동이 양적 질적으로 성장하면서 더불어 할 일이 많아졌고, 작년 5월 인천지역에서 구성된 석면대책위 활동 등, 실무를 맡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성격 탓에 일이 늘어났던 것. 그래서 사무실을 비우는 일도 많았다고.
그러면서도 안석동지는 더 많이 일을 벌여보고 싶은 욕심이 있어, 3가지 정도를 구상하고 있다고 했다. 하나는 석면에 대한 학습을 꾸준히 진행해, 인천지역의 재건축, 재개발 과정에서 나타나게 될 석면피해 예방조치 관련한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것. 이를 바탕으로 지역주민들의 건강권과 건설노동자들의 작업 중 건강 문제 등을 인천지역에서 사회화해보고 싶은 것이 그의 포부란다.
또 하나는 GM대우 노동자들의 살인적인 노동조건 문제를 세상에 알리는 것이다. 최근까지 GM대우 노동자들의 사망소식이나 뇌심혈관계질환 발병 소식을 듣는다고 그는 전한다. 사망원인이 다양하고, 공통성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아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아직 방향을 못 잡고 있지만, 대규모 정리해고와 구조조정을 경험하면서 삶, 그 자체가 위태로웠던 사람들의 실체를 드러내고 싶단다.
마지막 구상은 30인 미만 미조직 사업장에 대한 실태조사와 조직화였다. 기존에 해왔던 공단 선전전이나 상담 사업을 넘어서고 싶다는 것. 그래서 요즘은 관련 자료를 찾아 공부하는 중이라고.

실험실을 통해 노안활동을 만나다?!

안석동지의 노안활동의 계기는 남달랐다. 남들보다 늦은 나이인 25살에 대학교에 입학해 제 발로 인권동아리를 찾았고, 전공을 선택하는 2학년 때 공대에서 제일 공대답지 않은 학과인 산업공학과를 선택해 제 발로 노동과학연구소를 찾았다. 모두 쉽지 않은 결정 같아보였다.
더 이야기를 해보니, 노량진에서 늦깎이 재수생 시절을 보냈던 당시 논술 선생님이 대학에 가면, 꼭 토론동아리를 해보라는 얘기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고. 그것이 대학교 입학 후 자연스럽게 인권동아리로 자신을 이끌었고, 그렇게 인권동아리를 통해 학생운동을 접하면서 인권, 장애인, 이주노동자 등의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단다. 그렇지만 사실 당시에 노동운동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고, 그래서 전공을 선택한 이후에 뭔가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노동과학연구소를 찾게 된 것이란다.
필연일까? 어쨌든 그가 찾은 인천대학교 노동과학연구소는 건노세 대표인 김철홍 교수가 참여하는 공간이었다. 당시는 한참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가 활발하던 시기였고, 헬퍼로 연구소 일을 도우면서 대우상용차, 다이모스, SJM 등의 현장조사에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됐다. 그리고 안석동지의 특유의 부지런함과 성실함은 당시 함께 일을 해오던 건노세 활동가들이 사무국 활동을 제안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하지만 막상 사무국 활동이 쉽지는 않았다고 그는 말한다.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와 집단요양투쟁이 전국을 들썩거리게 했던 시기를 경과하고, 경총과 근로복지공단이 집단민원 대응지침 등 노동운동에 총공세를 취하던 시기에 노안단체 활동을 막 시작한 안석동지에게 당시는 혼란함 그 자체였단다. 또 부족한 현장경험이 교육시간에 만나는 현장노동자들에게 보다 분명하게 투쟁의 방향을 제시하거나, 조직하는데 한계로 느껴지게 됐고 그래서 한동안 방황하게 됐단다.

없어져야 할 현장이 많다는 것, 그게 저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 같아요.

현장 경험을 쌓기로 결심한 후 건노세 활동을 정리한 후, 박세민 금속노조 노안국장의 제안으로 금속노조에서 추진하는 포항지역 근골격계 질환 7개지회 공동조사, 연이어 진행된 화학물질 실태조사에 참여하고, 현장의 구체적 실상을 들여다보면서 다시 자신감을 회복하게 됐다고 안석동지는 말했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없어져야 할 공장’, ‘망해야 할 공장’들이 너무 많다는 것. 그런데 사업주나 정부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고, 결국 노동자들이 나서야만 현장이 조금이라도 개선되는 비참한 현실, 그에 대한 분노가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 같단다.
특히 기억 남는 것은 LCD제조 현장 실태조사를 할 때, 화학물질을 거의 마시는 수준에서 일하는 작업자들이 있었다는 것. 반올림 활동과 연관지어 요즘은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단다. 그 분들은 왜 병에 안 걸렸을까, 지금은 병에 걸리지 않았을까?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러나 여전히 이런 의문들에 대한 답변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고, 이런 것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활동이 필요하다고 그는 말한다.

그냥 단순하게 직업병이라고 생각했어요.

삼성반도체 피해자 고 황유미씨 부친인 황상기 어르신을 처음 만났을 때를 질문하니, 그는 싸움이 이렇게 커질 것이라고 생각도 못했다고 말한다.
처음 제보 내용을 듣고는 2인 1조로 일하다가 2명이 1년 사이에 백혈병으로 죽었다는 사실 그 자체에 주목하면서 직업병일 가능성을 의심했다는 것. 만약 노출기준이나, 사용하는 물질을 먼저 따지고, 백혈병까지 걸리는 의학적인 시간에 따른 업무관련성으로 접근했다면 다수의 전문가들처럼 업무관련성을 입증하기 힘들다거나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포기하는 것을 생각했을지 모른다고 그는 말했다. 자신이 조금 더 많이 앞뒤를 쟀거나, 조금 더 관련 지식이 풍부했다면 이 문제에 대해서 자신도 똑같이 접근했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그는 겸연쩍어 했다. 결국 사회적 문제로 이슈화된 삼성반도체 백혈병 문제는 다수의 피해자들이 숨죽였던 현실이 드러난 것이고, 그 분들의 피해와 억울함이 지금이라도 세상에 알려져 다행이라고 덧붙였다.
사실 건노세 활동 정리 후 1년 6개월을 고대병원에서 노안부장으로 일했던 안석동지는 그 기간 동안 반올림 활동에 대해서 부채의식이 남아 있었다고도 했다. 아마도 그것이 장안석 동지가 반올림 활동이라면 더욱 물불을 가리지 않고 앞장서게 되는 계기가 됐을지도 모른다.

서로 지지하고, 북돋는 활동을 하고 싶어요.

미 공중보건학회에서 반올림이 국제부문상을 수상할 때 함께 미국에 다녀왔던 그에게 특별히 기억나는 게 있냐고 묻자, 그는 서로 지지하고 북돋아주는 모습이 남다르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150년 정도 된 학회라면 내부에서 이런 저런 수준의 갈등이나, 우여곡절이 많았을 텐데 그것을 잘 극복하면서 오게 된 것이 참 신기했고, 그들의 풍부한 토론문화가 부러웠단다. 이견이 있더라도 지속적인 토론을 통해 함께 활동하는 문화를 정착해왔다는 그들의 자부심을 배워야 겠다고 생각됐다고. 미국에 갈 때는 반올림 차원에서 가는 만큼, 국제연대 꺼리 모색 등 여러 과제들을 스스로에게 부여하고 갔는데, 서로 지지하고 북돋아주는 활동 방식을 보면서 이것 하나 제대로 배워가자는 생각을 했다고. 그리고 반올림 활동에 대해 정말 마음을 다해 공감하고, 함께하려는 그들의 진심이 매우 절절하게 느껴졌다고 그는 말했다.

사람이 남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안석동지에게 노안활동을 하면서 제일 중요한 것, 가장 보람된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사업의 성과, 현장 개선이나 결과물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앞으로도 함께 미래를 꿈꾸고 함께 세상을 살아갈 사람이 남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다고, 그래서 자신은 지금까지의 활동 중에 반올림 활동이 제일 소중하게 남는다고 말했다. 이전 활동에서도 좋은 분들을 만나왔지만, 반올림 싸움만큼 사람들을 폭 넓게 만나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특히 자신에게는 발견할 수 없었던,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들의 삶, 그 자체를 소중히 생각하고 충실히 읽으려는 주변 동지들의 모습을 보면서 배우고 느끼는 것이 많다고 그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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